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두 지식인의 삶, 행동, 철학

주성호(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들은 비슷한 연배에 동일한 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치에 저항하는 단체에 함께 가입하여 행동했으며, 실존철학으로 불리는 철학을 수립하기도 했다. 또 그들은 공동으로 현대라는 잡지를 창간하였고, 이 잡지를 통해 정치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한국전을 계기로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보이며 결별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보부와르는 사르트르의 연인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사르트르와 만나기 전에 이미 메를로-퐁티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로 사람들은 종종 그들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함께 언급한다. 두 사람을 철학의 관점에서 언급하기도 하고, 20세기 프랑스 지성사나 정치적 활동의 관점에서 언급하기도 하며, 아니면 두 사람의 인생 자체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흥미로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보고자 할 것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서로 만났던 학창 시절, 그들의 철학의 형성 과정, 한국전쟁과 관련한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그려볼 것이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학창 시절


사르트르는 1905년에, 메를로-퐁티는 1908년에 태어났다. 둘 다 어릴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르트르는 1922년에, 메를로-퐁티는 1924년에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끝내고,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에 들어갔다. 그들은 동일한 입시준비반에 들어갔는데, 루이--그랑(Louis-le-Grand) 고등학교에 설치된 입시준비반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의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 과정을 끝내고, 사르트르는 1924년에, 메를로-퐁티는 1926년에 역시 동일한 고등사범학교, 즉 파리의 윌름(Ulm) ()의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고등사범학교 시절, 어떤 싸움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몇몇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외설적이라 생각해서 그 학생들을 향해 야유의 휘파람을 불었다. 야유의 휘파람을 들은 학생들은 메를로-퐁티를 때리려 했고, 그때 사르트르가 개입하여 메를로-퐁티는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서로에 대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전을 계기로 서로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갖으면서 결국엔 결별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1928년 교수자격시험에 낙방하였다. 그다음 해에 사르트르는 다시 시험을 보려고 시험 준비를 하던 중, 소르본 여대생인 보부아르를 만났다. 그들은 함께 시험공부를 하였고, 사르트르는 교수자격시험에서 1등으로, 보부아르는 2등으로 나란히 합격하였다. 이어서 곧 그들은 계약결혼을 하였고, 서로에게 평생의 사상적 반려자가 되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기 몇 해 전에, 메를로-퐁티를 먼저 알게 되었다. 보부와르는 메를로-퐁티의 집에 놀러 갈 정도로 메를로-퐁티와 친하게 지냈다. 그 당시 보부아르에게는 둘도 없는 엘리자벳 라쿠앵(E. Lacoin)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보부와르를 통해 메를로-퐁티를 알게 되었고 결혼의 말이 오고 갈 정도로 메를로-퐁티와 사귀었다. 그러나 1929년 가을 보부아르의 친구는 갑자기 병에 걸려 죽는데, 보부아르는 메를로-퐁티 때문에 자신의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보부아르는 친구의 청혼을 메를로-퐁티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친구가 죽게 된 주된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부와르는 수 년 동안 메를로-퐁티와 소원한 관계 속에 있었다. 사실 메를로-퐁티도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보부아르는 약 30년 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보부아르는 친구의 죽음에 대해 언제나 메를로-퐁티를 원망하였다.

 


1930년경 철학적 상황과 프랑스 실존철학(현상학)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종종 프랑스 실존철학 또는 프랑스 현상학을 나타낸다고 언급된다. 프랑스 현상학과 프랑스 실존철학은 의미가 다른 말이지만, 이 말들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종종 가리키기 때문에 사실상 동의어로 이해될 수 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후설(Husserl) 철학을 도입하여 프랑스식 현상학을 개화시켰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현상학을 종종 실존철학이라 부른다. 프랑스식 현상학이라 불릴 만큼 그들의 철학은 독일 현상학(후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의 철학이 프랑스의 철학적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고등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 프랑스의 철학적 상황을 살펴보면, 그들이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어떻게 자신들의 실존철학 또는 현상학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죽기 2년 전 1959년에 파리 대학기숙사 캐나다관에서, "실존의 철학"에 대해 강연하면서, 1930년경 프랑스에 있었던 두 가지 철학의 경향을 언급한다. 하나는 레옹 브렁슈빅(L. Brunschvicg)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베르그송(Bergson) 철학이었다. 브렁슈빅은 강단에서 반성철학(philosophy of reflection)을 가르쳤다. 브렁슈빅이 가르친 반성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코기토(Cogito) 철학이었고, 메를로-퐁티는 브렁슈빅을 통해 자신과 사르트르가 데카르트와 칸트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베르그송은 브렁슈빅과 정반대의 철학인 직관의 철학(philosophy of intuition)을 주장했다. 베르그송의 직관의 철학은 반성철학의 코기토, '사유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세계에 밀착하여 세계와 하나가 되려는, 공감(sympathy)의 철학을 나타낸다. 그 당시 베르그송은 은퇴하여 더 이상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는 직접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은 그들에게는 이미 고전이 된 철학이었고, 고등사범학교 입시준비반 시절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베르그송을 많이 공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새로운 철학을 형성하는 데 배경이 되었고, 그들이 후설 현상학을 수용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그들의 스승인 브렁슈빅의 반성철학이 "고공비행적 사유"라고 비판했다. 브렁슈빅이 말한 코기토(사유하는 나)'지성적인 나'로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이나 맥락과 분리된 채 세계를 고공비행하며 초시간적인 진리를 포착하기 때문이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베르그송의 직관철학처럼 '구체성의 철학'을 하기를 원했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 속에서 만난 세계에 밀착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 세계를 기술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베르그송의 직관 철학이 너무 세계에 밀착해 세계를 '바라보는 나'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철학적 상황 속에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후설의 현상학은 베르그송적인 구체성의 철학을 할 수 있게 하면서도 베르그송과 달리 세계 속에서 여전히 있는 ''를 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보였다. 다시 말해 세계에 밀착하여 구체적 세계를 포착하면서도 브렁슈빅의 지성적 자아()와 다른 ''를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철학의 목표였는데, 현상학이 그런 철학적 목표를 실현시켜 줄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였다.

 

사르트르는 1933'살구 칵테일'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르트르의 고등사범학교 동급생인 레이몽 아롱(R. Aron)은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공부하고 1933년에 파리로 돌아와 사르트르와 보부와르를 만났다. 그들은 한 카페에서 모여 살구 칵테일을 주문하였고, 아롱은 독일에서 연구하고 있었던 현상학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살구 칵테일을 두고 아롱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며 당황한 사르트르는 후설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보부와르는 그의 자전적 소설 나이의 힘(1960)에서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한편 사르트르는 독일 현상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무척 솔깃했다. 레이몽 아롱은 베를린의 프랑스연구소에서 그 해를 보냈고, 역사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후설을 연구했다. 아롱이 파리에 왔을 때, 사르트르에게 후설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몽파르나스 거리의 베크 드 가즈(Bec de Gaz)에서 저녁나절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그 집의 특별 메뉴인 살구 칵테일을 주문했다. 아롱은 자신의 잔을 가리키며, “이봐 친구, 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철학이 되겠지!”라고 했다. 사르트르는 이 말에 흥분해서 창백해졌거나 거의 그런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바로 그가 수년간 원했던 것이었다. 즉 사물을 만졌던 모습 그대로 사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철학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르트르는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에, 의식의 주도적인 힘(souveraineté)과 우리에게 주어진바 그대로의 세계의 현전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에 몰두했는데, 아롱은 사르트르가 몰두했던 것에 현상학이 정확히 대답해 준다고 확신시켜 주었다. 사르트르는 생 미셸 거리에서 후설에 관한 레비나스의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빨리 알고 싶어서, 페이지조차 자르지 않은 책을 걸어가면서 넘겨보았다.(...) 사르트르는 후설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롱의 부추김에 의해, 다음 해 그의 작은 친구[아롱]를 뒤이어 베를린의 프랑스연구소에서 보내기 위한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각주:1]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가 1년간 독일에서 후설 현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자신에게 후설을 읽으라고 권고했다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독일에 있을 때 메를로-퐁티 역시 프랑스에서 자신처럼 후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든지 간에, 1933년경서부터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본격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연구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체적인 사물에 몰두하는 베르그송의 철학적 방향 속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베르그송적인 구체성 철학 속에서 있으면서도 후설의 현상학처럼 현상 내에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은 현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이었고, 그것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한편으로는 베르그송적인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해 후설을 읽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르그송적인 분위기에서 후설을 읽었다. 그들이 후설을 열심히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철학을 형성할 때(1933~1936) 그들은 베르그송 철학에 무척 비판적이었지만, 그들의 철학의 형성에는 베르그송 철학이 상당한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읽음으로써 후설과 다른 그들 자신의 현상학, 이른바 프랑스 현상학 또는 프랑스 실존철학을 형성할 수 있었다.

 


대립하는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자신들의 철학을 형성할 때 후설 철학과 베르그송 철학을 동일하게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후설과 베르그송을 서로 관점에서 읽었다. 메를로-퐁티가 후설 현상학에서 의식과 대상의 사이의 생생한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면, 사르트르는 후설 현상학에서 의식의 능동성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메를로-퐁티가 베르그송의 물질 개념인 이미지속에서 의식과 사물의 순환적 관계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사르트르는 베르그송의 이미지 개념을 의식(코기토)이 결여된 지각으로 보았다. 결국, 이런 독서의 차이는 그들의 철학의 차이로 이어졌고, 그들의 철학은 사르트르의 경우 1943존재와 무라는 저서로, 메를로-퐁티의 경우 1945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저서로 표현되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주체의 절대적 자발성 그리고 즉자존재(대상)와 대자존재(주체)의 이원론을 내세웠고,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우리의 지각에서 어디서 의식이 끝나고 어디서 사물이 시작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이원론을 벗어나려는 사유를 수행하려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상황 속에 있는 구체적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였다. 사르트르 입장에서 인간에게 나타난 세계는 순수 의식 속의 이념화된 인식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몰입하고 만나는 세계이다. “나에게서 이 컵은 물병의 왼쪽 조금 뒤에 있고, 피에르에 있어서 그 컵은 물병의 오른쪽 조금 앞에 있다. 그 컵이 한 의식에게 동시에 물병의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에 있는 것처럼 주어지기 위해, 그 의식이 세계 위로 비상할 수 있다는 것[고공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각주:2] 따라서 사르트르 말하는 대상은 주체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어디서 주체가 끝나고 어디서 대상이 시작하는지 알 수 없다는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이와 같이 상황적이고 체험된 세계를 말하면서도, 즉자존재와 대자존재, 주체와 대상, 존재와 무를 과감하게 나눈다. 사르트르 철학에서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이 이원론적으로 명백히 구별되기 때문에, 컵과 나의 관계가 아무리 상황적이라도 나타나는 것(대상적인 것)은 조금도 주체적인 것에 속하지 않게 된다. 이로부터 사르트르는 대상의 특성이 없는 주체(인간)의 자유를 주장한다. 주체는 대상과 구별된 채로 자기 자신에게 투명하여 대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다고, 즉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고 사르트르는 주장한다.

이와 다르게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을 사르트르처럼 명백히 구별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가 존재(대상)와 무(주체)를 나눌 때 그것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 “내가 나를 부정성으로서 생각하고 세계가 긍정성으로 생각된다는 사실로부터, (...) 세계와 나 사이의 상호교류도, 만나는 지점도, 첩점도 없다. 왜냐하면, 세계는 존재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각주:3] 물론 사르트르 입장에서, 모든 의식은 무엇의 의식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주체의 존재 방식이 대상에 대한 주체 방식이기 때문에 대상 없는 주체를 생각할 수 없다고 대응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식(주체)이 대상이 아닌 이상, 대상과 다른 자기 존재 방식을 유지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주체는 투명하고 대상은 모호함이 없는데, 메를로-퐁티 입장에서는 투명한 그런 주체도 없고 불투명함이 없는 그런 대상도 없다. 메를로-퐁티는 주체와 대상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투명한 주체를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체는 자신에 대해 투명하게 다 알지 못하며, 주체는 외적 대상과 얽혀 있기 때문에 사르트르처럼 인간의 순수한 자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견해와 결별


 1940년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자신들의 철학을 완성했지만, 또한 사회와 정치 문제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0년 이차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는 나치에 점령되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비밀 저항 단체에 가입하여 나치에 저항했다. 1945년에는 현대라는 이름의 잡지를 그들은 공동 창간하였다. 이 잡지를 통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문학, 사회, 정치적 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우정은 가장 돈독하였다. 그 당시 메를로-퐁티가 정치문제에 대해 사르트르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더 좌파적이었지만, 이것은 그들의 관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한국전쟁 전까지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구소련이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었거나 적어도 전쟁을 방치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를로-퐁티는 스탈린 체제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구소련도 미국처럼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만큼 스탈린 체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스탈린 체제를 옹호하는 프랑스 공산당 입장을 많이 수긍하였다. 오히려 사르트르는 구소련보다는 미국이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군대와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 군대의 도발에 북한이 함정에 빠져 남침했다고 사르트르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메를로-퐁티가 한국전을 기점으로 덜 좌파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으나, 사르트르는 좌파의 입장을 많이 따랐고, 오히려 1952년 뒤클로(J. Duclos) 체포 사건을 계기로 사르트르는 급진 좌파가 되었다.

19525월 나토(NATO)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Eisenhower) 장군의 후임으로, 한국전쟁에서 미 8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리지웨이(Ridgway) 장군이 파리에 왔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세균성 무기를 사용할 것을 공공연히 주장했기 때문에, 프랑스 공산당원들은 리지웨이를 혐오했고 리지웨이는 공산당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리지웨이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공산당원들은 시위를 하였고, 파리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고 검문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이며 프랑스 공산당의 유력인사인 뒤클로(J. Duclos)를 체포하였다. 뒤클로의 차에서 총알이 있는 권총, 곤봉, 무선기, 통신용 비둘기 두 마리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권총과 곤봉은 뒤클로의 운전수 것이었고, 무선기(Radio)는 라디오였고, 비둘기 두 마리는 통신용 비둘기도 아니고 죽어 있었다. 사르트르는 이런 사실을 듣고서 분노했고, “개종의 심정으로 혁명을 부르짖는 급진 좌파가 되었다. 그리고 반공산주의자는 개다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개종하고 메를로-퐁티는 스탈린 체제에 환멸을 느끼던 중에 이들을 갈라놓는 데 불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1952년 피에르 나빌(P. Naville)이라는 사람이 현대지에 자본주의와 모순이라는 글을 썼는데, 메를로-퐁티는 이 글 앞에 비판적인 서문을 써 붙였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 동의 없이 메를로-퐁티의 비판적 서문을 삭제하였다. 메를로-퐁티는 이에 격노하여 현대에서 사임하였다. 이로써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고 그들은 결별하게 되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결별한 이후 몇 차례 만났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하였고, 이렇게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채 1961년 갑자기 메를로-퐁티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현대특별 호에서 사르트르는 살아있는 메를로-퐁티라는 장문의 글로 회복되지 못한 그와의 관계를 회고해보면서 메를로-퐁티를 슬픈 마음으로 애도하였다.

  

  1. S. de Beauvoir, La force de l'â̂ge, Paris: Gallimard, 1960, pp. 141-142. [본문으로]
  2. J. P. Sartre, L'Etre et le Néant, coll. tel, Paris: Gallimard, 1986, pp. 353-4. [본문으로]
  3. M. Merleau-Ponty, Le visible et l'invisible, Paris: Gallimard, 1964, p. 78. [본문으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下)

 

  김민정(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이 글은 앞서 게재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잔의 회화에 나타난 낯설음

 

세잔의 그림은 습관적인 사고를 잠시 중지시키고, 인간이 거주하는 비인간적인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것은 세잔이 그리는 인물들이 마치 다른 종의 생물로부터 보여진 것처럼 낯설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 그것은 편안하지 않고, 모든 인간적 표현을 금지하는 낯선 세계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는 의미와 무의미에 수록된 세잔의 회의영화와 심리학, 그리고 기호들에 수록된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와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저서 눈과 마음에서 예술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예술과 관련된 낯설음의 특질들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세잔의 회의에는 화가 폴 세잔의 작업 방식, 그의 작품의 특징, 감상자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나타나는 체험에 대한 분석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세 차원 모두에는 낯설음이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화가는 끊임없이 새롭게 현출하는 세계 앞에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고, 사물들은 언뜻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한 낯선 형태로 구현되며, 그러한 작품을 마주한 감상자는 낯설음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세잔은 철저히 세계에 밀착하여 작업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그는 먼저 자연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앞에 두고 시작하는 인상주의 양식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잔은 순간적인 지각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가 다만 빛의 덮개를 포착하는 데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을 때리고, 우리의 감각을 엄습하는바를 포착시켜 놓았는데, 우리의 실제 경험에서 대상은 그렇게 순간적인 인상 속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잔은 그보다는 박물관에 있는 예술처럼 견고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잔이 구현하고자 한 것은 고전주의적 실재, 즉 절대적이고도 견고한 진리를 가정하는 지성적 개념의 실재도 아니었다. 그는 대상과 유리된 순수 주관의 지성적 구성물도, 순수한 경험의 이상에 기초한 순간적 인상도 아닌 것을 그리고자 했다.

 

회화는 세속적 시각이 비가시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가시적 존재가 되도록 한다. []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이처럼 탐욕스러운 시각은 존재의 짜임새로 통한다.

 

  화가는 일상의 세속적 시각이 현상의 전부인 양 제공했던 사물들의 외관을 넘어서서 사물의 심층을 파고든다. 언뜻 불연속적 감각 메시지들로 보였던 가시적 외관들은 그것이 사실상 한몸처럼 가지고 있으나 자신 아래에 감추어 두었던 비가시적인 두께와 깊이를 이러한 화가의 탐욕스런 시각 앞에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일상적 의식을 거슬러 다시금 현상의 깊이로 나아가는 데에는 견고히 뿌리박힌 습관적 태도를 거스르는 낯설음의 감성이 동반되었다.

 

화가는 [] 모든 사물의 요람인 외관 등의 진동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시적인 대상들로 바꾼다. 그리하여 화가에게는 오직 하나의 감성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낯설음의 감성이다

 

  세잔은 원근법 회화가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의도 속에 고안된 발명품이라 비난하면서 선과 엄격성의 기하학적 데생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시각 속에 대상은 항상 주체와의 미묘한 긴장관계 속에 있었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외관은 명확하기보다는 어떤 진동 속에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화가에게는 낯설음의 감성이 주요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낯설음의 감성 속에 나타난 대상들은 낯선 형태를 띠었다.

 

우리의 눈이 차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정말이지 서로 다른 관점들로부터 취해지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 표면은 뒤틀려 보였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대상들은 사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자신의 부인을 그린의 초상화에서 인물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벽지의 무늬가 서로 일직선을 이루지 않는 것에 주목하며, 이것이 대상을 실로 여러 각도에서 지각하는우리의 실제 지각의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실제 시각은 하나의 시점으로부터 전체를 평면적으로 조망하는 원근법적인 것이 아닌 다중의 관점을 통해 펼쳐지며, 이러한 시각의 실제를 반영하기 위해 인물 뒤 벽지의 무늬는 어긋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의 단적인 예로 넓은 종잇조각 밑으로 지나가는 선이 실제로 단절된 것 같이 보이는 현상을 언급한다.

  또한, 세잔은 비스듬히 바라본 접시나 과일바구니의 테두리를 사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타원형이 아닌 보다 둥근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 또한 우리의 실제 지각을 반영한 결과라 한다. 사실상 접시의 테두리는 타원이 아닌, 대략 타원의 형태를 맴돌며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사진기처럼 한순간의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포착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시공의 지평의 망을 타고 대상을 여기저기서 보면서 탐색하고 의미를 거두기 때문이다. 세잔의 <체리와 복숭아>를 보자. 쟁반은 납작한 타원형이 아닌 거의 위에서 바라본 둥근 형태를 띠고 있으며 따라서 그 안에 담겨있는 체리와 복숭아들은 손을 뻗치면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는 먹음직스런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체리가 담긴 접시와 복숭아가 담긴 접시는 서로 다른 높이에서 바라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세잔에게는 체리가 더욱 먹음직스러웠나 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지각을 충실히 반영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스듬하게 본 원이 타원형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진기가 되었다는 가정하에 우리 눈이 보게 되는 것을 마치도 우리가 하는 실제 지각인 것처럼 간주하는 데에 연유한다.

 

  비스듬하게 바라 본 접시가 언뜻 타원형으로 보이는 듯한 것은 과학주의에 물든 일상의 객관적 사고의 편견에 따라 일상적으로 시각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견이 습관화됨에 따라 세속적 지각을 마치 실제 지각인양 여기게 되며, 그것을 거스르고 실재를 구현한 지각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진실한 것은 화가이고, 기만적인 것은 사진이다. 현실에서 시간이 정지되는 일은 없으므로라는 로댕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에게 매 순간의 경험은 앞선 순간의 경험과 곧 이어질 순간의 경험과 함께주어지는데, 사진은 시간의 자기 초월을 파괴하는 반면, 회화는 시간의 이러한 성질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부에서 다루었던 시간지평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메를로-퐁티는 가시적인 것의 고유한 본질은 비가시성을 어떤 특정한 부재로서 현전하도록 만드는, 엄격한 의미에서 비가시성의 층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시적인 것은 그 자체 속에 비가시적인 층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우리의 실재를 깊이와 두께를 가진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하늘의 파란색은 어떠한 순수 성질이 아니라 푸른 바다나 시원한 물, 또는 자유의 이념 등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푸른 사물들에 결부되어 있으며 시공의 지평 속에 어떤 매듭과 같은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은 깊이와 두께를 가진 살을 이루며, 예술작품은 이러한 살적 구조를 통해 실상 깊이와 두께로 현상하는 주체와 대상의 만남을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세잔의 그림은 우리의 습관적으로 굳어진 사고를 멈추게 하고 아직 인간화되지 않은 자연의 기반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은 인간과 완전히 무관한 자연, 어떤 야만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작품이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경험, 앞서 시각적 소여를 넘어서는 탐욕스러운 지각으로 표현되었던 그것을 구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러한 지각은 일상적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러한 은폐된 실재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문화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낯선 그림은 곧 일상의 습관적 태도 속에 은폐되어있던 원초적 지각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완전한 환원의 불가능성은 세계와의 소박한 접촉의 감성인 낯설음과 함께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후설이 환원을 통해 세계로부터 해방된 의식으로서의 주체가 가능하다고 본 것에 반해 메를로-퐁티는 세계로부터의 그러한 완전한 해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기만적 본성이며 엄격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환원은 단지 세계의 이유 없는 용출 이외에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없으며 따라서 항상 미진한 것을 남겨둔다. 이것은 왜 낯설음이 환원의 계기이자 환원 자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 나타난 낯설음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형상은 눈 속의 가시이고, 육체는 관객들로부터 거부된 문장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개념이라는 감옥으로부터, 그리고 속박의 상흔으로 각인된 발레라는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

- 하이네 뮐러

 

  피나 바우쉬의 낯선 무대는 관습적 춤에 대한 이해와 우리 일상의 습관적 사고방식을 뒤흔들었다. 무대 위에 낯설음을 구현하는 것은 일찍이 낯설게 하기라는 20세기 초 브레히트의 연극론에서 시작되었으며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출 및 무대의 구체적인 양상에서 양자는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피나 바우쉬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오히려 이러한 차이점들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연극이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결코 의혹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는 사건에 대해 의혹을 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감정이입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극의 토대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 관객에게 현실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보이게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은 인간들 사이에 현존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관계로 보이도록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감정이입하게 했다. 그는 전통 연극이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일 자체에 몰두함으로써 사물에 함몰되었으며, 천박한 사실주의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거리’(Distanz) 이론을 제시한다. 무대 위에는 극적 환영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거리를 만듦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제시되는 것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것이며, 무대 위의 인간들이 극중 인물들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을 분리시켜 다루고 있다. 그는 예술을 오로지 감성의 영역으로 보면서 이성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았던 시각에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단순한 외양, 즉 껍데기와 같은 것을 전달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면에 비가시적인 것을 한 몸처럼 가지고 있는 현상과 관계한다. 감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오던 연극에 이성을 도입하면서 그가 간과한 것은 무대 위에서 행사될 수 있는 아름답고 강력한 감성의 가능성이었다. 이성을 우위에 둔 그의 새로운 연극은 이성과 한 몸을 이룬 감성의 힘, 그 깊이를 놓쳤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성과 이성의 긴장관계 속에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미리 계산된 것이고, 관객은 연출가가 미리 준비해둔 길을 따라 해석하게 되었다. 반면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는 가시적인 것의 외관에 머무는 감정이입도, 무대 위의 현상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정신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태와 관계하려 했다. 바우쉬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움직임의 외양을 충실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움직임이 놓인 맥락, 그 이면의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쉬는 그러한 비가시적 실재를 잡아내기 위해 한층 더 깊이 가시적인 세계로 파고들었다.

  피나 바우쉬에게 있어 감각은 미리 구축된 의미의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 그리고 몸의 직접적 경험이 공연의 주제가 된다. 브레히트와 바우쉬 극의 차이는 단순히 사건 내지 서사가 있고 없음의 차이로 정리될 수 없다. 브레히트가 먼저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두고 그에 따라 형성된 세계관에 따라 사건들을 조직했다면, 바우쉬는 미리 그 무엇도 정해두지 않고 작업하며 최대한 몸 그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몸 자체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했다. 따라서 바우쉬의 극이 낯설다면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낯설음이며, 말하자면 실재 그 자체의 낯설음이었다. 브레히트의 무대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고 특정한 교훈을 주기를 원했다면 피나 바우쉬의 무대는 일상 속에 가려져 있는 원초적 현상이 관객의 관극경험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도록 했다. 바우쉬는 결코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경험하도록 했다. 따라서 탄츠테아터의 관객은 직접적 경험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우쉬가 구현한 낯설음은 낯설게 인식되도록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충실히 옮기고자 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세잔이 구현한 현상학적 낯설음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우쉬는 철저히 사태의 밑바닥에 가닿으려 했다.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칙은 피나 바우쉬의 작품들은 진정한 것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망, 진정한 위험을 감행하고, 진정한 체험을 하려는 욕망을 이야기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것에의 요구는 우리가 많은 것을 머리로 알고 있다고 믿는 일상 속의 은폐상태를 환원하고 다시금 경험으로 돌아가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난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얼마나 조금 알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바우쉬의 안무 철학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바우쉬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이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 바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러한 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우쉬는 무용수들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가질 것을 요하지 않았고 그저 무용수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단원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실험을 해나가는 과정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조언도 하지 않았다. 바우쉬는 표현을 무용수들 자신에게 맡겼다. 이것은 그녀가 질문하고, 무용수들이 답하는방식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바우쉬는 먼저 무용수들에게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면서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즉흥적 생각과 표현을 하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질문에 즉각적 반응을 보여야 했는데 그것은 무용수들 자신의 기억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진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부정하지도, 회의하지도 말고,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세계와 존재를 보아야하며, “타자의 말에 대해 그렇듯 세계와 존재에 따옴표를 쳐서 세계와 존재에게 말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된 진리를 비의지적 진리라고 말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이러한 비의지적 진리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작품을 구상함에 있어 다만 개개의 무용수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즉각적 반응에 주목한 바우쉬의 방법은 존재에게 말하도록 하여 그에 귀 기울여 얻을 수 있는 비의지적 진리를 얻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게 바우쉬는 무용수들이 어떤 역할로서 고정되기 이전의 것을 생각하게 했고 그들의 즉흥적 반응을 관찰해나가면서 그중 몇 가지를 선택하여 무용수들에게 반복시켰다.

  이러한 과정 속에 만들어진 단편들은 그때그때 작품에 반영되어 무대로 연결되었다. 무용수들은 총체적인 구조의 한 부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전 무용수들에게 요구되었던 것, 즉 체격, 신장, 균형성 등 외적으로 정해진 기준도, 무용이나 연극의 기술적 완성도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장르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가장 밑바닥의 것을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함이 요구되었다. 바우쉬는 안무가의 역할이 무용수들을 그러한 유연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피나 바우쉬의 자전적인 작품이자 대표작인 <카페 뮐러>를 통해 바우쉬가 구축한 낯설음의 양식에 다가가 보자.

 

사랑의 한탄. 추억을 더듬어 움직이고 서로 접촉하는 것. 태도를 택하기. 옷을 벗고 마주보게 되고 상대편 몸 위에 미끄러지는 것. 잃어버린 것을 찾아 가까이 가기. 서로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것. 벽을 향해 뛰고, 거기로 달려들어 (몸을 던지고) 거기에 부딪히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 모델에 불과한 것.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 떨어지는 것. 돌진하는 것. 그는 가 버렸다. 눈을 감고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향해가는 것. 느끼는 것, 춤추는 것, 상처주기를 원하는 것. 방어하는 것. 장애물을 놓는 것. 사람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 사랑하는 것.

 

  피나 바우쉬의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했던 라이문트 호게는 <카페 뮐러>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렇게 파편화된 인상들을 나열한다. 그것은 이 작품의 의미가 이러한 파편의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충실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장면들은 오버랩 되고, 단절되고, 반복되며, 관점이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피나 바우쉬는 이러한 파편의 원리를 영화의 몽타주 기법[각주:1]에서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식으로 구축해냈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몽타주 양식은 이러한 파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을 통해 세속적 시각 속에는 가려져 있던 지각적 실재를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1부에서 지각 속에 지평적 실재가 깊이로 현상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상식상 공존할 수 없는 다차원적 시공이 함께 삽입되어 있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몽타주는 이렇게 공존 불가능한 부분들의 공존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외관을 넘어서 현상, 즉 미지의 힘들과 법칙들을 포함한 깊이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각의 깊이가 예술 작품에서 가시화되면 그것은 일상적 의미의 공간과 시간을 손상시키는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그것은 형상, 장면, 율동, 분위기 등이 부조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공간의 몽타주는 서로 이질적 장면이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카페 뮐러>의 공간은 사진적이지 않다. 이것은 메를로-퐁티의 공간지평 구조, 즉 우리가 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곧 대상에 거주하러 가는 것에 비견되었던 공간지평의 구조로 설명 가능하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단지 우리의 망막에 비친 평면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사방에서 바라보인 그것으로 보며, 이로써 그 대상은 무수한 관점을 통해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노인의 움푹 팬 주름에는 그가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가 느꼈을 환희가 켜켜이 스며들어있어, 그것은 그저 어떤 형태가 아니라 삶의 무게가 된다. 우리는 그의 삶의 깊이를 결코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보며, 그래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 우리에게 사람들의 의미는 이렇게 바라보인 그/그녀를 통해, 다시 말해 지각을 통해 주어진다. <카페 뮐러>는 현대인의 고독을 이러한 공간 몽타주로 그려내 보인다. 한쪽에서 한 남자가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던질 때, 다른 쪽에서는 그와 헤어진 여인이 홀로 엎드려 있다. 그 와중에 무대 한가운데에는 눈을 감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지각적 경험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이들의 몸부림과 고독이 온전히 설명된다. 공간이 분절됨으로써 한 공간은 다른 공간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바라보인 그 공간들은 그 공간의 인물들이 구현하는 표현의 의미를 다층적인 것으로, 깊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낸다. 반성은 더 이상 경험 전체, 본질 자체, 본질들의 주관 내지 형상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렇게 지각적 깊이로서의 실재로서 드러난다.

  <카페 뮐러>에서 시간의 몽타주는 반복 양식을 통해, 계속해서 서로를 놓치는 연인을 통해 나타난다. 한 장면에서 이들은 수 분 동안 서로를 놓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한 놓침은 극 전반에 걸쳐 조금씩 변이된 채 반복된다. 이것은 의미를 담은 경험이 계속해서 새롭게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현재는 재차 경험되는 과거인 파지를 담고 있다. 반복 기법은 이러한 시간성의 가시적 표현이다. 무대 위에서 동작이 반복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전의 동작 그 자체가 아니라 두 번, 세 번 경험되고, 또 다른 맥락 속에서 재차 경험되는 그 동작이다. 이것은 우리가 잡고 있는 과거가 현재 속에서 다시 새롭게 경험되는 과거임을 보여준다. 반복은 강렬한 경험을 담은 과거가 지워지지 않고 진한 흔적으로 각인되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현재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험 속에 재차 경험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과거가 굳이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고도 저절로 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희미하게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연인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반복은 미래를 앞서 잡음인 예지를 반영한다. 이렇게 반복 기법은 시간지평의 구조를 통해 나타나는 실재를 가시적으로 만든다. 피나 바우쉬는 계속되는 현재인 무대 위에 과거와 미래를 담은 현재, 즉 두께를 가진 시간을 그려 보인다.

  이러한 무대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즉각적 필요와 유용성에 내몰려 사는 우리에게 사실상 깊이와 무한함을 가진 지각적 실재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몽타주 된 무대와 함께 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던 지평적 실재가 가시화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무대 위의 파편적 이미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초월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시공을 잠재적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각의 초월 작용과 함께 작품을 감상한다. 낯선 무대는 우리가 지각의 세속화된 양태를 벗고 다시금 지각 고유의 반성적 차원을 회복하여 보도록 추동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깊이 속에 펼쳐지는 무대에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맞닥뜨린다.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 그러한 무대에서 우리는 가장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반성하며, 가장 감성적이자 철학적이게 된다.

 

  1. 메를로-퐁티는 「영화와 새로운 심리학」에서 영화의 몽타주 양식이 갖는 현상학적 의미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몽타주가 단순히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더 나아가 그러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파생된 리듬 속에 비로소 의미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듬은 다름 아닌 현출하는 우리의 지각의 실재, 즉 시간 및 공간 지평 속에 떠오르는 실재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영화는 앞서 구축된 의미를 감각적인 것을 통해 충실히 전달하는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의 의미는 그것의 독특한 시간적 형식에서 발생하며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영화의 리듬 속에 베어나는 의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메를로-퐁티는 몽타주를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지각적 실재,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의미가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上)

 

김민정(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현대예술은 으레 낯설고 난해한 것이 되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왠지 모를 불편함과 거북함을 느낀다. 재현과 모방이라는 전통 미학의 원리는 완전히 뒤집어진 듯하고, 여기엔 그 어떤 원리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 현대예술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기이한 형상들은 우리가 매일같이 살아가는 현실로부터 뿌리를 잘라 낸 무엇 같지는 않고, 오히려 한층 더 깊은 곳의 진실을 은밀히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는 이러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탄츠테아터는 전통적 형식에 얽매인 채 테크닉의 완성도를 표현하기에 급급했던 고전 아카데미 무용의 관행을 탈피하고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자하는 움직임 속에 태동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공연예술양식으로, 우리의 실제 경험에 대한 면밀한 탐구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무대화하며, 나아가 관객의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는 이유로 경험의 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나타난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경험과는 왠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면들은 오버랩 되고, 단절되고, 반복되며, 관점들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이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 그대로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양식화 속에서 우리의 눈과 귀는 그 굳은살을 벗고 비로소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우리의 경험 그 자체에 비로소 가 닿았으니 이것은 분명 역설이었다. 삶에 한층 더 밀착하여 작업한 결과가, 우리의 자연스런 삶 속에 현상하는 것을 충실히 가시화한 결과가 낯선 결과물을 낳는다는 이러한 역설, 그러한 낯선 결과물이 다시금 우리의 원초적 경험을 되살려놓는다는 이러한 역설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역설을 사태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이념에서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있는 이곳, 우리가 경험하는 이것이 사태자체일 텐데 우리는 왜 다시금 사태자체로 가야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실재가 실상 아득한 깊이와 폭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는 은폐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현상하는 것이 또한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각각 이미 감각 주체의 생명적인 가치를 띤 것으로 나타난다. 화상을 입은 적이 있는 아이에게 촛불은 문자 그대로 불쾌한 것으로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의 노란 색을 경험한 누군가에게 노란 색은 강렬한 따사로움으로 경험될 것이다. 감각은 결코 순수 즉자적 성질로 주어지지 않는다. 감각은 반드시 어떠한 의미와 함께 나타나는 활동적 성질이며, 감각한다는 것은 결국 세계와의 생명적 의사소통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사태를 즉자적인 것으로 만드는 객관적 편견 속에 감각이 가진 이러한 다채로운 의미는 사상되고 만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들을 객관화하고 즉자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현상학은 이것이 참다운 인식을 방해하는 것으로 괄호 쳐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이 주목하는 현상은 이러한 객관적 사고가 형성되기 이전에 형성하는 것, 습관화되고 지각적으로 무디어진 삶 속에는 감춰져 있던 그것이다. 따라서 현상학이 주목하는 현상을 의식적 차원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현상을 감춘 일상의 의식적인 삶을 재차 반성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현상학적 반성을 통해 드러난 실재는 우리의 일상적 눈에는 외려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앞으로 두 편의 글을 통해 이러한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심층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1부에서는 몸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기술하는 지각의 현상을 다루어본다. 메를로-퐁티는 철학이 철저히 해명해야 할 사태 자체가 우리가 일차적으로 경험하는 바의 체험된 세계(le monde vécu)이며, 철학은 이를 직접적으로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체험 세계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가능케 하는 기초인 지각의 세계로서, 우리는 여기에서 기실 폭과 깊이로 존재하는 실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폭과 깊이의 실재는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는 가려지고 은폐되므로 우리는 이러한 실재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금 예술에 기대게 된다. 2부에서는 먼저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회화론을 중심으로 전개한 현상학적 환원으로서의 예술론을 살펴볼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고전주의와 인상주의라는 양 극단의 이분법에 모두 의문을 제기하고 원초적 현상 자체에 가닿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이라고 말한다. 세잔의 그림에서 드러내는 원초적 세계는 문화화 된 인간의 시각에 낯선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내 우리의 습관적 사고를 중시시켰다. 우리는 세잔의 회화가 드러내는 낯설음의 제 양상이 사태 자체로 나아가는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과 맞닿아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낯설음으로서의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이 현대 무용계의 한 획을 그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의 작업방식과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가 굳어진 관습으로 고착화된 기존의 예술의 형식을 탈피하고 비로소 인간과 삶, 즉 사, 불안, 고독, 좌절 등으로 점철된 삶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 그러한 의미로서의 세계를 지평구조 속에 다시금 펼쳐놓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지각적 실존을 다시금 회복하게 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 ‘깊이로 나타나는 현상

 

  우리에게 경험은 몸과 함께 시작된다. 이는 소극적으로는 우리가 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경험도 가질 수 없음을, 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있어 모든 경험이 몸과 관련하여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러한 몸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인 시공에 위치해 있으면서 주위에 펼쳐진 세계 속 지각적 대상들과 어떠한 관계속에 놓인다. 우리는 세계 속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Être au monde)’로 나타난다.

 

공간 지평과 공간성

 

  몸으로서의 주체는, 반드시 그것이 놓인 주어진 위치를 전제한다. 이에 따라 우리에게 나타난 사물들은 필연적으로 주체가 놓인 특정 위치에서 바라보아진 것으로서, 다시 말해 특정 관점 속에 나타나게 되며 우리의 지각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관점 의존적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이 자리에 붙박인 채 감각[각주:1]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 대상에 거주하러 가는 것에 비견된다고 말한다. 대상에 거주한다는 것은 대상이 나에게 떠오르는 방식이, 마치 내가 대상 속에 들어가 앉아 경험하는 듯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은 비단 나의 망막에 비춰진 면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위의 다른 사물들에 비춰진 면들, 즉 나의 직접적 시선이 포착하지 못하는 면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시각장 속의 다른 대상들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 주위로 펼쳐진 지평 속 다른 대상들 모두에 잠재적으로 위치하며, 따라서 우리는 지각장 속 각각의 대상들을 실로 여러 각도에서 지각한다.” 결국 우리의 시선은 사진과 같은 평면적이고 원근법적인 시각이 묘사하는 방식과는 달리 실로 무수한 시선이 교차하는 시각 지평의 장을 통해 대상을 포착한다. 각각의 대상들 주위에는 다른 대상들이 마치 그것들의 숨겨진 측면들의 관찰자들인 것처럼 존재하며 결국 대상은 단지 내 눈의 망막을 때린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보이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대상은 실로 무한한 시선들에 의해 모든 측면들로부터 관통됨으로써 어떤 불투명한 깊이를 가지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의 눈앞의 컵은 비단 내 눈의 망막에 맺혀있을 2차원의 평면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볼록한 뒷면을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지각하고 있으며, 둥그런 입구를 생생히 느끼고 언제든 입술을 가져다댈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렇게 사물들이 내 눈에 비친 직접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차원을 가지는 것을 지평의 깊이로 설명한다.

  이러한 공간 속 주체는 필연적으로 공간성을 덧입은 채 나타난다. 공간성을 사상해버리고는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맹인의 지팡이는 그의 신체를 늘려 그가 더욱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활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커다란 모자를 쓴 여인은 모자의 크기를 매번 재지 않고도 사물들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갈 것이다.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탄 사람은 언제든지 저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불편한 신을 신은 사람의 역량은 위축되고 그의 공간은 쪼그라들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반드시 가능한 행동의 체계로서의 신체, 즉 몸이 해야 할 무엇과 그것이 처한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잠재적 신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세계에 몸담은 주체는 항상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어떠한 방향성를 가지며 이때 대상들은 주체가 세계에 내린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 주체는 대상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항상 어떠한 공간적 수준속에 있게 된다. 공간을 초월한 주체는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주체를 초월한 공간도 없다. 공간성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 항상 전제되며, 이에 따라 존재는 방향 지워지고실존은 공간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시간 지평과 시간성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단순한 흐름으로서의 시간, 즉 나와 상관없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여겨지는 직선적 시간관을 비판한다. 메를로-퐁티는 시간성을 기술하는데 있어 후설의 파지(rétention, 把持, 다시 잡음) 및 예지(protension, 豫持, 앞서 잡음) 개념의 도움을 얻는다. 여기서 나의 현재는 과거를 다시 잡는파지와 미래를 앞서 잡는예지라는 양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이중지평의 망 속에 나타난다. 다음은 메를로-퐁티가 후설의 시간의식을 해석한 시간 지평의 그림이다.

 

시간 지평

-수평선: 일련의 '현재들'

-사선: 추후의 같은 '현재'에서 보인 음영들

-수직선: 같은 '현재'의 이어지는 음영들


  현재가 A, B, C로 연이어 나타난다고 하자. 현재 시점이 A에서 B, 그리고 C로 바뀔 때 A는 사라져버리거나 과거라는 곳에 그대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음영, 즉 변양태들로서, B시점에서는 A'(B시점에서 나타난 A시점), C시점에서는 A''(C시점에서 나타난 A시점)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내가 C시점에 있을 때 그러한 C는 즉자적인 C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A''(C지점에서 본 A의 음영)B'(C지점에서 본 B의 음영) 등 지나간 시간의 음영들을 여전히 잡고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C라는 현재는 이러한 파지들을 잡고 있음으로써만 온전히 C인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우리의 시간 경험에서 현재는 과거를 잡고 있는 것으로서만 오롯이 현재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내가 잡고 있는 과거는 결코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가 그대로 다시 떠오른 즉자적 그것 그 자체도, 단순히 매개된 것도 아니며, 현재 시점에서 다시 경험하는 직접적 과거이다. 나는 나의 온 역사를 담은 현재의 몸을 가지고 다시 그 과거의 시점으로 빠져들어 그 시점을 다시 살게 된다. 과거의 특정 시점을 떠올려보자. 이때 나는 그 당시 내가 의미를 두고 경험한 모든 것들, 예를 들어 향기, 소리, 분위기, 심지어 그 당시 시점의 과거 및 미래까지도 모두 함께 다시 경험한다. 어른이 되어 어릴 적 주로 시간을 보내던 장소를 방문해보면, 그 당시에 경험했던 삶의 면면들이 총체적으로 딸려 와서 나는 어느 덧 친구들과 뛰어놀던 놀이터의 흙냄새와 하굣길의 왁자지껄함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고도 생생히 느끼게 된다. 나에게 그 공간은 오직 그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들의 색채를 덧입은 채로만 존재한다. 또한 그 공간은 오직 지금 어른의 몸을 한 내가 다시금 경험하는, 다시 말해 새로운 시점으로부터의 경험된 공간이기도 해서 그 곳은 어른 몸의 경험과 어린아이의 몸의 경험이 중첩된 상태의 애매한 경험 속에 떠오르게 된다.

  대상들은 이러한 시간 지평의 메커니즘 속에서 인식된다. 공간 지평 속에서 대상이 지평 속 모든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떠올랐듯이, 시간 지평 속에서 대상은 역시 모든 다른 시간들과의 관계 속에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드러난 대상은 언뜻 우리에게 대상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대상은 사실 시간지평과 공간지평의 망의 얽힘 속에 떠오른 대상이다. 대상의 동일성을 보증하는 것은 대상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렇게 지평인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시간 지평의 구조를 통해 주체성에 접근한다. 메를로-퐁티는 시간성으로서의 주체성을 목표를 행한 동작의 속성에 비유한다.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진 특정 동작을 해보일 때, 나의 동작은 이미 그 목표에 있듯이 나는 이미 미래에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즉자적 이 순간에 있지 않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정도로, 또한 오늘 아침이나 곧 올 밤에 있다. 이것은 내가 이 순간에만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과거, 그리고 그보다 더 미래인 순간들에 잠재적으로 몸을 담고 그러한 시간들 속에 잠재적으로 살고 있음을 말한다.

  객관적 사고의 편견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적 사유는 이러한 지각 및 지각의 지평적 성격을 무시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순수한 이념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것은 결국 실체 없는 실체성의 허구에 빠져드는 오류를 범한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의 지평은 주체와 상관없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며 주체와 대상 또한 마찬가지다. 주체는 지평 속에 놓인 대상들과 함께 파악된 공간성 및 시간성으로만 기술될 수 있다. 대상들은 주체를 중심으로 한 지평들 상에 놓인 것으로만 존재하며 그 의미는 이러한 지평들의 종합, 즉 지평들의 상호 얽힘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얽힘은 동시다발적으로 무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재는 실상 어느 한순간도 명확한 무엇으로 규정될 수 없는 애매한 것, 폭과 깊이를 가진 아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시/비가시, 주체/객체의 상호 얽힘


  모든 대상은 시공의 지평적 구조 속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지평의 망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지는 않는 것으로,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 이면에 옷의 안감처럼 덧대어진다고 말한다. 비가시적인 안감이 비록 직접적으로 지각되지는 않을지라도 겉감을 모양지우는 실질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대상은 실상 시간과 공간 지평의 무수한 망을 통해서 비로소 그 대상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리와 사물의 최초의 만남이 이렇듯 나와 사물 사이의 다각도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의미의 층, ‘직물에 비견되는 두툼하고 결을 가진 층과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 순수 사물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사물을 볼 때 나에게 나타난 사물 속에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이 겹쳐져 있으며, 나 또한 그러한 사물의 성질을 덧입게 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봄과 보임의 상호 교차 현상을 (chair; flesh)’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무의 거친 질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그러한 재질에 접촉할 물적 토대로서 두툼한 살이 필요하며, 그러한 재질을 느끼기 위해 나의 살은 또한 스스로를 변형시켜야 한다. 이러한 문자 그대로의 살을 메타포로 한 메를로-퐁티의 개념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이상한 유착”,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한 덩어리에서 분화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때 이러한 분화 또한 이분법적으로 전개되는 것이기보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 다시 말해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살로서의 존재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에서부터 세계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 사이의 경계를 짓기 힘든 현상을 설명한다. 하나의 쉬운 예를 들어보면, 나는 추위라는 현상과 추위를 타는 내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메를로-퐁티가지각의 현상학에서도 강조한, 지각하는 주체가 곧 지각되는 세계라는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각주:2]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하늘의 파란색을 응시하는 나는 그 앞에 초연하게 자리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것에 빠져들어야하며, 그럼으로써 사실상 그것이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게해야 한다고 한다. 감각의 이러한 특성은 메를로-퐁티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살이 내 안에서 스스로를 생각 한다고 할 때 거듭 강조되며 이는 결국 봄의 나르시시즘이라 명명된다. 이로써 메를로-퐁티는 지각하는 자는 원리상 지각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전통적 주객이분법을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정리해보자. 보고 만지기 위해서는 보고 만지는 대상과 접촉하고 맞물릴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가 나에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색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색에 적합한 수용체가, 촉각을 위해서는 접촉하는 표면의 결에 적합한 수용체가 나에게 주어져있어야 하며, 감각은 그러한 수용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무엇으로 나타난다. 즉 감각은 순수 성질이라 할 만한 것이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며, 순수 수동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감각이 순수 능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만질 때, 내가 보고 만지는 것은 단순 사물의 그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러한 방식과 결과로서 수용한 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단순이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바라보면서 바라보아진 자가 된다. 즉 나는 지각하면서 동시에 지각되고 내가 능동적일 때 나는 동시에 수동적이게 된다.

  상호 얽힘으로서의 살은 이렇게 몸의 실존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 갖는 애매한 존재방식을 설명한다. 즉 몸과 그러한 몸으로서의 주체는 어느 한 순간에도 독립적이고 즉자적인 실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존재 자체가 세계 및 타자와의 상호 관계, 그 뒤섞임 속에 정의된다. 몸은 정보기계라 불려도 무방한 무심한 수용체로 생각될 수 없고 주체는 순수하고 투명한 의식이 아니다. 사물 또한 과학주의적 시각에서 보는 것처럼 대상 일반으로서 주체와의 의미 연관 없이 놓인 개체들로 간주될 수 없다.

 

 

일상의 은폐상태와 예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각은 주체가 지각함으로써 지각되도록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나르시시즘으로도 표현되는 이러한 차원에서 지각은 이미 반성적 차원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성이야말로 진정한 반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상이 최초로 의미로서 다가오는 것이 다름 아닌 지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봄을 통해 비로소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봄으로써 보이는 지각의 반성적 차원을 통해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지각을 매 순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일상의 의식적 차원은 그 같은 수행을 은폐하고, 시각은 왜곡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세속적 시각내지 협소하고 일상적인 의미에서 가시적인 것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예술이 이렇게 왜곡된 시각이 놓치는 비가시적 실재를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몸으로 사유하면서 이러한 반성적 차원의 지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잊고 있는 이러한 실제 지각의 근본적 차원 속에서 작업한다. 한 예술가들은 스스로 반성적 차원의 지각을 수행할 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지각의 반성적 차원을 회복시키는 이들이기도 하. 메를로-퐁티는 소설가란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사상이 우리 앞에 존재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상이 애초에 사물들의 구체적 실존 속에 얽혀있는 것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상의 그러한 존재방식을 놓치고 있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다시금 사물의 존재방식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 실존을 떠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형태의 의미구조에 가닿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사물을 우리 앞에 존재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진정한 반성이 외려 실재를 규명 불가능해 보이는 낯설음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앞으로 부에서는 이러한 현상학적 환원의 메커니즘으로서의 낯설음을 각각 세잔의 회화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나타나는 낯설음의 제 양상들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현대예술의 낯설음에 대한 고찰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메를로-퐁티는 ‘감각’과 ‘지각’을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보다 미시적 차원의 논의를 전개할 때는 ‘감각’을, 보다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의 논의를 전개할 때는 ‘지각’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입장을 따르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메를로-퐁티의 전기를 대표하는 저서『지각의 현상학』과 후기를 대표하는 유고『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사물과 의식이 분화되기 이전의 현상에 주목하여 전통적 주객이분법을 극복하고자했다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단, 전자가 논의의 전개방식에 있어 여전히 ‘의식’-‘대상’이 구별된 상태에서 출발함으로써 일정부분 이분법적 도식의 잔재를 보이고 있다면, 후자는 주체와 대상이 불가분의 상태로 얽혀있는 존재의 구조에 주목하면서 전통적 주객 이분법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체하고 있으며, 살은 이러한 존재의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은 메를로-퐁티의 전기 현상학이 이미 후기의 존재론이 본격적으로 기술하는 살의 존재론의 씨앗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기 현상학에서 나타나는 많은 기술들은 후기에서 등장하는 살 개념과 함께 한층 더 분명히 이해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