[2014년 글쓰기의 날 - 수상자 답안] 최우수상(1명), 우수상(2명), 장려상(6장)

 

[주제1: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주제2: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시오]

 

 

 

* 최우수상

* 학과 : 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양미경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 없이 던지고 산다. 그리고 때론 '왜 이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문은 전생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져오게 하고, 어떤 사람은 최면술사를 불러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체험해 보기까지 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생각의 꼬리를 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영화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1980년대 유명했던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로 흥행에 성공했고, 최근에 개봉한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영화 또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에 끼어들게 됨으로써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일이 틀어지거나 새롭게 현재가 전개된다는 가정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나비효과를 통해 아무리 인간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해도 모두 완벽히 현재를 고칠 수 없으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들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순간 잘못되었던 선택을 바로잡기 위한 우리의 열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한다. 바로 과거를 고치려고 행동하는 것도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도 돌아갔다 해도 주인공에게는 그곳이 현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우리 인생에 집어넣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이다. , 언제 어디가 되었든 '현재 속의 나의 행동'이 바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명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해석해보자. 첫 번째는 물리적 의미에서, 두 번째는 추상적 의미로, 세 번째는 의미론적 해석이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는 지나가 과거가 되고 앞으로 올 현재가 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사전적이고 물리적일 뿐 시간의 속성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않다. 두 번째로, 인간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생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을 뚜렷이 선을 긋고 구분할 수 없듯이 추상적인 시간은 실제로는 과거, 현재, 미래로 뚜렷이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하나로 연결 된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한국어 어법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뚜렷이 구분하는 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위 명제를 '현재와 과거, 미래는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겠으나, 이것 또한 시간의 속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볼 것은 바로 세 번째 해석이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명제는 곧, '현재가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바꾼다.'라는 것이다. 저명한 학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시대를 반영하여 과거와 미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견해와 이상이 곧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바꿔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변화는 과거와 미래 또한 변화시켜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역사 그 자체와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견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자유주의 저널리스트인 C.P 스콧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격언을 말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역사에 관한 의견(opinion)이 그만큼 다르고 그 그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은 과거, 현재, 미래에 실제로 각 시간에 존재하겠지만,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의견이다. 이것은 현재의 중요성으로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위 테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가 함축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중요성'인 것이다.

 

한 그리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만큼 현재는 소중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만큼 우리도 흘러간다. 그러나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내 안에 존재한다. 과거는 없어지지 않고 날 만들었고, 꿈을 꾸는 나는 곧 미래이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나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한다.

 

 


 

* 우수상

 

* 학과 : 문화예술경영학과              

* 성명 : 조경이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사십 대의 중년여성. 한 여성을 설명하는 단어는 언어가 가지는 '분절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고와 그 사고의 표현인 언어의 편이성을 위해서 '언어의 분절성'은 인간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항상 흐르고 흐르는 것이 분명한 시간에 대해 인간은, 일 년의 계절화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끊어서 구분하고 마찬가지로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구분되고 포획된 틀 안에서 시간은 연속성을 읽고, 끊어진 채로 독립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렇게 부여된 독립성에는 그에 따르는 소명과 의무가 짐 지워진다. 어디 시간만 그러한가? 여성이라는 명칭 안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틀 안에서 '인간'이라는 포괄적인 범주가 잘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또렷하게 박혀있다. 연속된 세계를 꾾어서 사고하는 문화적 습속은 아날로그로 진화된 우리가 지금 디지털로 분해되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Hick et nunc' 지금 여기는 어제와 내일의 중간지점인 현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와 확연한 선으로 구분된 것처럼 보이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아직 겪지 못한 '내일'이 이미 경험한 '어제'를 잊고, 지금 경험하는 '오늘'을 지나치게 한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산다는 말은, 직면하고 실체적 감각으로 경험해야 하는 '오늘'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일이 되면 내일이 또 올 것이고, 그 다음은 당연하게 무한히 반복된다. '내일'도 없으니 내일의 '행복'또한 없을 것이다. '어제'발생했던 불행과 행복은 '오늘'의 또 다른 기준이 된다. 명령처럼 인간의 행동을 규정짓고 제약하는 폭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도 '어제를 살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道行之而成'이라고 말했다. 지금 행하고 움직이는 것, 이것이 궁극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장자의 자유로운 삶 속에는 ''이라는 의미가 연속적인 흐름으로 나타나 있다. 공교롭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디지털처럼 분해되어 표현하고 사고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의미있는 연결의 조합능력이 있다고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장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매번 만나는 '지금, 여기'는 늘 현재형이다. 늘 현재형이지만 동일하지는 않게 흐르고 다가온다. 차이가 발생하고 그 차이를 통해 현재는 확장되고, 시간은 조합가능하게 변한다.

 

올겨울 최고의 한파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는 방송매체의 소식들이 시청자의 청각시스템을 휩쓸고 있다. 겨울은 춥다. 그러나 한파는 어떤 시간의 연결에 놓였느냐에 따라 봄의 온기를 보일 수도 있고 한여름의 무더위를 슬쩍 비칠 수도 있으며, 가을의 서늘함으로 온몸을 감쌀 수도 있다. 전체의 개략적인 온도는 개인에게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한파는 개인에게 상대적이다. 어제는 여름이었다가 오늘 문득 겨울인 경우를 이 생애에서는 체험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어제보다 약간 춥다는 정보로도 지금과 관련된 정보는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겨울 한복판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더불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체험하는 지금은 상대적이라서 절대성으로부터 자유롭다. 자유로우니 '행복'을 꿈꿔도 좋으리라.

 

눈이 와 부딪치는 창가에 '단애의 여왕'이라는 다육식물을 키운다. 봄을 꿈꾸기 때문이 아니라, 실내 온도에 맞춰 연둣빛 이파리와 하얀 솜털을 피워내는 그 식물을 예뻐하는 탓일 것이다. 그 꽃은 봄의 부재를 각인하는 겨울을 잊게 한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와 김상헌과 주화파의 최명길은 청과 명나라에 갇힌 조선의 운명을 놓고 심하게 대립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간 두 사람은 대립과 반목 끝에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입장이 된다. 김상헌은 '과거' 조선의 상황에 사로잡혀 있어 오랑캐인 청나라를 인정하지 못했던 반면에 최명길은 ' 내일'의 조선을 염려하여 청나라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했다. 그 둘은 결국 바위처럼, 흐르는 물처럼 각기 의미 있는 '오늘'을 살았다고 시로서 화답하게 된다. 그 화답으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당시 백성들의 삶이었고 이후 조선의 처지였다.

 

'어제'에 갇히고 '내일'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오늘'을 오늘답게 살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동떨어져 홀로 외로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그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을 따름이다. 겨울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녹아있는 것처럼.

 

Carpe diem. 현재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늘 현재를 잇달아 부른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형이었고 현재형일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 속에서 인간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지금 땀 흘리는 게 행복해요. 이러한 행복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행복'을 만들겠죠.'

 

 


 

 

 

* 우수상

* 학과 : NGO학과              

* 성명 : 채호병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안녕들 하십니까' 이 한 문장의 파급력은 2013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의 차가운 손과 발을 따듯하게 녹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우리는 평소에 무의미한 작별인사, 서로가 만났을 때 반가운 인사, 아니면 정말 의미 있는 이별에 사용하는 단어로 '안녕' 이라는 단어를 써왔었다. 하지만 작년 겨울 12월에 나타난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우리에게 스스로 의문점을 품게 만들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단어로 이용된 아주 뜨겁고 빠르게 타오르는 도화선으로서의 역할에 아주 충실한 단어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았고 결과적으로 나는 안녕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나는 안녕하다. 나또한 직장인으로서 한 달 200만 원 정도 근근이 벌며 저축, 학비, 월세, 보험, 통신비를 쓰면 현금 백 원 한 장 남지 않아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지출하고 매달 어느 정도 써야지 내 수입에 못 미치게끔 써서 신용카드 인생을 탈출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하다 매년 4월마다 오는 의료보험료 폭탄에 원점 복구되는 신용카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안녕치 못한지를 고민해보자면 아니다. 매달 근근이 생활하지만 내가 내 돈 벌며 내 일을 하며 성실히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본인의 생활비를 본인이 건사하지 못한다. 학업과 더불어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고, 알바로는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들은 틈틈이 과외알바 몇 번 하는 것만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상위권의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생들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학생일 뿐이다. 고로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존하는 기대심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모험심리와 기대심리로 인해 파이팅 넘쳐지는 경우보다는 주눅이 들고, 두려워하여 긴장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유명세를 탔다고 본다.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니 시작할 수 있을지도 막막한 상황 속에 '세상이 잘못 되었습니다' '민영화 반대합니다' '민영화되면 국민들이 감당해야할 금전적 손해가 어느정도 인지 아십니까?' 와 같은 질문들은 본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정도의 공포심을 불러온다. 나는 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원작가인 고려대 주현우 학생의 정치적 성향, 소속정당, 그간 행적들은 논외로 하고 이야기 하겠다. 그 이야기까지 하면 이 안녕들 하십니까와 그 이외의 이야기인 의료민영화 이야기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주현우 학생이나 이외의 학생들의 상황은 누구나 비슷비슷하다. 본인의 사회생활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고,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지금도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본인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세상이 잘못 되었다는 둥,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 당했다는 둥(나는 이 '보직해임' 또한 '해고' 라는 단어와 헷갈린 학생들 때문에 더더욱 파급력이 컸다고 본다) 하는 이야기들이 퍼져 나온다면 얼마나 두렵고 힘이 빠지겠는가? 실상 생각해보면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별일도 아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다들 두려워한다. 나는 이 대자보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공포심' 이라 정의하겠다. 인류는 대자연, 우주의 공포심 속에 종교와 신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위안을 삼고 그를 토속신앙화 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었다. 우리에게 공포심을 빼놓고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다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속에 안전장치를 만들거나 보호구를 착용하고, 심지어는 무기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해 먼저 공격하고 전쟁으로 발전하여 지구상에 영토선이라는 개념, 국경개념이 생겨난것이다. 나또한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손목터널증후군이 두려워 보호대를 차고 키보드를 치고있다. 다들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도 마찬가지로 공포심을 표출해내기위한 도구로서 학생들이 이용한 것이고 그에 따른 파급력 또한 대단했다. 다들 걱정하는 일이 무엇인지, 본인이 관심갖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대자보를 통해 안녕을 물으며 표출해냈다. 이는 종교를 만들어내 기도로서 본인의 공포심을 표출해낸 인류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것이라고 본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우리는 본인의 공포심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성소수자에 안녕을 묻는 대자보도 생겨났고, 왜 안녕하지 못하냐 나는 안녕하다. 안녕치 못한 자들에 생각을 두려워하는 대자보도 생겼고, 학생회의 비리로 인해 잘못된 것을 묻는 대자보도 생겼다. 이를 요새는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와 비슷한 논조의 타이틀을 달고 표출해내기 시작했고, 지금 대 성황에 이루어지고 방학을 맞아 한풀 꺾인 모양새이다. 모두 잘못되었다, 냉정치 못하다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러한 안녕을 묻기 이전에(대자보로서 표출해내기 이전에) 진정 본인이 원하는 것들이 제3자에게 부당치 않은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이타적 사고방식을 먼저 꺼내야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누구의 말도 수용할 준비를 한 상태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양측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분노하고 들끓어 오르기 이전에 본인의 생각을 먼저 차분히 정리하여 '대자보에 저렇게 써있으니 저게 맞는 말일 것이다.' 라 생각하기 이전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누군가의 생각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철학이 어떤지를 본인이 알고 있어야 수학을 하는 진정한 대학생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아름다운 단어이다. 이번 일을 통해 안녕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단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장려상

* 학과미디어문예창작             

* 성명 : 이경미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옛날의 사건을 밝혀내는 사람들은 그 지식으로 어느 나라든지 겪게 될 미래의 일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의 대처법을 적용하거나, 선례가 없는 일이라도 비슷한 일을 떠올려 새로운 대비책을 생각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관찰에 소홀하고, 드물게 그런 관찰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정치를 담당하는 자가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이러한 까닭에 세상 어디에서나 같은 소동이 되풀이되는 것이다.(로마사 평론 중)

 

나는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이 의미는 내가 앞서 인용한 로마사 평론의 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의 삶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대로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미래도 대비할 수 있기에 그만큼 현명한 인생을 살 수 있고 실패의 확률도 적은 삶을 살 수 있는데, 같은 소동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인생 중에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이성이 빠진 다른 짐승들도 갖고 있는 '향락적인 삶'에 그치는 인생을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만의 고유한 차원인 이성을 갖고, 각자 모양은 다르겠지만, 최고의 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통해 과거에 준비해 놓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즉 사유하며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바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 있다.'라는 의미라고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학기 공부를 하면서 내 지적 호기심에 가장 큰 충동을 주었던 '인간의 가치 탐색'이란 강의를 통해 가장 크게 자극이 된 사람이 '토크빌'이었다. 계몽사상을 이어 근대를 창조하려는 세력과 중세 이래의 전통 사회를 지키려는 끝없는 투쟁의 과정이었던 19세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뼛속까지 귀족일 수밖에 없었던 토크빌이 귀족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역사의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라고 보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한 현재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공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의 사회적 고민이 된 대중 사회의 문제점을 그가 일찍이 파악을 할 수 있었건 것은 그가 살아온 과거를 비추어 고민했던 그의 현재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크빌이 지적한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소소한 일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하향평준화된, 자유가 오히려 개인을 고립시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귀족적 가치가 소멸 되어 있는 이 대중사회의 문제점을 역사를 통해 찾아보고 해결해서 보다 가치 있는 미래를 구상해 나가는 노력을 하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영미 문화인 앵글로 섹슨 문화에만 지나치게 노출이 되어있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으로 인해 대중 사회의 문제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이때,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무엇이 우리를 이런 문제에 빠지게 했는지, 내지는 과거의 무엇을 우리가 꼭 지켰어야 했는지를 사회가, 그리고 시대가 고민을 하고 실천해야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 있다,'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며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의 정략론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면 과거로 눈을 돌리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일은 매우 비슷한 선례가 있으므로 과거를 보라는 저 말은 이치에 맞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을 찬찬히 검토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예견하고 옛 사람들의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다. 설령 적합한 선례가 없더라도 비슷한 선례를 통해 새로운 방책을 세울 수도 있다. (정략론)

 

 


 

 

 

* 장려상

* 학과일본학과          

* 성명 : 정윤경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2002년 작 사이먼 웰스 감독의 영화 '타임머신'의 줄거리를 잠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과학자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약혼녀 죽자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타임머신을 개발하게 됩니다.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약혼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오히려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몇 천만 년 후 가지 거슬러가서야 주인공이 알게 된 해답은 '당신이 타임머신을 만든 이유가 약혼녀의 죽음 때문인데, 어떻게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그녀를 살릴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관념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정의를 이해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과관계입니다. 아침에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아서 지금 비를 맞게 되고, 대학 입시를 거쳤기에 현재 대학생이 되었듯이 현재의 모든 우리 삶은 과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과거의 후회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삶 속에서 가장 망각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현재'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는 단순히 과거의 산물일 뿐이고,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그냥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요?

 

인과관계라는 논리 속에서 현재는 또다시 미래의 과거가 되고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이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간적 차원에서 또 인과적 차원에서 우리는 원인으로서의 과거와 결과로서의 미래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라는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은 한 순간도 과거나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재'가 의미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현재가 과거, 미래와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은 현재는 우리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타임머신처럼 과거는 이미 정해져 버렸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것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당장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우리가 바꾸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단 한사람의 작은 힘일지라도 '현재'는 그 힘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와 과거가 소통하는 교차점인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단언컨대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과거의 후회도 아니고 미래의 몽상도 아닌 현재를 주무르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 장려상

* 학과노인복지학과          

* 성명 : 김순영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를 들었을 때, 예전부터 생각했던 의미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현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 글자를 쓸 때도 이미 그 시간은 지나가 과거가 돼 있고 새로운 글자를 써나가는 이 순간 역시 미래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말을 현재 안에 미래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말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거와 미래는 명확하게 나눌 수 있지만 현재는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접해졌다고 표현한다면 현재를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법적으로는 나는 지금 밥을 먹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밥을 먹고 있을 때 밥을 먹는 순간은 이미 지나가 과거가 되어 있고 밥을 먹는 중이라는 현재형은 그 행동을 전체적, 포괄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 말을 논리적으로 파헤치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는 것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하는 행동이 순식간에 과거가 된다는 것도 참 묘한 것 같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라는 말에는 후회할일을 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지금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나이는 어느덧 47이 되었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대학병원 간호사부터 세 아이의 엄마, 한남자의 아내, 그리고 지금의 보훈병원 건강관리사라는 직책까지 많은 과거와 현재들이 존재하지만 나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선택은 경희 사이버 대학의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들과 남편의 미래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공부를 이 나이에도 해나가며 내 스스로 새로운 미래와 현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 글을 써내려가는 순간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하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라는 테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적용되고 있다.

 

 


 

* 장려상

* 학과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김태영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지금 호흡하고 있는 나는 살아있는 존재다. 현재란 호흡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지금의 호흡은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어제도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호흡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고 내일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면 이 호흡은 내일까지 연장될 것이다. 이처럼 현재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중심축이 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현재'는 경험의 집합체다. 과거의 수많은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현재를 이루었고, 또 현재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자신들의 공부 못해 겪은 설움과 한을 담아 자녀들에게 간절히 하던 말이 있다. '공부할 때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 간다'라는 말이다. 인생의 달고 쓴 맛을 겪을 대로 겪은 어른들은 그래도 공부를 해두어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만큼은 무지로 인해 겪게 되는 고초를 피하게 하고 싶었고 최고의 선택으로 넓은 지경을 꿈꾸며 살아가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애절함이 듬뿍 벤 명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 세상살이에 초보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 편이 될 것이라고 믿는 순수한 어린 자녀는 이런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간혹 이런저런 풍파로 세상을 일찍 경험해본 자녀들은 이 명언이 가슴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어른들의 이 말은 그냥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과거에 뼛속 깊숙이 경험했던 시간들이 아이를 철들게 했고 철없어서 놓쳐 버렸던 또는 본의 아니게 겪어야 했던 상실감의 흔적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자녀들에게 애정어린 마음으로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못 배운 고통이 가져다주는 쓰라린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대대손손 현재와 미래까지 영향을 주고 공감하게 만드는 이러한 명언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재'는 선택의 집합체다. 과거에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이 현재의 모습들이 쌓여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이태자는 혈육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어찌 보면 한 배를 타고 가야하는 숙명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자지간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각 다른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물질세계인 세상이 영혼의 세계와 다른 점은 영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점을 너무나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한때 삼국을 통일하고 황금의 나라라고 칭송받았던 신라도 과거의 명맥을 영원히 지속시킬 힘을 잃고 말았다. 분명 과거에 선택이라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현재 좋아 보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과거의 쓰라린 대 제국의 멸망을 한때 지나가 버린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와 미래에 연결해보려는 최소한의 진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현재와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퇴폐와 향락을 일삼던 왕족들과 고위급 간부들은 현재만을 즐겼고 과거와 미래는 던져 버렸다. 그래서 신라는 그렇게 기울어져 간 것이다. 그 슬픈 현재 위에 경순왕과 마이태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부자지간이지만 서로 다른 과거의 해석 위에 상반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둘의 미래는 손끝마저도 닿을 수 없게 그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경순왕은 고려 건국 시조 왕건에게 발걸음을 돌리고 마이태자는 마지막 자부심이자 자존심인 화랑도의 정신을 부여잡고 단호하게 한치 미련없이 태백산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며 함께하려야 할 수 없는 각각의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애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히 헤어지는 것만큼은 막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터다. 하지만 시간의 역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안타까운 역사이다. 그렇게 선택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서로 다르게 인도하고 이모저모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현재 안에는 과거의 경험과 선택이 녹아 있고 현재 안에는 미래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또는 뚜렷하게 비쳐진다. 못 배운 부모의 고통과 한, 멸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동자 안에 이들의 과거가 있었고 소망하는 미래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속에도 과거가 있고 이를 통해 소망하는 미래가 있다. 현재 안에 녹아 있는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이 시간에 살아 숨쉬는 경험과 선택을 하는 것만이 현재 안에 접해 있는 과거와 미래를 진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 그래야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할 수 있다.

 

 


 

* 장려상

* 학과 : 미디어문예창작학과            

* 성명 : 류혜진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다에 유조선의 기름이 유출되면 어부와 해녀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에 나가 기름을 닦아냅니다. 닦고 또 닦는 것이 원래의 업이었던 사람들마냥, 무표정으로 닦고 또 닦습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임하고 또 임합니다. 그 모습을 뉴스로 접하며 가슴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부의 딸인 적도 없고, 바닷가에 자주 간 일도 없고, 뉴스에 나온 그 무표정의 해녀를 만난 적도 없는데 찌릿찌릿 가슴이 쑤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50대 후반의 어부가 인터뷰를 하며,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제 심장을 때렸고 그 어부가 제 피붙이인 양 꺼이꺼이 울음이 쏟아집니다.

청천벽력! 내 삶의 터전에 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울며불며 난리를 친다면 제 마음이 이리 아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바다의 험악한 터전을 견뎌냈기에 기름쯤이야 닦아내면 그만이라는 표정입니다. 그 허심탄회함이 안쓰럽습니다. 50대 어부의 축 처진 어깨를 당장에라도 달려가 주물러드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시라고. 한껏 용기를 북돋아드리고 싶습니다. 50대 후반의 어부는, 나이 많은 해녀는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법을 진정 모르는 듯합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닌데, 죄를 저지른 자에게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기름을 닦아냅니다. 해녀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 클로즈업됩니다. 해녀는 말없이 말합니다.

"소리 지른 들 무엇하오, 그 힘으로 닦아내는 것이 더 빠른 해결 아니겠소~ 나는 내 밥 나오는 밥통 얼른 씻어내고 따뜻한 밥 지어 식구들 먹이는 것이 급하오. 화내면 무엇하오~ 그 힘으로 얼른 우리 식구들 살 터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오."

 

"안녕들 하십니까."

한 달 전, 이 대자보를 뉴스를 통해 접한 저는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대학생이, 여고생이 어려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 대자보를 붙이며 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걱정해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알 만큼 알아서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찾아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서른네 살, 지킬 것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 부모님들, 그리고 형제자매까지. 지켜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이라고 지킬 것이 왜 없겠습니까? 대학생은 취업을, 여고생은 대학에 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라고 왜 겁이 없었을까요? ,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고,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용기를 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과거 언론의 부자유를 맛보았고 독재 정권에 묶여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겁도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부조리하고 잘못된 일들에 제 목소리를 확실히 내지 못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한 몸이라면 불사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켜야 할 가족과 미래가 있습니다. 독립투사처럼, 내가 나서서 목소리를 나선다고 사회가 변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용기를 낸 그 누군가로 인해 잘못된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굳이 내가 왜! 라고 저와 같은 부끄러운 인간은 꼬리를 내립니다.

서른네 살, 아니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숨죽여 살아갑니다. 문득 뉴스에서 화를 내지 않았던 나이 많은 어부와 해녀가 떠오릅니다. 그 분들과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인생을 많이 살아 온 사람들은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화를 낸들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푸르도록 젊은 날, 화내고 싸워 보았지만 내 목만 아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푸른 날개를 펼치는 젊은이들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해봤는데 너희도 어쩔 수 없는 세상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한 것들을 더 똑똑하고 현명한 젊은 그들이 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한 가닥이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이 있고,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으며, 척박한 땅에서 곡물을 일구어내는 기술을 발견할 정도로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못할 것도 없습니다.

 

서른네 살, 저는 아이의 엄마이고 어느 가정의 아내입니다. 어린아이의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보필하는 것뿐입니다. 참으로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과 하고 있는데, 현명한 남편은 그것이 제일 큰일이라고 용기를 줍니다.

지금 당장 아파트 벽에 "안녕들 하십니까."를 붙일 수 있는 용기는 없지만,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고 남편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리는 희생을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가정 안에서 충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이 나라의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안녕들 하십니까."를 붙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은 분명 이 사회에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더 깊이 통찰하게 되었고, 진실을 보고자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욕하는 그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고, 대한민국을 망치려는 자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섭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참 성실합니다. 그 누구 하나 대충 살지 못합니다. 참 열심히도 살아갑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영향도 한몫 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안녕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안녕들 하신지 물어야 합니다.

저 또한 제 위치에서 이웃들에게 안녕하신지 묻고 있습니다.

김장 김치 한 그릇 나누며, 저는 대한민국 국민을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 대자보는 분명, 대한민국을 향한 아름다운 관심과 열정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한 단계 더 이끄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대한민국은 안녕해야 합니다.

젊고 푸른 날개들의 자성이 꾸준히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날갯짓과 목소리는 세상에 널리 울려 퍼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세상을 눈치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울려야 합니다.

 

 


* 장려상

* 학과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박명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시간적인 시점에서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로 구분한다. 과거는 현재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미래는 현재를 바탕으로 이후의 결과로 나타난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아버지와 나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논해보고자 한다.

 

2. 본말

본인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14년 째 근무하고 있다. "직업으로 봉사하면서 보람도 있으니까 얼마나 좋으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렇다. 직업과 봉사 그리고 보람까지 느끼는 삼박자를 갖추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요즘과 같은 대부업과는 거리가 먼 여유자금을 빌려주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차용증서 없이 돈을 빌려주셨다. 가끔씩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는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몰래 야반도주를 하여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께서 힘들게 모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는 여유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어쩌다 돈을 갚지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돈의 가치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거나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과거에 그 사람들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가 현재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다는 인접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미래까지 그다지 밝지 못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를 조명할 때 미래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일부의 돈을 못 받긴 했지만 그다지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돈을 빌려 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의 금리로 어느 정도의 이자를 쳐서 원금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돈을 빌린 사람은 또 돈을 빌려서 갚거나 돈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수전노처럼 상환 기일을 어겼다고 높은 이자를 요구하거나 두 번 다시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집의 살림은 조금씩 나아졌다. 이 또한 현재의 상태가 과거와 연관되었고 미래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선한 아버지의 생활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내 일과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일" 을 하고 싶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아버지의 모습인 과거가 나의 현재 모습에 영향을 주었으며 미래의 모습을 계획할 수 있게 한다. 나의 미래는 현재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나 남미에 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되어 파라과이에서 활동한 바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꿈꾸면서 준비해온 결과였고 미래를 위한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중심인 현재 속에서 나는 '빈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미용기술교육 프로젝트" 1년간 수행하였다. 그 결과 가사도우미로 하루 5달러 미만을 벌어서 많은 식구를 부양했던 10명의 교육생이 전문 기술로 더 많은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문대학을 병행하여 외국의 원조에 익숙했던 여성들이 지역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쾌거도 이룰 수 있었다. 그 경험과 보람이 미래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계획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죽음을 염두에 두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 하며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한다. 다만 개인차에 따라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중요성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그러나 누구라도 어느 한 시기를 상실한 채 다음 시점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좋았던 과거에 집착하거나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거가 힘들고 불행했지만, 현재에 노력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과거에 현재에 또는 미래에 찰나적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하다 보니까 성공이 따라오는 경우라고들 말한다. 이들이야말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해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공을 좇는 사람이기보다는 성공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내 일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 하고 싶다. 나의 과거는 행복했고 현재는 조금 더 행복하고 미래는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행복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나의 현재가 과거와 미래와 접해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3. 나오는 말

이상에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논해보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매 순간을 여러 가지 일들로 창조한다. 여기에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의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신에 대한 최대의 경의로 그 모든 시간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