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글쓰기의 날 - 수상자 답안] 최우수상(1명), 우수상(2명), 장려상(6장)

 

[주제1: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주제2: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시오]

 

 

 

* 최우수상

* 학과 : 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양미경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 없이 던지고 산다. 그리고 때론 '왜 이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문은 전생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져오게 하고, 어떤 사람은 최면술사를 불러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체험해 보기까지 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생각의 꼬리를 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영화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1980년대 유명했던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로 흥행에 성공했고, 최근에 개봉한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영화 또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에 끼어들게 됨으로써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일이 틀어지거나 새롭게 현재가 전개된다는 가정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나비효과를 통해 아무리 인간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해도 모두 완벽히 현재를 고칠 수 없으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들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순간 잘못되었던 선택을 바로잡기 위한 우리의 열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한다. 바로 과거를 고치려고 행동하는 것도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도 돌아갔다 해도 주인공에게는 그곳이 현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우리 인생에 집어넣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이다. , 언제 어디가 되었든 '현재 속의 나의 행동'이 바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명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해석해보자. 첫 번째는 물리적 의미에서, 두 번째는 추상적 의미로, 세 번째는 의미론적 해석이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는 지나가 과거가 되고 앞으로 올 현재가 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사전적이고 물리적일 뿐 시간의 속성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않다. 두 번째로, 인간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생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을 뚜렷이 선을 긋고 구분할 수 없듯이 추상적인 시간은 실제로는 과거, 현재, 미래로 뚜렷이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하나로 연결 된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한국어 어법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뚜렷이 구분하는 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위 명제를 '현재와 과거, 미래는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겠으나, 이것 또한 시간의 속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볼 것은 바로 세 번째 해석이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명제는 곧, '현재가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바꾼다.'라는 것이다. 저명한 학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시대를 반영하여 과거와 미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견해와 이상이 곧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바꿔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변화는 과거와 미래 또한 변화시켜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역사 그 자체와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견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자유주의 저널리스트인 C.P 스콧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격언을 말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역사에 관한 의견(opinion)이 그만큼 다르고 그 그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은 과거, 현재, 미래에 실제로 각 시간에 존재하겠지만,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의견이다. 이것은 현재의 중요성으로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위 테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가 함축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중요성'인 것이다.

 

한 그리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만큼 현재는 소중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만큼 우리도 흘러간다. 그러나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내 안에 존재한다. 과거는 없어지지 않고 날 만들었고, 꿈을 꾸는 나는 곧 미래이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나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한다.

 

 


 

* 우수상

 

* 학과 : 문화예술경영학과              

* 성명 : 조경이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사십 대의 중년여성. 한 여성을 설명하는 단어는 언어가 가지는 '분절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고와 그 사고의 표현인 언어의 편이성을 위해서 '언어의 분절성'은 인간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항상 흐르고 흐르는 것이 분명한 시간에 대해 인간은, 일 년의 계절화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끊어서 구분하고 마찬가지로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구분되고 포획된 틀 안에서 시간은 연속성을 읽고, 끊어진 채로 독립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렇게 부여된 독립성에는 그에 따르는 소명과 의무가 짐 지워진다. 어디 시간만 그러한가? 여성이라는 명칭 안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틀 안에서 '인간'이라는 포괄적인 범주가 잘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또렷하게 박혀있다. 연속된 세계를 꾾어서 사고하는 문화적 습속은 아날로그로 진화된 우리가 지금 디지털로 분해되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Hick et nunc' 지금 여기는 어제와 내일의 중간지점인 현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와 확연한 선으로 구분된 것처럼 보이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아직 겪지 못한 '내일'이 이미 경험한 '어제'를 잊고, 지금 경험하는 '오늘'을 지나치게 한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산다는 말은, 직면하고 실체적 감각으로 경험해야 하는 '오늘'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일이 되면 내일이 또 올 것이고, 그 다음은 당연하게 무한히 반복된다. '내일'도 없으니 내일의 '행복'또한 없을 것이다. '어제'발생했던 불행과 행복은 '오늘'의 또 다른 기준이 된다. 명령처럼 인간의 행동을 규정짓고 제약하는 폭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도 '어제를 살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道行之而成'이라고 말했다. 지금 행하고 움직이는 것, 이것이 궁극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장자의 자유로운 삶 속에는 ''이라는 의미가 연속적인 흐름으로 나타나 있다. 공교롭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디지털처럼 분해되어 표현하고 사고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의미있는 연결의 조합능력이 있다고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장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매번 만나는 '지금, 여기'는 늘 현재형이다. 늘 현재형이지만 동일하지는 않게 흐르고 다가온다. 차이가 발생하고 그 차이를 통해 현재는 확장되고, 시간은 조합가능하게 변한다.

 

올겨울 최고의 한파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는 방송매체의 소식들이 시청자의 청각시스템을 휩쓸고 있다. 겨울은 춥다. 그러나 한파는 어떤 시간의 연결에 놓였느냐에 따라 봄의 온기를 보일 수도 있고 한여름의 무더위를 슬쩍 비칠 수도 있으며, 가을의 서늘함으로 온몸을 감쌀 수도 있다. 전체의 개략적인 온도는 개인에게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한파는 개인에게 상대적이다. 어제는 여름이었다가 오늘 문득 겨울인 경우를 이 생애에서는 체험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어제보다 약간 춥다는 정보로도 지금과 관련된 정보는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겨울 한복판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더불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체험하는 지금은 상대적이라서 절대성으로부터 자유롭다. 자유로우니 '행복'을 꿈꿔도 좋으리라.

 

눈이 와 부딪치는 창가에 '단애의 여왕'이라는 다육식물을 키운다. 봄을 꿈꾸기 때문이 아니라, 실내 온도에 맞춰 연둣빛 이파리와 하얀 솜털을 피워내는 그 식물을 예뻐하는 탓일 것이다. 그 꽃은 봄의 부재를 각인하는 겨울을 잊게 한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와 김상헌과 주화파의 최명길은 청과 명나라에 갇힌 조선의 운명을 놓고 심하게 대립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간 두 사람은 대립과 반목 끝에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입장이 된다. 김상헌은 '과거' 조선의 상황에 사로잡혀 있어 오랑캐인 청나라를 인정하지 못했던 반면에 최명길은 ' 내일'의 조선을 염려하여 청나라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했다. 그 둘은 결국 바위처럼, 흐르는 물처럼 각기 의미 있는 '오늘'을 살았다고 시로서 화답하게 된다. 그 화답으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당시 백성들의 삶이었고 이후 조선의 처지였다.

 

'어제'에 갇히고 '내일'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오늘'을 오늘답게 살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동떨어져 홀로 외로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그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을 따름이다. 겨울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녹아있는 것처럼.

 

Carpe diem. 현재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늘 현재를 잇달아 부른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형이었고 현재형일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 속에서 인간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지금 땀 흘리는 게 행복해요. 이러한 행복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행복'을 만들겠죠.'

 

 


 

 

 

* 우수상

* 학과 : NGO학과              

* 성명 : 채호병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안녕들 하십니까' 이 한 문장의 파급력은 2013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의 차가운 손과 발을 따듯하게 녹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우리는 평소에 무의미한 작별인사, 서로가 만났을 때 반가운 인사, 아니면 정말 의미 있는 이별에 사용하는 단어로 '안녕' 이라는 단어를 써왔었다. 하지만 작년 겨울 12월에 나타난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우리에게 스스로 의문점을 품게 만들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단어로 이용된 아주 뜨겁고 빠르게 타오르는 도화선으로서의 역할에 아주 충실한 단어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았고 결과적으로 나는 안녕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나는 안녕하다. 나또한 직장인으로서 한 달 200만 원 정도 근근이 벌며 저축, 학비, 월세, 보험, 통신비를 쓰면 현금 백 원 한 장 남지 않아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지출하고 매달 어느 정도 써야지 내 수입에 못 미치게끔 써서 신용카드 인생을 탈출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하다 매년 4월마다 오는 의료보험료 폭탄에 원점 복구되는 신용카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안녕치 못한지를 고민해보자면 아니다. 매달 근근이 생활하지만 내가 내 돈 벌며 내 일을 하며 성실히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본인의 생활비를 본인이 건사하지 못한다. 학업과 더불어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고, 알바로는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들은 틈틈이 과외알바 몇 번 하는 것만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상위권의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생들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학생일 뿐이다. 고로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존하는 기대심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모험심리와 기대심리로 인해 파이팅 넘쳐지는 경우보다는 주눅이 들고, 두려워하여 긴장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유명세를 탔다고 본다.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니 시작할 수 있을지도 막막한 상황 속에 '세상이 잘못 되었습니다' '민영화 반대합니다' '민영화되면 국민들이 감당해야할 금전적 손해가 어느정도 인지 아십니까?' 와 같은 질문들은 본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정도의 공포심을 불러온다. 나는 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원작가인 고려대 주현우 학생의 정치적 성향, 소속정당, 그간 행적들은 논외로 하고 이야기 하겠다. 그 이야기까지 하면 이 안녕들 하십니까와 그 이외의 이야기인 의료민영화 이야기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주현우 학생이나 이외의 학생들의 상황은 누구나 비슷비슷하다. 본인의 사회생활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고,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지금도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본인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세상이 잘못 되었다는 둥,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 당했다는 둥(나는 이 '보직해임' 또한 '해고' 라는 단어와 헷갈린 학생들 때문에 더더욱 파급력이 컸다고 본다) 하는 이야기들이 퍼져 나온다면 얼마나 두렵고 힘이 빠지겠는가? 실상 생각해보면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별일도 아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다들 두려워한다. 나는 이 대자보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공포심' 이라 정의하겠다. 인류는 대자연, 우주의 공포심 속에 종교와 신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위안을 삼고 그를 토속신앙화 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었다. 우리에게 공포심을 빼놓고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다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속에 안전장치를 만들거나 보호구를 착용하고, 심지어는 무기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해 먼저 공격하고 전쟁으로 발전하여 지구상에 영토선이라는 개념, 국경개념이 생겨난것이다. 나또한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손목터널증후군이 두려워 보호대를 차고 키보드를 치고있다. 다들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도 마찬가지로 공포심을 표출해내기위한 도구로서 학생들이 이용한 것이고 그에 따른 파급력 또한 대단했다. 다들 걱정하는 일이 무엇인지, 본인이 관심갖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대자보를 통해 안녕을 물으며 표출해냈다. 이는 종교를 만들어내 기도로서 본인의 공포심을 표출해낸 인류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것이라고 본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우리는 본인의 공포심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성소수자에 안녕을 묻는 대자보도 생겨났고, 왜 안녕하지 못하냐 나는 안녕하다. 안녕치 못한 자들에 생각을 두려워하는 대자보도 생겼고, 학생회의 비리로 인해 잘못된 것을 묻는 대자보도 생겼다. 이를 요새는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와 비슷한 논조의 타이틀을 달고 표출해내기 시작했고, 지금 대 성황에 이루어지고 방학을 맞아 한풀 꺾인 모양새이다. 모두 잘못되었다, 냉정치 못하다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러한 안녕을 묻기 이전에(대자보로서 표출해내기 이전에) 진정 본인이 원하는 것들이 제3자에게 부당치 않은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이타적 사고방식을 먼저 꺼내야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누구의 말도 수용할 준비를 한 상태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양측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분노하고 들끓어 오르기 이전에 본인의 생각을 먼저 차분히 정리하여 '대자보에 저렇게 써있으니 저게 맞는 말일 것이다.' 라 생각하기 이전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누군가의 생각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철학이 어떤지를 본인이 알고 있어야 수학을 하는 진정한 대학생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아름다운 단어이다. 이번 일을 통해 안녕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단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장려상

* 학과미디어문예창작             

* 성명 : 이경미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옛날의 사건을 밝혀내는 사람들은 그 지식으로 어느 나라든지 겪게 될 미래의 일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의 대처법을 적용하거나, 선례가 없는 일이라도 비슷한 일을 떠올려 새로운 대비책을 생각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관찰에 소홀하고, 드물게 그런 관찰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정치를 담당하는 자가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이러한 까닭에 세상 어디에서나 같은 소동이 되풀이되는 것이다.(로마사 평론 중)

 

나는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이 의미는 내가 앞서 인용한 로마사 평론의 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의 삶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대로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미래도 대비할 수 있기에 그만큼 현명한 인생을 살 수 있고 실패의 확률도 적은 삶을 살 수 있는데, 같은 소동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인생 중에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이성이 빠진 다른 짐승들도 갖고 있는 '향락적인 삶'에 그치는 인생을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만의 고유한 차원인 이성을 갖고, 각자 모양은 다르겠지만, 최고의 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통해 과거에 준비해 놓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즉 사유하며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바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 있다.'라는 의미라고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학기 공부를 하면서 내 지적 호기심에 가장 큰 충동을 주었던 '인간의 가치 탐색'이란 강의를 통해 가장 크게 자극이 된 사람이 '토크빌'이었다. 계몽사상을 이어 근대를 창조하려는 세력과 중세 이래의 전통 사회를 지키려는 끝없는 투쟁의 과정이었던 19세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뼛속까지 귀족일 수밖에 없었던 토크빌이 귀족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역사의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라고 보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한 현재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공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의 사회적 고민이 된 대중 사회의 문제점을 그가 일찍이 파악을 할 수 있었건 것은 그가 살아온 과거를 비추어 고민했던 그의 현재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크빌이 지적한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소소한 일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하향평준화된, 자유가 오히려 개인을 고립시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귀족적 가치가 소멸 되어 있는 이 대중사회의 문제점을 역사를 통해 찾아보고 해결해서 보다 가치 있는 미래를 구상해 나가는 노력을 하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영미 문화인 앵글로 섹슨 문화에만 지나치게 노출이 되어있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으로 인해 대중 사회의 문제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이때,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무엇이 우리를 이런 문제에 빠지게 했는지, 내지는 과거의 무엇을 우리가 꼭 지켰어야 했는지를 사회가, 그리고 시대가 고민을 하고 실천해야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 있다,'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며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의 정략론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면 과거로 눈을 돌리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일은 매우 비슷한 선례가 있으므로 과거를 보라는 저 말은 이치에 맞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을 찬찬히 검토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예견하고 옛 사람들의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다. 설령 적합한 선례가 없더라도 비슷한 선례를 통해 새로운 방책을 세울 수도 있다. (정략론)

 

 


 

 

 

* 장려상

* 학과일본학과          

* 성명 : 정윤경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2002년 작 사이먼 웰스 감독의 영화 '타임머신'의 줄거리를 잠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과학자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약혼녀 죽자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타임머신을 개발하게 됩니다.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약혼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오히려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몇 천만 년 후 가지 거슬러가서야 주인공이 알게 된 해답은 '당신이 타임머신을 만든 이유가 약혼녀의 죽음 때문인데, 어떻게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그녀를 살릴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관념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정의를 이해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과관계입니다. 아침에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아서 지금 비를 맞게 되고, 대학 입시를 거쳤기에 현재 대학생이 되었듯이 현재의 모든 우리 삶은 과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과거의 후회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삶 속에서 가장 망각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현재'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는 단순히 과거의 산물일 뿐이고,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그냥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요?

 

인과관계라는 논리 속에서 현재는 또다시 미래의 과거가 되고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이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간적 차원에서 또 인과적 차원에서 우리는 원인으로서의 과거와 결과로서의 미래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라는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은 한 순간도 과거나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재'가 의미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현재가 과거, 미래와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은 현재는 우리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타임머신처럼 과거는 이미 정해져 버렸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것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당장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우리가 바꾸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단 한사람의 작은 힘일지라도 '현재'는 그 힘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와 과거가 소통하는 교차점인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단언컨대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과거의 후회도 아니고 미래의 몽상도 아닌 현재를 주무르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 장려상

* 학과노인복지학과          

* 성명 : 김순영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를 들었을 때, 예전부터 생각했던 의미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현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 글자를 쓸 때도 이미 그 시간은 지나가 과거가 돼 있고 새로운 글자를 써나가는 이 순간 역시 미래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말을 현재 안에 미래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말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거와 미래는 명확하게 나눌 수 있지만 현재는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접해졌다고 표현한다면 현재를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법적으로는 나는 지금 밥을 먹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밥을 먹고 있을 때 밥을 먹는 순간은 이미 지나가 과거가 되어 있고 밥을 먹는 중이라는 현재형은 그 행동을 전체적, 포괄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 말을 논리적으로 파헤치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는 것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하는 행동이 순식간에 과거가 된다는 것도 참 묘한 것 같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라는 말에는 후회할일을 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지금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나이는 어느덧 47이 되었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대학병원 간호사부터 세 아이의 엄마, 한남자의 아내, 그리고 지금의 보훈병원 건강관리사라는 직책까지 많은 과거와 현재들이 존재하지만 나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선택은 경희 사이버 대학의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들과 남편의 미래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공부를 이 나이에도 해나가며 내 스스로 새로운 미래와 현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 글을 써내려가는 순간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하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라는 테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적용되고 있다.

 

 


 

* 장려상

* 학과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김태영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지금 호흡하고 있는 나는 살아있는 존재다. 현재란 호흡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지금의 호흡은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어제도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호흡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고 내일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면 이 호흡은 내일까지 연장될 것이다. 이처럼 현재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중심축이 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현재'는 경험의 집합체다. 과거의 수많은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현재를 이루었고, 또 현재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자신들의 공부 못해 겪은 설움과 한을 담아 자녀들에게 간절히 하던 말이 있다. '공부할 때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 간다'라는 말이다. 인생의 달고 쓴 맛을 겪을 대로 겪은 어른들은 그래도 공부를 해두어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만큼은 무지로 인해 겪게 되는 고초를 피하게 하고 싶었고 최고의 선택으로 넓은 지경을 꿈꾸며 살아가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애절함이 듬뿍 벤 명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 세상살이에 초보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 편이 될 것이라고 믿는 순수한 어린 자녀는 이런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간혹 이런저런 풍파로 세상을 일찍 경험해본 자녀들은 이 명언이 가슴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어른들의 이 말은 그냥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과거에 뼛속 깊숙이 경험했던 시간들이 아이를 철들게 했고 철없어서 놓쳐 버렸던 또는 본의 아니게 겪어야 했던 상실감의 흔적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자녀들에게 애정어린 마음으로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못 배운 고통이 가져다주는 쓰라린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대대손손 현재와 미래까지 영향을 주고 공감하게 만드는 이러한 명언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재'는 선택의 집합체다. 과거에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이 현재의 모습들이 쌓여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이태자는 혈육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어찌 보면 한 배를 타고 가야하는 숙명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자지간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각 다른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물질세계인 세상이 영혼의 세계와 다른 점은 영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점을 너무나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한때 삼국을 통일하고 황금의 나라라고 칭송받았던 신라도 과거의 명맥을 영원히 지속시킬 힘을 잃고 말았다. 분명 과거에 선택이라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현재 좋아 보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과거의 쓰라린 대 제국의 멸망을 한때 지나가 버린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와 미래에 연결해보려는 최소한의 진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현재와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퇴폐와 향락을 일삼던 왕족들과 고위급 간부들은 현재만을 즐겼고 과거와 미래는 던져 버렸다. 그래서 신라는 그렇게 기울어져 간 것이다. 그 슬픈 현재 위에 경순왕과 마이태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부자지간이지만 서로 다른 과거의 해석 위에 상반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둘의 미래는 손끝마저도 닿을 수 없게 그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경순왕은 고려 건국 시조 왕건에게 발걸음을 돌리고 마이태자는 마지막 자부심이자 자존심인 화랑도의 정신을 부여잡고 단호하게 한치 미련없이 태백산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며 함께하려야 할 수 없는 각각의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애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히 헤어지는 것만큼은 막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터다. 하지만 시간의 역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안타까운 역사이다. 그렇게 선택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서로 다르게 인도하고 이모저모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 현재 안에는 과거의 경험과 선택이 녹아 있고 현재 안에는 미래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또는 뚜렷하게 비쳐진다. 못 배운 부모의 고통과 한, 멸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동자 안에 이들의 과거가 있었고 소망하는 미래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속에도 과거가 있고 이를 통해 소망하는 미래가 있다. 현재 안에 녹아 있는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이 시간에 살아 숨쉬는 경험과 선택을 하는 것만이 현재 안에 접해 있는 과거와 미래를 진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 그래야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할 수 있다.

 

 


 

* 장려상

* 학과 : 미디어문예창작학과            

* 성명 : 류혜진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다에 유조선의 기름이 유출되면 어부와 해녀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에 나가 기름을 닦아냅니다. 닦고 또 닦는 것이 원래의 업이었던 사람들마냥, 무표정으로 닦고 또 닦습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임하고 또 임합니다. 그 모습을 뉴스로 접하며 가슴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부의 딸인 적도 없고, 바닷가에 자주 간 일도 없고, 뉴스에 나온 그 무표정의 해녀를 만난 적도 없는데 찌릿찌릿 가슴이 쑤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50대 후반의 어부가 인터뷰를 하며,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제 심장을 때렸고 그 어부가 제 피붙이인 양 꺼이꺼이 울음이 쏟아집니다.

청천벽력! 내 삶의 터전에 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울며불며 난리를 친다면 제 마음이 이리 아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바다의 험악한 터전을 견뎌냈기에 기름쯤이야 닦아내면 그만이라는 표정입니다. 그 허심탄회함이 안쓰럽습니다. 50대 어부의 축 처진 어깨를 당장에라도 달려가 주물러드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시라고. 한껏 용기를 북돋아드리고 싶습니다. 50대 후반의 어부는, 나이 많은 해녀는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법을 진정 모르는 듯합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닌데, 죄를 저지른 자에게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기름을 닦아냅니다. 해녀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 클로즈업됩니다. 해녀는 말없이 말합니다.

"소리 지른 들 무엇하오, 그 힘으로 닦아내는 것이 더 빠른 해결 아니겠소~ 나는 내 밥 나오는 밥통 얼른 씻어내고 따뜻한 밥 지어 식구들 먹이는 것이 급하오. 화내면 무엇하오~ 그 힘으로 얼른 우리 식구들 살 터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오."

 

"안녕들 하십니까."

한 달 전, 이 대자보를 뉴스를 통해 접한 저는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대학생이, 여고생이 어려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 대자보를 붙이며 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걱정해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알 만큼 알아서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찾아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서른네 살, 지킬 것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 부모님들, 그리고 형제자매까지. 지켜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이라고 지킬 것이 왜 없겠습니까? 대학생은 취업을, 여고생은 대학에 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라고 왜 겁이 없었을까요? ,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고,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용기를 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과거 언론의 부자유를 맛보았고 독재 정권에 묶여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겁도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부조리하고 잘못된 일들에 제 목소리를 확실히 내지 못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한 몸이라면 불사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켜야 할 가족과 미래가 있습니다. 독립투사처럼, 내가 나서서 목소리를 나선다고 사회가 변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용기를 낸 그 누군가로 인해 잘못된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굳이 내가 왜! 라고 저와 같은 부끄러운 인간은 꼬리를 내립니다.

서른네 살, 아니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숨죽여 살아갑니다. 문득 뉴스에서 화를 내지 않았던 나이 많은 어부와 해녀가 떠오릅니다. 그 분들과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인생을 많이 살아 온 사람들은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화를 낸들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푸르도록 젊은 날, 화내고 싸워 보았지만 내 목만 아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푸른 날개를 펼치는 젊은이들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해봤는데 너희도 어쩔 수 없는 세상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한 것들을 더 똑똑하고 현명한 젊은 그들이 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한 가닥이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이 있고,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으며, 척박한 땅에서 곡물을 일구어내는 기술을 발견할 정도로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못할 것도 없습니다.

 

서른네 살, 저는 아이의 엄마이고 어느 가정의 아내입니다. 어린아이의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보필하는 것뿐입니다. 참으로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과 하고 있는데, 현명한 남편은 그것이 제일 큰일이라고 용기를 줍니다.

지금 당장 아파트 벽에 "안녕들 하십니까."를 붙일 수 있는 용기는 없지만,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고 남편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리는 희생을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가정 안에서 충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이 나라의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안녕들 하십니까."를 붙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은 분명 이 사회에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더 깊이 통찰하게 되었고, 진실을 보고자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욕하는 그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고, 대한민국을 망치려는 자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섭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참 성실합니다. 그 누구 하나 대충 살지 못합니다. 참 열심히도 살아갑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영향도 한몫 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안녕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안녕들 하신지 물어야 합니다.

저 또한 제 위치에서 이웃들에게 안녕하신지 묻고 있습니다.

김장 김치 한 그릇 나누며, 저는 대한민국 국민을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 대자보는 분명, 대한민국을 향한 아름다운 관심과 열정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한 단계 더 이끄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대한민국은 안녕해야 합니다.

젊고 푸른 날개들의 자성이 꾸준히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날갯짓과 목소리는 세상에 널리 울려 퍼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세상을 눈치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울려야 합니다.

 

 


* 장려상

* 학과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박명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라는 테제의 의미를 논하라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시간적인 시점에서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로 구분한다. 과거는 현재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미래는 현재를 바탕으로 이후의 결과로 나타난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아버지와 나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논해보고자 한다.

 

2. 본말

본인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14년 째 근무하고 있다. "직업으로 봉사하면서 보람도 있으니까 얼마나 좋으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렇다. 직업과 봉사 그리고 보람까지 느끼는 삼박자를 갖추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요즘과 같은 대부업과는 거리가 먼 여유자금을 빌려주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차용증서 없이 돈을 빌려주셨다. 가끔씩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는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몰래 야반도주를 하여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께서 힘들게 모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는 여유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어쩌다 돈을 갚지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돈의 가치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거나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과거에 그 사람들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가 현재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다는 인접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미래까지 그다지 밝지 못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를 조명할 때 미래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일부의 돈을 못 받긴 했지만 그다지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돈을 빌려 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의 금리로 어느 정도의 이자를 쳐서 원금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돈을 빌린 사람은 또 돈을 빌려서 갚거나 돈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수전노처럼 상환 기일을 어겼다고 높은 이자를 요구하거나 두 번 다시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집의 살림은 조금씩 나아졌다. 이 또한 현재의 상태가 과거와 연관되었고 미래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선한 아버지의 생활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내 일과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일" 을 하고 싶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아버지의 모습인 과거가 나의 현재 모습에 영향을 주었으며 미래의 모습을 계획할 수 있게 한다. 나의 미래는 현재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나 남미에 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되어 파라과이에서 활동한 바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꿈꾸면서 준비해온 결과였고 미래를 위한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중심인 현재 속에서 나는 '빈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미용기술교육 프로젝트" 1년간 수행하였다. 그 결과 가사도우미로 하루 5달러 미만을 벌어서 많은 식구를 부양했던 10명의 교육생이 전문 기술로 더 많은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문대학을 병행하여 외국의 원조에 익숙했던 여성들이 지역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쾌거도 이룰 수 있었다. 그 경험과 보람이 미래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계획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죽음을 염두에 두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 하며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한다. 다만 개인차에 따라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중요성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그러나 누구라도 어느 한 시기를 상실한 채 다음 시점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좋았던 과거에 집착하거나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거가 힘들고 불행했지만, 현재에 노력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과거에 현재에 또는 미래에 찰나적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하다 보니까 성공이 따라오는 경우라고들 말한다. 이들이야말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접해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공을 좇는 사람이기보다는 성공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내 일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 하고 싶다. 나의 과거는 행복했고 현재는 조금 더 행복하고 미래는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행복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나의 현재가 과거와 미래와 접해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3. 나오는 말

이상에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도 접해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논해보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매 순간을 여러 가지 일들로 창조한다. 여기에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의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신에 대한 최대의 경의로 그 모든 시간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야 한다.

 

 

 

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上)

 

임상훈(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 상임연구원)



  

 

1. 인문학과 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뇌에 관련된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신경 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의학 또는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말하게 되지 인문학을 언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인문학이 뇌에 관해서 이야기할 부분은 무엇인가? 또 뇌가 인문학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에 관한 담론은 신체와 정신으로 분리되어 신체에 관한 연구는 자연과학에서, 또 정신에 관한 연구는 철학에서 다루게 되는 이분법 체계가 지속된다. 그러다 이런 학문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긴 것이 19세기 실증주의가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이때가 되면 인간의 정신도 과학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 이후, 철학이 자연에 관한 담론을 과학에 인계하면서 자연-과학, 정신-철학의 대칭으로 굳어진 체계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제는 철학이 정신도 과학에 양도해야 하는가의 물밑 논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논쟁은 과학과 철학이 단지 자연과 정신이라는 고유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 방법론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방법론적으로 서로 다른,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각자 다양한 대상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인식론적 논쟁을 야기하게 된다.[각주:1] 이 논쟁은 두 가지 방향의 논쟁인데, 첫째는 철학이 과학과 단지 다루는 대상의 문제로밖에 변별성을 유지할 수 없나 하는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고, 둘째는 진정 과학적 방법론으로 정신을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다.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서구 전통의 합리주의가 주축을 이루면서 내려오던 철학에서 이른바 형이상학의 위기론이 시작된 것이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것을 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문제가 철학의 존폐위기로까지 갈 수 있는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출현과 새로운 비(非)플라톤 철학의 등장은 철학사의 차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문체계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시간차를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제시되었다. 그 첫 번째 버전이 실증주의다. 과학의 당위성을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실현되어 있는 것들로, 지금 여기서 지각될 수 있는 것들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결국, 시간과 공간적 구체성이 강조되면서 (요즈음의 형태와는 좀 다르지만)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학이 출발을 하게 된다.[각주:2] 하지만 딜타이가 주장했듯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연구대상으로서 다르다면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적용이 가능해야 자연/인간이라는 대상적 구별과 과학/철학이라는 방법론적 구별에 대한 명확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의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가능해졌고, 그러한 필요성이 뇌를 인간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매개가 되게 하였다.

 

 

2. 뇌에 관한 연구의 역사

 

과거의 문헌들을 보면 뇌에 대한 연구를 언급한 기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자료들을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뇌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뇌에 관한 언급은 기원전 17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문자기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그러한 기록들이 당시의 뇌연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전 3000년경의 사실을 다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볼 수가 있다.


 

 

놀라운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이뤄진 이러한 뇌연구에서 상당한 수준의 국지적 분석이 이미 행해졌고 비록 초보적 단계이나마 뇌의 부위별로 신체기관을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그 당시 사람들은 알아냈으며 실제 특정 부위가 손상됐을 때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뇌의 부상으로 안구의 일탈이 발생할 수 있다던가 뇌가 손상되면 환가가 발을 끌면서 걷는다’, ‘관자놀이가 깨진 사람을 관찰하면 그를 불러도 대답을 안한다, 말을 할 줄 모른다등의 내용들이 들어 있다. 특히 뇌의 부상이라는 언급, 그리고 그 부상이 특정 일탈로 이어진다는 언급으로 이미 그 당시 병리학적 방법론을 통한 과학이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뇌의 기능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운동기관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각주:3]

 

그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히브리 문명에서도 뇌연구에 관한 문헌들이 등장하는데, 철학사에서 의미있는 뇌관련 언급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언급한다.[각주:4] 그 세 부분이란 지적영역, 분노에 관한 영역, 욕정에 관한 영역이 그것인데, 그 중 지적영역이 바로 뇌에서 관장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봐서 플라톤은 뇌를 인간의 사고를 총관장하는 중심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각주:5]

 

이후 등장하는 문헌은 기원전 3세기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의 이름과 결부가 된다. 이 두 사람은 특히 수많은 해부실험을 통해 뇌의 정확한 모양과 위치를 파악했던 최초의 사람들이다.[각주:6] 그뿐만 아니라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의 논란 속에서 최초로 신경의 존재를 밝혀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곳은 동맥을 통한 심장이 아니라 신경을 통한 뇌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들이다.

 

1세기경에 들어서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로도 유명한 갈레노스의 이름이 등장한다.[각주:7] 갈레노스는 뇌의학뿐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의학, 해부학, 생리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는데 특히 갈레노스는 인체의 기계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동물적, 인간적 영혼을 가지게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개념이 바로 프네우마pneuma’인데, 그에 따르면 폐로 들어온 공기가 프네우마라는 실체와 섞이면서 심장으로 들어와 생명기운이 동맥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프네우마가 뇌로 퍼지게 되면 비로소 동물기운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레노스는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를 적절히 조화를 시켜, 생명적 유기체는 심장에서 비롯되나 그것이 동물적 유기체로 변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뇌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뇌와 심장의 관계는 거의 오늘날 수준의 것으로 정리된다.

 



 

많은 학문들이 그렇듯이 중세시대에 들어오면 뇌과학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은 보기 어렵다. 다만 뇌의 부위에 따라서 정신활동의 분야들도 결정된다는 이론은 거의 정설로 굳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뇌의 앞쪽(전뇌실)은 상상을 담당하는 부분이고 중간 부분(중뇌실)은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 그리고 뇌의 뒤쪽 부분(후뇌실)은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뇌의 기능론이 중세시대를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뇌에 관한 역사를 전체적으로 볼 때, 발전적 지식은 엄밀하게 말해 갈레노스 이후 십 수 세기 동안 멈췄고, 그 지식체계는 중세시기를 지나 17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우리말로 ‘인식론’으로 번역하는 영어의 ‘epistemology’는 영미철학과 대륙, 특히 프랑스철학에서, 서로 사용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인식론, 즉 인간의 인지와 지식의 구조, 방법 등을 다루는 칸트식의 gnoseology와 관련이 있는 분야로 사용되지만 프랑스 철학에서는 과학 또는 학문들의 구성, 역사,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 등에 관련된 담론체계를 말한다. 때로는 우리말로 ‘과학철학’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과학분과학문들에만 국한된다는 오해의 여지도 있다. 일단 이 글에서는 ‘인식론’으로 쓰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보통 프랑스인들에게는 인간과학 (science de l’homme)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반면, 독일 전통에서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 두 전통은 단지 표현법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추구하는 방향도 사실은 조금씩 다르다. [본문으로]
  3. “마지막으로 31번의 경우, 경부척추가 탈구되면 환자는 두 팔과 두 다리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성기가 발기되고 의식없이 배뇨나 사정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Jean-Pierre Changeux, L’homme neuronal, 1983, Fayard [본문으로]
  4. 플라톤, <티마이오스>, 박종현 역, 2008, 서광사 [본문으로]
  5. 인간의 정신이 신체와 관련이 있다는 사고는 다시 크게 둘로 나눠진다. 첫째는 뇌중심주의, 둘째는 심장중심주의인데, 플라톤이 대표적 뇌중심주의 사상가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인 심장중심주의 사상가이다. 요즈음 과학적 지식으로 보면 당연히 플라톤의 뇌중심주의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역설적으로 플라톤의 뇌중심주의는 직관에 의한 판단에서 나왔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장중심주의는 실증적 경험에 의해 검증된 이론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신경의 존재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체기관들 사이의 연결통로는 혈관이었고 혈관들이 모두 심장으로 모이고 있다는 임상적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심장이 모든 신체기능의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과학적 프로세서가 오류로 이끈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본문으로]
  6. 당시는 과거 고대사에서 인간의 신체가 해부의 대상으로 허용이 되는 얼마 안되는 시기중 하나였는데, 뇌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대한 해부와 기록이 행해졌다. 특히 그 당시는 시신을 해부하는 것은 금기시 되던 때였고, 따라서 이들이 행했던 해부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황제가 허락을 한 대상들에 대해 수많은 생체해부를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과학의 이름으로 인륜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 사례도 된다. [본문으로]
  7. 그 당시 역시 시신에 대한 해부가 금지되어 있던 터라 갈레노스 역시 앞선 헤로필로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신을 해부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생체에 대한 실험을 허락했던 잔인한 헤로필로스 시대와 달리 갈레노스의 시대에는 생체해부가 허용되지 않았다. 자연히 갈레노스의 실험 대상은 소, 개, 돼지, 원숭이 등의 동물을 통해 행해졌고, 그런 조건은 헤로필로스의 경우에 비해 갈레노스는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관심보다 동물과의 유사성, 동물적 유기체로의 인간으로 관심이 정착되어졌다. [본문으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두 지식인의 삶, 행동, 철학

주성호(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들은 비슷한 연배에 동일한 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치에 저항하는 단체에 함께 가입하여 행동했으며, 실존철학으로 불리는 철학을 수립하기도 했다. 또 그들은 공동으로 현대라는 잡지를 창간하였고, 이 잡지를 통해 정치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한국전을 계기로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보이며 결별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보부와르는 사르트르의 연인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사르트르와 만나기 전에 이미 메를로-퐁티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로 사람들은 종종 그들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함께 언급한다. 두 사람을 철학의 관점에서 언급하기도 하고, 20세기 프랑스 지성사나 정치적 활동의 관점에서 언급하기도 하며, 아니면 두 사람의 인생 자체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흥미로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보고자 할 것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서로 만났던 학창 시절, 그들의 철학의 형성 과정, 한국전쟁과 관련한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그려볼 것이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학창 시절


사르트르는 1905년에, 메를로-퐁티는 1908년에 태어났다. 둘 다 어릴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르트르는 1922년에, 메를로-퐁티는 1924년에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끝내고,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에 들어갔다. 그들은 동일한 입시준비반에 들어갔는데, 루이--그랑(Louis-le-Grand) 고등학교에 설치된 입시준비반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의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 과정을 끝내고, 사르트르는 1924년에, 메를로-퐁티는 1926년에 역시 동일한 고등사범학교, 즉 파리의 윌름(Ulm) ()의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고등사범학교 시절, 어떤 싸움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몇몇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외설적이라 생각해서 그 학생들을 향해 야유의 휘파람을 불었다. 야유의 휘파람을 들은 학생들은 메를로-퐁티를 때리려 했고, 그때 사르트르가 개입하여 메를로-퐁티는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서로에 대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전을 계기로 서로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갖으면서 결국엔 결별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1928년 교수자격시험에 낙방하였다. 그다음 해에 사르트르는 다시 시험을 보려고 시험 준비를 하던 중, 소르본 여대생인 보부아르를 만났다. 그들은 함께 시험공부를 하였고, 사르트르는 교수자격시험에서 1등으로, 보부아르는 2등으로 나란히 합격하였다. 이어서 곧 그들은 계약결혼을 하였고, 서로에게 평생의 사상적 반려자가 되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기 몇 해 전에, 메를로-퐁티를 먼저 알게 되었다. 보부와르는 메를로-퐁티의 집에 놀러 갈 정도로 메를로-퐁티와 친하게 지냈다. 그 당시 보부아르에게는 둘도 없는 엘리자벳 라쿠앵(E. Lacoin)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보부와르를 통해 메를로-퐁티를 알게 되었고 결혼의 말이 오고 갈 정도로 메를로-퐁티와 사귀었다. 그러나 1929년 가을 보부아르의 친구는 갑자기 병에 걸려 죽는데, 보부아르는 메를로-퐁티 때문에 자신의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보부아르는 친구의 청혼을 메를로-퐁티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친구가 죽게 된 주된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부와르는 수 년 동안 메를로-퐁티와 소원한 관계 속에 있었다. 사실 메를로-퐁티도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보부아르는 약 30년 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보부아르는 친구의 죽음에 대해 언제나 메를로-퐁티를 원망하였다.

 


1930년경 철학적 상황과 프랑스 실존철학(현상학)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종종 프랑스 실존철학 또는 프랑스 현상학을 나타낸다고 언급된다. 프랑스 현상학과 프랑스 실존철학은 의미가 다른 말이지만, 이 말들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종종 가리키기 때문에 사실상 동의어로 이해될 수 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후설(Husserl) 철학을 도입하여 프랑스식 현상학을 개화시켰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현상학을 종종 실존철학이라 부른다. 프랑스식 현상학이라 불릴 만큼 그들의 철학은 독일 현상학(후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의 철학이 프랑스의 철학적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고등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 프랑스의 철학적 상황을 살펴보면, 그들이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어떻게 자신들의 실존철학 또는 현상학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죽기 2년 전 1959년에 파리 대학기숙사 캐나다관에서, "실존의 철학"에 대해 강연하면서, 1930년경 프랑스에 있었던 두 가지 철학의 경향을 언급한다. 하나는 레옹 브렁슈빅(L. Brunschvicg)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베르그송(Bergson) 철학이었다. 브렁슈빅은 강단에서 반성철학(philosophy of reflection)을 가르쳤다. 브렁슈빅이 가르친 반성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코기토(Cogito) 철학이었고, 메를로-퐁티는 브렁슈빅을 통해 자신과 사르트르가 데카르트와 칸트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베르그송은 브렁슈빅과 정반대의 철학인 직관의 철학(philosophy of intuition)을 주장했다. 베르그송의 직관의 철학은 반성철학의 코기토, '사유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세계에 밀착하여 세계와 하나가 되려는, 공감(sympathy)의 철학을 나타낸다. 그 당시 베르그송은 은퇴하여 더 이상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는 직접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은 그들에게는 이미 고전이 된 철학이었고,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 시절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베르그송을 많이 공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새로운 철학을 형성하는 데 배경이 되었고, 그들이 후설 현상학을 수용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그들의 스승인 브렁슈빅의 반성철학이 "고공비행적 사유"라고 비판했다. 브렁슈빅이 말한 코기토(사유하는 나)'지성적인 나'로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이나 맥락과 분리된 채 세계를 고공비행하며 초시간적인 진리를 포착하기 때문이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베르그송의 직관철학처럼 '구체성의 철학'을 하기를 원했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 속에서 만난 세계에 밀착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 세계를 기술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베르그송의 직관 철학이 너무 세계에 밀착해 세계를 '바라보는 나'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철학적 상황 속에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후설의 현상학은 베르그송적인 구체성의 철학을 할 수 있게 하면서도 베르그송과 달리 세계 속에서 여전히 있는 ''를 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보였다. 다시 말해 세계에 밀착하여 구체적 세계를 포착하면서도 브렁슈빅의 지성적 자아()와 다른 ''를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철학의 목표였는데, 현상학이 그런 철학적 목표를 실현시켜 줄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였다.

 

사르트르는 1933'살구 칵테일'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르트르의 고등사범학교 동급생인 레이몽 아롱(R. Aron)은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공부하고 1933년에 파리로 돌아와 사르트르와 보부와르를 만났다. 그들은 한 카페에서 모여 살구 칵테일을 주문하였고, 아롱은 독일에서 연구하고 있었던 현상학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살구 칵테일을 두고 아롱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며 당황한 사르트르는 후설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보부와르는 그의 자전적 소설 나이의 힘(1960)에서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한편 사르트르는 독일 현상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무척 솔깃했다. 레이몽 아롱은 베를린의 프랑스연구소에서 그 해를 보냈고, 역사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후설을 연구했다. 아롱이 파리에 왔을 때, 사르트르에게 후설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몽파르나스 거리의 베크 드 가즈(Bec de Gaz)에서 저녁나절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그 집의 특별 메뉴인 살구 칵테일을 주문했다. 아롱은 자신의 잔을 가리키며, “이봐 친구, 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철학이 되겠지!”라고 했다. 사르트르는 이 말에 흥분해서 창백해졌거나 거의 그런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바로 그가 수년간 원했던 것이었다. 즉 사물을 만졌던 모습 그대로 사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철학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르트르는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에, 의식의 주도적인 힘(souveraineté)과 우리에게 주어진바 그대로의 세계의 현전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에 몰두했는데, 아롱은 사르트르가 몰두했던 것에 현상학이 정확히 대답해 준다고 확신시켜 주었다. 사르트르는 생 미셸 거리에서 후설에 관한 레비나스의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빨리 알고 싶어서, 페이지조차 자르지 않은 책을 걸어가면서 넘겨보았다.(...) 사르트르는 후설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롱의 부추김에 의해, 다음 해 그의 작은 친구[아롱]를 뒤이어 베를린의 프랑스연구소에서 보내기 위한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각주:1]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가 1년간 독일에서 후설 현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자신에게 후설을 읽으라고 권고했다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독일에 있을 때 메를로-퐁티 역시 프랑스에서 자신처럼 후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든지 간에, 1933년경서부터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본격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연구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체적인 사물에 몰두하는 베르그송의 철학적 방향 속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베르그송적인 구체성 철학 속에서 있으면서도 후설의 현상학처럼 현상 내에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은 현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이었고, 그것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한편으로는 베르그송적인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해 후설을 읽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르그송적인 분위기에서 후설을 읽었다. 그들이 후설을 열심히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철학을 형성할 때(1933~1936) 그들은 베르그송 철학에 무척 비판적이었지만, 그들의 철학의 형성에는 베르그송 철학이 상당한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읽음으로써 후설과 다른 그들 자신의 현상학, 이른바 프랑스 현상학 또는 프랑스 실존철학을 형성할 수 있었다.

 


대립하는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자신들의 철학을 형성할 때 후설 철학과 베르그송 철학을 동일하게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후설과 베르그송을 서로 관점에서 읽었다. 메를로-퐁티가 후설 현상학에서 의식과 대상의 사이의 생생한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면, 사르트르는 후설 현상학에서 의식의 능동성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메를로-퐁티가 베르그송의 물질 개념인 이미지속에서 의식과 사물의 순환적 관계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사르트르는 베르그송의 이미지 개념을 의식(코기토)이 결여된 지각으로 보았다. 결국, 이런 독서의 차이는 그들의 철학의 차이로 이어졌고, 그들의 철학은 사르트르의 경우 1943존재와 무라는 저서로, 메를로-퐁티의 경우 1945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저서로 표현되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주체의 절대적 자발성 그리고 즉자존재(대상)와 대자존재(주체)의 이원론을 내세웠고,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우리의 지각에서 어디서 의식이 끝나고 어디서 사물이 시작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이원론을 벗어나려는 사유를 수행하려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상황 속에 있는 구체적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였다. 사르트르 입장에서 인간에게 나타난 세계는 순수 의식 속의 이념화된 인식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몰입하고 만나는 세계이다. “나에게서 이 컵은 물병의 왼쪽 조금 뒤에 있고, 피에르에 있어서 그 컵은 물병의 오른쪽 조금 앞에 있다. 그 컵이 한 의식에게 동시에 물병의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에 있는 것처럼 주어지기 위해, 그 의식이 세계 위로 비상할 수 있다는 것[고공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각주:2] 따라서 사르트르 말하는 대상은 주체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어디서 주체가 끝나고 어디서 대상이 시작하는지 알 수 없다는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이와 같이 상황적이고 체험된 세계를 말하면서도, 즉자존재와 대자존재, 주체와 대상, 존재와 무를 과감하게 나눈다. 사르트르 철학에서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이 이원론적으로 명백히 구별되기 때문에, 컵과 나의 관계가 아무리 상황적이라도 나타나는 것(대상적인 것)은 조금도 주체적인 것에 속하지 않게 된다. 이로부터 사르트르는 대상의 특성이 없는 주체(인간)의 자유를 주장한다. 주체는 대상과 구별된 채로 자기 자신에게 투명하여 대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다고, 즉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고 사르트르는 주장한다.

이와 다르게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을 사르트르처럼 명백히 구별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가 존재(대상)와 무(주체)를 나눌 때 그것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 “내가 나를 부정성으로서 생각하고 세계가 긍정성으로 생각된다는 사실로부터, (...) 세계와 나 사이의 상호교류도, 만나는 지점도, 첩점도 없다. 왜냐하면, 세계는 존재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각주:3] 물론 사르트르 입장에서, 모든 의식은 무엇의 의식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주체의 존재 방식이 대상에 대한 주체 방식이기 때문에 대상 없는 주체를 생각할 수 없다고 대응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식(주체)이 대상이 아닌 이상, 대상과 다른 자기 존재 방식을 유지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주체는 투명하고 대상은 모호함이 없는데, 메를로-퐁티 입장에서는 투명한 그런 주체도 없고 불투명함이 없는 그런 대상도 없다. 메를로-퐁티는 주체와 대상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투명한 주체를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체는 자신에 대해 투명하게 다 알지 못하며, 주체는 외적 대상과 얽혀 있기 때문에 사르트르처럼 인간의 순수한 자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견해와 결별


 1940년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자신들의 철학을 완성했지만, 또한 사회와 정치 문제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0년 이차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는 나치에 점령되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비밀 저항 단체에 가입하여 나치에 저항했다. 1945년에는 현대라는 이름의 잡지를 그들은 공동 창간하였다. 이 잡지를 통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문학, 사회, 정치적 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우정은 가장 돈독하였다. 그 당시 메를로-퐁티가 정치문제에 대해 사르트르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더 좌파적이었지만, 이것은 그들의 관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한국전쟁 전까지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구소련이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었거나 적어도 전쟁을 방치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를로-퐁티는 스탈린 체제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구소련도 미국처럼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만큼 스탈린 체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스탈린 체제를 옹호하는 프랑스 공산당 입장을 많이 수긍하였다. 오히려 사르트르는 구소련보다는 미국이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군대와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 군대의 도발에 북한이 함정에 빠져 남침했다고 사르트르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메를로-퐁티가 한국전을 기점으로 덜 좌파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으나, 사르트르는 좌파의 입장을 많이 따랐고, 오히려 1952년 뒤클로(J. Duclos) 체포 사건을 계기로 사르트르는 급진 좌파가 되었다.

19525월 나토(NATO)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Eisenhower) 장군의 후임으로, 한국전쟁에서 미 8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리지웨이(Ridgway) 장군이 파리에 왔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세균성 무기를 사용할 것을 공공연히 주장했기 때문에, 프랑스 공산당원들은 리지웨이를 혐오했고 리지웨이는 공산당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리지웨이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공산당원들은 시위를 하였고, 파리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고 검문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이며 프랑스 공산당의 유력인사인 뒤클로(J. Duclos)를 체포하였다. 뒤클로의 차에서 총알이 있는 권총, 곤봉, 무선기, 통신용 비둘기 두 마리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권총과 곤봉은 뒤클로의 운전수 것이었고, 무선기(Radio)는 라디오였고, 비둘기 두 마리는 통신용 비둘기도 아니고 죽어 있었다. 사르트르는 이런 사실을 듣고서 분노했고, “개종의 심정으로 혁명을 부르짖는 급진 좌파가 되었다. 그리고 반공산주의자는 개다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개종하고 메를로-퐁티는 스탈린 체제에 환멸을 느끼던 중에 이들을 갈라놓는 데 불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1952년 피에르 나빌(P. Naville)이라는 사람이 현대지에 자본주의와 모순이라는 글을 썼는데, 메를로-퐁티는 이 글 앞에 비판적인 서문을 써 붙였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 동의 없이 메를로-퐁티의 비판적 서문을 삭제하였다. 메를로-퐁티는 이에 격노하여 현대에서 사임하였다. 이로써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고 그들은 결별하게 되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결별한 이후 몇 차례 만났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하였고, 이렇게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채 1961년 갑자기 메를로-퐁티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현대특별 호에서 사르트르는 살아있는 메를로-퐁티라는 장문의 글로 회복되지 못한 그와의 관계를 회고해보면서 메를로-퐁티를 슬픈 마음으로 애도하였다.

  

  1. S. de Beauvoir, La force de l'â̂ge, Paris: Gallimard, 1960, pp. 141-142. [본문으로]
  2. J. P. Sartre, L'Etre et le Néant, coll. tel, Paris: Gallimard, 1986, pp. 353-4. [본문으로]
  3. M. Merleau-Ponty, Le visible et l'invisible, Paris: Gallimard, 1964, p. 78. [본문으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下)

 

  김민정(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이 글은 앞서 게재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잔의 회화에 나타난 낯설음

 

세잔의 그림은 습관적인 사고를 잠시 중지시키고, 인간이 거주하는 비인간적인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것은 세잔이 그리는 인물들이 마치 다른 종의 생물로부터 보여진 것처럼 낯설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 그것은 편안하지 않고, 모든 인간적 표현을 금지하는 낯선 세계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는 의미와 무의미에 수록된 세잔의 회의영화와 심리학, 그리고 기호들에 수록된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와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저서 눈과 마음에서 예술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예술과 관련된 낯설음의 특질들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세잔의 회의에는 화가 폴 세잔의 작업 방식, 그의 작품의 특징, 감상자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나타나는 체험에 대한 분석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세 차원 모두에는 낯설음이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화가는 끊임없이 새롭게 현출하는 세계 앞에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고, 사물들은 언뜻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한 낯선 형태로 구현되며, 그러한 작품을 마주한 감상자는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세잔은 철저히 세계에 밀착하여 작업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그는 먼저 자연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앞에 두고 시작하는 인상주의 양식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잔은 순간적인 지각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가 다만 빛의 덮개를 포착하는 데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을 때리고, 우리의 감각을 엄습하는바를 포착시켜 놓았는데, 우리의 실제 경험에서 대상은 그렇게 순간적인 인상 속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잔은 그보다는 박물관에 있는 예술처럼 견고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잔이 구현하고자 한 것은 고전주의적 실재, 즉 절대적이고도 견고한 진리를 가정하는 지성적 개념의 실재도 아니었다. 그는 대상과 유리된 순수 주관의 지성적 구성물도, 순수한 경험의 이상에 기초한 순간적 인상도 아닌 것을 그리고자 했다.

 

회화는 세속적 시각이 비가시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가시적 존재가 되도록 한다. []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이처럼 탐욕스러운 시각은 존재의 짜임새로 통한다.

 

  화가는 일상의 세속적 시각이 현상의 전부인 양 제공했던 사물들의 외관을 넘어서서 사물의 심층을 파고든다. 언뜻 불연속적 감각 메시지들로 보였던 가시적 외관들은 그것이 사실상 한몸처럼 가지고 있으나 자신 아래에 감추어 두었던 비가시적인 두께와 깊이를 이러한 화가의 탐욕스런 시각 앞에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일상적 의식을 거슬러 다시금 현상의 깊이로 나아가는 데에는 견고히 뿌리박힌 습관적 태도를 거스르는 낯설음의 감성이 동반되었다.

 

화가는 [] 모든 사물의 요람인 외관 등의 진동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시적인 대상들로 바꾼다. 그리하여 화가에게는 오직 하나의 감성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낯설음의 감성이다

 

  세잔은 원근법 회화가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의도 속에 고안된 발명품이라 비난하면서 선과 엄격성의 기하학적 데생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시각 속에 대상은 항상 주체와의 미묘한 긴장관계 속에 있었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외관은 명확하기보다는 어떤 진동 속에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화가에게는 낯설음의 감성이 주요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낯설음의 감성 속에 나타난 대상들은 낯선 형태를 띠었다.

 

우리의 눈이 차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정말이지 서로 다른 관점들로부터 취해지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 표면은 뒤틀려 보였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대상들은 사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자신의 부인을 그린의 초상화에서 인물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벽지의 무늬가 서로 일직선을 이루지 않는 것에 주목하며, 이것이 대상을 실로 여러 각도에서 지각하는우리의 실제 지각의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실제 시각은 하나의 시점으로부터 전체를 평면적으로 조망하는 원근법적인 것이 아닌 다중의 관점을 통해 펼쳐지며, 이러한 시각의 실제를 반영하기 위해 인물 뒤 벽지의 무늬는 어긋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의 단적인 예로 넓은 종잇조각 밑으로 지나가는 선이 실제로 단절된 것 같이 보이는 현상을 언급한다.

  또한, 세잔은 비스듬히 바라본 접시나 과일바구니의 테두리를 사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타원형이 아닌 보다 둥근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 또한 우리의 실제 지각을 반영한 결과라 한다. 사실상 접시의 테두리는 타원이 아닌, 대략 타원의 형태를 맴돌며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사진기처럼 한순간의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포착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시공의 지평의 망을 타고 대상을 여기저기서 보면서 탐색하고 의미를 거두기 때문이다. 세잔의 <체리와 복숭아>를 보자. 쟁반은 납작한 타원형이 아닌 거의 위에서 바라본 둥근 형태를 띠고 있으며 따라서 그 안에 담겨있는 체리와 복숭아들은 손을 뻗치면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는 먹음직스런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체리가 담긴 접시와 복숭아가 담긴 접시는 서로 다른 높이에서 바라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세잔에게는 체리가 더욱 먹음직스러웠나 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지각을 충실히 반영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스듬하게 본 원이 타원형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진기가 되었다는 가정하에 우리 눈이 보게 되는 것을 마치도 우리가 하는 실제 지각인 것처럼 간주하는 데에 연유한다.

 

  비스듬하게 바라 본 접시가 언뜻 타원형으로 보이는 듯한 것은 과학주의에 물든 일상의 객관적 사고의 편견에 따라 일상적으로 시각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견이 습관화됨에 따라 세속적 지각을 마치 실제 지각인양 여기게 되며, 그것을 거스르고 실재를 구현한 지각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진실한 것은 화가이고, 기만적인 것은 사진이다. 현실에서 시간이 정지되는 일은 없으므로라는 로댕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에게 매 순간의 경험은 앞선 순간의 경험과 곧 이어질 순간의 경험과 함께주어지는데, 사진은 시간의 자기 초월을 파괴하는 반면, 회화는 시간의 이러한 성질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부에서 다루었던 시간지평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메를로-퐁티는 가시적인 것의 고유한 본질은 비가시성을 어떤 특정한 부재로서 현전하도록 만드는, 엄격한 의미에서 비가시성의 층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시적인 것은 그 자체 속에 비가시적인 층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우리의 실재를 깊이와 두께를 가진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하늘의 파란색은 어떠한 순수 성질이 아니라 푸른 바다나 시원한 물, 또는 자유의 이념 등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푸른 사물들에 결부되어 있으며 시공의 지평 속에 어떤 매듭과 같은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은 깊이와 두께를 가진 살을 이루며, 예술작품은 이러한 살적 구조를 통해 실상 깊이와 두께로 현상하는 주체와 대상의 만남을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세잔의 그림은 우리의 습관적으로 굳어진 사고를 멈추게 하고 아직 인간화되지 않은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은 인간과 완전히 무관한 자연, 어떤 야만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작품이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경험, 앞서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탐욕스러운 지각으로 표현되었던 그것을 구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러한 지각은 일상적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러한 은폐된 실재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문화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낯선 그림은 곧 일상의 습관적 태도 속에 은폐되어있던 원초적 지각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완전한 환원의 불가능성은 세계와의 소박한 접촉의 감성인 낯설음과 함께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후설이 환원을 통해 세계로부터 해방된 의식으로서의 주체가 가능하다고 본 것에 반해 메를로-퐁티는 세계로부터의 그러한 완전한 해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기만적 본성이며 엄격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환원은 단지 세계의 이유 없는 용출 이외에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없으며 따라서 항상 미진한 것을 남겨둔다. 이것은 왜 낯설음이 환원의 계기이자 환원 자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 나타난 낯설음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형상은 눈 속의 가시이고, 육체는 관객들로부터 거부된 문장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개념이라는 감옥으로부터, 그리고 속박의 상흔으로 각인된 발레라는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

- 하이네 뮐러

 

  피나 바우쉬의 낯선 무대는 관습적 춤에 대한 이해와 우리 일상의 습관적 사고방식을 뒤흔들었다. 무대 위에 낯설음을 구현하는 것은 일찍이 낯설게 하기라는 20세기 초 브레히트의 연극론에서 시작되었으며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출 및 무대의 구체적인 양상에서 양자는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피나 바우쉬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오히려 이러한 차이점들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연극이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결코 의혹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는 사건에 대해 의혹을 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감정이입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극의 토대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 관객에게 현실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보이게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은 인간들 사이에 현존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관계로 보이도록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감정이입하게 했다. 그는 전통 연극이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일 자체에 몰두함으로써 사물에 함몰되었으며, 천박한 사실주의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거리’(Distanz) 이론을 제시한다. 무대 위에는 극적 환영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거리를 만듦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제시되는 것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것이며, 무대 위의 인간들이 극중 인물들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을 분리시켜 다루고 있다. 그는 예술을 오로지 감성의 영역으로 보면서 이성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았던 시각에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단순한 외양, 즉 껍데기와 같은 것을 전달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면에 비가시적인 것을 한 몸처럼 가지고 있는 현상과 관계한다. 감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오던 연극에 이성을 도입하면서 그가 간과한 것은 무대 위에서 행사될 수 있는 아름답고 강력한 감성의 가능성이었다. 이성을 우위에 둔 그의 새로운 연극은 이성과 한 몸을 이룬 감성의 힘, 그 깊이를 놓쳤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의 긴장관계 속에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미리 계산된 것이고, 관객은 연출가가 미리 준비해둔 길을 따라 해석하게 되었다. 반면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가시적인 것의 외관에 머무는 감정이입도, 무대 위의 현상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정신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태와 관계하려 했다. 바우쉬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움직임의 외양을 충실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움직임이 놓인 맥락, 그 이면의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쉬는 그러한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기 위해 한층 더 깊이 가시적인 세계로 파고들었다.

  피나 바우쉬에게 있어 감각은 미리 구축된 의미의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 그리고 몸의 직접적 경험이 공연의 주제가 된다. 브레히트와 바우쉬 극의 차이는 단순히 사건 내지 서사가 있고 없음의 차이로 정리될 수 없다. 브레히트가 먼저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두고 그에 따라 형성된 세계관에 따라 사건들을 조직했다면, 바우쉬는 미리 그 무엇도 정해두지 않고 작업하며 최대한 몸 그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몸 자체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했다. 따라서 바우쉬의 극이 낯설다면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낯설음이며, 말하자면 실재 그 자체의 낯설음이었다. 브레히트의 무대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고 특정한 교훈을 주기를 원했다면 피나 바우쉬의 무대는 일상 속에 가려져 있는 원초적 현상이 관객의 관극경험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도록 했다. 바우쉬는 결코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경험하도록 했다. 따라서 탄츠테아터의 관객은 직접적 경험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우쉬가 구현한 낯설음은 낯설게 인식되도록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충실히 옮기고자 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세잔이 구현한 현상학적 낯설음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우쉬는 철저히 사태의 밑바닥에 가닿으려 했다.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칙은 피나 바우쉬의 작품들은 진정한 것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망, 진정한 위험을 감행하고, 진정한 체험을 하려는 욕망을 이야기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것에의 요구는 우리가 많은 것을 머리로 알고 있다고 믿는 일상 속의 은폐상태를 환원하고 다시금 경험으로 돌아가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난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얼마나 조금 알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바우쉬의 안무 철학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바우쉬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이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 바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러한 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우쉬는 무용수들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가질 것을 요하지 않았고 그저 무용수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단원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실험을 해나가는 과정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조언도 하지 않았다. 바우쉬는 표현을 무용수들 자신에게 맡겼다. 이것은 그녀가 질문하고, 무용수들이 답하는방식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바우쉬는 먼저 무용수들에게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면서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즉흥적 생각과 표현을 하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질문에 즉각적 반응을 보여야 했는데 그것은 무용수들 자신의 기억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진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부정하지도, 회의하지도 말고,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세계와 존재를 보아야하며, “타자의 말에 대해 그렇듯 세계와 존재에 따옴표를 쳐서 세계와 존재에게 말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된 진리를 비의지적 진리라고 말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이러한 비의지적 진리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작품을 구상함에 있어 다만 개개의 무용수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즉각적 반응에 주목한 바우쉬의 방법은 존재에게 말하도록 하여 그에 귀 기울여 얻을 수 있는 비의지적 진리를 얻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게 바우쉬는 무용수들이 어떤 역할로서 고정되기 이전의 것을 생각하게 했고 그들의 즉흥적 반응을 관찰해나가면서 그중 몇 가지를 선택하여 무용수들에게 반복시켰다.

  이러한 과정 속에 만들어진 단편들은 그때그때 작품에 반영되어 무대로 연결되었다. 무용수들은 총체적인 구조의 한 부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전 무용수들에게 요구되었던 것, 즉 체격, 신장, 균형성 등 외적으로 정해진 기준도, 무용이나 연극의 기술적 완성도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장르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가장 밑바닥의 것을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함이 요구되었다. 바우쉬는 안무가의 역할이 무용수들을 그러한 유연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피나 바우쉬의 자전적인 작품이자 대표작인 <카페 뮐러>를 통해 바우쉬가 구축한 낯설음의 양식에 다가가 보자.

 

사랑의 한탄. 추억을 더듬어 움직이고 서로 접촉하는 것. 태도를 택하기. 옷을 벗고 마주보게 되고 상대편 몸 위에 미끄러지는 것. 잃어버린 것을 찾아 가까이 가기. 서로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것. 벽을 향해 뛰고, 거기로 달려들어 (몸을 던지고) 거기에 부딪히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 모델에 불과한 것.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 떨어지는 것. 돌진하는 것. 그는 가 버렸다. 눈을 감고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향해가는 것. 느끼는 것, 춤추는 것, 상처주기를 원하는 것. 방어하는 것. 장애물을 놓는 것. 사람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 사랑하는 것.

 

  피나 바우쉬의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했던 라이문트 호게는 <카페 뮐러>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렇게 파편화된 인상들을 나열한다. 그것은 이 작품의 의미가 이러한 파편의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충실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장면들은 오버랩 되고, 단절되고, 반복되며, 관점이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피나 바우쉬는 이러한 파편의 원리를 영화의 몽타주 기법[각주:1]에서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식으로 구축해냈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몽타주 양식은 이러한 파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을 통해 세속적 시각 속에는 가려져 있던 지각적 실재를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1부에서 지각 속에 지평적 실재가 깊이로 현상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상식상 공존할 수 없는 다차원적 시공이 함께 삽입되어 있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몽타주는 이렇게 공존 불가능한 부분들의 공존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외관을 넘어서 현상, 즉 미지의 힘들과 법칙들을 포함한 깊이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각의 깊이가 예술 작품에서 가시화되면 그것은 일상적 의미의 공간과 시간을 손상시키는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그것은 형상, 장면, 율동, 분위기 등이 부조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공간의 몽타주는 서로 이질적 장면이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카페 뮐러>의 공간은 사진적이지 않다. 이것은 메를로-퐁티의 공간지평 구조, 즉 우리가 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곧 대상에 거주하러 가는 것에 비견되었던 공간지평의 구조로 설명 가능하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단지 우리의 망막에 비친 평면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사방에서 바라보인 그것으로 보며, 이로써 그 대상은 무수한 관점을 통해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노인의 움푹 팬 주름에는 그가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가 느꼈을 환희가 켜켜이 스며들어있어, 그것은 그저 어떤 형태가 아니라 삶의 무게가 된다. 우리는 그의 삶의 깊이를 결코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보며, 그래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 우리에게 사람들의 의미는 이렇게 바라보인 그/그녀를 통해, 다시 말해 지각을 통해 주어진다. <카페 뮐러>는 현대인의 고독을 이러한 공간 몽타주로 그려내 보인다. 한쪽에서 한 남자가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던질 때, 다른 쪽에서는 그와 헤어진 여인이 홀로 엎드려 있다. 그 와중에 무대 한가운데에는 눈을 감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지각적 경험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이들의 몸부림과 고독이 온전히 설명된다. 공간이 분절됨으로써 한 공간은 다른 공간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바라보인 그 공간들은 그 공간의 인물들이 구현하는 표현의 의미를 다층적인 것으로, 깊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낸다. 반성은 더 이상 경험 전체, 본질 자체, 본질들의 주관 내지 형상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렇게 지각적 깊이로서의 실재로서 드러난다.

  <카페 뮐러>에서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계속해서 서로를 놓치는 연인을 통해 나타난다. 한 장면에서 이들은 수 분 동안 서로를 놓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한 놓침은 극 전반에 걸쳐 조금씩 변이된 채 반복된다. 이것은 의미를 담은 경험이 계속해서 새롭게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현재는 재차 경험되는 과거인 파지를 담고 있다. 반복 기법은 이러한 시간성의 가시적 표현이다. 무대 위에서 동작이 반복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전의 동작 그 자체가 아니라 두 번, 세 번 경험되고, 또 다른 맥락 속에서 재차 경험되는 그 동작이다. 이것은 우리가 잡고 있는 과거가 현재 속에서 다시 새롭게 경험되는 과거임을 보여준다. 반복은 강렬한 경험을 담은 과거가 지워지지 않고 진한 흔적으로 각인되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현재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험 속에 재차 경험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과거가 굳이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고도 저절로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희미하게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연인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반복은 미래를 앞서 잡음인 예지를 반영한다. 이렇게 반복 기법은 시간지평의 구조를 통해 나타나는 실재를 가시적으로 만든다. 피나 바우쉬는 계속되는 현재인 무대 위에 과거와 미래를 담은 현재, 즉 두께를 가진 시간을 그려 보인다.

  이러한 무대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즉각적 필요와 유용성에 내몰려 사는 우리에게 사실상 깊이와 무한함을 가진 지각적 실재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몽타주 된 무대와 함께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던 지평적 실재가 가시화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무대 위의 파편적 이미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초월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시공을 잠재적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각의 초월 작용과 함께 작품을 감상한다. 낯선 무대는 우리가 지각의 세속화된 양태를 벗고 다시금 지각 고유의 반성적 차원을 회복하여 보도록 추동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깊이 속에 펼쳐지는 무대에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맞닥뜨린다.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 그러한 무대에서 우리는 가장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반성하며, 가장 감성적이자 철학적이게 된다.

 

  1. 메를로-퐁티는 「영화와 새로운 심리학」에서 영화의 몽타주 양식이 갖는 현상학적 의미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몽타주가 단순히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더 나아가 그러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파생된 리듬 속에 비로소 의미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듬은 다름 아닌 현출하는 우리의 지각의 실재, 즉 시간 및 공간 지평 속에 떠오르는 실재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영화는 앞서 구축된 의미를 감각적인 것을 통해 충실히 전달하는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의 의미는 그것의 독특한 시간적 형식에서 발생하며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영화의 리듬 속에 베어나는 의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메를로-퐁티는 몽타주를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지각적 실재,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의미가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上)

 

김민정(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현대예술은 으레 낯설고 난해한 것이 되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왠지 모를 불편함과 거북함을 느낀다. 재현과 모방이라는 전통 미학의 원리는 완전히 뒤집어진 듯하고, 여기엔 그 어떤 원리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 현대예술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기이한 형상들은 우리가 매일같이 살아가는 현실로부터 뿌리를 잘라 낸 무엇 같지는 않고, 오히려 한층 더 깊은 곳의 진실을 은밀히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는 이러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탄츠테아터는 전통적 형식에 얽매인 채 테크닉의 완성도를 표현하기에 급급했던 고전 아카데미 무용의 관행을 탈피하고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자하는 움직임 속에 태동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공연예술양식으로, 우리의 실제 경험에 대한 면밀한 탐구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무대화하며, 나아가 관객의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는 이유로 경험의 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나타난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경험과는 왠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면들은 오버랩 되고, 단절되고, 반복되며, 관점들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이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 그대로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양식화 속에서 우리의 눈과 귀는 그 굳은살을 벗고 비로소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우리의 경험 그 자체에 비로소 가 닿았으니 이것은 분명 역설이었다. 삶에 한층 더 밀착하여 작업한 결과가, 우리의 자연스런 삶 속에 현상하는 것을 충실히 가시화한 결과가 낯선 결과물을 낳는다는 이러한 역설, 그러한 낯선 결과물이 다시금 우리의 원초적 경험을 되살려놓는다는 이러한 역설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역설을 사태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이념에서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있는 이곳, 우리가 경험하는 이것이 사태자체일 텐데 우리는 왜 다시금 사태자체로 가야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실재가 실상 아득한 깊이와 폭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는 은폐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현상하는 것이 또한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각각 이미 감각 주체의 생명적인 가치를 띤 것으로 나타난다. 화상을 입은 적이 있는 아이에게 촛불은 문자 그대로 불쾌한 것으로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의 노란 색을 경험한 누군가에게 노란 색은 강렬한 따사로움으로 경험될 것이다. 감각은 결코 순수 즉자적 성질로 주어지지 않는다. 감각은 반드시 어떠한 의미와 함께 나타나는 활동적 성질이며, 감각한다는 것은 결국 세계와의 생명적 의사소통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사태를 즉자적인 것으로 만드는 객관적 편견 속에 감각이 가진 이러한 다채로운 의미는 사상되고 만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들을 객관화하고 즉자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현상학은 이것이 참다운 인식을 방해하는 것으로 괄호 쳐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이 주목하는 현상은 이러한 객관적 사고가 형성되기 이전에 형성하는 것, 습관화되고 지각적으로 무디어진 삶 속에는 감춰져 있던 그것이다. 따라서 현상학이 주목하는 현상을 의식적 차원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현상을 감춘 일상의 의식적인 삶을 재차 반성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현상학적 반성을 통해 드러난 실재는 우리의 일상적 눈에는 외려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앞으로 두 편의 글을 통해 이러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심층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1부에서는 몸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기술하는 지각의 현상을 다루어본다. 메를로-퐁티는 철학이 철저히 해명해야 할 사태 자체가 우리가 일차적으로 경험하는 바의 체험된 세계(le monde vécu)이며, 철학은 이를 직접적으로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체험 세계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가능케 하는 기초인 지각의 세계로서, 우리는 여기에서 기실 폭과 깊이로 존재하는 실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폭과 깊이의 실재는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는 가려지고 은폐되므로 우리는 이러한 실재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금 예술에 기대게 된다. 2부에서는 먼저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회화론을 중심으로 전개한 현상학적 환원으로서의 예술론을 살펴볼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고전주의와 인상주의라는 양 극단의 이분법에 모두 의문을 제기하고 원초적 현상 자체에 가닿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이라고 말한다. 세잔의 그림에서 드러내는 원초적 세계는 문화화 된 인간의 시각에 낯선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내 우리의 습관적 사고를 중시시켰다. 우리는 세잔의 회화가 드러내는 낯설음의 제 양상이 사태 자체로 나아가는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과 맞닿아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낯설음으로서의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이 현대 무용계의 한 획을 그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의 작업방식과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가 굳어진 관습으로 고착화된 기존의 예술의 형식을 탈피하고 비로소 인간과 삶, 즉 사, 불안, 고독, 좌절 등으로 점철된 삶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 그러한 의미로서의 세계를 지평구조 속에 다시금 펼쳐놓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지각적 실존을 다시금 회복하게 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 ‘깊이로 나타나는 현상

 

  우리에게 경험은 몸과 함께 시작된다. 이는 소극적으로는 우리가 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경험도 가질 수 없음을, 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있어 모든 경험이 몸과 관련하여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러한 몸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인 시공에 위치해 있으면서 주위에 펼쳐진 세계 속 지각적 대상들과 어떠한 관계속에 놓인다. 우리는 세계 속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Être au monde)’로 나타난다.

 

공간 지평과 공간성

 

  몸으로서의 주체는, 반드시 그것이 놓인 주어진 위치를 전제한다. 이에 따라 우리에게 나타난 사물들은 필연적으로 주체가 놓인 특정 위치에서 바라보아진 것으로서, 다시 말해 특정 관점 속에 나타나게 되며 우리의 지각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관점 의존적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이 자리에 붙박인 채 감각[각주:1]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 대상에 거주하러 가는 것에 비견된다고 말한다. 대상에 거주한다는 것은 대상이 나에게 떠오르는 방식이, 마치 내가 대상 속에 들어가 앉아 경험하는 듯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은 비단 나의 망막에 비춰진 면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위의 다른 사물들에 비춰진 면들, 즉 나의 직접적 시선이 포착하지 못하는 면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시각장 속의 다른 대상들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 주위로 펼쳐진 지평 속 다른 대상들 모두에 잠재적으로 위치하며, 따라서 우리는 지각장 속 각각의 대상들을 실로 여러 각도에서 지각한다.” 결국 우리의 시선은 사진과 같은 평면적이고 원근법적인 시각이 묘사하는 방식과는 달리 실로 무수한 시선이 교차하는 시각 지평의 장을 통해 대상을 포착한다. 각각의 대상들 주위에는 다른 대상들이 마치 그것들의 숨겨진 측면들의 관찰자들인 것처럼 존재하며 결국 대상은 단지 내 눈의 망막을 때린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보이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대상은 실로 무한한 시선들에 의해 모든 측면들로부터 관통됨으로써 어떤 불투명한 깊이를 가지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의 눈앞의 컵은 비단 내 눈의 망막에 맺혀있을 2차원의 평면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볼록한 뒷면을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지각하고 있으며, 둥그런 입구를 생생히 느끼고 언제든 입술을 가져다댈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렇게 사물들이 내 눈에 비친 직접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차원을 가지는 것을 지평의 깊이로 설명한다.

  이러한 공간 속 주체는 필연적으로 공간성을 덧입은 채 나타난다. 공간성을 사상해버리고는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맹인의 지팡이는 그의 신체를 늘려 그가 더욱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활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커다란 모자를 쓴 여인은 모자의 크기를 매번 재지 않고도 사물들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갈 것이다.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탄 사람은 언제든지 저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불편한 신을 신은 사람의 역량은 위축되고 그의 공간은 쪼그라들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반드시 가능한 행동의 체계로서의 신체, 즉 몸이 해야 할 무엇과 그것이 처한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잠재적 신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세계에 몸담은 주체는 항상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어떠한 방향성를 가지며 이때 대상들은 주체가 세계에 내린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 주체는 대상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항상 어떠한 공간적 수준속에 있게 된다. 공간을 초월한 주체는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주체를 초월한 공간도 없다. 공간성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 항상 전제되며, 이에 따라 존재는 방향 지워지고실존은 공간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시간 지평과 시간성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단순한 흐름으로서의 시간, 즉 나와 상관없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여겨지는 직선적 시간관을 비판한다. 메를로-퐁티는 시간성을 기술하는데 있어 후설의 파지(rétention, 把持, 다시 잡음) 및 예지(protension, 豫持, 앞서 잡음) 개념의 도움을 얻는다. 여기서 나의 현재는 과거를 다시 잡는파지와 미래를 앞서 잡는예지라는 양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이중지평의 망 속에 나타난다. 다음은 메를로-퐁티가 후설의 시간의식을 해석한 시간 지평의 그림이다.

 

시간 지평

-수평선: 일련의 '현재들'

-사선: 추후의 같은 '현재'에서 보인 음영들

-수직선: 같은 '현재'의 이어지는 음영들


  현재가 A, B, C로 연이어 나타난다고 하자. 현재 시점이 A에서 B, 그리고 C로 바뀔 때 A는 사라져버리거나 과거라는 곳에 그대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음영, 즉 변양태들로서, B시점에서는 A'(B시점에서 나타난 A시점), C시점에서는 A''(C시점에서 나타난 A시점)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내가 C시점에 있을 때 그러한 C는 즉자적인 C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A''(C지점에서 본 A의 음영)B'(C지점에서 본 B의 음영) 등 지나간 시간의 음영들을 여전히 잡고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C라는 현재는 이러한 파지들을 잡고 있음으로써만 온전히 C인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우리의 시간 경험에서 현재는 과거를 잡고 있는 것으로서만 오롯이 현재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내가 잡고 있는 과거는 결코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가 그대로 다시 떠오른 즉자적 그것 그 자체도, 단순히 매개된 것도 아니며, 현재 시점에서 다시 경험하는 직접적 과거이다. 나는 나의 온 역사를 담은 현재의 몸을 가지고 다시 그 과거의 시점으로 빠져들어 그 시점을 다시 살게 된다. 과거의 특정 시점을 떠올려보자. 이때 나는 그 당시 내가 의미를 두고 경험한 모든 것들, 예를 들어 향기, 소리, 분위기, 심지어 그 당시 시점의 과거 및 미래까지도 모두 함께 다시 경험한다. 어른이 되어 어릴 적 주로 시간을 보내던 장소를 방문해보면, 그 당시에 경험했던 삶의 면면들이 총체적으로 딸려 와서 나는 어느 덧 친구들과 뛰어놀던 놀이터의 흙냄새와 하굣길의 왁자지껄함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고도 생생히 느끼게 된다. 나에게 그 공간은 오직 그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들의 색채를 덧입은 채로만 존재한다. 또한 그 공간은 오직 지금 어른의 몸을 한 내가 다시금 경험하는, 다시 말해 새로운 시점으로부터의 경험된 공간이기도 해서 그 곳은 어른 몸의 경험과 어린아이의 몸의 경험이 중첩된 상태의 애매한 경험 속에 떠오르게 된다.

  대상들은 이러한 시간 지평의 메커니즘 속에서 인식된다. 공간 지평 속에서 대상이 지평 속 모든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떠올랐듯이, 시간 지평 속에서 대상은 역시 모든 다른 시간들과의 관계 속에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드러난 대상은 언뜻 우리에게 대상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대상은 사실 시간지평과 공간지평의 망의 얽힘 속에 떠오른 대상이다. 대상의 동일성을 보증하는 것은 대상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렇게 지평인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시간 지평의 구조를 통해 주체성에 접근한다. 메를로-퐁티는 시간성으로서의 주체성을 목표를 행한 동작의 속성에 비유한다.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진 특정 동작을 해보일 때, 나의 동작은 이미 그 목표에 있듯이 나는 이미 미래에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즉자적 이 순간에 있지 않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정도로, 또한 오늘 아침이나 곧 올 밤에 있다. 이것은 내가 이 순간에만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과거, 그리고 그보다 더 미래인 순간들에 잠재적으로 몸을 담고 그러한 시간들 속에 잠재적으로 살고 있음을 말한다.

  객관적 사고의 편견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적 사유는 이러한 지각 및 지각의 지평적 성격을 무시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순수한 이념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것은 결국 실체 없는 실체성의 허구에 빠져드는 오류를 범한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의 지평은 주체와 상관없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며 주체와 대상 또한 마찬가지다. 주체는 지평 속에 놓인 대상들과 함께 파악된 공간성 및 시간성으로만 기술될 수 있다. 대상들은 주체를 중심으로 한 지평들 상에 놓인 것으로만 존재하며 그 의미는 이러한 지평들의 종합, 즉 지평들의 상호 얽힘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얽힘은 동시다발적으로 무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재는 실상 어느 한순간도 명확한 무엇으로 규정될 수 없는 애매한 것, 폭과 깊이를 가진 아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시/비가시, 주체/객체의 상호 얽힘


  모든 대상은 시공의 지평적 구조 속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지평의 망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지는 않는 것으로,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 이면에 옷의 안감처럼 덧대어진다고 말한다. 비가시적인 안감이 비록 직접적으로 지각되지는 않을지라도 겉감을 모양지우는 실질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대상은 실상 시간과 공간 지평의 무수한 망을 통해서 비로소 그 대상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리와 사물의 최초의 만남이 이렇듯 나와 사물 사이의 다각도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의미의 층, ‘직물에 비견되는 두툼하고 결을 가진 층과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 순수 사물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사물을 볼 때 나에게 나타난 사물 속에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이 겹쳐져 있으며, 나 또한 그러한 사물의 성질을 덧입게 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봄과 보임의 상호 교차 현상을 (chair; flesh)’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무의 거친 질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그러한 재질에 접촉할 물적 토대로서 두툼한 살이 필요하며, 그러한 재질을 느끼기 위해 나의 살은 또한 스스로를 변형시켜야 한다. 이러한 문자 그대로의 살을 메타포로 한 메를로-퐁티의 개념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이상한 유착”,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한 덩어리에서 분화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때 이러한 분화 또한 이분법적으로 전개되는 것이기보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 다시 말해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살로서의 존재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에서부터 세계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 사이의 경계를 짓기 힘든 현상을 설명한다. 하나의 쉬운 예를 들어보면, 나는 추위라는 현상과 추위를 타는 내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메를로-퐁티가지각의 현상학에서도 강조한, 지각하는 주체가 곧 지각되는 세계라는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각주:2]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하늘의 파란색을 응시하는 나는 그 앞에 초연하게 자리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것에 빠져들어야하며, 그럼으로써 사실상 그것이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게해야 한다고 한다. 감각의 이러한 특성은 메를로-퐁티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살이 내 안에서 스스로를 생각 한다고 할 때 거듭 강조되며 이는 결국 봄의 나르시시즘이라 명명된다. 이로써 메를로-퐁티는 지각하는 자는 원리상 지각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전통적 주객이분법을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정리해보자. 보고 만지기 위해서는 보고 만지는 대상과 접촉하고 맞물릴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가 나에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색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색에 적합한 수용체가, 촉각을 위해서는 접촉하는 표면의 결에 적합한 수용체가 나에게 주어져있어야 하며, 감각은 그러한 수용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무엇으로 나타난다. 즉 감각은 순수 성질이라 할 만한 것이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며, 순수 수동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감각이 순수 능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만질 때, 내가 보고 만지는 것은 단순 사물의 그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러한 방식과 결과로서 수용한 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단순이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바라보면서 바라보아진 자가 된다. 즉 나는 지각하면서 동시에 지각되고 내가 능동적일 때 나는 동시에 수동적이게 된다.

  상호 얽힘으로서의 살은 이렇게 몸의 실존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 갖는 애매한 존재방식을 설명한다. 즉 몸과 그러한 몸으로서의 주체는 어느 한 순간에도 독립적이고 즉자적인 실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존재 자체가 세계 및 타자와의 상호 관계, 그 뒤섞임 속에 정의된다. 몸은 정보기계라 불려도 무방한 무심한 수용체로 생각될 수 없고 주체는 순수하고 투명한 의식이 아니다. 사물 또한 과학주의적 시각에서 보는 것처럼 대상 일반으로서 주체와의 의미 연관 없이 놓인 개체들로 간주될 수 없다.

 

 

일상의 은폐상태와 예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각은 주체가 지각함으로써 지각되도록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나르시시즘으로도 표현되는 이러한 차원에서 지각은 이미 반성적 차원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성이야말로 진정한 반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상이 최초로 의미로서 다가오는 것이 다름 아닌 지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봄을 통해 비로소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봄으로써 보이는 지각의 반성적 차원을 통해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지각을 매 순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일상의 의식적 차원은 그 같은 수행을 은폐하고, 시각은 왜곡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세속적 시각내지 협소하고 일상적인 의미에서 가시적인 것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예술이 이렇게 왜곡된 시각이 놓치는 비가시적 실재를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몸으로 사유하면서 이러한 반성적 차원의 지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잊고 있는 이러한 실제 지각의 근본적 차원 속에서 작업한다. 한 예술가들은 스스로 반성적 차원의 지각을 수행할 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지각의 반성적 차원을 회복시키는 이들이기도 하. 메를로-퐁티는 소설가란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사상이 우리 앞에 존재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상이 애초에 사물들의 구체적 실존 속에 얽혀있는 것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상의 그러한 존재방식을 놓치고 있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다시금 사물의 존재방식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 실존을 떠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형태의 의미구조에 가닿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사물을 우리 앞에 존재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진정한 반성이 외려 실재를 규명 불가능해 보이는 낯설음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앞으로 부에서는 이러한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으로서의 낯설음을 각각 세잔의 회화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나타나는 낯설음의 제 양상들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고찰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메를로-퐁티는 ‘감각’과 ‘지각’을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보다 미시적 차원의 논의를 전개할 때는 ‘감각’을, 보다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의 논의를 전개할 때는 ‘지각’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입장을 따르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메를로-퐁티의 전기를 대표하는 저서『지각의 현상학』과 후기를 대표하는 유고『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사물과 의식이 분화되기 이전의 현상에 주목하여 전통적 주객이분법을 극복하고자했다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단, 전자가 논의의 전개방식에 있어 여전히 ‘의식’-‘대상’이 구별된 상태에서 출발함으로써 일정부분 이분법적 도식의 잔재를 보이고 있다면, 후자는 주체와 대상이 불가분의 상태로 얽혀있는 존재의 구조에 주목하면서 전통적 주객 이분법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체하고 있으며, 살은 이러한 존재의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은 메를로-퐁티의 전기 현상학이 이미 후기의 존재론이 본격적으로 기술하는 살의 존재론의 씨앗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기 현상학에서 나타나는 많은 기술들은 후기에서 등장하는 살 개념과 함께 한층 더 분명히 이해되고 있다. [본문으로]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下)

 

한정헌 (연세대 겸임교수)

 

이글은 앞서 게재된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라캉의 부성은유

 

라캉은 프로이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근기표의 초월성과 부재의 원리를 자신의 부성은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부성은유는 남근기표로서의 아버지와 오이디푸스적 관계를 잘 보여준다.

 

 

  

우선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이자적인 상상적 관계에서 처음엔 자신이 어머니의 욕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어머니의 욕망은 곧 남근(phallus)이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남근이라고 상상하며, 또한 그의 상상 속에서 어머니가 욕망하고 있다고 믿는 남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개입으로 한동안 아버지의 기표와 경쟁하다가(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신이 결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의 욕망이 되고자 하는 상상적 합일의 의지를 버리게 된다(거세콤플렉스). 즉 어린아이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했지만, 아버지의 개입으로 인해 어머니의 욕망이 사실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남근)이며 어머니의 욕망이 더 큰 권위로서 등장한 아버지의 이름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이 되기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어머니의 욕망의 자리는 더 이상 자신이 채울 수 없으므로 빈칸=결여로서 남게 된다.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하며 들어오게 된다. 요컨대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이 되려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포기하고, 즉 그 욕망을 억압하고,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인다. 또한,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한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가 무의식으로 억압되면서 그것을 대신하는 또 다른 대체표상들=은유적 기표들이 환유적 연쇄를 이루게 된다. 원초적 욕망인 어머니의 욕망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체되면서 억압되어 무의식적 욕망의 원형이 되고, 대신 그 빈자리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오면서(=어린아이가 받아들이면서) 이후에 대체되는 기표들은 모두 남근적이고 아버지적인 욕망의 기표들이 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머니의 욕망을 대리하는 아버지적인 기표가 있으며 이것이 억압되어 다른 기표들로 대체되면서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사슬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의 과업은 이러한 억압된 기표들의 연쇄를 찾아서 드러냄으로써 환자의 증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요컨대 최초의 욕망은 무의식으로 억압되고 아버지의 기표로 대체되어 영원한 빈 칸으로 남게 되며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기표를 받아들임으로써 거세된 주체=욕망하는 주체=의미있는 존재로서 상징계에 진입하게 된다. 즉 어린아이는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거세된 주체=균열된 주체()로서 이를테면 어떤 상징적 할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선험철학에서와 같이) 주체가 먼저 있어서 어떤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이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이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남근기표로서 (이것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화되지 못하고 (따라서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기표들로 대체되어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가 이어진다.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과정에서 의미화가 이뤄지는 순간은 이 과정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서다. 연쇄가 끝나는 지점에서의 마지막 기표가 최초의 기표로 소급해 올라가 그 위에 얹어질 때 의미가 사후적으로발생하는 것이다(S/s).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에서 찾는 기표들의 연쇄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의미화되지 못하여 굴절되고 증식된 환유적 사슬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환자의 증상이라는 감성적 기표들을 누빔점 혹은 고정점(point de capiton)으로 정박시켜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의미화는 결국 무의식 속의 주체를 찾아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즉 누빔점은 증상들=기표들의 무의식적 주체를 찾아 소급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결국 어떤 증상이건 간에 기표들의 흐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남근기표를 찾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모든 기표가 아버지의 이름의 굴절된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욕망=죄악의 금욕주의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정신분석이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중에서 주로 신경증을 치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착증과 정신병은 정신분석에서 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 정신분석은 그 이유를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찾는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거나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즉 주체화의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분석가와 환자의 분석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에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 아예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주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오이디푸스로부터 비껴가는 증상은 정신분석의 영역이 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신경증자는 정신분석가가 부여하는 남근기표를 통해 십중팔구 치료효과를 경험한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실체성이 마치 실제로 증명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가 보기에 신경증자를 낫게 하는 요인은 분석가의 정확한 오이디푸스 진단에 있다기보다는 양자의 전이관계에 있다. 이는 신경증자의 증상이 비록 오이디푸스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분석가와 환자의 수직적인 전이관계에서 분석가가 부여한 기표는 곧 진리가 된다는 말이다. 전이는 일종의 감정의 재현이다. 환자가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을 자신의 앞에 있는 분석가에게 투영하여 그 상황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분석가는 환자에게 그의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대상이나 분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환자는 급속히 분석가와의 사적인 감정에 돌입하여 그에게 애정을 보이거나 분노하고 저항하는 등 지극히 의존적 상태가 된다(프로이트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이런 재현적 전이관계가 필수적인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전이관계는 환자의 실제 증상과 상관없이 어떤 기표를 주든지 의미화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무의식의 억압 때문에 분석가를 찾아온 신경증자가 바라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의 기표)일 뿐이다(신경증자는 자신의 신체/무의식이 드러내는 증상, 즉 기표의 의미에 목말라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증상(기표)에 대한 의미(기표)를 갈구하는 그/녀에게 분석가는 마치 아버지나 신과 같은 초월자의 위치에서 기표를 부여하는 것이다. 분석가의 기표를 통해 기표들(증상들) 위에 억압적 기표가 던져짐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억압의 기표는 다름 아닌 남근=아버지의 이름이다. 이제 환자는 증상의 반복(기표의 사슬)을 중단한다. 억압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신분석가와 신경증자 사이에는 마치 사제와 신자의 관계처럼 권력의 전이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진단을 내리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응적 태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신경증자의 증상을 낫게 하는 것은 안다고 가정된 주체(분석가)가 아니라 안다고 가정한 환자의 믿음인 셈이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마가복음 5: 34)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이 환자의 억압된 기표들의 사슬들을 찾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원인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 부재하는 초월론적 가상, 형이상학적 믿음으로서의 남근=아버지의 이름이다. 이후로 정신분석은 초기의 프로이트가 욕망의 본질이라 생각했던 부분충동을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으로 보았고, 그로부터 전체적이고 인간적이며 완전한 충족을 유추해내어 그것을 근친상간적 욕망과 관련지었다. 불완전한 부분충동의 (배후에 있는) 완전한 본체를 상정하여 그것을 전체화되고 인간화된 욕망의 표상에 결부시킨 것이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들뢰즈/가타리는 부분충동을 그 자체로 자기충족적인 것으로 본다). 또한, 완전한 충족은 곧 오이디푸스적 욕망이라는 등식의 설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은 부정되고 억압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신경증자는 정확히 이러한 오이디푸스 형이상학과 금욕주의 도덕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이들은 완전한 충족을 갈망하며 결여된 대상=a에 집착하지만, 이 완전한 충족이라는 형이상학은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완전한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들은 금욕주의적 도덕에 의해 심각한 내면의 가책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즉 오이디푸스라는 형이상학은 자연스럽게 욕망=죄악이라는 금욕주의적 가치론(도덕)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움직이는 곳에는 늘 죄의식이 함께 따라다니고, 쾌락원칙은 현실원칙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며, 이러한 현실원칙으로부터 승인된 표상만이 억압을 피할 수 있다. 이로써 욕망은 본질적으로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신경증적 욕망을 인간일반의 심리로 보편화하여 욕망 자체를 금욕주의적 입장에서 억압과 부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들뢰즈/가타리에게 욕망은 삶의 본질로서의 힘에의 의지라고 할 때, 정신분석은 삶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니체의 비판처럼 니힐리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단죄의 성격을 가진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 따르면, 금욕주의적 이상은 죄라는 관점에서 모든 고통을 해석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허무를 의욕한다. 즉 서구 형이상학은 이데아, 형상, 내세, 도덕 등 초월적인 세계나 가치 등의 무=부재에 의지해왔으며, 이는 그 자체로 삶을 가치절하(부차화)하고 부정하며 억압하는 금욕주의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은 니체가 비판한 서구의 전통형이상학과 금욕주의 도덕의 현대적 판본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면, 먼저 프로이트는 욕망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했음에도 그것의 비인간적 성격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부분을 전체화하고 집합을 단일화하며 비-인간을 인간화하는 방식으로 욕망을 합리적으로 표상했다. 그리고 결국엔 인간의 욕망을 오이디푸스적 표상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가치론적으로 억압되고 금지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힘에의 의지로서의) 자기상승적인 삶을 부정하는 서구 형이상학과 금욕주의를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신분석은 금욕주의 도덕의 가치론을 아예 인간의 본성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욕망을 본질적으로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욕망은 결여된 것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표상이나 환상을 생산하는 데 머물게 된다. 들뢰즈/가타리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정신분석의 욕망론을 재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제기로부터 탄생한 것이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의 분열분석의 욕망론)인 것이다.

 

여하튼 최근 국내에 출간된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프로이트의 위조와 날조라는 다소 선정적인 주제의 비판적 평전이기는 하지만, 일견 들뢰즈/가타리의안티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물론 정신분석 비판의 방향/방식이나 그 깊이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천 개의 고원을 중심으로 소개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주장하는 분열분석이나 기계적 욕망 등과 같은 중요한 개념들이 다소 불충분하게 논의되어온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라캉이나 지젝의 사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정신분석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 어떤 면에서 1972년에 출간된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적어도 필자에게는) 보다 동시대적이고 새롭게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금 이 책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참고문헌

 

미셸 옹프레, 전혜영 옮김, 우상의 추락, 파주: 글항아리, 2013.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사전, 서울: 열린책들, 2005.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서울: 열린책들, 200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의 탄생, 서울: 열린책들, 2005.

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 니체와 철학, 서울: 민음사, 2001.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앙띠 오이디푸스, 서울: 민음사, 1994.

키스 W. 포크너, 한정헌 옮김, 들뢰즈와 시간의 세 가지 종합, 서울: 그린비, 2008.

Jacques Lacan, Ecrits, Paris: Éditions du Seuil, 1966.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上)

 

한정헌 (연세대 겸임교수)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정신분석 관련 저작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제목이 있다.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원제: 우상의 황혼 Le Crépuscule d'une idole, 부제: 프로이트의 날조 L'affabulation freudienne, 2010)이다. 니체의 우상의 황혼(Götzen-Dämmerung, 1889)을 책 제목으로 가져다 사용하고 있는 이 비판적 평전은 프로이트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하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여러 철학자의 흔적들을 추적함과 동시에, 그가 정립한 수많은 이론이 철저히 그의 전기적 삶과 연관된 조작과 날조의 산물임을 폭로함으로써 니체, 마르크스와 나란히 거론되어온 거대한 우상의 황혼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프로이트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안티프로이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저작을 대하면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연상될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L'Anti-OEdipe, 1972)이다. 아마도 니체주의적 관점에서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는 니체의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 1888)를 염두에 두고 지은 책 제목인데, 이들이 말하는 오이디푸스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새로운 초월적 형이상학으로서의 정신분석을 가리킨다. 즉 이들은 오이디푸스가 플라톤주의와 그것의 대중적 판본인 그리스도교의 형이상학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고, 남근을 배후세계 혹은 이데아/형상으로 숭배하는 현대판 사제로서의 정신분석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들이 반대하는 것이 오이디푸스로 표상되는 정신분석이지 프로이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티오이디푸스안티프로이트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이들이 주장하는 분열분석이나 욕망의 개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욕망은 사실 초기의 프로이트가 찾아낸 개념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와 기계적 욕망

 

물론 이때의 프로이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900) 이후의 프로이트가 아니라 주로 과학적 심리학 초고(Entwurf einer Psychologie)를 쓰던 당시, 신경생리학자로서의 프로이트를 가리킨다(이하 과학적 심리학 초고초고로 약하여 표기함). 이 시기에 그는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뉴런과 뉴런 사이의 물리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힘=에너지의 관계에서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는 이러한 관점을 계속 밀고 나가지 못하고 해석학적 작업으로 선회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무의식이 어떤 의미, 진실이나 진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정신분석가는 흡사 그 배후의 궁극적 의미를 읽는 해석학자와 같은 시선으로 환자를 살펴보게 되었으며,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은 (배후의) 진리를 찾는 형이상학과 동일한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들뢰즈/가타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초고를 쓸 당시의 (-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리비도 중심의 심리학에서 리비도의 흐름을 자아의 통제 아래에 두는 자아심리학으로의 (인간주의적이고 남근중심적인) 후퇴를 의미한다. 미리 말해두자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욕망(désir)(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베르그손의 생명의 약동élan vital 등과 함께) 프로이트가 초고에서 논하는 무의식 혹은 리비도의 흐름과 관련된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리학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것들[정동Affekt과 욕망]은 둘 다 ψ[뉴런]에서의 양Qἠ적인 긴장의 증가--정동의 경우는 갑작스러운 해방에 의해, 그리고 욕망의 경우는 가중에 의해 야기된다.”[각주:1] 여기서 양은 생리학적으로는 뉴런들 사이를 자유롭게 흐르고 이동하는 힘=에너지의 내포량=강도량(des quantités intensives)을 뜻한다. 프로이트가 자주 사용하는 자극이라는 말도 에너지가 뉴런에 집중=투여=투자되어(besetzt=invested) (뉴런을) 흥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은 나중에 성충동의 에너지로서의 리비도’(libido)로 불리게 된다. 리비도가 갈망혹은 욕망을 가리키는 라틴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 프로이트가 생각한 원초적인 욕망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각주:2] 따라서 이 당시의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는 욕망=(에너지)==리비도=강도량의 등식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는 욕망을 표상의 관점이 아니라 힘들의 생산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타리가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주장하는 욕망의 원형이 된다.

 

정신분석의 위대한 발견은 욕망하는 생산, 무의식의 생산들의 그것이었다.[각주:3]

 

[] 프로이트는 욕망의 주관적 본성 혹은 추상적 본질을 발견하고 있다. [] 프로이트는 단적으로 욕망 자체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AO, 441)

 

주목할 만한 것은 (초기의) 프로이트가 초고에서 인간 무의식의 작동을 철저히 리비도의 기계적 작동, 즉 강도량의 형성, 이동, 방출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경생리학자로서의 프로이트는 욕망을 생리학적 관점에서 리비도=강도량의 형성과 흐름으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리비도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뉴런의 양적인 흐름으로서 무제약적이고 공격적이며 비-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프로이트는 스스로 기계적 원리라고 표현했으며[각주:4], 들뢰즈/가타리는 이를 이어받아 욕망=리비도의 성격을 기계적’(machinique)이라는 말로 집약한다. 물론 프로이트가 본래 사용한 기계적’(mechanisch)이라는 용어는 리비도의 양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기계론적’(mécanique)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학적 원리라 할 수 있는 유기체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항상성의 원리에 제한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위협하고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고 유물론적이며 외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들뢰즈/가타리는 이러한 욕망 혹은 리비도의 기계적 원리를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mécanique=mechanical이라는 말 대신에 사전에 없는 machinique=machinic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한다. 이들의 책에서 기계적 욕망’(désir machinique)이라는 말이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기계적 욕망은 자아나 주체와 무관하게 철저히 자유롭고 비인칭적인=-인간적인 리비도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저장소를 비인칭적인 그것’(das Es=le ça=id)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다. ‘그것은 영미권에서 흔히 이드’(id)로 번역되어 널리 쓰이고 있지만, 본래 게오르크 그로데크(Georg Groddeck)로부터 빌려온 것으로, 인간 안의 비-인간적인 것을 뜻하는 니체적 개념이다(자아와 이드, 361-362).

라플랑슈/퐁탈리스는 프로이트가 그것이라는 비인칭적 개념에 끌린 이유를 그로데크의 수동적 자아론에서 찾는다.[각주:5]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게오르크 그로데크인데,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그의 표현대로, 우리는 알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살게 된다고 지칠 줄 모르게 주장하는 사람이다.”(자아와 이드, 361-362) 즉 욕망의 주체는 ’, ‘’, 혹은 /가 아니라 미지의 그것이라는 이야기다. 내 안에 있으면서 에게 귀속되지도 제어되지도 않는 이 괴물은 단지 기계적 원리에 따라 욕망을 생산하고 표상들을 자유롭게 실어 나른다.

이와 같이 프로이트의 그것은 상당 부분 니체로부터 가져온 개념이며 니체와 프로이트의 접속에 의해 탄생한 소위 비-인간적이고 초-인간적인 욕망의 개념화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가 니체주의자라는 말은 아니지만, 프로이트가 적어도 힘/에너지에 대해 니체와 공통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각주:6] 그리고 들뢰즈/가타리는 니체를 사이에 두고 프로이트와 접속함으로써 프로이트 사상의 내부의 외부, 기계적 욕망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프로이트/라캉의 결여로서의 욕망

 

그러나 프로이트는 탈인간적인 욕망 자체(즉자적 욕망)의 개념에서 곧바로 (들뢰즈가 개념적 차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이) 개념적 욕망 혹은 표상적 욕망으로 후퇴하고 만다. 뛰어난 신경 생리학자였던 프로이트는 욕망 자체, 즉 비개체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분자적인(분열증적인) 기계적 욕망을 철저히 생물학적 개체와 심리적 자아라는 개별성(individuality) 속으로 가져가 이해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더불어, [정신분석의 욕망하는 생산의] 발견은 하나의 새로운 관념에 의하여 금방 가려진다. [] 무의식의 생산단위들 대신에 표상이 들어서고 생산적 무의식의 자리에는 자기를 표현하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무의식(신화, 비극, ……)이 들어섰다.”(AO, 45-46) 다시 말해 욕망의 주체를 그것으로부터 자아로 가져오게 되면서 욕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신분석에서의 대표적 표상들인 남근, 오이디푸스, 가족 삼각형 등에 의해 억압되어 부정적이고 반동적으로 형성된 어두운 힘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최초로 찾아낸 기계적 욕망은 이제 의식적 자아 혹은 표상의 주체에 의해 물신적으로 전도되어 욕망의 표상이 아니라 표상의 욕망으로 환원된 것이다. “무의식은 참된 자기, 즉 하나의 공장, 하나의 작업장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극장, 즉 무대와 연출이 되고 만다. 그것도 프로이트의 시대에 있었던 것 같은 아방가르드의 극장(베데킨트 Wedekind)이 아니라 고전적 극장, 표상의 고전적 질서가 되고 만다.”(AO, 88)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의 언어적 혹은 해석학적 전회를 이룬 꿈의 해석(1900)을 비롯해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01),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905)등을 중심으로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창한다. 이 저작들에서 프로이트는 주로 신경생리학이나 리비도 경제학적 관점으로부터 언어적 혹은 해석학적 관점으로의 커다란 전환을 보이고 있다. 망각, 말실수, 농담 등 언어적인 것을 통해 무의식의 은폐된 진실을 찾아내고자 한 프로이트의 이 작업을 라캉은 정신분석의 나아갈 길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리비도 경제학이나 에네르기학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철저히 언어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라는 말 속에 집약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프로이트의 그것에 상응하는 실재계나 자아에 상응하는 상상계보다는 초자아에 상응하는 상징계에 우선성을 둠으로써 프로이트를 언어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이른바 프로이트로 돌아가는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보았다.

라캉은 우선 프로이트에게 드리워져 있는 생물학적(해부학적)이고 실재론(본질론)적이며 목적론적인 성격을 중성화하고 프로이트의 남성적인 리비도를 계승하되 소쉬르의 언어학을 (기호중심에서) 기표중심으로 재해석하여 그것을 상징계에 관련시킴으로써 인간의 자연적이고 본원적인 욕구(besoin=need)의 위상을 (상징계에 비해) 축소시켰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인간이 언어를 중심으로 한 상징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사실상 논의의 출발점으로 설정하여 욕구보다는 욕망(désir)의 문제에, 즉 주체화의 문제에 천착했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언어적/사회적인 요구(demande)로 번역함으로써 거세된 주체=균열된 주체()로 욕망(의 그래프)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욕망=욕구-요구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욕망은 만족을 향한 갈망도, 사랑을 향한 요구도 아니다. 그것은 욕구로부터 요구를 뺀 차이, 즉 그것들[욕구와 요구]의 분열(Spaltung)이다.[각주:7]

 

욕망은 요구가 욕구로부터 분열되는 가장자리 속에서 형성된다.[각주:8]    

 

이때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욕구가 언어에 의해 매개되면서 그중 일부가 빠져나간 찌꺼기 혹은 과잉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욕망은 결국 충족되지 못한 욕구라 할 수 있다. 가령 유아가 울면서 자신의 욕구를 표출할 때, 부모는 그 울음의 의미를 (언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욕구를 요구로 환원한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언어적 요구로 결여된 자리를 보충하려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빈칸을 채울 수 없다. 즉 욕망은 본능적 욕구에서 언어적 요구를 뺀 나머지, 혹은 실재가 상징을 통과하면서 밑으로 가라앉은 잔여물을 가리킨다.[각주:9] 따라서 욕망은 언제나 (충족되지 못한 욕구에 대해) 대체 가능한 표상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움직이는 빈칸을 채우며 작동하게 된다. 이 빈칸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소타자로 나타나며 (어떤 선험적으로 주어진 주체가 소타자와 마주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이것에 의해서 주체가 구성된다. 그래서 라캉의 L도식에 따르면, 주체(S=sujet)가 타자(A=autre)를 만나는 방식은 언제나 자아(a')와 소타자 a의 상상적 관계(상상축)에 의해 매개되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선험적 주체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주체는 (언어가 기원하는 장소로서의) 대타자(A), (타자가 보여지는 상으로서의) 소타자(a'), 그리고 (소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라고 상상되는) 자아(a)에 의해 구성된다. 즉 주체 S는 선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 a, a' 에 의해 구성 및 결정된다는 것이다.[각주:10]

 

 

 

요컨대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언어에 의해 억압된 무의식적인 것이며, 현실계에서 환상대상(objet=a)의 모습으로 부단히 환유된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이름(=언어=상징계)에 의해 균열된 주체는 그 결여를 환상적인 대상 a를 통해 채우고 싶어 하며, 결코 채울 수 없는 영원한 갈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명한 라캉의 환상공식(d a)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환상공식에서 욕망(d=désir)은 균열된 주체()가 완전한 충족에 이르기 위해 환상대상 a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욕망은 균열된 주체가 (그것만 취하면 완전한 충족에 이를 수 있을 거라 믿는) 환상대상 a와 마주 서면서 생성된다. 물론 주체는 a와의 거리를 결코 좁힐 수 없다. a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므로 부단히 다른 대상으로 바뀐다. 다시 말해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재 위에 기초한 형이상학

 

이미 살펴본 것처럼 프로이트는 초기에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무의식적 작동방식, 인간 안의 비인간인 그것의 욕망, 리비도의 기계적 생산원리를 최초로 발견했으나, 그것을 계속 밀고 나가지 못하고 남근이라는 초월적 기표를 중심으로 조직화하였다. 이로 인해 욕망은, 기계적이고 생산적(=생산하는)이며 분자적인 욕망의 흐름으로서가 아니라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은밀하고 협소한 범주 안으로 제한된 의미를 띠게 된다. 여기서 남근의 화신인 아버지는 거세위협을 거세콤플렉스로 현실화시키는 초월적 존재로 작용하며 어린아이의 경우 어머니를 포기하고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물론 아버지 역시 실제로 남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존재이다). 이때 아버지는 살아있는 현실대상으로서의 아버지라기보다는 상징계의 상징으로서 아버지의 이름(nom-du-père)=아버지의 금지(non-du-père)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라캉에게 아버지는 살아있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초월적인 존재로서 금지를 명하는 자,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금지(nom=non)로만 존재하는 (죄의식의 내면화로서의) 초자아, 혹은 남근적 기표의 초월적 심급으로서 대타자(Autre)를 뜻한다.

들뢰즈/가타리는 정신분석이 이런 죽은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 초월적 남근기표라는 부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여기서는 오이디푸스의 제국주의가 부재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AO, 94) 이들이 말하는 부재(absence)란 현실적 부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어떤 근본적인 배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부재하지만, 그 이면/배후에 자리하는 어떤 아르케’=원형이 바로 남근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기술해도 우리는 들뢰즈/가타리가 어째서 정신분석을 형이상학적이라고 평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은 지금 이 현상적 세계에 없는 어떤 참된 세계, 진정한 세계, 진리를 전제하는 데 있으며, 그 대신에 이 현상세계를 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신분석은 인간을 남근’(phallus)(남근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아버지’(의 이름)라는 중심기표를 통해 종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바꿔 말해 부재하는 남근과 죽은 아버지라는 선험적 가상’(transcendental illusion)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배후세계에 남근 혹은 아버지의 이름이 작동하고 있다는 식의 논변은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진수 옮김, 「과학적 심리학 초고」, 『정신분석의 탄생』(서울: 열린책들, 2005), 249-250. [본문으로]
  2.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사전』(서울: 열린책들, 2005), 122. [본문으로]
  3.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앙띠 오이디푸스』(서울: 민음사, 1994), 45. 이후 AO로 약하여 쪽수와 함께 본문에 표기 [본문으로]
  4.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박찬부 옮김, 「자아와 이드」,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서울: 열린책들, 2003), 250. 이후 「자아와 이드」로 약하여 쪽수와 함께 본문에 표기 [본문으로]
  5.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사전』, 75. [본문으로]
  6. 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 『니체와 철학』(서울: 민음사, 2001), 206-207. [본문으로]
  7. Jacques Lacan, Ecrits (paris: Éditions du Seuil, 1966), 691. [본문으로]
  8. 위의 책, 814. [본문으로]
  9. 프로이트나 라캉은 욕망이 본능이나 욕구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고 보는 데 반해, 들뢰즈/가타리는 오히려 욕구가 욕망에 의해 파생되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욕구는 인간이나 사회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AO, 49. [본문으로]
  10. Jacques Lacan, Ecrits, 53-54. [본문으로]

동아시아 미학을 바라보는 거울

- 푸전위안의 『의경(意境),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을 읽고 -

 

 

임종수 (현 감리교신학대 및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외래교수)

 

감리교신학대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고전번역원(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졸업.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명말청초 방이지의 자연관으로 석사, 같은 대학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명대 삼교합일론자 임조은의 종교사상 연구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 이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BK21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성균관대, 감리교신학대,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강의 중이다. 아울러 도서출판 문사철 기획위원이자 시민과 중고생, 대학생을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와 한문 강좌를 글쓰기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과제로 선정된 청대(淸代)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공역에 참여, 공저(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서울: 문사철, 2013) 공역서(논어, 새물결)가 출간 예정이며, 동아시아 철학, 미학, 종교, 명청사상사와 근대에 이르는 동아시아 사상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전번역, 고전과 현대의 다리 놓기,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꾸준히 모색 중이다.

 

푸전위안의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각주:1] 동아시아 미학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의경이란 개념을 중심에 두고 그 역사와 쟁점들, 의경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기존 학자들과 저자 간의 차이를 설명해놓은 책이다. 이처럼 의경 개념만을 철두철미하게 주제로 삼아 해설한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책은 거의 7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말해주듯이 워낙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가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사뭇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미학용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읽는 분들로 하여금 의경의 세계에 보다 부드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본 내용은 본인의 미적 체험에서 시작하여 차츰 책의 핵심 내용의 소개로 이어지는 조금 색다른 전개방식을 취해가고자 한다. 

 

그림을 보다 보면 유독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그림들이 있다. 내게도 유년시절 보았던 몇 장의 그림이 그렇게 물먹은 솜처럼 오래도록 기억 속에 스며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유년시절의 경험은 그것이 단 한 번에 그쳤다 할지라도 지워지지 않는 강렬함으로 각인되곤 한다. 아홉 살 때 동네 할아버님께 서예를 배우다 3학년이 되어 서예학원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갔던 어느 날 오후, 창가에 걸려 있던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이었던가... 그 자비로운 눈빛과 풍염하면서도 유연한 곡선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얼마인가 지난 어느 날, 먹을 갈면서 우연히 들여다본 화첩을 한 장, 두 장을 넘기는데, 한 선비가 미소 띤 얼굴로 바위에 턱을 괸 채 흐르는 냇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 그림에 매료되어 더 이상 화첩 장을 넘기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덧 마음이 평온해졌다. 무엇보다도 그 웃음기 어린 무구하고 넉넉한 선비의 인상이 좋았다. 훗날 알게 된 그 그림이 바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였다. 세월이 흘러 스무 살 고개에서 고사관수도의 실물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에서 보았을 때 그토록 작은 편 폭(23.4x15.7cm)에 그려진 것을 보고 적이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젊은 날 사두셨던 『이중섭화집』에 실린 성당부근’, ‘달과 까마귀’, ‘흰 소등이 떠오른다. 그 중 교회당을 그린 성당부근이 내게는 모종의 멜랑콜리를 안겨주어 이중섭의 그림이 전부 어둡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이후 그와 관련된 평전들, 그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글들을 읽어가며 어린 시절 우울하게만 다가왔던 이중섭 이미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동양화는 여백餘白을 강조한다고 배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양화의 특징을 그렇게 알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 나로서는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서양화는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동양화는 일정 부분 비워둔다고 배웠다. 현직 화가였던 선생님은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분이셨다. 그런 분의 말씀이었던 만큼, 그 말을 그대로 묵수한 채 동양화하면 여백의 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동양화에 대한 책과 관련 문서들을 읽고, 또 그림들을 보면서 뭔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여백의 미라는 것이 꼭 동양화에만 국한된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동양화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옳을까? 라는 또 하나의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평소 무언가 화자가 다 말해버리지 않는, 그래서 다 드러내지 못한 말이 있는 듯한 한시(漢詩)와 그림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미학이라는 분야에서 형성된 동양미학의 개념으로 그러한 문예작품들에서 경험되는 울림과 반향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잘 몰랐다. 그와 같은 궁금증으로 말미암아 동양미학 책들을 이 책 저 책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동양미학의 개념들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양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처음에 접한 개념은 익히 알려진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의미였다. 그 후로 문/, /, /, /, /, /, /, /, /, /, /, /등의 개념 쌍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동아시아 미학의 단면들을 다각도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보면 볼수록 새롭게 다가왔다. 그 그림에 담긴 사유와 정서를 동양의 고전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그 앎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느끼는 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 또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했다. 그림의 정신세계라고나 할까, 그런 방면에 차츰 관심이 닿기 시작했다. 그 선비가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나도 홀로 그 선비를 바라보곤 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너럭바위에 팔을 괸 채 넉넉하고 둥근 얼굴로 물끄러미 흐르는 산속 계곡의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아니 선비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림에서 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과 몸,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선비는 흐르는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요한 산속 계곡을 흐르는 물, 툭툭 뻗어 내린 가지와 잎새, 굵은 칡덩굴이 별다른 기교 없는 붓질로 채워진 화면, 고요함이 흐르면서도 정 속에 갇히지 않아 답답하지 않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함께 배어나니, 저절로 그 여미(餘味)가 그림을 보고 난 후에도 남아, 어느덧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기운(氣韻)이 아닐까? 이처럼 그림 자체가 지니는 내면세계의 힘과 리듬으로서 기운생동의 의미가 실감 되었고, 그 의미가 이렇게 생생하게 느낌으로 와 닿는구나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림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유가와 도가 정신의 그 어떤 앎도 고사관수도자체가 전하는 울림과 여향(餘香)을 잦아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무수하게 보아왔지만 내게 고사관수도는 그 선비의 모습, 혹은 그 바위, 나뭇잎새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기억되지 않았으며, 그 형상이 사진처럼 고정적으로 재현되지도 않았다. 그림의 가치를 자연모방에 둘 때, 고사관수도와 같은 작품은 그리 성공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강희안은 몇 번의 붓끝으로 계곡 속의 선비를 재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한 선비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희안이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형상의 재현[形似]이 아닌 내면세계의 표현[神似]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림 안에는 사실적인 자연의 묘사보다는 그의 마음과 의식에 떠오른 풍요로운 정취와 분위기가 담겨 있다. 아마도 그의 마음자리에는 『논어』공자가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네라는 구절이 떠올랐을 수도 있고,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말하면서 인자(仁者)와 지자(知者)의 특징을 선문답처럼 간결하게 말한 구절이 떠올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붓은 그의 몸에 육화된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구현해놓았을 뿐이다. 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려보고 나니 그러한 그의 정신세계가 드러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사관수도의 세계는 내게 이러한 감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기억에 남아, 끊임없는 상상을 이어가게 한다. 바로 그러한 상상과 연상을 동양미학의 언어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푸전위안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술작품과의 만남에서 우리의 의식 속에 일어나는 움직임의 다양한 정취와 분위기, 정신의 경계를 의경(意境)’이란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의경이란 개념은 워낙에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다 보니 어느 한 가지로 합의된 정의가 없다. 저자는 마정핑이란 학자가 의경을 정경교융설(情景交融說), 전형형상설(典型形象說), 상상연상설(想像聯想說), 정감기분설(情感氣氛說)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저자 푸전위안 교수의 입장은 상상연상설에 속한다. 이 중 정경교융설과 전형형상설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자의 의경 개념의 특징이 부각될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정경교융설은 그동안 의경 개념과 일치하는 듯 이해되어왔다. 정경교융이란 우리가 예술작품에서 받는 인상(체험)과 예술작품에 반영된 현상이나 장면의 결합을 말한다. 그러나 정경교융은 의경의 한 특징을 말해줄 뿐 의경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과 경의 기계적 결합이나 융합이 바로 의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의경에 담긴 풍부한 함의는 죽어버리고 마는데, 그것은 이미지(形象)로 고착되면 더 이상 작품의 해석과 감상이 다양해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어떤 작품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이 고정되면 그 작품을 바라볼 때 다른 상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작품 속에 있는 특정한 이미지에 매이면 풍요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저자는 정경교융설은 의경의 풍부한 함의를 충분히 드러내기가 어렵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술작품에서 경험되는 상상연상은 무궁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형형상설이다. 전형형상설은 의경을 예술작품의 형상(이미지) 또는 전형과 동일하게 본다. 그러나 물이 무지개로 변하지만, 무지개가 그러한 변화를 낳을 수 있는 물과 같지는 않은 것처럼(p.65) 의경은 예술전형이나 예술작품 속의 이미지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전형형상설은 다채롭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경을, 그것을 낳는 모체인 예술전형이나 이미지 자체로 확정하거나,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고정된 작품해석에서 벗어나는 이론에 주목하는데, 의경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초이상외설[超以象外], 형상 밖으로서의 초월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화가가 산수 속에 오두막집을 그렸다. 그런데 오두막집 주인을 그려 넣지 않았다. 하나 우리는 그 집 속에 주인이 분명 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바로 형상 밖으로 초월하여 자유로운 변화의 묘리를 얻다.”라고 말하는 것이다.(p.66)

 

푸교수는 청대 학자 손련규가 보여준 예를 든다. 산속 오두막집을 그렸지만, 그 주인을 그려 넣지 않아도 주인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래야 그 그림의 분위기와 풍류의 정취를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둘을 욕심껏 다 그려 넣었다면 오히려 다른 풍부한 상상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경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예술의 정취와 분위기, 이러한 것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부한 예술 환상과 연상 세계를 모두 담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산속 오두막집이 없다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정신의 경계를 알 길이 없다. 또 화가 자신도 그 오두막집을 그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려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의경은 구체적인 예술 형상을 떠날 수 없다. 반드시 구체적인 형상을 포괄해야 한다.

 

요컨대 의경은 특정한 예술이나 심지어 비예술적 부호를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예술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다만 우리 의식 속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를 가리키고, 또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예술 정취와 분위기, 그것에 의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부한 예술, 환상과 연상 세계를 포괄하는 총화이기 때문이다.(36, 244쪽)

 

이처럼 의경은 단 하나로 귀결 지을 수 없는 풍부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떤 특정한 예술적 이미지로 환원시키거나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특정한 예술적 이미지는 우리에게 자유로운 해석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고 강제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작품도 동일하게 체험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작품해석은 끊임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의경이란 요컨대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 그리고, 그러한 해석과 감상, 연상, 환상이 함께 어우러진 총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경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는 토대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경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토대를 저자는 우주대생명이론이라고 한다. 조금은 장황한 개념처럼 보이기도 하겠으나 우주 전체와 모든 사물은 공통적으로 내재적인 활발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그 이론의 요지이다. 이는 인간의 개체 생명을 넘어 전체 우주와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이론이다. 우주의 생명이 연속적으로 이어짐을 결정하는 존재는 형태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그것의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도()이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세계의 형상을 통해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가득 찬 도를 깨달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보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 학자들의 이론을 정리하며 우주 전체가 커다란 생명의 운행이고, 리듬이고 조화이며 모든 예술의 경계는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따른다면 도의 리듬을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예술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풍경, 영화를 보고, 또는 문학작품을 읽고 난 뒤 그 울림은 어떻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시간은 마법처럼 그 첫 그림을 다른 그림으로 변모시켜 간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것은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주름이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하나의 그림, 한 편의 문학 작품이 나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상상과 환영은 왜 사라지거나 식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와 같은 상상과 환영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까? 그것은 나의 마음과 그 풍경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상상의 연속이 내 마음속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재가 아니라 활발한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 울림과 감응의 현상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의 재현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예술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나아가 예술작품에 대한 고정된 시각이나 해석은 우리의 정서를 얼마나 메마르게 만드는 것일까? 문제는 작품과 나와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상상, 연상, 울림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것은 한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삶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빛을 발하고, 새롭게 해석되며, 무궁한 상상의 연속으로 이어지도록 이끈다. 그 점은 같은 작품을 두고도 다시 보게 하는 힘일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이 어떤 시간, 마음, 분위기에서 접하였는가에 따라 그 만남의 흔적은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해석들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어째서 특정 작품들은 유독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흥을 일으키며 살아 숨 쉬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분위기가 내 정서를 이루기도 하면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걸까? 그림은 나(의 한 부분)를 이루기도 하고, 나의 변화가 그림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바꾸어가기도 한다.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과 영화가 또 다른 시와 소설, 영화를 낳을 수 있다. 그것은 그것을 마음으로 바라본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또 다른 경험으로 되풀이된다. 문자 언어로 이루어진 소설이나 시를 비롯하여 모든 예술작품은 언어를 낳고 언어를 파생시킨다. 뭔가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말들이 똬리를 틀고 있지만, 그 말들조차 사실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언어가 가진 태생의 한계가 바로 끊임없는 언어를 낳고, 해석의 차이를 낳고, 그로부터 다양한 작품과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말과 글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뜻을 깨달았으면 말/형상을 잊는다’, 언어 너머의 뜻 등등... 왜 이렇게 동아시아 미학에서는 뜻을 중시해온 것일까? 저자를 따르면, 뜻이란 고정되고 획일화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뜻이란 우리가 어느 한 가지 틀이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상상과 연상의 풍요가 숨 쉬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자가 작품 속에 자신의 의도를 심어놓아 그 의도를 강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라 해도 자기의 소유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양한 낱말들이 이루는 전체가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은 자신의 의도와 생각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전달했지만, 그 말을 자기가 의도했던 말 그대로가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화가 중에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안 되고, 그냥 붓끝을 움직였는데, 그림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특수한 신비체험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겪는 몸의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일상과 예술 작품 속에서 형상 너머의 형상이란 무슨 뜻일까? 우리의 육안은 형상 너머를 볼 수 없다. 우리는 형상 앞에 마주하고 형상 앞에 시선을 둔다. 그 형상은 형상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채 우리 마음 안에 머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마음의 흐름과 주름, 시간의 심층으로 발효되어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무궁한 상상과 연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형상 너머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형상을 부정하지 않고, 다만 보이는 형상에 고착되어서는 진정으로 그 형상이 드러내려고 하는 형상을 보거나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착된다면 풍부한 상상의 날개는 펼쳐지지 못한 채 꺾이고 말 것이다.

 

의경이란 개념은 고정된 형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형상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과 나와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울림, 상상(), 번져 나오는 연상들이 이루는 전체이다. 예술작품과 나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상상과 연상, 정취, 분위기는 언어로 완전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말없이는 말을 넘어선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 형상 너머의 형상, 말이나 그림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의식 안에 떠올라 생성되는 그 형상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와 말로 표현되는 세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오가며 그 가운데 생성되는 흐름과 리듬을 예술작품 안에서 발견하고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예술 작품과의 만남과 체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존재의 전환마저 이루어가는 것은 아닐까...

 

 

  1. (푸전위안 저, 신정근․임태규․서동신 공역, 서울: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본문으로]

기억의 풍경 혹은 풍경의 정치

- 스트로브와 위예의 <모세와 아론>을 중심으로 - 

 

이익주 (고려대 강사)

파리 1(팡테온-소르본) 대학교 박사 (2012, 영화적 섬풍경의 이미지들 - 닫힘과 열림의 변증법)

논문 「시작과 끝으로서의 영화적 섬의 풍경」(한양대 현대영화연구, 2012)

「감각의 장소로서 영화적 자연 풍경」(영상문화, 2013)

 

 

 

 

1.

영화는 하찮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영화란 기껏해야 극장의 마크가 찍혀있는 통속에 가득한 팝콘을 씹으면서, 시청각적 쾌락을 즐기며 잠시 현실의 잡다한 고민들을 잊게 하는 스트레스 해소용 오락거리이거나, 컴퓨터에 다운받아 잠시 즐기고 지워버리는 일회용 파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상한 철학적 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화를 이용하는 많은 자들에게도 영화는 단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호기심을 끄는 수단일 뿐, (깊은 전통을 지닌 문학이나 미술과는 달리) 영화는 절대로 철학과는 동등해질 수 없는 가벼운 이미지들일 뿐인 것이다. 영화를 사유했던 철학자들이 많았을 것 같은 프랑스의 철학 전통에서도,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넘어 영화를 하나의 철학적 대상으로 진심으로 사유한 들뢰즈와 랑시에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밖의 철학자들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사유할 때, 항상 (도대체)‘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앙드레 바쟁이 위대한 것은 단순한 비평을 넘어 영화에 대한 촘촘한 사유를 했던 그의 글들 이전에, 그의 글들은 모아놓은 그의 책들의 제목처럼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에게 항상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란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애초부터 잘못된 질문일 수밖에 없다. 폴 발레리의 영리한 답변처럼, 모든 문학이, 모든 미술이 예술이 아니라, 예술인 문학작품, 예술인 미술작품이 있는 것처럼,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인 영화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탄생한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강력하게 예술에 대한 고전적 틀을 비판하며,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19세기라는 예술적 현대성이 나타나는 시기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의 아이러니는 자신들이 무엇을 발명했는지 잘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초기작들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회화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 최초의 실제로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운동성을 느끼게 해 준 이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발명품의 혁명성을 그들은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탄생했을 때, 영화를 적극적으로 예술적 실험로 받아들이려 했던 자들은 좌파들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었다. 기존의 예술의 틀을 흔들며, 벤야민의 말처럼, 대상들을 관통하며, 사물들이 말하게 하는 영화의 운동-이미지의 충격은 그들에게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운동-이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충격이 관객들에게 익숙해져서 지루해져 갈 때, 영화는 이제 이야기를 말하는 고전적 예술로 회귀한다.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관객은 다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영화란 움직이는 이미지를 수단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매체가 되어 버린다.

 

2.

이런 면에서 랑시에르는 영화 속에 내재해 있는 근본적인 모순성을 언급한다. 랑시에르는 영화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미학적 위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고전주의 시학의 경향성 (뮈토스 mythos 플롯의 합리성 rationalité de lintrigue) 과 낭만주의 시학의 경향성(옵시스 opsis 스펙터클의 감각적 효과 effet sensible du spectacle)의 만남과 충돌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는 이야기들의 낭만주의적인 변형이 문제시되어짐에서, 뒤늦게 나온 예술이며, 이 변형을 고전적인 모방으로 이끈 예술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미학적 혁명과 영화 간의 연속성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것이다."[1] 그래서 그는 영화의 이러한 모순을 영화 우화라는 말로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영화의 예술적 조작방식은 [기계적 시각 이미지로서의]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저지하는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해야 한다. 영화의 기술적 본성으로부터 예술적 사명에 이르는 곧바로 뻗은 길은 없는 것이다. 영화 우화는 저지된 우화(fable contrariée)인 것이다.[2] 실험영화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완벽하게 부재하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랑시에르는 영화가 시각적 이미지의 예술이지만 서사가 완전히 포기되어질 수 없는 영화의 독특성을 저지된 우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영화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고민 중의 하나는 원래 영화의 가장 큰 역량인 운동하는 이미지가 주는 그 시각성을 어떻게 서사와 대결시키며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풍경의 역할은 현대 영화에서부터 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고전 영화가 추구했던 고전적 예술의 중요한 지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는 드라마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드라마를 구성하는 6가지 요소(장경, 성격, 플롯, 조사, 노래, 사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인 플롯(muthos)이며, 가장 하찮은 것을 장경(opsis)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 장경(場景)은 우리를 매혹하기는 하나 예술성이 가장 적으며 작시술과는 가장 인연이 먼 것이다[3] 장경[4] (실외에서 촬영된) 영화에서의 자연풍경과 가장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 고전 영화에서 자연 풍경만이 등장할 때 그 쇼트는 대부분 영화의 배경이나 시대, 분위기를 보여주며 영화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거나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부수적 장치로서 작동된다. 반면, (특히, 안토니오니나 타르코프스키의 경우처럼) 현대 영화에서는 자연풍경의 쇼트를 길게 만들거나 이야기의 진행에 관계없이 강조함으로써, 영화의 시각성이 드러나는 장치로서 혹은 이 세계의 시간이 담지 되어있는 잠재적 이미지로서 사용되게 된다. 들뢰즈의 말처럼, 현대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시간-이미지라면, 자연풍경은 이 세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이미지로서 현대 영화의 많은 작가에게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된다. 현대 영화 예술가 중 가장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스트로브과 위예의 영화에서도 자연풍경은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1932)>을 야외의 이탈리아 고대 원형극장에서 찍은 스트로브와 위예의 <모세와 아론(1975)>은 그 극장의 주변에 있는 자연풍경과 고대 원형극장의 만남 속에서, 오페라가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자연풍경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심미적 경향성이 좀 더 강한 안토니오니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의 자연풍경과는 달리 자연풍경을 정치적 의미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3

 

스트로브와 위예는 현대적 오페라를 영화화했지만, 그들은 단지 연극의 근본적인 요소인 « 텍스트의 빠롤 »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며, 영화적 리얼리즘의 가치 또한 잊지 않았다. « 텍스트의 빠롤 »을 중요시하면서 세계의 시간의 공간적 흔적으로서 자연풍경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은 이 영화를 자연 속에서 찍었다. 스트로브와 위예는 영화의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 소리, 공간 간의 조화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들이 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하지 않는 것은 단지 텍스트의 빠롤에 대한 정확한 의미의 전달이기보다는 소리와 공간에 대한 관계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스트로브에 따르면, « 더빙된 영화는 거짓말의 영화이며 정신적 게으름과 폭력의 영화이다. 왜냐하면, 더빙된 영화는 관객에게 공간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관객을 귀머거리로, 감각이 마비되게 만들기 때문이다...직접 소리와 대사를 녹음하면서, 우리는 공간에 관해 속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존중해야 하며, 이러한 존중 속에서, 우리는 관객에게 공간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란 시간과 공간의 « 추출 »로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이런 면에서, 마치 텍스트를 책을 읽듯이 말하는 그의 영화 속에서의 배우의 빠롤은 단지 텍스트의 왜곡 혹은 해석으로서의 연기와 감정이 제거된 (배우의 대사 혹은) 책 읽기라는 텍스트의 전달의 변증법에 대한 영화적 이미지의 표현일 뿐 아니라, 어떤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이 영화를 찍을 때 당시의 시간성과 만나게 되는 중요한 방식으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연극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연극이 만드는 텍스트의 빠롤의 생생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세계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의 가능성이 그들의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당연히 그들에게 영화를 찍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모세와 아론>은 단순히 야외에서 찍은 영화화된 오페라로 말해질 수 없다. 이 영화를 찍은 장소는 이탈리아의 지방에 있는 알바 푸첸세(Alba Fucense)의 고대 원형극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스트로브와 위예가 스튜디오나 실제 오페라 극장에서 이 영화를 찍기를 원치 않았다면, 왜 그들은 이스라엘이나 중동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의도적으로 영화의 장소로 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탈리아는 유럽인으로서의 쇤베르크의 문화적 정체성과 중동이라는 오페라의 배경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6]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야말로 유럽이면서도 팔레스타인에 가장 멀지 않은 유럽의 국가이고, 모세의 신의 종교로서 유대교에 원천을 지닌 크리스트교가 결국 자리를 잡게 되는데 문화적 토대를 제공 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알바 푸첸세의 고대 원형극장에서 촬영되었다. 이 닫힌 공간으로 인해서 영화는 일종의 연극성을 띄게 되지만, 카메라는 하늘로 열려 있는 극장의 주변의 자연들을 계속 보여주며 자연의 풍경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는 카메라의 운동의 섬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고대 원형극장은 단순히 닫힌 공간이 아닌 것이다. 특히 쁠랑-세깡스로 이루어진, 모세가 신을 만나는 첫 번째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모세의 뒤통수와 약간의 등을 고정된 쇼트에서 보여준 후 이어지면서 수직으로 상승하여 주변의 자연풍경을 하늘을 중심으로 아주 천천히 파노라믹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롱 쇼트에서 두 개의 산봉우리의 쇼트를 보여주면서 수 분간 정지한다. 이 시퀀스에서 하늘의 쇼트를 통해 신의 시선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모세와 아론의 일화라는 유대교적 신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역사적 신화를 스트로브와 위예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무한한 세계의 시간을 담지하고 있는 자연풍경의 역사성으로 교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오페라에서 쇤베르크는 예언자의 운명, 신의 계시 같은 신학적 의미들을 개입시킨다. 또한 그는 1923년 칸딘스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드러나듯이, 아직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을 먹일 식량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반대했던 안티-마르크시스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로브와 위예는 이러한 유일신적 전통이 남아있는 안티-마르크시스트적인 작가의 오페라를 자연풍경을 통해 유물론적 (신학의)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특히 마치 인간과 땅의 관계를 관객이 생각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로 영화 속 인물들을 부감촬영으로 잡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점은 고대 원형극장의 윗부분의 관객석에 위치한 관객의 시선과 연관된 고대의 연극의 관객에 대한 시점을 떠올리게 하며, 일반적인 현대 연극에서 찾을 수 없는 지질학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의 장소의 물질성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고대 원형극장의 주변의 자연을 끊임없는 파노라믹으로 보여주며 그 원형극장의 땅의 의미를 묵도하게 하는 풍경은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 스트로브적인 풍경 »[7]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스트로브적인 풍경이란 « 카메라의 움직임 (특히 파노라믹으로 카메라가 움직일 경우)이 과거에 발생한 것에 대해 추상적인 곡선을 그려내고, 그 땅은 거기에 묻혀 있는 것으로 인해 가치를 갖는, 텅 비고 공백이 있는 지층적 풍경 »[8]인 것이다. 말하자면, 스트로브와 위예의 영화의 풍경의 이미지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이 문화적 틀 속에서 아름답게 보인다고 조작하는 자연의 특정한 부분을 넘어선, 세계의 시간이 묻혀 있는 « 풍경의 고고학 »의 재생산(혹은 복제, reproduire)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고대 원형극장은 AD 40년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스트로브와 위예는 로마 시대에 연극의 장소였고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이 학살을 당했던 이 장소를 의도적으로 택함으로써,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장소의 역사성과 그 주변의 자연풍경을 통해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무한한 시간성이 만나도록 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억과 자연의 시간이 만나는 장소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쇤베르크의 오페라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듣기 좋은, 보기 좋은 조화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고대 원형극장에서, 유대인의 중요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독일어로 된 오페라로 불려지는 상황은 낯선 부조화의 상황인 것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이와 같은 조화의 부재는 마치 연결되지 않고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이미지가 되어 읽혀져야 할 고고학적 혹은 지층적 이미지가 된다.[9]

이러한 부조화의 이미지들은 바로 쇤베르크의 음악과 연결된다. 기존의 조성 음악을 반대함으로써 음계 하나하나가 다 독립성을 가지기 때문에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무조음악의 한 작곡기법인 12음기법이 절정을 이루는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이 이 장소에 퍼지는 순간은 유럽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의 나치의 반유대주의 앞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쇤베르크의 문제가 유럽과 중동 사이에 있는 이탈리아의 한 고대 원형극장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트로브와 위예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자연풍경은 단순한 배경으로서, 미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장소가 되어 다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치성을 띄게 된다. 특히 이 영화가 촬영된 1975년은 UN 의회를 통해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결의하여, 이러한 결의에 대해 반유대주의라는 논쟁이 담론화되던 시기이다. 나치의 반유대주의[10]로 생긴 유대인 대량학살, 시오니즘으로 인해 생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중동 간에 생긴 전쟁들과 학살의 중요한 원인으로서의 유일신교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로마제국의 이상과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이 학살당한 피의 기억들이 숨겨져 있는 고대 원형극장에서, 그리고 그것을 목도했을 자연풍경 앞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다시금 이미지들과 소리를 통해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의 시간의 다양한 흔적으로서 자연 풍경과 만들어진 장소의 역사성이라는 문제의식의 영향 속에서, 스트로브와 위예의 이 영화는 텍스트로서의 연극성과 세계의 이미지의 재생산으로서의 영화의 리얼리즘 사이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4.

2006년 사망한,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이며 예술적 동지인 다니엘르 위예가 죽은 후 장-마리 스트로브는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고 영화로 돌아온다. 2011 2 8일 소르본느 대학교 본관 옆 좁은 골목길에 있는 르블레 메디치(Reflet Medicis)극장에서 그의 새로운 영화 <O Somma Luce>가 개봉되었을 때, 그는 직접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고, 알랭 바디우와 자크 랑시에르는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존경을 바치며 기꺼이 특강을 했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어느 여름날 아르바이트를 위해 집을 나서고 길을 걷고 있는 중, 나는 몽마르트 묘지의 위쪽에 자리한 어느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어느 노인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장-마리 스트로브였다. 이 뛰어난 영화예술가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그의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과 표정의 무게감은 감히 나의 입술을 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관객들에 무관심처럼 보였다.

영화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그저 패스트푸드처럼 금세 먹고 치워버리는 하찮은 것이 된 세상에서, 스트로브의 영화들은 아직도 영화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중요한 영화들인 것이다. 이 세계를 왜곡하는 이미지들과 대결하며, 자연 풍경 속에서 우리들의 기억과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스트로브의 영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 J. Rancière, La Fable cinématographique, Edition Seuil, 2001, p.18.

[2]  Ibid., p 19.

[3]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역, 55.

[4] 시학』의 번역자인 천병희는 장경의 원어인 opsis가 배우의 분장만을 의미하는지, 무대상의 장면과 광경을 포함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나 (50쪽의 역주), 랑시에르의 경우에는 La Fable cinématographique 에서 opsis를 좀 더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과 연결하여 말하고 있다.

[5] « Sur le son, entretien avec J.-M. Straub et D. Huillet », Cahiers du cinéma, No. 260-261, octobre-novembre 1975, p. 48-49.

 

[6] 다니엘르 위예는 이렇게 말한다.« 왜 처음부터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찍기를 원했냐구요? 쇤베르크는 비엔나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은 당연히 유럽음악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중동지방의 하나인 이집트에 가서 아주 놀라운 영화적 리얼리즘을 가능하게 하는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리역할을 했던 유럽의 한 국가를 원했었습니다. (« Notes sur le journal de travail de G. Woods sur Moïse et Aaron », Cahiers du cinéma, No. 260-261, octobre-novembre 1975, p.12).

 

[7] G. Deleuze, L’image-temps, Editions de minuit, 1985, p. 318

[8] Ibid., p. 318

[9] Ibid., p. 319

[10] 1923년 칸딘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쇤베르크는 반유대주의가 엄청난 폭력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분명히 독일음악가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반유대주의가 최고조에 올랐던 1932년에 작곡되었다. 

 

 

[인문·사회과학 100년사(史)] 1차. 1900~10년: 대중시대의 인문․사회과학

 

인문·사회과학 100년사()

이성과 합리성의 경계를 넘어  

 

성일권

파리 8대학에서 유럽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진보와 그의 적들』『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등이 있고, 논문으로 그람시적 대항헤게모니의 현재적 의미와 그 가능성

공론장으로서의 위키리크스의 지위와 과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