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上)

 

임상훈(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 상임연구원)



  

 

1. 인문학과 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뇌에 관련된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신경 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의학 또는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말하게 되지 인문학을 언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인문학이 뇌에 관해서 이야기할 부분은 무엇인가? 또 뇌가 인문학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에 관한 담론은 신체와 정신으로 분리되어 신체에 관한 연구는 자연과학에서, 또 정신에 관한 연구는 철학에서 다루게 되는 이분법 체계가 지속된다. 그러다 이런 학문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긴 것이 19세기 실증주의가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이때가 되면 인간의 정신도 과학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 이후, 철학이 자연에 관한 담론을 과학에 인계하면서 자연-과학, 정신-철학의 대칭으로 굳어진 체계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제는 철학이 정신도 과학에 양도해야 하는가의 물밑 논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논쟁은 과학과 철학이 단지 자연과 정신이라는 고유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 방법론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방법론적으로 서로 다른,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각자 다양한 대상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인식론적 논쟁을 야기하게 된다.[각주:1] 이 논쟁은 두 가지 방향의 논쟁인데, 첫째는 철학이 과학과 단지 다루는 대상의 문제로밖에 변별성을 유지할 수 없나 하는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고, 둘째는 진정 과학적 방법론으로 정신을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다.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서구 전통의 합리주의가 주축을 이루면서 내려오던 철학에서 이른바 형이상학의 위기론이 시작된 것이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것을 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문제가 철학의 존폐위기로까지 갈 수 있는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출현과 새로운 비(非)플라톤 철학의 등장은 철학사의 차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문체계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시간차를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제시되었다. 그 첫 번째 버전이 실증주의다. 과학의 당위성을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실현되어 있는 것들로, 지금 여기서 지각될 수 있는 것들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결국, 시간과 공간적 구체성이 강조되면서 (요즈음의 형태와는 좀 다르지만)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학이 출발을 하게 된다.[각주:2] 하지만 딜타이가 주장했듯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연구대상으로서 다르다면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적용이 가능해야 자연/인간이라는 대상적 구별과 과학/철학이라는 방법론적 구별에 대한 명확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의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가능해졌고, 그러한 필요성이 뇌를 인간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매개가 되게 하였다.

 

 

2. 뇌에 관한 연구의 역사

 

과거의 문헌들을 보면 뇌에 대한 연구를 언급한 기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자료들을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뇌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뇌에 관한 언급은 기원전 17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문자기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그러한 기록들이 당시의 뇌연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전 3000년경의 사실을 다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볼 수가 있다.


 

 

놀라운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이뤄진 이러한 뇌연구에서 상당한 수준의 국지적 분석이 이미 행해졌고 비록 초보적 단계이나마 뇌의 부위별로 신체기관을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그 당시 사람들은 알아냈으며 실제 특정 부위가 손상됐을 때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뇌의 부상으로 안구의 일탈이 발생할 수 있다던가 뇌가 손상되면 환가가 발을 끌면서 걷는다’, ‘관자놀이가 깨진 사람을 관찰하면 그를 불러도 대답을 안한다, 말을 할 줄 모른다등의 내용들이 들어 있다. 특히 뇌의 부상이라는 언급, 그리고 그 부상이 특정 일탈로 이어진다는 언급으로 이미 그 당시 병리학적 방법론을 통한 과학이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뇌의 기능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운동기관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각주:3]

 

그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히브리 문명에서도 뇌연구에 관한 문헌들이 등장하는데, 철학사에서 의미있는 뇌관련 언급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언급한다.[각주:4] 그 세 부분이란 지적영역, 분노에 관한 영역, 욕정에 관한 영역이 그것인데, 그 중 지적영역이 바로 뇌에서 관장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봐서 플라톤은 뇌를 인간의 사고를 총관장하는 중심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각주:5]

 

이후 등장하는 문헌은 기원전 3세기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의 이름과 결부가 된다. 이 두 사람은 특히 수많은 해부실험을 통해 뇌의 정확한 모양과 위치를 파악했던 최초의 사람들이다.[각주:6] 그뿐만 아니라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의 논란 속에서 최초로 신경의 존재를 밝혀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곳은 동맥을 통한 심장이 아니라 신경을 통한 뇌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들이다.

 

1세기경에 들어서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로도 유명한 갈레노스의 이름이 등장한다.[각주:7] 갈레노스는 뇌의학뿐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의학, 해부학, 생리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는데 특히 갈레노스는 인체의 기계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동물적, 인간적 영혼을 가지게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개념이 바로 프네우마pneuma’인데, 그에 따르면 폐로 들어온 공기가 프네우마라는 실체와 섞이면서 심장으로 들어와 생명기운이 동맥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프네우마가 뇌로 퍼지게 되면 비로소 동물기운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레노스는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를 적절히 조화를 시켜, 생명적 유기체는 심장에서 비롯되나 그것이 동물적 유기체로 변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뇌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뇌와 심장의 관계는 거의 오늘날 수준의 것으로 정리된다.

 



 

많은 학문들이 그렇듯이 중세시대에 들어오면 뇌과학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은 보기 어렵다. 다만 뇌의 부위에 따라서 정신활동의 분야들도 결정된다는 이론은 거의 정설로 굳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뇌의 앞쪽(전뇌실)은 상상을 담당하는 부분이고 중간 부분(중뇌실)은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 그리고 뇌의 뒤쪽 부분(후뇌실)은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뇌의 기능론이 중세시대를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뇌에 관한 역사를 전체적으로 볼 때, 발전적 지식은 엄밀하게 말해 갈레노스 이후 십 수 세기 동안 멈췄고, 그 지식체계는 중세시기를 지나 17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우리말로 ‘인식론’으로 번역하는 영어의 ‘epistemology’는 영미철학과 대륙, 특히 프랑스철학에서, 서로 사용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인식론, 즉 인간의 인지와 지식의 구조, 방법 등을 다루는 칸트식의 gnoseology와 관련이 있는 분야로 사용되지만 프랑스 철학에서는 과학 또는 학문들의 구성, 역사,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 등에 관련된 담론체계를 말한다. 때로는 우리말로 ‘과학철학’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과학분과학문들에만 국한된다는 오해의 여지도 있다. 일단 이 글에서는 ‘인식론’으로 쓰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보통 프랑스인들에게는 인간과학 (science de l’homme)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반면, 독일 전통에서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 두 전통은 단지 표현법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추구하는 방향도 사실은 조금씩 다르다. [본문으로]
  3. “마지막으로 31번의 경우, 경부척추가 탈구되면 환자는 두 팔과 두 다리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성기가 발기되고 의식없이 배뇨나 사정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Jean-Pierre Changeux, L’homme neuronal, 1983, Fayard [본문으로]
  4. 플라톤, <티마이오스>, 박종현 역, 2008, 서광사 [본문으로]
  5. 인간의 정신이 신체와 관련이 있다는 사고는 다시 크게 둘로 나눠진다. 첫째는 뇌중심주의, 둘째는 심장중심주의인데, 플라톤이 대표적 뇌중심주의 사상가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인 심장중심주의 사상가이다. 요즈음 과학적 지식으로 보면 당연히 플라톤의 뇌중심주의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역설적으로 플라톤의 뇌중심주의는 직관에 의한 판단에서 나왔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장중심주의는 실증적 경험에 의해 검증된 이론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신경의 존재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체기관들 사이의 연결통로는 혈관이었고 혈관들이 모두 심장으로 모이고 있다는 임상적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심장이 모든 신체기능의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과학적 프로세서가 오류로 이끈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본문으로]
  6. 당시는 과거 고대사에서 인간의 신체가 해부의 대상으로 허용이 되는 얼마 안되는 시기중 하나였는데, 뇌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대한 해부와 기록이 행해졌다. 특히 그 당시는 시신을 해부하는 것은 금기시 되던 때였고, 따라서 이들이 행했던 해부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황제가 허락을 한 대상들에 대해 수많은 생체해부를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과학의 이름으로 인륜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 사례도 된다. [본문으로]
  7. 그 당시 역시 시신에 대한 해부가 금지되어 있던 터라 갈레노스 역시 앞선 헤로필로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신을 해부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생체에 대한 실험을 허락했던 잔인한 헤로필로스 시대와 달리 갈레노스의 시대에는 생체해부가 허용되지 않았다. 자연히 갈레노스의 실험 대상은 소, 개, 돼지, 원숭이 등의 동물을 통해 행해졌고, 그런 조건은 헤로필로스의 경우에 비해 갈레노스는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관심보다 동물과의 유사성, 동물적 유기체로의 인간으로 관심이 정착되어졌다. [본문으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下)

 

  김민정(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이 글은 앞서 게재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잔의 회화에 나타난 낯설음

 

세잔의 그림은 습관적인 사고를 잠시 중지시키고, 인간이 거주하는 비인간적인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것은 세잔이 그리는 인물들이 마치 다른 종의 생물로부터 보여진 것처럼 낯설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 그것은 편안하지 않고, 모든 인간적 표현을 금지하는 낯선 세계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는 의미와 무의미에 수록된 세잔의 회의영화와 심리학, 그리고 기호들에 수록된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와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저서 눈과 마음에서 예술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예술과 관련된 낯설음의 특질들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세잔의 회의에는 화가 폴 세잔의 작업 방식, 그의 작품의 특징, 감상자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나타나는 체험에 대한 분석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세 차원 모두에는 낯설음이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화가는 끊임없이 새롭게 현출하는 세계 앞에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고, 사물들은 언뜻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한 낯선 형태로 구현되며, 그러한 작품을 마주한 감상자는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세잔은 철저히 세계에 밀착하여 작업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그는 먼저 자연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앞에 두고 시작하는 인상주의 양식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잔은 순간적인 지각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가 다만 빛의 덮개를 포착하는 데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을 때리고, 우리의 감각을 엄습하는바를 포착시켜 놓았는데, 우리의 실제 경험에서 대상은 그렇게 순간적인 인상 속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잔은 그보다는 박물관에 있는 예술처럼 견고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잔이 구현하고자 한 것은 고전주의적 실재, 즉 절대적이고도 견고한 진리를 가정하는 지성적 개념의 실재도 아니었다. 그는 대상과 유리된 순수 주관의 지성적 구성물도, 순수한 경험의 이상에 기초한 순간적 인상도 아닌 것을 그리고자 했다.

 

회화는 세속적 시각이 비가시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가시적 존재가 되도록 한다. []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이처럼 탐욕스러운 시각은 존재의 짜임새로 통한다.

 

  화가는 일상의 세속적 시각이 현상의 전부인 양 제공했던 사물들의 외관을 넘어서서 사물의 심층을 파고든다. 언뜻 불연속적 감각 메시지들로 보였던 가시적 외관들은 그것이 사실상 한몸처럼 가지고 있으나 자신 아래에 감추어 두었던 비가시적인 두께와 깊이를 이러한 화가의 탐욕스런 시각 앞에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일상적 의식을 거슬러 다시금 현상의 깊이로 나아가는 데에는 견고히 뿌리박힌 습관적 태도를 거스르는 낯설음의 감성이 동반되었다.

 

화가는 [] 모든 사물의 요람인 외관 등의 진동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시적인 대상들로 바꾼다. 그리하여 화가에게는 오직 하나의 감성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낯설음의 감성이다

 

  세잔은 원근법 회화가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의도 속에 고안된 발명품이라 비난하면서 선과 엄격성의 기하학적 데생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시각 속에 대상은 항상 주체와의 미묘한 긴장관계 속에 있었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외관은 명확하기보다는 어떤 진동 속에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화가에게는 낯설음의 감성이 주요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낯설음의 감성 속에 나타난 대상들은 낯선 형태를 띠었다.

 

우리의 눈이 차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정말이지 서로 다른 관점들로부터 취해지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 표면은 뒤틀려 보였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대상들은 사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자신의 부인을 그린의 초상화에서 인물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벽지의 무늬가 서로 일직선을 이루지 않는 것에 주목하며, 이것이 대상을 실로 여러 각도에서 지각하는우리의 실제 지각의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실제 시각은 하나의 시점으로부터 전체를 평면적으로 조망하는 원근법적인 것이 아닌 다중의 관점을 통해 펼쳐지며, 이러한 시각의 실제를 반영하기 위해 인물 뒤 벽지의 무늬는 어긋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의 단적인 예로 넓은 종잇조각 밑으로 지나가는 선이 실제로 단절된 것 같이 보이는 현상을 언급한다.

  또한, 세잔은 비스듬히 바라본 접시나 과일바구니의 테두리를 사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타원형이 아닌 보다 둥근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 또한 우리의 실제 지각을 반영한 결과라 한다. 사실상 접시의 테두리는 타원이 아닌, 대략 타원의 형태를 맴돌며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사진기처럼 한순간의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포착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시공의 지평의 망을 타고 대상을 여기저기서 보면서 탐색하고 의미를 거두기 때문이다. 세잔의 <체리와 복숭아>를 보자. 쟁반은 납작한 타원형이 아닌 거의 위에서 바라본 둥근 형태를 띠고 있으며 따라서 그 안에 담겨있는 체리와 복숭아들은 손을 뻗치면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는 먹음직스런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체리가 담긴 접시와 복숭아가 담긴 접시는 서로 다른 높이에서 바라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세잔에게는 체리가 더욱 먹음직스러웠나 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지각을 충실히 반영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스듬하게 본 원이 타원형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진기가 되었다는 가정하에 우리 눈이 보게 되는 것을 마치도 우리가 하는 실제 지각인 것처럼 간주하는 데에 연유한다.

 

  비스듬하게 바라 본 접시가 언뜻 타원형으로 보이는 듯한 것은 과학주의에 물든 일상의 객관적 사고의 편견에 따라 일상적으로 시각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견이 습관화됨에 따라 세속적 지각을 마치 실제 지각인양 여기게 되며, 그것을 거스르고 실재를 구현한 지각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진실한 것은 화가이고, 기만적인 것은 사진이다. 현실에서 시간이 정지되는 일은 없으므로라는 로댕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에게 매 순간의 경험은 앞선 순간의 경험과 곧 이어질 순간의 경험과 함께주어지는데, 사진은 시간의 자기 초월을 파괴하는 반면, 회화는 시간의 이러한 성질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부에서 다루었던 시간지평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메를로-퐁티는 가시적인 것의 고유한 본질은 비가시성을 어떤 특정한 부재로서 현전하도록 만드는, 엄격한 의미에서 비가시성의 층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시적인 것은 그 자체 속에 비가시적인 층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우리의 실재를 깊이와 두께를 가진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하늘의 파란색은 어떠한 순수 성질이 아니라 푸른 바다나 시원한 물, 또는 자유의 이념 등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푸른 사물들에 결부되어 있으며 시공의 지평 속에 어떤 매듭과 같은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은 깊이와 두께를 가진 살을 이루며, 예술작품은 이러한 살적 구조를 통해 실상 깊이와 두께로 현상하는 주체와 대상의 만남을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세잔의 그림은 우리의 습관적으로 굳어진 사고를 멈추게 하고 아직 인간화되지 않은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은 인간과 완전히 무관한 자연, 어떤 야만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작품이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경험, 앞서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탐욕스러운 지각으로 표현되었던 그것을 구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러한 지각은 일상적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러한 은폐된 실재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문화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낯선 그림은 곧 일상의 습관적 태도 속에 은폐되어있던 원초적 지각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완전한 환원의 불가능성은 세계와의 소박한 접촉의 감성인 낯설음과 함께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후설이 환원을 통해 세계로부터 해방된 의식으로서의 주체가 가능하다고 본 것에 반해 메를로-퐁티는 세계로부터의 그러한 완전한 해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기만적 본성이며 엄격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환원은 단지 세계의 이유 없는 용출 이외에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없으며 따라서 항상 미진한 것을 남겨둔다. 이것은 왜 낯설음이 환원의 계기이자 환원 자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 나타난 낯설음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형상은 눈 속의 가시이고, 육체는 관객들로부터 거부된 문장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개념이라는 감옥으로부터, 그리고 속박의 상흔으로 각인된 발레라는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

- 하이네 뮐러

 

  피나 바우쉬의 낯선 무대는 관습적 춤에 대한 이해와 우리 일상의 습관적 사고방식을 뒤흔들었다. 무대 위에 낯설음을 구현하는 것은 일찍이 낯설게 하기라는 20세기 초 브레히트의 연극론에서 시작되었으며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출 및 무대의 구체적인 양상에서 양자는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피나 바우쉬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오히려 이러한 차이점들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연극이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결코 의혹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는 사건에 대해 의혹을 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감정이입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극의 토대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 관객에게 현실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보이게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은 인간들 사이에 현존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관계로 보이도록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감정이입하게 했다. 그는 전통 연극이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일 자체에 몰두함으로써 사물에 함몰되었으며, 천박한 사실주의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거리’(Distanz) 이론을 제시한다. 무대 위에는 극적 환영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거리를 만듦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제시되는 것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것이며, 무대 위의 인간들이 극중 인물들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을 분리시켜 다루고 있다. 그는 예술을 오로지 감성의 영역으로 보면서 이성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았던 시각에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단순한 외양, 즉 껍데기와 같은 것을 전달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면에 비가시적인 것을 한 몸처럼 가지고 있는 현상과 관계한다. 감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오던 연극에 이성을 도입하면서 그가 간과한 것은 무대 위에서 행사될 수 있는 아름답고 강력한 감성의 가능성이었다. 이성을 우위에 둔 그의 새로운 연극은 이성과 한 몸을 이룬 감성의 힘, 그 깊이를 놓쳤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의 긴장관계 속에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미리 계산된 것이고, 관객은 연출가가 미리 준비해둔 길을 따라 해석하게 되었다. 반면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가시적인 것의 외관에 머무는 감정이입도, 무대 위의 현상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정신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태와 관계하려 했다. 바우쉬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움직임의 외양을 충실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움직임이 놓인 맥락, 그 이면의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쉬는 그러한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기 위해 한층 더 깊이 가시적인 세계로 파고들었다.

  피나 바우쉬에게 있어 감각은 미리 구축된 의미의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 그리고 몸의 직접적 경험이 공연의 주제가 된다. 브레히트와 바우쉬 극의 차이는 단순히 사건 내지 서사가 있고 없음의 차이로 정리될 수 없다. 브레히트가 먼저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두고 그에 따라 형성된 세계관에 따라 사건들을 조직했다면, 바우쉬는 미리 그 무엇도 정해두지 않고 작업하며 최대한 몸 그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몸 자체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했다. 따라서 바우쉬의 극이 낯설다면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낯설음이며, 말하자면 실재 그 자체의 낯설음이었다. 브레히트의 무대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고 특정한 교훈을 주기를 원했다면 피나 바우쉬의 무대는 일상 속에 가려져 있는 원초적 현상이 관객의 관극경험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도록 했다. 바우쉬는 결코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경험하도록 했다. 따라서 탄츠테아터의 관객은 직접적 경험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우쉬가 구현한 낯설음은 낯설게 인식되도록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충실히 옮기고자 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세잔이 구현한 현상학적 낯설음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우쉬는 철저히 사태의 밑바닥에 가닿으려 했다.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칙은 피나 바우쉬의 작품들은 진정한 것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망, 진정한 위험을 감행하고, 진정한 체험을 하려는 욕망을 이야기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것에의 요구는 우리가 많은 것을 머리로 알고 있다고 믿는 일상 속의 은폐상태를 환원하고 다시금 경험으로 돌아가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난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얼마나 조금 알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바우쉬의 안무 철학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바우쉬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이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 바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러한 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우쉬는 무용수들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가질 것을 요하지 않았고 그저 무용수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단원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실험을 해나가는 과정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조언도 하지 않았다. 바우쉬는 표현을 무용수들 자신에게 맡겼다. 이것은 그녀가 질문하고, 무용수들이 답하는방식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바우쉬는 먼저 무용수들에게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면서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즉흥적 생각과 표현을 하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질문에 즉각적 반응을 보여야 했는데 그것은 무용수들 자신의 기억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진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부정하지도, 회의하지도 말고,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세계와 존재를 보아야하며, “타자의 말에 대해 그렇듯 세계와 존재에 따옴표를 쳐서 세계와 존재에게 말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된 진리를 비의지적 진리라고 말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이러한 비의지적 진리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작품을 구상함에 있어 다만 개개의 무용수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즉각적 반응에 주목한 바우쉬의 방법은 존재에게 말하도록 하여 그에 귀 기울여 얻을 수 있는 비의지적 진리를 얻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게 바우쉬는 무용수들이 어떤 역할로서 고정되기 이전의 것을 생각하게 했고 그들의 즉흥적 반응을 관찰해나가면서 그중 몇 가지를 선택하여 무용수들에게 반복시켰다.

  이러한 과정 속에 만들어진 단편들은 그때그때 작품에 반영되어 무대로 연결되었다. 무용수들은 총체적인 구조의 한 부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전 무용수들에게 요구되었던 것, 즉 체격, 신장, 균형성 등 외적으로 정해진 기준도, 무용이나 연극의 기술적 완성도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장르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가장 밑바닥의 것을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함이 요구되었다. 바우쉬는 안무가의 역할이 무용수들을 그러한 유연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피나 바우쉬의 자전적인 작품이자 대표작인 <카페 뮐러>를 통해 바우쉬가 구축한 낯설음의 양식에 다가가 보자.

 

사랑의 한탄. 추억을 더듬어 움직이고 서로 접촉하는 것. 태도를 택하기. 옷을 벗고 마주보게 되고 상대편 몸 위에 미끄러지는 것. 잃어버린 것을 찾아 가까이 가기. 서로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것. 벽을 향해 뛰고, 거기로 달려들어 (몸을 던지고) 거기에 부딪히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 모델에 불과한 것.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 떨어지는 것. 돌진하는 것. 그는 가 버렸다. 눈을 감고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향해가는 것. 느끼는 것, 춤추는 것, 상처주기를 원하는 것. 방어하는 것. 장애물을 놓는 것. 사람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 사랑하는 것.

 

  피나 바우쉬의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했던 라이문트 호게는 <카페 뮐러>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렇게 파편화된 인상들을 나열한다. 그것은 이 작품의 의미가 이러한 파편의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충실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장면들은 오버랩 되고, 단절되고, 반복되며, 관점이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피나 바우쉬는 이러한 파편의 원리를 영화의 몽타주 기법[각주:1]에서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식으로 구축해냈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몽타주 양식은 이러한 파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을 통해 세속적 시각 속에는 가려져 있던 지각적 실재를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1부에서 지각 속에 지평적 실재가 깊이로 현상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상식상 공존할 수 없는 다차원적 시공이 함께 삽입되어 있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몽타주는 이렇게 공존 불가능한 부분들의 공존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외관을 넘어서 현상, 즉 미지의 힘들과 법칙들을 포함한 깊이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각의 깊이가 예술 작품에서 가시화되면 그것은 일상적 의미의 공간과 시간을 손상시키는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그것은 형상, 장면, 율동, 분위기 등이 부조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공간의 몽타주는 서로 이질적 장면이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카페 뮐러>의 공간은 사진적이지 않다. 이것은 메를로-퐁티의 공간지평 구조, 즉 우리가 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곧 대상에 거주하러 가는 것에 비견되었던 공간지평의 구조로 설명 가능하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단지 우리의 망막에 비친 평면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사방에서 바라보인 그것으로 보며, 이로써 그 대상은 무수한 관점을 통해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노인의 움푹 팬 주름에는 그가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가 느꼈을 환희가 켜켜이 스며들어있어, 그것은 그저 어떤 형태가 아니라 삶의 무게가 된다. 우리는 그의 삶의 깊이를 결코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보며, 그래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 우리에게 사람들의 의미는 이렇게 바라보인 그/그녀를 통해, 다시 말해 지각을 통해 주어진다. <카페 뮐러>는 현대인의 고독을 이러한 공간 몽타주로 그려내 보인다. 한쪽에서 한 남자가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던질 때, 다른 쪽에서는 그와 헤어진 여인이 홀로 엎드려 있다. 그 와중에 무대 한가운데에는 눈을 감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지각적 경험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이들의 몸부림과 고독이 온전히 설명된다. 공간이 분절됨으로써 한 공간은 다른 공간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바라보인 그 공간들은 그 공간의 인물들이 구현하는 표현의 의미를 다층적인 것으로, 깊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낸다. 반성은 더 이상 경험 전체, 본질 자체, 본질들의 주관 내지 형상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렇게 지각적 깊이로서의 실재로서 드러난다.

  <카페 뮐러>에서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계속해서 서로를 놓치는 연인을 통해 나타난다. 한 장면에서 이들은 수 분 동안 서로를 놓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한 놓침은 극 전반에 걸쳐 조금씩 변이된 채 반복된다. 이것은 의미를 담은 경험이 계속해서 새롭게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현재는 재차 경험되는 과거인 파지를 담고 있다. 반복 기법은 이러한 시간성의 가시적 표현이다. 무대 위에서 동작이 반복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전의 동작 그 자체가 아니라 두 번, 세 번 경험되고, 또 다른 맥락 속에서 재차 경험되는 그 동작이다. 이것은 우리가 잡고 있는 과거가 현재 속에서 다시 새롭게 경험되는 과거임을 보여준다. 반복은 강렬한 경험을 담은 과거가 지워지지 않고 진한 흔적으로 각인되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현재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험 속에 재차 경험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과거가 굳이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고도 저절로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희미하게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연인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반복은 미래를 앞서 잡음인 예지를 반영한다. 이렇게 반복 기법은 시간지평의 구조를 통해 나타나는 실재를 가시적으로 만든다. 피나 바우쉬는 계속되는 현재인 무대 위에 과거와 미래를 담은 현재, 즉 두께를 가진 시간을 그려 보인다.

  이러한 무대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즉각적 필요와 유용성에 내몰려 사는 우리에게 사실상 깊이와 무한함을 가진 지각적 실재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몽타주 된 무대와 함께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던 지평적 실재가 가시화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무대 위의 파편적 이미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초월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시공을 잠재적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각의 초월 작용과 함께 작품을 감상한다. 낯선 무대는 우리가 지각의 세속화된 양태를 벗고 다시금 지각 고유의 반성적 차원을 회복하여 보도록 추동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깊이 속에 펼쳐지는 무대에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맞닥뜨린다.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 그러한 무대에서 우리는 가장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반성하며, 가장 감성적이자 철학적이게 된다.

 

  1. 메를로-퐁티는 「영화와 새로운 심리학」에서 영화의 몽타주 양식이 갖는 현상학적 의미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몽타주가 단순히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더 나아가 그러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파생된 리듬 속에 비로소 의미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듬은 다름 아닌 현출하는 우리의 지각의 실재, 즉 시간 및 공간 지평 속에 떠오르는 실재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영화는 앞서 구축된 의미를 감각적인 것을 통해 충실히 전달하는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의 의미는 그것의 독특한 시간적 형식에서 발생하며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영화의 리듬 속에 베어나는 의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메를로-퐁티는 몽타주를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지각적 실재,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의미가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下)

 

한정헌 (연세대 겸임교수)

 

이글은 앞서 게재된 [들뢰즈/가타리의 정신분석 비판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라캉의 부성은유

 

라캉은 프로이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근기표의 초월성과 부재의 원리를 자신의 부성은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부성은유는 남근기표로서의 아버지와 오이디푸스적 관계를 잘 보여준다.

 

 

  

우선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이자적인 상상적 관계에서 처음엔 자신이 어머니의 욕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어머니의 욕망은 곧 남근(phallus)이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남근이라고 상상하며, 또한 그의 상상 속에서 어머니가 욕망하고 있다고 믿는 남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개입으로 한동안 아버지의 기표와 경쟁하다가(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신이 결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의 욕망이 되고자 하는 상상적 합일의 의지를 버리게 된다(거세콤플렉스). 즉 어린아이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했지만, 아버지의 개입으로 인해 어머니의 욕망이 사실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남근)이며 어머니의 욕망이 더 큰 권위로서 등장한 아버지의 이름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이 되기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어머니의 욕망의 자리는 더 이상 자신이 채울 수 없으므로 빈칸=결여로서 남게 된다.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하며 들어오게 된다. 요컨대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이 되려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포기하고, 즉 그 욕망을 억압하고,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인다. 또한,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한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가 무의식으로 억압되면서 그것을 대신하는 또 다른 대체표상들=은유적 기표들이 환유적 연쇄를 이루게 된다. 원초적 욕망인 어머니의 욕망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체되면서 억압되어 무의식적 욕망의 원형이 되고, 대신 그 빈자리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오면서(=어린아이가 받아들이면서) 이후에 대체되는 기표들은 모두 남근적이고 아버지적인 욕망의 기표들이 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머니의 욕망을 대리하는 아버지적인 기표가 있으며 이것이 억압되어 다른 기표들로 대체되면서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사슬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의 과업은 이러한 억압된 기표들의 연쇄를 찾아서 드러냄으로써 환자의 증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요컨대 최초의 욕망은 무의식으로 억압되고 아버지의 기표로 대체되어 영원한 빈 칸으로 남게 되며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기표를 받아들임으로써 거세된 주체=욕망하는 주체=의미있는 존재로서 상징계에 진입하게 된다. 즉 어린아이는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거세된 주체=균열된 주체()로서 이를테면 어떤 상징적 할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선험철학에서와 같이) 주체가 먼저 있어서 어떤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이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이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남근기표로서 (이것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화되지 못하고 (따라서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기표들로 대체되어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가 이어진다.

 

기표들의 환유적 연쇄과정에서 의미화가 이뤄지는 순간은 이 과정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서다. 연쇄가 끝나는 지점에서의 마지막 기표가 최초의 기표로 소급해 올라가 그 위에 얹어질 때 의미가 사후적으로발생하는 것이다(S/s).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에서 찾는 기표들의 연쇄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의미화되지 못하여 굴절되고 증식된 환유적 사슬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환자의 증상이라는 감성적 기표들을 누빔점 혹은 고정점(point de capiton)으로 정박시켜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의미화는 결국 무의식 속의 주체를 찾아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즉 누빔점은 증상들=기표들의 무의식적 주체를 찾아 소급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결국 어떤 증상이건 간에 기표들의 흐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남근기표를 찾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모든 기표가 아버지의 이름의 굴절된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욕망=죄악의 금욕주의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정신분석이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중에서 주로 신경증을 치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착증과 정신병은 정신분석에서 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 정신분석은 그 이유를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찾는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거나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즉 주체화의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분석가와 환자의 분석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에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 아예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주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오이디푸스로부터 비껴가는 증상은 정신분석의 영역이 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신경증자는 정신분석가가 부여하는 남근기표를 통해 십중팔구 치료효과를 경험한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실체성이 마치 실제로 증명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가 보기에 신경증자를 낫게 하는 요인은 분석가의 정확한 오이디푸스 진단에 있다기보다는 양자의 전이관계에 있다. 이는 신경증자의 증상이 비록 오이디푸스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분석가와 환자의 수직적인 전이관계에서 분석가가 부여한 기표는 곧 진리가 된다는 말이다. 전이는 일종의 감정의 재현이다. 환자가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을 자신의 앞에 있는 분석가에게 투영하여 그 상황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분석가는 환자에게 그의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대상이나 분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환자는 급속히 분석가와의 사적인 감정에 돌입하여 그에게 애정을 보이거나 분노하고 저항하는 등 지극히 의존적 상태가 된다(프로이트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이런 재현적 전이관계가 필수적인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전이관계는 환자의 실제 증상과 상관없이 어떤 기표를 주든지 의미화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무의식의 억압 때문에 분석가를 찾아온 신경증자가 바라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의 기표)일 뿐이다(신경증자는 자신의 신체/무의식이 드러내는 증상, 즉 기표의 의미에 목말라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증상(기표)에 대한 의미(기표)를 갈구하는 그/녀에게 분석가는 마치 아버지나 신과 같은 초월자의 위치에서 기표를 부여하는 것이다. 분석가의 기표를 통해 기표들(증상들) 위에 억압적 기표가 던져짐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억압의 기표는 다름 아닌 남근=아버지의 이름이다. 이제 환자는 증상의 반복(기표의 사슬)을 중단한다. 억압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신분석가와 신경증자 사이에는 마치 사제와 신자의 관계처럼 권력의 전이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진단을 내리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응적 태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신경증자의 증상을 낫게 하는 것은 안다고 가정된 주체(분석가)가 아니라 안다고 가정한 환자의 믿음인 셈이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마가복음 5: 34)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이 환자의 억압된 기표들의 사슬들을 찾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원인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 부재하는 초월론적 가상, 형이상학적 믿음으로서의 남근=아버지의 이름이다. 이후로 정신분석은 초기의 프로이트가 욕망의 본질이라 생각했던 부분충동을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으로 보았고, 그로부터 전체적이고 인간적이며 완전한 충족을 유추해내어 그것을 근친상간적 욕망과 관련지었다. 불완전한 부분충동의 (배후에 있는) 완전한 본체를 상정하여 그것을 전체화되고 인간화된 욕망의 표상에 결부시킨 것이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들뢰즈/가타리는 부분충동을 그 자체로 자기충족적인 것으로 본다). 또한, 완전한 충족은 곧 오이디푸스적 욕망이라는 등식의 설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은 부정되고 억압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신경증자는 정확히 이러한 오이디푸스 형이상학과 금욕주의 도덕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이들은 완전한 충족을 갈망하며 결여된 대상=a에 집착하지만, 이 완전한 충족이라는 형이상학은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완전한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들은 금욕주의적 도덕에 의해 심각한 내면의 가책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즉 오이디푸스라는 형이상학은 자연스럽게 욕망=죄악이라는 금욕주의적 가치론(도덕)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움직이는 곳에는 늘 죄의식이 함께 따라다니고, 쾌락원칙은 현실원칙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며, 이러한 현실원칙으로부터 승인된 표상만이 억압을 피할 수 있다. 이로써 욕망은 본질적으로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신경증적 욕망을 인간일반의 심리로 보편화하여 욕망 자체를 금욕주의적 입장에서 억압과 부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들뢰즈/가타리에게 욕망은 삶의 본질로서의 힘에의 의지라고 할 때, 정신분석은 삶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니체의 비판처럼 니힐리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단죄의 성격을 가진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 따르면, 금욕주의적 이상은 죄라는 관점에서 모든 고통을 해석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허무를 의욕한다. 즉 서구 형이상학은 이데아, 형상, 내세, 도덕 등 초월적인 세계나 가치 등의 무=부재에 의지해왔으며, 이는 그 자체로 삶을 가치절하(부차화)하고 부정하며 억압하는 금욕주의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은 니체가 비판한 서구의 전통형이상학과 금욕주의 도덕의 현대적 판본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면, 먼저 프로이트는 욕망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했음에도 그것의 비인간적 성격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부분을 전체화하고 집합을 단일화하며 비-인간을 인간화하는 방식으로 욕망을 합리적으로 표상했다. 그리고 결국엔 인간의 욕망을 오이디푸스적 표상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가치론적으로 억압되고 금지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힘에의 의지로서의) 자기상승적인 삶을 부정하는 서구 형이상학과 금욕주의를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신분석은 금욕주의 도덕의 가치론을 아예 인간의 본성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욕망을 본질적으로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욕망은 결여된 것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표상이나 환상을 생산하는 데 머물게 된다. 들뢰즈/가타리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정신분석의 욕망론을 재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제기로부터 탄생한 것이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의 분열분석의 욕망론)인 것이다.

 

여하튼 최근 국내에 출간된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프로이트의 위조와 날조라는 다소 선정적인 주제의 비판적 평전이기는 하지만, 일견 들뢰즈/가타리의안티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물론 정신분석 비판의 방향/방식이나 그 깊이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천 개의 고원을 중심으로 소개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주장하는 분열분석이나 기계적 욕망 등과 같은 중요한 개념들이 다소 불충분하게 논의되어온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라캉이나 지젝의 사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정신분석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 어떤 면에서 1972년에 출간된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적어도 필자에게는) 보다 동시대적이고 새롭게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금 이 책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참고문헌

 

미셸 옹프레, 전혜영 옮김, 우상의 추락, 파주: 글항아리, 2013.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사전, 서울: 열린책들, 2005.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서울: 열린책들, 200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의 탄생, 서울: 열린책들, 2005.

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 니체와 철학, 서울: 민음사, 2001.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앙띠 오이디푸스, 서울: 민음사, 1994.

키스 W. 포크너, 한정헌 옮김, 들뢰즈와 시간의 세 가지 종합, 서울: 그린비, 2008.

Jacques Lacan, Ecrits, Paris: Éditions du Seuil, 1966.

 

 

 

[인문·사회과학 100년사(史)] 1차. 1900~10년: 대중시대의 인문․사회과학

 

인문·사회과학 100년사()

이성과 합리성의 경계를 넘어  

 

성일권

파리 8대학에서 유럽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진보와 그의 적들』『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등이 있고, 논문으로 그람시적 대항헤게모니의 현재적 의미와 그 가능성

공론장으로서의 위키리크스의 지위와 과제등이 있다.

 

 

<연재 게재순서>

1.1900~10  2.1910~20년  3.1920~30년  4.1930~40년  5.1940~50년  6.1950~60

7.1960~70년  8.1970~80년  9.1980~90년  10.1990~00년  11.2000~현재

 

-연재를 시작하며-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00년은 우리 인류가 인간으로서 스스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특출한 능력을 지닌 최고의 존재라고 믿다가 그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사유와 반성의 담론들을 쏟아낸 세기(世紀)라고 할 수 있다. 1, 2차 산업혁명과 근대국가의 등장 이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신의 전지전능함을 대신했지만, 이내 그마저도 그 정당성을 위협받았다. 공교롭게도 20세기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죽음(1900)과 함께, 또 인간의 나약한 정신세계를 탐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의 발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1900년을 기점으로, ‘신의 죽음과 함께 인간의 재탄생이 본격화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리고 21세기의 문턱을 넘은 지금까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줄곧 인간을 연구 담론의 중심에 놓았다.

우리는 지난 한 세기의 인문사회과학사()10년 단위로 나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부터 멀티미디어 시대의 시놉티콘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적 흐름과 대표적 학자들의 이론 및 저서를 살펴봄으로써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I. 1900~10: 대중시대의 인문사회과학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의 태동: 욕망하거나 관계를 맺거나......,

 

 

<시대적 배경>

1900~10년의 인문·사회과학은 바로 전() 세기의 1, 2차 산업혁명 및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세기 후반, 전기와 내연기관의 발명을 계기로 본격화한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획기적인 진전과 일상적 삶의 전환을 가져왔다.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는 당시의 놀라운 산업기술을 잘 보여주었다. 이 무렵 선보인 영사기, 전화기와 자동차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알렸다. 1903, 최초의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이제,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됐다.

 

제국주의를 거쳐

서구인들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19세기 무렵, 나머지 세계의 발견을 끝내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서구 국가들은 세계를 각각 구분 지어 지배했는데, 경우에 따라선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대영제국은 5억 인구를 지배하게 됐는데 특히 인도를 차지했고, 프랑스 제국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를 삼켰다. 한때 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의 물꼬를 이끈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들의 집중화, 즉 트러스트, 카르텔, 독점 현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시대의 도래

산업혁명의 확장과 함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들이 전개되었다. 노동 분업과 상품시장의 등장, 관료사회와 개인주의의 출현은 사회관계를 변화시켰고, 심지어 농촌의 삶까지도 바꿔놓았다. 바야흐로 대중과 군중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페르디난드 퇴니이스(Ferdinand Tönnies)같은 사회학자들은 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공동체에서 사회로의 이행과정으로 이해했고,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같은 이들은 이를 도덕과 종교와 연계된 기술적 연대로부터 구체적인 사회그룹 속 개인들의 지위와 연결된 유기적 연대로 향하는 이행과정으로 파악했다. 또는 일부 학자들은 전통적 삶의 양식이 합리주의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라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이 무렵, 산업혁명에 따른 물질적 풍요와 함께 도회지 부르주아와 새로운 중산층이 그 어느 때보다 문화 취향의 삶을 누리게 됐다. 이름 하여, 이 시기는 라 벨 에포크라고 불리었다. 카바레와 선술집, 영화관에 사람들이 몰렸고, 해수욕장에도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라 벨 에포크는 건축과 실내장식 분야에도 새로운 양식의 취향을 가져왔다.

 

새로운 물리학의 출현

1905년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그의 첫 상대성 이론을 창안했으며, 같은 해 그는 빛이 작은 알갱이라고 이뤄졌다는 이른바 광자(光子)의 가정을 세웠다. 또한, 그는 1900년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창안한 양자(量子)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 물리학의 혁명을 이뤄냈다.

 

전통을 깬 큐비즘

미술에서 마티스(Matisse), 고갱(Gauguin), 고흐(Gogh), 뒤피(Dufy)등으로 대표되는 포비즘(Fauvism)이 화려한 색깔을 즐겨 사용했다면, 피카소(Picasso)1907아비뇽의 아가씨들로 첫선을 보인 큐비즘은 기존 미술의 전통적 기법을 깨뜨렸다. 큐비즘은 동작과 형태의 해체를 가져왔고, 이로써 예술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추상의 시대가 그것이다.

 

 

1-(1). 대중의 욕망과 불안: 정신분석학의 태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가 환자 치료용으로 사용한 긴 의자

대중의 시대와 개인 삶의 양식이 충돌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190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4살의 프로이트라는 의사가 쓴 꿈의 해석이라는 야심만만한 책이 출간된다. 이 저작은 꿈의 심오한 의미, 즉 인간의 정신현상에 대한 어려운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하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우리들의 숨겨진 심리영역, 즉 무의식과 맞닿아 있는 관문이다. 꿈은 정신착락증세 같기도 하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지만 어떤 숨겨진 의미를 전달한다. 꿈속에 담긴 내용은 의식 상태를 엿볼 수 있는 강력한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꿈은 욕망의 추구로 발현된다.”

이 욕망은 종종 성적인 욕구이나 근친상간적 성격을 띤다. 의학을 공부한 뒤, 프로이트는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으며, 1976년 신경학에 관심을 갖고 이후 15년간이나 신경학자로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1885~1886년에, 그는 신경 병리학 분야의 권위자 마탱 샤르코(Martin Charcot)가 활동한 파리의 사르페트 리에르 연구소에 유학을 다녀온다. 빈에 돌아온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원을 개업한다. 그가 새로운 정신이론을 고안하기 시작한 것은 1889년 심리학자 이폴리트 베른하임(Hippolyte Bernheim)이 강연한 프랑스 낭시 지방의 여행을 통해서다.

나는 그곳에서 인간 의식에 숨겨진 정신과정의 가능성과 관련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1895, 그는 요셉 브뤼어(Joseph Breuer)와 함께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브뤼어가 1880~1882년 치료했던 안나 오(Anna O)라는 젊은 여성의 히스테리 증세가 묘사된다. 프로이트는 이 여성의 히스테리 증세를 아버지를 향한 근친상간적 욕망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안나를 만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당시 브뤼어가 안나에 대해 실행한 대화 치료는 새로운 치료방법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브뤼어가 자신의 이런 연구 성과를 공유하지 않음에 따라 두 사람은 결국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프로이트는 자신이 더 이상 포기하지 못할 길에 뛰어든다. 몇 년의 연구를 통해, 그는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했다(정신분석학은 1896년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무의식, 리비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유연상의 기술, 유년기의 성, 방어 기제 등이 그것이다.

프로이트가 언급한 무의식의 개념은 전적으로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나 에듀아르드 폰 하트만(Eduard von Hartmann)같은 철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무의식의 개념을 자신들의 철학에 응용하기까지 했다. 피에르 자넷(Pierre Janet, 1859~1947)은 극복할 수 없는 외상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다중인격장애라는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무의식 개념의 진정한 창안자는 독일 심리학자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 1851~1914). 그는 무의식이 과거의 전체적인 표상 행위들로 이뤄졌으며, 항상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데도 나 자신 안에서 그것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꿈의 해석-프로이트

이 저술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프로이트가 빠진 우울증과 그 기간에 이뤄진 긴 자기분석 과정의 산물이다. 이 자기분석을 통해 그는 두 달 반까지 올라가는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신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는 죽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놓음에 있어 죄의식을 가진 아들이기를, 즉 자신이 곧 이론화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유자이길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 이론을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한다.

 

정신분석학의 확장

꿈의 해석의 출간은 프로이트에게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몇 년 동안 수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일상생활의 병리(1901),성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무의식에 관하여(1915),자아와 이드(1923) 등이 그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빈에서 호의적 환영을 받았다. 유년의 성()이라는 주제는 아더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문학과 칼 크라우스(Karl Kraus)디 파켈(Die Fakel)같은 잡지들 속에서 자주 언급되었으며, 성의 병리학에 관한 연구는 특히 마조히즘과 소아애 개념을 정립한 리하르트 크라프트-에빙(Richard Krafft-Ebing)Psychopathia Sexualtis(1886)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프로이트의 주장들은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격렬한 논쟁의 불씨를 지피곤 했다. 몇 년 뒤, 그는 유명한 정신의학자가 된다. 많은 환자가 그의 병원을 찾아온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병원에 긴 의자를 놓고서 환자들을 눕게 한 뒤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말하게 했다. 또한, 프로이트는 자신의 학파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1902년부터 그는 매주 수요일 저녁 자신의 병원에서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 및 지식인 그룹과 교분을 나누었다. 열등 콤플렉스개념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바로 이 그룹의 출신이었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학파의 학자들(앞줄 왼쪽부터 프로이트, 샌더 페런치, 한스 작스Hanns Sachs, 뒷줄 왼쪽부터 오토 랑크, 칼 아브라함, 막스 에이팅콘, 어니스트 존스)

이 그룹은 1908빈 정신분석학회로 발전한다. 19073, 스위스 출신의 칼 구스타브 융(Carl Custav Jung, 1875~1961)과 루드위그 빈스방어(Ludwig Binswanger)가 프로이트 학파에 합류한다. 그룹 회원들은 국제적 운동의 토대가 될 새로운 정신의학그룹을 형성한다. 1908, 정신의학 최초의 국제회의가 찰스부르크에서 개최된다. 그 이듬해, 정신분석학회지의 창간호가 발행된다. 프로이트는 이 무렵, 미국에 초대돼 자신의 이론을 발표한다. 1911년 아들러가 프로이트의 성충동 중시를 비판하면서 그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개인 심리학회를 창설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평가하면서도 성 충동이 인간 동기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아들러는 개인의 주요 동기는 열등 콤플렉스의 극복의지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융도 1913년 자신의 학파를 설립하기 위해 떨어져 나간다.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매료되어 프로이트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초기 학설인 성욕 중심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집단적 무의식 세계를 탐구해 분석심리학설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신화와 종교에 관심이 많은 그는 집단적 무의식이 용, , , 부친 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거대한 특징적 형태와 같은 원형들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877~ 1926), 어니스트 존스(Ernest Jones, 1879~1958), 오토 랑크(Otto Rank, 1877~1939), 샌더 페런치(Sandor Ferenzi, 1873~1933)와 같은 새로운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사상을 변호하였다. 이들에 의해 프로이트 사상은 초현실주의, 맑시즘, 현상학, 문화인류학 등과 혼재돼 다양한 새 이론들을 생산해냈다. 그리하여 정신의학은 1920년대부터 인문과학의 핵심이론으로 각광받으면서 발전하게 된다.

 

 

1-(2). 대중의 관계를 논하는 사회학의 등장

 

대중의 시대에 접어든 20세기 전후하여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대두하면서 유럽에서는 사회학, 미국에서는 실용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인류문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이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학의 태동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                      가브리엘 타드(Gabriel Tarde, 1843~1904)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새로운 사회현상에 주목해 1948년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으나 사회학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었다. 20세기 들어 가브리엘 타드(Gabriel Tarde, 1843~1904), 르네 웜스(René Worms, 1867~1926),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1858~1917) 3명의 지식인이 사회학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 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타드는 저서 여론과 군중(1901)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파를 만들지 않은 외로운 학자였다.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1858~1917)

웜스 역시 19세기 말 사회학 분야에서 혜성 같은 존재였으나 오늘날 그의 이름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는 1893년 국제사회학회지를 창간한 데 이어 그 이듬해에는 국제사회학연구소를 설립해 연례학술행사를 개최하였다. 웜스는  특히 1896조직과 사회를 출간해 당시 사회학 글쓰기의 전형(典型)을 선보였다. 웜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뒤르카임은 사회학에 대해 자연과학의 실험과 같이 비교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사회과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1895년 저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에서 사회학의 학문방식을 정의했으며, 1897자살에서 이를 자살의 문제에 적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사회학은 연구의 목적과 대상, 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사회학을 다른 학문과 관련해 잠깐 살펴보자. 특히 제도적인 부문에서 사회학의 발전은 어떠한가? 조직 활동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뒤르카임은 자신의 연구계획에 많은 사람을 참여시킨다. 그는 1898년 젊은 학자들과 함께 사회학의 해(L’Année sociologique)라는 학술지를 창간한다. 여기에 그의 조카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를 비롯해 모리스 할브와시(Maurice Halbwachs), 셀레스탱 부글레(Célestin Bouglé), 프랑수와 사미앙(François Simiand), 폴 포코네(Paul Fauconnet) 등이 가담했다. 이로써 프랑스 지식인사회에서 사회학이 주요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말은 갖가지 사회 문제가 제기되던 시기였고, 사회체제의 붕괴 위기감이 팽배했다. 불랑제주의(Boulangisme)와 드레퓌스(Dreyfus)사건과 같은 정치 사회적 위기의식이 젊은 지식인들을 뒤르카임의 주위로 모이게 했다. 프랑스 기득권 체제에 자리했던 반유대주의, 보수주의, 교권주의에 맞서 사회주의, 이성주의, 공화주의 정신이 사회적 의제로서 유행처럼 부상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험사회학의 선창자 중 한 명인 프레데릭 르 플레이(Frédéric Le Play)는 가톨릭 보수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사회학계에서 외면당한다. 사회학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이 지적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뒤르카임은 또한 사회학이 사회적 진보에 유용하고 실천적인 학문이 되길 원했다.

"우선적으로 현실을 연구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현실 개선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사변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라면 단 한 시간도 할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문제를 실천적인 문제와 떼어내서 연구하는 것은 실천적인 문제를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더 잘 해결하기 위해서다." (사회분업론의 서문에서)

 

독일 사회학의 한발 늦은 출발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사회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와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1903년 독일에서 최초의 사회과학 잡지라 할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잡지를 창간했다. 하지만 사회학이라는 용어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그 무렵,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서 지식인 사회에서 잘 알려진 베버가 경제사와 토지 소유문제, 주식 등 경제분야에서 다양한 저술을 펴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사회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로의 누적과 가정불화로 인해 1897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다. 베버는 1900년부터 활동을 재개해 사회과학 방법론과 인식론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이었다. 신교도 출신의 기업가 가족에서 태어난 베버는 경제적인 역동성과 종교적인 원리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연관성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그는 1905년 출간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분석하고,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윤리로서 금욕적 직업윤리를 강조하였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

베르너 좀바르트(1863~1941)도 비슷한 문제에 열중했다. 1902, 그는 자신의 역작이 될 근대 자본주의의 초판을 발행했는데, 이는 칼 맑스의 자본론을 잇는 명저가 되길 원하는 그의 야심이 담겨 있었다.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의 등장을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요인으로 파악했다. 특히 그는 이 요인들을 새로운 사회 계급, 예를 들면 기업가 같은 계급에 의해 발현된 새로운 정신의 출현과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어 1904년 베버와 함께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잡지(Archive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를 펴낸 좀바르트(1863~1941)는 윤리적 사회정책학파에 대항하여 사회정책 과학성의 확립에 힘썼다. 그는 역사학파의 몰이론성에 불만을 품고, 이론과 역사의 통합에 노력하여 경제체제의 개념을 확립하는 등, 경제사회의 전체적 파악을 시도하였다. 그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 근대 자본주의의 최종판(1927)이다. 그러나 베버와는 달리, 좀바르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은 채 부르주와지의 사회적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예컨대, 프로테스탄티즘 못지않게, 유대인 역시 자본주의의 등장에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물론 근대적인 시장체제의 발전에 있어 유대인의 역할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뤘다(유대인과 경제 생활(Die Juden und das Wirtschaft sleben, 1911). 그 뒤, 1913사치와 자본주의를 통해 부르주아의 사회적 삶의 조건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좀바르트는 금욕과 절제’, 소비의 억제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는 베버의 주장에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치와 소비가 자본주의를 지속시킨다고 주장했다. 독일 사회학의 두 거두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현대사회의 사회 문화적 토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10, 베버는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1858~1918), 페르디난드 퇴니이스(Ferdinand Tonnies, 1855~1936)와 몇몇 다른 사회학자들과 함께 독일 사회학회를 설립한다. 종교 영향력의 퇴조 속에 인간 소외, 과학과 기술의 발전, 행정과 경영의 등장, 노동문제 대두 등은 20세기 전반기 독일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독일 사회학회의 좌장격인 퇴니이스는 1887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출간했으나, 1902년 재판 발행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인간의 사회를 본질의지에 기초한 친족, 자연사회, 도시공동체 등의 게마인샤프트와 선택의지에 기초한 대도시, 국가, 세계 등의 게젤샤프트의 2가지 기본유형으로 분석했다. 그 사회이론은 산업화나 근대국가와 국제사회의 성립 등을 게마인샤프트적인 사회에서 게젤샤프트적인 사회로의 전개로서 분석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회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질서를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그의 영향력은 사회과학 전반에 미쳤다.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1858~1918)

이에 반해 지멜은 초기의 종합사회학에 반대하고 사회화의 형식을 그 내용으로부터 분리시켜 독자적인 대상으로 하는 형식사회학을 주장하였다. 그는 사회를 개인을 초월하여 실재하는 실체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에 반대하고, 사회를 각 분야의 기능적인 상호작용으로 파악하였다. 그에게 있어 실재하는 것은 통일체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개개 인간의 상호작용일 뿐이며 따라서 사회학의 대상도 개인 간의 심적인 상호작용에 두었고, 심리학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그는 1900, 저서 돈의 철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검토했으며, 특히 화폐가 물물교환-금속화폐-종이화폐로 진화하면서 결국 돈의 추상화내지 신격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멜에 따르면 돈은 모든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수로 환산할 수 있는 단순한 양적인 크기와 관계로 환원시켜버리며, 개인을 점점 더 단순한 경제적·사회적 기능의 담지자로 전락시킨다. 더욱이 원래 수단이었던 돈이 나중에 절대적인 수단이 되고, 또 절대적인 가치로 고양되며 종래는 신격화된다. 신용카드가 일반화되고 사이버머니까지 통용되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멜이 말한 돈의 추상화는 한 세기를 앞서 간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실용주의의 탄생

그러나 미국에서는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천착하려는 유럽의 지적 분위기와는 달리, 다윈의 진화론적 시각을 반영한 실용주의(pragmatism)가 태동하였다.

아이디어는 진짜 또는 가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1907년 펴낸 소책자 실용주의(Pragmatism)에서 이같이 주장하였다. 다윈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하버드 대학교수 출신의 그는 도덕, 정치,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실용주의적 가치의 우위를 설파하였다. 이어 등장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처음에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제임스의 실용주의에 이끌려, 실용주의 또는 인스트루멘털리즘(도구주의)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의 논리학적 이론의 연구(1903)에 의하면, 모든 사고는 혼탁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상황으로 개조하려는 노력, 다시 말하면 탐구인 것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해, 그는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면 불충분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시킴으로써 창조력을 발휘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현실사회의 모델로서뿐 아니라, 사회개조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이상사회로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미국 사상사의 주류 사상이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애써 무시되었다. 버틀랜드 러셀(Bertland Russel)은 실용주의를 장사꾼의 철학이라고 폄하했다

 

()제국주의 인류학의 태동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1858~1942)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의 영향 탓에 서구와 비서구 문명을 진화론적 차이로 설명하는 구분 짓기가 유행이었다. 인류학에 있어 루이스 모건(Lewis Morgan, 1818~1881)은 이미 1877년 저서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에서 진화론을 적용해 사회발전 단계를 구분 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관점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한 독일 출신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는 역사주의적인 입장을 중시하면서 문화를 통합적 전체로서 고찰하였으며, 문화영역 주변영역 부족유형(部族類型) 등의 개념을 고안하여 뒷날의 기능주의적 연구를 위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는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 Frazer)가 주창한 진화주의적인 문화발전론을 경멸하였다. 인류학계의 주요인물이 된 보아스는 인류학계의 한 세대를 구성한다. 로버트 로위에(Robert Lowie), 알프레드 크뢰베(Alfred Kroeber), 에드워드 사피르(Edward Safir), 랠프 린튼(Ralf Linton) 등이 그들이다. 인류학은 보아스와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됐다. 문화의 연구가 인종의 연구에 대해 우위를 갖게 된 것이다.

 

[공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 공개특강 <유목 미학 - 신들의 여행>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 <유목 미학 - 신들의 여행> 이라는 주제로 공개 특강을 진행합니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시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시간 - 2013 6월 29일 토요일 오전 11시

장소 - 경희대학교 청운관 309호

*누구든 오실 수 있습니다

 

 

[강의 소개]

유목미학은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질 들뢰즈의 유목론을 바탕으로 사상과 예술을 분석하는 새로운 미학 장르이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늘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처럼, 모든 사상과 예술의 속성 또한 끊임없이 이동하며 만남과 접속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예술을 탄생시킨다. 본 강의는 실크로드라는 특정 지역을 통해 이와 같은 사상과 예술의 속성을 밝혀나간다. 끝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에 고정된 영토가 없는 것처럼 실크로드 상에서 모든 사상과 예술의 원형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이 탄생한 첫 근원지를 묻지도 않으며,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상정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주변도, 근원도 파생도 없이 오로지 만남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 실크로드에 날아 온 동 서양의 신들은 더 이상 원형 그대로의 신들이 아니다. <유목미학 신들의 여행>은 이처럼 차이와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실크로드 예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진정한 평등의 세계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들뢰즈의 ‘배움’으로 무엇을 사유할 수 있을까

최승현(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1. 배우기 위해 배워라

 

들뢰즈는 자신의 언어가 하나의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원했다. 배움(apprenticeship)은 그가 고안해낸 여러 개념 중에서도 가장 쓸 만한 것 중 하나이다.

 

 

1) 당신의 패스워드

 

오늘날, ‘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은행에서도, 포털 사이트에서도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 들어갈 때조차도 이런저런 패스워드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전 우리의 삶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군대로, 군대에서 공장으로 그리고 때로 병원으로 잠시 들락날락 거리는 식이었다. 각각의 장소에는 각각의 논리가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 걸맞은 신분증명서 학생, 군인, 노동자 - 를 발급받았다. 마치 축구장에서 수영장으로 장소를 바꾸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미셸 푸코의 말을 따라 훈육사회라고 불렀다. 특정한 담론의 장소에서 특정한 권리를 누리는 대신, 반드시 거기에서 요구하는 복종의 체계 또한 몸에 익힐 것. 여기서는 복종의 언어인 동시에 저항의 언어이기도 한 암구호(暗口號, watchwords)가 지배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구분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새로운 체계, 곧 일방향적인 패스워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패스워드를 만든 주체의 기획 의도를 모른 채 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학교와 공장 그리고 군대라는 분절된 체계보다 훨씬 더 미시적인 수준에서 작동한다. 예컨대, 사병과 대위 그리고 장군이 갖는 패스워드의 권한 수준은 다르다.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의사가 갖는 패스워드의 개수가 같을 리 없다. 당연히 같은 장군과 의사 사이에도 다른 수의 패스워드가 주어진다. 이제 한 개인이 자신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열 개 이상의 패스워드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교복이나 군복이라는 겉모습으로 자신을 확인하던 사회가 기호(패스워드)를 동반한 가운데, 보다 정교하고 비가시적인 형태의 섬세한 지배로 진화한 것이다. 마치 서핑을 하듯 사회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를 관리해준다. 개인이 파산하면 구제해주고, 직장을 잃으면 다른 직장을 부지런히 알아본다는 조건을 붙여 실업급여를 준다. 들뢰즈의 말을 따라, 우리는 이런 사회를 관리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교육의 목적

 

신경제 현상은 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은 바 있으며, 요즘에는 창조경제라는 말로 바뀌어 유통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경제 현상은 이전의 경제현상과 무엇이 다른 걸까. 이 현상은 재화(財貨)를 이해하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 특징을 살펴보자. 영화나 음악의 경우 반드시각자가 체험해야만 그 쓸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재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백만 명이 체험해도 천만 명이 체험해도 처음 한 사람이 체험할 때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한다. 보통 물건이라는 것이 한 번 쓰고 나면 닳게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감가상각이라는 고전경제학의 원칙이 폐기된다. 둘째, 특정한 문화상품은 음원, 캐릭터 상품, 여행 상품 등 갖가지 상품 군을 쏟아낸다. 이는 이전 경제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이다.

이렇듯 완전히 새로운 경제 현상의 도래는 기업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가가 기업에게 끌려다닌다는 사실을 이제 더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 또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교육이 중심이 되며, 평생학습이 보편화되는 사회입니다. 지식과 창의력이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고,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평생 동안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공유하고, 전파하고, 가공하고,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 신지식인이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활동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입니다.

 

1999년 당시 교육부는 새로운 세기를 앞둔 미래 국가 전략으로 신지식인의 육성을 언급한 바 있다. 얼핏 듣기에 평생 배운다는 말은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취업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나 신지식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찬욱처럼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며, 김연아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사람은 김연아 본인뿐이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노동력과 지식을 팔아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위해 대학의 전통적인 교양교육(, , )이 기여한 바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체계론의 주창자 니콜라스 루만(1927~1998)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보편적 앎이 폐기된 사회에 살고 있다. , 종교적 지식은 신앙이라는 보다 상위의 가치에 봉사하는 정도로만 기능하면 된다. 예술적 지식 또한 그 감각에 대해 설명하는 정도로만 활용되면 된다. 이전 시대까지 우리는 암묵적으로 앎에는 위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플라톤은 정당화를 거친 지식이야말로 보다 참되다고 설파하였으며, 이런 원리에 따라 학문과 학문 아닌 것을 구별해 왔다. 이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문화를 전수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 없이 안정적인 정신적 기반이기도 했다. 아무튼, 루만 이래로 종교계, 예술계, 과학계는 자신의 분야에 적절한 지식체계를 가지고 스스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플라톤이 말하던 지식의 위계는 이제 그저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불행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다원화된 지식사회에 대한 그의 논의는 철저하게 왜곡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만이 쓸모 있는 것이라는 기업가들의 주장에 활용되었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자신의 모습을 바꿀 줄 아는 기업은 플라톤 이래로 전승되어 오던 배움의 의미 또한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바꿔 놓았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배워라!” 기업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학습조직으로 각광받게 되고, 학교가 이를 따라하는 역전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들뢰즈는 배움에 관한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알기 위해 배우지 마라, 배우기 위해 배워라!” 그의 이런 메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관리사회로서 볼 때라야, 비로소 실감 나게 다가온다.

 

 

2. 배우는 존재들, 아동과 청소년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의 목적 또한 취업에 가두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담론은 무엇일까? 들뢰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을 지목한다. 여기서는 정신분석의 눈으로 배우는 존재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볼 때의 문제를 문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1)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가볼까

 

오늘날 우리는 아동·청소년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은 결핍의 시기일 뿐인가, 아니면 오히려 특권을 간직한 시기인가. 이 시기가 어떻게 이해되건 그 바탕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아동이라는 관념은 18세기에, 청소년이라는 관념은 19세기에 생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관념이 언제 생겼느냐가 아니라 유아-아동-청소년-청년에 이르는 일련의 연속선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의학에서의 소아청소년과, 교육학에서의 초등교육과와 같은 구분들은 이때 이후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아동학이나 청소년학과 같이 어느 분과에 두어야할지 막연한 간()학문적 성격을 띤 분야 또한 출현하고 있다. 그만큼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보는 문제는 여러 개의 렌즈가 협력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임이 틀림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프로이트(1856~1931)의 논의는 오늘날의 이러한 구분을 떠받치는 거대한 이론적 저수지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보다 앞선 시대인 빅토리아기를 혐오했다. 이때는 아동의 누드화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그들에 대한 체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아동기 때 겪은 성적 수치심이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이어받은 현대 연구자들은 공부에 집착하는 사람 또한 아동기 때 겪은 성적 트라우마(외상)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우리의 흥부, 놀부이야기만큼이나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또한 이런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잠시 내용을 살펴보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맥스는 그날도 어김없이 방을 난장판으로 바꿔 놓았다. 엄마는 맥스를 방에 가두고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맥스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괴물 나라로 마음속 여행을 떠난다. 괴물 나라에서 그는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의 왕이 되지만 이내 심심해진 나머지 배를 타고 현실의 나라로 돌아온다. 이 줄거리는 전형적인 애정결핍에 따른 현실도피라는 도식으로 이해된다. , ‘아빠-엄마-라는 삼각관계, 곧 가족 로맨스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을 때 아이는 고통을 피하려’(쾌락원칙) 든다는 것이다. 이 동화는 다음의 말로 마무리된다.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다.” 아이는 잠시 마음속 여행을 통해 가족을 떠났지만, 다행히도 저녁밥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들뢰즈 그리고 그와 함께 작업했던 가타리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 공고한 가족 삼각형이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전형화된 가족의 논리가 확대된 거대한 복합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 국가 속의 어린아이들로서 늘 상상력을 거세당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2) 삶의 치료제인 문학

 

다시 프로이트로 돌아가 보자. 그에게 욕망은 억압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한 사람이 발가벗고 돌아다닌다면 곤란하다. 친절한 말을 쓸 줄 모르고 중얼중얼 대고 다니는 사람은 환자이다. 정신분석론에서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먹고 산다. 따라서 미친 말과도 같은 욕망은 당연히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상징의 세계 앞에서 멈추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는 치료의 대상이 된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특히 아동·청소년기는 어릴 때의 충격으로 인해 균형을 잃기가 매우 쉬운 시기, 곧 치료의 대상이 되는 시기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욕망 = 욕구 요구.’ 예컨대, “배고프니까 밥 줘라는 말에서 배가 고프다는 욕구와 밥을 달라는 요구 간의 차이가 욕망으로 정의된다. , 우리의 욕구와 그것에 대한 요구는 늘 뺄셈, 결핍의 관계라는 것이다. 꿈틀대는 욕망은 상징의 세계가 허용하는 만큼만 허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정상인으로, 보다 정확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 보기에 정상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편집증자, 이 말이 지나치다면 신경증자들에 불과하다. 늘 상징의 체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느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도시에서 촘촘하게 짜여진 동선과 시간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군중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는 이런 삶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문학에서 발견했다. 거기에서는 신경증자와는 대립되는 분열증자가 주인공이 된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바퀴벌레가 된다. 그렇다면 앞서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작품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맥스는 가족 삼각형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고통스러워서 그리고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갔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3. 배움의 사회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은 한 개인의 내밀함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원자화된 개인 혹은 가족의 단순한 합이 사회라는 생각에 씨를 뿌렸다. 오늘날 인간발달,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연구는 이 패러다임에 얽매여 있다.

 

 

1) 고전적 실험심리학

 

다람쥐가 수상스키를 타고, 돼지가 빨래를 집어 빨래통에 넣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훈련 덕분이다. 고기를 보여주면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1849~1936)의 고전적 실험에서 출발한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는 점차 발전하여 복잡해져 간다. 먹이를 누르면 나오는 장치와 뜨거운 그릴을 동시에 설치하면, 생쥐는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환경에 따라 동물들은 자신이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할 때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일종의 구조화된 의식 상태를 강제한다. “이렇게 해야만 칭찬을 받는구나하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개별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행동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과에 따라 행동한다는, 즉 좋은 결과를 얻을 때에만 행동한다는 식의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쾰러(1887~1967)와 같은 인지주의 학자들은 이 점을 의심했고 침팬지와 비둘기를 다시 실험실로 보냈다. 박스가 어지럽게 놓인 가운데, 천장에는 맛있는 바나나가 매달려 있다. 신기하게도 침팬지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이를 쌓아 바나나를 얻는 데에 성공한다. 다른 사례도 있다. 긴 호리병 속에 맛있는 과일이 들어있지만 꺼내 먹을 수 없다. 그러자 침팬지는 우리 주변의 물을 입에 담아와 호리병 속에 부었고, 이렇게 하니 과일이 떠오른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보면 동물 또한 단순히 결과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인지구조, 즉 계산능력을 갖춘 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언어를 가진 인간이 이렇게 행한 실험과 같은 논리로 이해될 수 있느냐에 있다.

 

 

2) 배움의 사회성에 대한 통찰

 

장 피아제(Jean Piaget, 1896~1980)

잠시 심리학자 피아제(1896~1980)에 관해 살펴보자. 그는 감각 운동기-전조작기-구체적 조작기-형식적 조작기라는 발달 도식을 제창한 이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4살에서 7살쯤에 해당하는 구체적 조작기에서 보존 개념을 획득한다. 그릇 모양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물의 양이 같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게 끝나고 나면 언어를 통해, 곧 상징체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형식적 조작기가 도래한다. 대략 7살 이후부터다. 피아제는 이전 단계가 나타나야만 다음 단계가 온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발달이 우선하고 학습은 다음에 위치하게 된다. , 무언가를 배우려면 그것에 걸맞은 인지구조가 획득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행동에 대한 관찰결과와 말에 대한 관찰결과를 서로 관계없는 것으로 이해해 버렸다. 그가 보기에 아동의 언어발달 또한 혼자 말하는 자폐적 수준에서 사회적 수준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중요한 가정이 담겨 있는데, 행동에 대한 실험이 가정하는 바를 언어발달에 대한 이해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한 사람의 아이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이 합해진 것이 사회라는 생각을 언어발달의 순서에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가정에는 어떤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언어란 일차적으로 타인과의 의사소통 구조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행위에 대한 성찰의 도구도 된다. 한 아이의 언어능력이 향상되면 될수록 특정한 행위능력을 뛰어넘는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내고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정말 동물이나 인간 모두 주변 환경이나 타인에 대한 인식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을 배우고 말을 배우는 걸까?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 곧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것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성립하는- 에서 출발하여 개체 혹은 개인의 내면화에 이른다고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이를 동물에서 관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소리를 지르는 등의 몇 가지 행동만을 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반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에 대해 묻게 될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비고츠키(1896~1934)라는 러시아의 심리학자는 이런 의문을 품었었다.

이 지적은 들뢰즈의 배움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만하다. 그가 이렇게 해 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해보자라는 식으로 배움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간의 상호 교섭을 말하는 것이다. 이 상호 교섭에서 중요한 것은 신체적 차원의 감응(affect)이다.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우는 학생이 접영에 관한 설명을 아무리 정확히 이해했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실행할 수는 없다. 그는 처음에 언어로 들은 설명을 내면으로 곱씹으며 그것이 무의식적 차원의 습관이 되게 하기 위해 연습을 반복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강사는 틀린 점을 지적하거나, 함께 실행해 봄으로써 가르치는 기술 또한 향상되어 간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은 수영장 및 수영지식이라는 환경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의 환경이 되어 변용을 경험한다. 들뢰즈가 이런 간단한 사례를 통해 배움에 대해 설명할 때에도, 이렇듯 거기에는 늘 집단적 주체화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앞서 경험적 사실에만 바탕을 둔 피아제의 설명과는 대조된다. 들뢰즈는 배움이란 늘 과격한 도야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배운다는 것은 늘 앎과 모름 사이에서 진동하는 활동이다. 이는 앎과 모름을 날카롭게 구별했던 플라톤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앎의 상대성이라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날" 개최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지난 달에 "글쓰기의 날"을 개최했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역사적 의미"와 "1 + 1은 왜 2가 되어야 하는가?" 두 문제를 제시했으며, 70명이 넘은 응시자가 여러 흥미로운 답안들을 제출했다. 그 중 장원 1 명, 가작 2명, 입상 3명 총 6명이 당선되었으며, 당선자들의 글은 본 <웹진 파이데이아>에 게재되어 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올해도 글쓰기의 날을 실시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유와 글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웹진 파이데이아> 오픈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Webzine PAIDEIA>를 개설했다. <웹진 파이데이아>는 원고지 50매 내외 분량의 서평, 시평(時評), 문화평, 에세이, 기행문 등등 다양한 글들을 한달에 2~3편씩 게재할 예정이다.

유목미학

 

숙경


 

 

유목미학[각주:1]은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의 ‘유목론[각주:2]’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미학 장르이다. 들뢰즈 철학에 있어서 유목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 유목론에는 ‘잠재성’, ‘다양체’, ‘리좀’과 같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들뢰즈 철학의 위상은 서구 전통 사상의 중심 테마라 할 수 있는 ‘이데아의 모방’ 혹은 ‘형상(形相)의 재현’ 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들뢰즈 철학이 추구하는 바는 ‘재현’이 아닌 ‘창조’에 있는 것이다. 유목미학은 이와 같은 들뢰즈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창조적 해석과 변용을 꾀하고자 만들어졌다. 바로 존재의 창조적 속성에 의한 다양한 변주가 유목미학의 중심 테마가 되는 것이다.



1. 유목론의 철학적 특성

 

유목론을 이끌어 가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방목(放牧)’[각주:3]이다. 방목에는 앞서 언급한 잠재성, 리좀, 다양체의 원리들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방목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목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살아가는 정착민과 달리 목축을 주업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유목민은 가축을 방목하며 물과 풀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습성을 지니고 있다. 정착민의 영토가 울타리나 소유지로 규정되어 있고, 그 규정된 장소에 사람들과 가축들이 분배된다면, 소유지도 울타리도 없는 유목민의 영토는 미리 규정되거나 제한되지 않은 열린 공간 안에서 오히려 사람과 가축에 의해 분배되고 결정된다. 이와 같은 유목 방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경계가 분명한 정착민의 소유지와 그 안에 배분되는 가축들의 움직임은 이미 짜여진 공간의 재현이라고 하는 구조적 의미가 깔려있는 반면, 경계 없는 유목민의 영토에서 방목되는 가축들은 무 규정의 공간에서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열어가고 창조해 간다고 하는 생성론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유목론은 곧 생성론의 상징에 다름 아닌 것이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이와 같은 방목의 특성에 대해 ‘악마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방목이 ‘소유지’라고 하는 규정된 공간의 질서를 어지럽힘으로써, 재현이라고 하는 정착적 구조를 전복시키는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목론이 시사하는 바는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론을 뒤엎는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에는 개체들이 미리 규정된 존재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개체들이 스스로 존재를 생성하고 구축해간다고 하는 생성존재론의 의미가 깔려있다.

그러나 유목민의 영토가 유동적이라고 해서 무한대로 열린 공간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목이라고 하는 생활 형태는 물론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습성을 가지나, 그렇다고 해서 되는대로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정착민의 공간처럼 고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유목민들도 나름대로 정해진 영토 안에서 자연의 변화 등에 의해 관습화된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유목민이 정주민과 정확히 다른 점은 영토를 점유하고 상주하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 머물렀던 지점으로부터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유목론을 단순한 생성론의 범주에서 이탈시키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유목민의 영토가 일정 공간과 궤적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유목론이 구조주의적 입장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편 그 공간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환경의 변화와 유목민의 이동에 따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라는 점에서는 다시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유목론에는 이른바 구조와 생성, 어느 것도 버리지 않고 함께 사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데, 이 점이 바로 들뢰즈가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목론에서는 장(field)과 운동이 함께 사유된다.

실상 장과 운동은 독립된 요소가 아니므로 따로 떼어 설명한다는 자체에 무리가 따르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다양체’와 ‘리좀’ 그리고 ‘잠재성’을 각각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도 무리가 없지 않을 것이나, 유목론의 철학적 분석을 위해 편의상 분리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1) 다양체(multiplicity)

들뢰즈는 유목민의 운동이 '공간 이동'이 아닌 '제자리 운동'이라는 주장을 통해 '제자리에서 유목하기'라고 하는 독특한 발상을 전개한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같은 견해는 유목민의 생활터전이 건조한 스텝지역에 국한된다는 조건과 부합되어 설득력을 얻는다. 그들은 늘 이동하지만 실상 한 번도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설사 그들의 궤적 공간이 확대된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영토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건조화 등 기후의 변화로 인해 영토가 확장된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유목민은 늘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만 정작 거주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정착민일지언정 유목민은 아니다. 정착민에게 있어서 이동이란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것, 다시 말해 완전한 ‘이주(移住)’를 뜻하지만, 유목민에게 있어서 이동은 터전 안에서 쉬지 않고 순환하는 '제자리 운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목민의 영토는 비록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의 이동에 의해 수시로 그 위상이 변한다. 이로부터 하나의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포착되는데, 전통 존재론인 재현 방식은 공간적 차이, 양적 차이를 수반하지만, 유목론에서는 시간적 차이, 질적 차이가 존재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거지 자체가 바뀌는 정착민의 이동은 재현의 전통에서 개체의 차이가 곧 원본의 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이동에 따라 영토 자체의 위상이 수시로 바뀌는 유목론에서는 하나의 원본 안에 무수한 질적 차이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유목론에 있어서 존재란 재현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담과 도로에 의해 일정하게 구획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행적이 규정된 '공간의 재현'이라고 한다면, 담도 도로도 없는 무 규정의 공간에서 이동과 정지의 여정을 병치해 가는 유목민의 행적은 스스로 도로와 거주지를 만들어 가는 '공간의 창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목론에 있어서의 존재 방식은 선(先) 존재하는 '동일성의 재현'이 아닌 무수한 차이들(개체들)간의 접속과 배치로 만들어 가는 '동일성의 창조(혹은 구축)'라 하겠다. 그러나 이때의 동일성은 유일한 것도 고정불변 하는 것도 아니다. 유목민의 공간은 이동과 함께 옮겨지고 옮겨짐과 동시에 지워지는 미 규정된 경로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거주라는 개념도 정주민의 거주지처럼 부동의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궤적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들이 비록 관습적인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해도 모든 지점은 중계점으로만 존재하며 정주민의 공간처럼 영구히 점유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유목민의 삶에 있어서 영토의 의미는 결코 고정적인 것도, 영구불변의 것도 아니다. 규정되고 다시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유목민의 영토처럼 그렇게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고 복수적인 동일성을 들뢰즈는 ‘다양체’라고 부른다. 요컨대 ‘동일성이 다양체로 대체’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지점은 동일성이 선(先) 존재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다양체는 차이들, 개체들 간의 생성운동의 결과로 구축된 불완전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차이생성(differentiation)’이 동일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와 같은 다양체의 생성 원리를 특정식물의 생식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좀’[각주:4]이다.

 

(2) 리좀(Rhizome)

리좀은 중심뿌리의 지배하에 폐쇄적이고 단일한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수목형(樹木形) 나무뿌리와 달리, 중심뿌리가 제거된 채 줄기에서 직접 분기한 개개의 땅속줄기들이 횡적으로 직접 접속하는 열린 체계를 이룬다. 따라서 수목형(樹木形) 나무뿌리가 무수한 잔뿌리들의 차이를 모두 흡수하여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시키는 반면, 비유기적으로 단절되고 이질적인 것들 간에 직접 접속하는 리좀은 접속되는 항들이 늘거나 줆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가변적 체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리좀의 원리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함에 따라 영토 자체의 위상이 수시로 바뀌는 유목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접속’에 있다. 접속만이 유일한 존재의 근거가 된다.

수목형 구조

  왼쪽 하단이 '리좀' (Attribution : Wackymacs at en.wikipedia.org)

  

 

어떻게 접속하고 해체되느냐에 따라 존재는 무수한 질적 차이를 수반한 다양체로 구축되기도 하고, 다시 해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리좀의 세계, 다양체의 세계에 있어서 ‘일점 근원의 신화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각주:5]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모든 존재는 시작과 끝이 아닌 ‘중간(中途)’에서 이루어지며 중간은 다름 아닌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접속은 그 자체로 운동이며 접속을 통해서만 생성과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운동이 멈춘 지점으로 그런 의미에서 존재와는 무관하다. 유목 또한 중간에서 이루어진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유목의 시작과 끝은 없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유목민의 행적에 정확한 출발지도, 뚜렷한 목적지도 없다. 따라서 유목민의 주거는 고정된 영토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여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정 중에 어느 지점과 접속하고 배치를 이루면 그게 바로 거주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정의 의미가 강조 될 때 출발점과 도착점은 의미를 상실하고 유목은 오직 여정이 이루어지는 중간지대 - 중도(中途)가 실제적 의미로 부각 된다. 그렇다면 정해진 담도 도로도 없는 유목민의 공간에서 거주지와 궤적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를 철학적 의미로 담론화하면, 형상의 재현을 벗어난 존재의 발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하기 위해서는 유목론의 구조적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잠재성으로 논의 장을 옮겨가야 한다.

 

(3) 잠재성(virtuality)

유목민들의 이동과 거주의 경로는 '기계(개체)[각주:6]-접속-배치(다양체)'의 리좀 라인을 이루며 유목의 대지 안에 잠재해 있다. 따라서 유목론은 ‘잠재성의 철학’, 보다 넓은 의미에서 ‘내재성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성의 철학이란 존재의 근원이 존재의 밖에 있지 않고, 존재 자체에 있음을 의미한다. 초월성이 초월적 존재의 근원을 현실에 투사하는 것이라면 내재성은 역으로 잠재된 존재가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유목경로들이 대지에 잠재해 있다 해서 어떤 보물이 땅속에 매장되어 있다가 발굴되듯이 차례로 노출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와 달리 유목공간의 형성은 잠재되어 있는 발생 가능한 리좀 계열들이 마치 ‘카드의 패를 던지듯이’ 또는 ‘바둑판 위의 어느 지점에 바둑알이 놓여지듯이’ 그렇게 접속과 동시에 발생한다. 카드 속에는 무수한 카드의 패가, 바둑판에는 무수한 바둑의 위상이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현실성으로 부상하는 것이다.[각주:7]

잠재성의 성격은 들뢰즈 철학 개념의 하나인 ‘탈기관체(脫器官體:body without organs)’의 성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탈기관체는 기관이 없는 몸이 아닌 기관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몸의 기관들이 아직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탈기관체는 무수한 조직화의 계열이 잠재되어 있는 ‘알’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재성의 존재가 ‘미 규정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잠재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들과의 접속을 필요로 한다. 접속을 통해 잠재성은 비로소 현실화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유목론을 크게 잠재성, 리좀, 다양체의 원리로 분석해보았으며, 유목미학은 그 원리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해석하고, 장르를 초월한 변용과 창작의 과정으로 확산된다. 그 중 한 예로 유목론의 주요 개념들을 중앙아시아 예술 분석을 위한 아우트라인에 간단히 적용해 보기로 한다.


 

2. 유목론의 창조적 해석과 변용 - 중앙아시아 미학

 

(1) 잠재성

중앙아시아라고 하는 공간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역의 중심지이자 온갖 문물이 교류하는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세계 각지의 종교와 문화, 예술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아아시아로 흘러들어와 다양한 접속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에는 불교와 이슬람교 뿐만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브라만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 그 외에도 그리스 로마에서 흘러들어온 갖가지 신화와 종교 등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혼재했다. 이 같은 특성상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전체를 통일하는 중심 원리도, 하나의 규범을 세우는 오랜 전통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또한 모든 사상과 문화를 결속하는 거대한 유기적 체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중앙아시아는 바로 유라시아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미립자의 상태로 북적대는 곳,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생명을 배태한 알처럼, 무수한 리좀 계열들과 다양체들을 가능태로 품고 있는 거대한 잠재성의 장인 것이다.

 

(2) 리좀

리좀은 그 자체로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만을 갖는다.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은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지대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는 접속과 배치가 이루어지는 ‘중간지대’이다. 그곳에 모여든 온갖 종류의 사상과 문화는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기계들로서, 다른 문화와 만나서 접속하는 양상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는 가변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는 무수한 리좀의 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형’조차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첫 근원지를 묻지도 않으며,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상정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주변도, 근원도 파생도 없이 오로지 만남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원본’이 아니라 ‘접속’에 있다. 그렇게 시작과 끝이 없는 중간지대, 중앙아시아는 끊임없는 접속을 통해 무수한 ‘질적 차이-다양체’를 낳는 곳이다.


(3) 다양체

중앙아시아의 아프로디테 상. 중앙아시아로 오면서 어깨에 날개가 돋혔다.

중앙아시아에 흘러든 그리스의 신들은 더 이상 그리스 고유의 신들이 아니다. 그들은 먼 이국땅에 들어와 일단 안착하게 되면 그 지역의 다른 문화와 접속하여 다양한 질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는 고대 페르시아 땅인 파르티아에 날아오면, 날개를 접고 지모신(地母神)의 성격으로 변하여 대지를 수호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역시 파르티아와 간다라 지방을 통과하면서 그녀의 관능미는 질적 변화를 꾀해 생산을 관장하는 ‘풍요의 여신’으로 탈바꿈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최고신인 제우스는 몸소 중앙아시아의 간다라 지방까지 건너와서 붓다의 협시(挾侍)인 바즈라파니(금강역사)가 된다. 헤르메스와 디오뉘소스도 제우스를 따르는데 이를테면 그리스 신들이 단체로 불교에 귀의한 셈이 되는 것이다. 힘과 용맹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의 경우는 보다 다양한 접속을 꾀하게 되는데, 그리스 땅을 떠나 가장 먼저 다다른 파르티아에서 그는 조로아스터교의 전승신(戰勝神) 베레트라그나와 접속하여 승리의 신으로 거듭난다. 그곳에서 많은 신도를 확보한 헤라클레스는 그 후 보다 동쪽으로 진입하여 박트리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방에 이르면 불교와 접속하여 붓다의 협시가 되는데, 용맹하고 진취적인 헤라클레스는 이에 멈추지 않고 북방 실크로드를 따라 돈황 등지에 이르러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번에는 역류한 중국 불교와 접속하여 인왕(仁王)상이 된다.

 

 

바즈라파니가 된 그리스 신들, 왼쪽부터 헤르메스, 디오뉘소스, 제우스, 사티로스(판) 바즈라파니(金剛力士)는 붓다의 수호상으로 손에 바즈라(금강저)를 들고 있다.


 

붓다의 협시가 된 헤라클레스. 어깨에는 사자 가죽을 걸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는데 그 후로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거나 어깨에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3. 유목미학이 나아갈 길


초월성의 철학에서 모든 존재는 ‘재현’의 원리를 따르는 반면 내재성의 철학, 잠재성의 철학에서 모든 존재는 창조의 원리를 따른다. 그렇다면 새삼 창조란 무엇인가? 굳이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해묵은 격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잠재성의 현실화, 그리고 리좀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창조란 어느 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공허의 대지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수한 다양체들이 북적되는 잠재성의 장 - 선험의 장에서 접속을 통해 배치를 이루는 것이 바로 창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의 실마리는 '접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있는 언어와 언어가 접속해서 새로운 사상을 수립하고, 기존에 있는 선과 선이 접속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다. 이 글의 시작에서 유목미학은 재현이 아닌 창조에 관한 이야기라고 서언(序言)했다. 이제 부언(附言)하건대 유목미학은 세상의 모든 ‘접속’에 관한 이야기다.

정주민에 있어서 삶의 궤적이 담과 도로에 의해 제한되어 있듯이 미학 역시 형식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오랜 재현의 전통 속에 있었다. 담과 도로가 없는 유목공간은 형식과 규범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더 이상 개념은 개념에만 머물지 않으며, 감각은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념과 감각은 상호 간에 자유로이 넘나들며 접속하고, 접속을 통해 수많은 다양체들을 만들어간다. 유목미학이 나아갈 길은 세상 모든 개념들이 감각의 통로를 타고 지각으로 탄생하는 것, 그렇게 “개념을 에둘러 살아있는 노래, 외침이 되게 하는 것”이다.


  1. ‘유목미학’이라고 하는 용어는 필자에 의해 고안된 신조어(新造語)이며, 유목미학의 주제와 내용은 들뢰즈의 유목론을 바탕으로 하여 논의의 지평을 확대하고 창조적으로 변용하였다. [본문으로]
  2. 유목론(Nomadology)은 들뢰즈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유목론에 관한 내용은 들뢰즈 가타리의 공저『천의 고원』(1980)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들뢰즈의 초기 저서인『차이와 반복』(1968),『의미의 논리』(1969)를 비롯하여 이후로 발표된 저서와 논문에서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3. 호메로스 시대에는 방목장의 울타리나 소유지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 사회에서는 정해진 땅을 가축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축들을 숲이나 산등성이 같이 한정되지 않은 공간 여기저기에 풀어놓아 스스로 공간을 점유해 가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목의 장소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었는데,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뜻의 ‘노마드’도 이로부터 성립한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nomad)의 어원은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모스는 관습이나 법 이외에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본문으로]
  4. 리좀은 땅 밑 줄기(또는 땅 속 줄기)를 이르는 말로 들뢰즈 가타리의『천의 고원』에서 수목형(樹木形)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함께 등장한다. 수목형과 리좀형은 각각 전통존재론과 차이생성론을 상징한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되는 전통 형이상학의 초월적 사유는 모든 뿌리들이 하나의 중심뿌리로 귀착되는, 다시 말해 하나의 뿌리를 중심으로 모든 곁뿌리들이 뻗어가는 수목형 사유체계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 이데아, 신, 주체와 같은 존재의 제1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모든 존재를 설명하는 초월성의 사유체계는 다름 아닌 수목형 사유체계가 되는 것이다. 한 편 중심이 제거된 체계 속에서 발생과 변형을 존재의 특징으로 하는 차이생성론은 중심뿌리 없이 줄기자체가 분기하여 각각 뿌리역할을 하는 리좀형 사유체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5. 이 문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기까지 전통 형이상학의 모든 사유를 함축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본문으로]
  6. 들뢰즈는 개체(an individual)를 기계(machine)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개체 자체보다는 ‘접속’에 비중을 두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존재의 비중이 어떤 보편적 존재나 혹은 개체 하나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 간의 접속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계를 복잡한 기계(complex machine)가 아닌 나사와 같은 단순 부품으로서의 기계(simple machine)로 설명한데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하나의 부품은 다른 부품과 연결 접속됨으로써만 존재의 성질이 부여된다. [본문으로]
  7. 잠재성의 분화(현실화)에 관해서는 이정우의 『사건의 철학』(그린비, 2011) 1부 5강을 참조할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