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미학을 바라보는 거울

- 푸전위안의 『의경(意境),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을 읽고 -

 

 

임종수 (현 감리교신학대 및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외래교수)

 

감리교신학대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고전번역원(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졸업.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명말청초 방이지의 자연관으로 석사, 같은 대학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명대 삼교합일론자 임조은의 종교사상 연구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 이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BK21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성균관대, 감리교신학대,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강의 중이다. 아울러 도서출판 문사철 기획위원이자 시민과 중고생, 대학생을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와 한문 강좌를 글쓰기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과제로 선정된 청대(淸代)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공역에 참여, 공저(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서울: 문사철, 2013) 공역서(논어, 새물결)가 출간 예정이며, 동아시아 철학, 미학, 종교, 명청사상사와 근대에 이르는 동아시아 사상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전번역, 고전과 현대의 다리 놓기,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꾸준히 모색 중이다.

 

푸전위안의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각주:1] 동아시아 미학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의경이란 개념을 중심에 두고 그 역사와 쟁점들, 의경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기존 학자들과 저자 간의 차이를 설명해놓은 책이다. 이처럼 의경 개념만을 철두철미하게 주제로 삼아 해설한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책은 거의 7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말해주듯이 워낙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가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사뭇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미학용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읽는 분들로 하여금 의경의 세계에 보다 부드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본 내용은 본인의 미적 체험에서 시작하여 차츰 책의 핵심 내용의 소개로 이어지는 조금 색다른 전개방식을 취해가고자 한다. 

 

그림을 보다 보면 유독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그림들이 있다. 내게도 유년시절 보았던 몇 장의 그림이 그렇게 물먹은 솜처럼 오래도록 기억 속에 스며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유년시절의 경험은 그것이 단 한 번에 그쳤다 할지라도 지워지지 않는 강렬함으로 각인되곤 한다. 아홉 살 때 동네 할아버님께 서예를 배우다 3학년이 되어 서예학원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갔던 어느 날 오후, 창가에 걸려 있던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이었던가... 그 자비로운 눈빛과 풍염하면서도 유연한 곡선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얼마인가 지난 어느 날, 먹을 갈면서 우연히 들여다본 화첩을 한 장, 두 장을 넘기는데, 한 선비가 미소 띤 얼굴로 바위에 턱을 괸 채 흐르는 냇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 그림에 매료되어 더 이상 화첩 장을 넘기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덧 마음이 평온해졌다. 무엇보다도 그 웃음기 어린 무구하고 넉넉한 선비의 인상이 좋았다. 훗날 알게 된 그 그림이 바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였다. 세월이 흘러 스무 살 고개에서 고사관수도의 실물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에서 보았을 때 그토록 작은 편 폭(23.4x15.7cm)에 그려진 것을 보고 적이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젊은 날 사두셨던 『이중섭화집』에 실린 성당부근’, ‘달과 까마귀’, ‘흰 소등이 떠오른다. 그 중 교회당을 그린 성당부근이 내게는 모종의 멜랑콜리를 안겨주어 이중섭의 그림이 전부 어둡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이후 그와 관련된 평전들, 그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글들을 읽어가며 어린 시절 우울하게만 다가왔던 이중섭 이미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동양화는 여백餘白을 강조한다고 배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양화의 특징을 그렇게 알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 나로서는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서양화는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동양화는 일정 부분 비워둔다고 배웠다. 현직 화가였던 선생님은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분이셨다. 그런 분의 말씀이었던 만큼, 그 말을 그대로 묵수한 채 동양화하면 여백의 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동양화에 대한 책과 관련 문서들을 읽고, 또 그림들을 보면서 뭔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여백의 미라는 것이 꼭 동양화에만 국한된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동양화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옳을까? 라는 또 하나의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평소 무언가 화자가 다 말해버리지 않는, 그래서 다 드러내지 못한 말이 있는 듯한 한시(漢詩)와 그림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미학이라는 분야에서 형성된 동양미학의 개념으로 그러한 문예작품들에서 경험되는 울림과 반향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잘 몰랐다. 그와 같은 궁금증으로 말미암아 동양미학 책들을 이 책 저 책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동양미학의 개념들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양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처음에 접한 개념은 익히 알려진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의미였다. 그 후로 문/, /, /, /, /, /, /, /, /, /, /, /등의 개념 쌍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동아시아 미학의 단면들을 다각도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보면 볼수록 새롭게 다가왔다. 그 그림에 담긴 사유와 정서를 동양의 고전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그 앎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느끼는 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 또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했다. 그림의 정신세계라고나 할까, 그런 방면에 차츰 관심이 닿기 시작했다. 그 선비가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나도 홀로 그 선비를 바라보곤 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너럭바위에 팔을 괸 채 넉넉하고 둥근 얼굴로 물끄러미 흐르는 산속 계곡의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아니 선비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림에서 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과 몸,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선비는 흐르는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요한 산속 계곡을 흐르는 물, 툭툭 뻗어 내린 가지와 잎새, 굵은 칡덩굴이 별다른 기교 없는 붓질로 채워진 화면, 고요함이 흐르면서도 정 속에 갇히지 않아 답답하지 않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함께 배어나니, 저절로 그 여미(餘味)가 그림을 보고 난 후에도 남아, 어느덧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기운(氣韻)이 아닐까? 이처럼 그림 자체가 지니는 내면세계의 힘과 리듬으로서 기운생동의 의미가 실감 되었고, 그 의미가 이렇게 생생하게 느낌으로 와 닿는구나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림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유가와 도가 정신의 그 어떤 앎도 고사관수도자체가 전하는 울림과 여향(餘香)을 잦아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무수하게 보아왔지만 내게 고사관수도는 그 선비의 모습, 혹은 그 바위, 나뭇잎새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기억되지 않았으며, 그 형상이 사진처럼 고정적으로 재현되지도 않았다. 그림의 가치를 자연모방에 둘 때, 고사관수도와 같은 작품은 그리 성공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강희안은 몇 번의 붓끝으로 계곡 속의 선비를 재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한 선비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희안이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형상의 재현[形似]이 아닌 내면세계의 표현[神似]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림 안에는 사실적인 자연의 묘사보다는 그의 마음과 의식에 떠오른 풍요로운 정취와 분위기가 담겨 있다. 아마도 그의 마음자리에는 『논어』공자가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네라는 구절이 떠올랐을 수도 있고,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말하면서 인자(仁者)와 지자(知者)의 특징을 선문답처럼 간결하게 말한 구절이 떠올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붓은 그의 몸에 육화된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구현해놓았을 뿐이다. 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려보고 나니 그러한 그의 정신세계가 드러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사관수도의 세계는 내게 이러한 감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기억에 남아, 끊임없는 상상을 이어가게 한다. 바로 그러한 상상과 연상을 동양미학의 언어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푸전위안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술작품과의 만남에서 우리의 의식 속에 일어나는 움직임의 다양한 정취와 분위기, 정신의 경계를 의경(意境)’이란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의경이란 개념은 워낙에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다 보니 어느 한 가지로 합의된 정의가 없다. 저자는 마정핑이란 학자가 의경을 정경교융설(情景交融說), 전형형상설(典型形象說), 상상연상설(想像聯想說), 정감기분설(情感氣氛說)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저자 푸전위안 교수의 입장은 상상연상설에 속한다. 이 중 정경교융설과 전형형상설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자의 의경 개념의 특징이 부각될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정경교융설은 그동안 의경 개념과 일치하는 듯 이해되어왔다. 정경교융이란 우리가 예술작품에서 받는 인상(체험)과 예술작품에 반영된 현상이나 장면의 결합을 말한다. 그러나 정경교융은 의경의 한 특징을 말해줄 뿐 의경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과 경의 기계적 결합이나 융합이 바로 의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의경에 담긴 풍부한 함의는 죽어버리고 마는데, 그것은 이미지(形象)로 고착되면 더 이상 작품의 해석과 감상이 다양해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어떤 작품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이 고정되면 그 작품을 바라볼 때 다른 상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작품 속에 있는 특정한 이미지에 매이면 풍요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저자는 정경교융설은 의경의 풍부한 함의를 충분히 드러내기가 어렵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술작품에서 경험되는 상상연상은 무궁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형형상설이다. 전형형상설은 의경을 예술작품의 형상(이미지) 또는 전형과 동일하게 본다. 그러나 물이 무지개로 변하지만, 무지개가 그러한 변화를 낳을 수 있는 물과 같지는 않은 것처럼(p.65) 의경은 예술전형이나 예술작품 속의 이미지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전형형상설은 다채롭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경을, 그것을 낳는 모체인 예술전형이나 이미지 자체로 확정하거나,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고정된 작품해석에서 벗어나는 이론에 주목하는데, 의경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초이상외설[超以象外], 형상 밖으로서의 초월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화가가 산수 속에 오두막집을 그렸다. 그런데 오두막집 주인을 그려 넣지 않았다. 하나 우리는 그 집 속에 주인이 분명 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바로 형상 밖으로 초월하여 자유로운 변화의 묘리를 얻다.”라고 말하는 것이다.(p.66)

 

푸교수는 청대 학자 손련규가 보여준 예를 든다. 산속 오두막집을 그렸지만, 그 주인을 그려 넣지 않아도 주인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래야 그 그림의 분위기와 풍류의 정취를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둘을 욕심껏 다 그려 넣었다면 오히려 다른 풍부한 상상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경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예술의 정취와 분위기, 이러한 것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부한 예술 환상과 연상 세계를 모두 담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산속 오두막집이 없다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정신의 경계를 알 길이 없다. 또 화가 자신도 그 오두막집을 그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려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의경은 구체적인 예술 형상을 떠날 수 없다. 반드시 구체적인 형상을 포괄해야 한다.

 

요컨대 의경은 특정한 예술이나 심지어 비예술적 부호를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예술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다만 우리 의식 속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형상이나 화면(장면) 또는 부호를 가리키고, 또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예술 정취와 분위기, 그것에 의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부한 예술, 환상과 연상 세계를 포괄하는 총화이기 때문이다.(36, 244쪽)

 

이처럼 의경은 단 하나로 귀결 지을 수 없는 풍부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떤 특정한 예술적 이미지로 환원시키거나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특정한 예술적 이미지는 우리에게 자유로운 해석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고 강제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작품도 동일하게 체험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작품해석은 끊임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의경이란 요컨대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 그리고, 그러한 해석과 감상, 연상, 환상이 함께 어우러진 총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경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는 토대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경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토대를 저자는 우주대생명이론이라고 한다. 조금은 장황한 개념처럼 보이기도 하겠으나 우주 전체와 모든 사물은 공통적으로 내재적인 활발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그 이론의 요지이다. 이는 인간의 개체 생명을 넘어 전체 우주와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이론이다. 우주의 생명이 연속적으로 이어짐을 결정하는 존재는 형태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그것의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도()이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세계의 형상을 통해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가득 찬 도를 깨달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보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 학자들의 이론을 정리하며 우주 전체가 커다란 생명의 운행이고, 리듬이고 조화이며 모든 예술의 경계는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따른다면 도의 리듬을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예술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풍경, 영화를 보고, 또는 문학작품을 읽고 난 뒤 그 울림은 어떻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시간은 마법처럼 그 첫 그림을 다른 그림으로 변모시켜 간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것은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주름이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하나의 그림, 한 편의 문학 작품이 나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상상과 환영은 왜 사라지거나 식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와 같은 상상과 환영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까? 그것은 나의 마음과 그 풍경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상상의 연속이 내 마음속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재가 아니라 활발한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 울림과 감응의 현상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의 재현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예술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나아가 예술작품에 대한 고정된 시각이나 해석은 우리의 정서를 얼마나 메마르게 만드는 것일까? 문제는 작품과 나와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상상, 연상, 울림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것은 한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삶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빛을 발하고, 새롭게 해석되며, 무궁한 상상의 연속으로 이어지도록 이끈다. 그 점은 같은 작품을 두고도 다시 보게 하는 힘일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이 어떤 시간, 마음, 분위기에서 접하였는가에 따라 그 만남의 흔적은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해석들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어째서 특정 작품들은 유독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흥을 일으키며 살아 숨 쉬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분위기가 내 정서를 이루기도 하면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걸까? 그림은 나(의 한 부분)를 이루기도 하고, 나의 변화가 그림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바꾸어가기도 한다.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과 영화가 또 다른 시와 소설, 영화를 낳을 수 있다. 그것은 그것을 마음으로 바라본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또 다른 경험으로 되풀이된다. 문자 언어로 이루어진 소설이나 시를 비롯하여 모든 예술작품은 언어를 낳고 언어를 파생시킨다. 뭔가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말들이 똬리를 틀고 있지만, 그 말들조차 사실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언어가 가진 태생의 한계가 바로 끊임없는 언어를 낳고, 해석의 차이를 낳고, 그로부터 다양한 작품과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말과 글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뜻을 깨달았으면 말/형상을 잊는다’, 언어 너머의 뜻 등등... 왜 이렇게 동아시아 미학에서는 뜻을 중시해온 것일까? 저자를 따르면, 뜻이란 고정되고 획일화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뜻이란 우리가 어느 한 가지 틀이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상상과 연상의 풍요가 숨 쉬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자가 작품 속에 자신의 의도를 심어놓아 그 의도를 강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라 해도 자기의 소유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양한 낱말들이 이루는 전체가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은 자신의 의도와 생각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전달했지만, 그 말을 자기가 의도했던 말 그대로가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화가 중에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안 되고, 그냥 붓끝을 움직였는데, 그림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특수한 신비체험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겪는 몸의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일상과 예술 작품 속에서 형상 너머의 형상이란 무슨 뜻일까? 우리의 육안은 형상 너머를 볼 수 없다. 우리는 형상 앞에 마주하고 형상 앞에 시선을 둔다. 그 형상은 형상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채 우리 마음 안에 머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마음의 흐름과 주름, 시간의 심층으로 발효되어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무궁한 상상과 연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형상 너머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형상을 부정하지 않고, 다만 보이는 형상에 고착되어서는 진정으로 그 형상이 드러내려고 하는 형상을 보거나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착된다면 풍부한 상상의 날개는 펼쳐지지 못한 채 꺾이고 말 것이다.

 

의경이란 개념은 고정된 형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형상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과 나와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울림, 상상(), 번져 나오는 연상들이 이루는 전체이다. 예술작품과 나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상상과 연상, 정취, 분위기는 언어로 완전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말없이는 말을 넘어선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 형상 너머의 형상, 말이나 그림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의식 안에 떠올라 생성되는 그 형상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와 말로 표현되는 세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오가며 그 가운데 생성되는 흐름과 리듬을 예술작품 안에서 발견하고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예술 작품과의 만남과 체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존재의 전환마저 이루어가는 것은 아닐까...

 

 

  1. (푸전위안 저, 신정근․임태규․서동신 공역, 서울: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본문으로]

기억의 풍경 혹은 풍경의 정치

- 스트로브와 위예의 <모세와 아론>을 중심으로 - 

 

이익주 (고려대 강사)

파리 1(팡테온-소르본) 대학교 박사 (2012, 영화적 섬풍경의 이미지들 - 닫힘과 열림의 변증법)

논문 「시작과 끝으로서의 영화적 섬의 풍경」(한양대 현대영화연구, 2012)

「감각의 장소로서 영화적 자연 풍경」(영상문화,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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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하찮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영화란 기껏해야 극장의 마크가 찍혀있는 통속에 가득한 팝콘을 씹으면서, 시청각적 쾌락을 즐기며 잠시 현실의 잡다한 고민들을 잊게 하는 스트레스 해소용 오락거리이거나, 컴퓨터에 다운받아 잠시 즐기고 지워버리는 일회용 파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상한 철학적 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화를 이용하는 많은 자들에게도 영화는 단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호기심을 끄는 수단일 뿐, (깊은 전통을 지닌 문학이나 미술과는 달리) 영화는 절대로 철학과는 동등해질 수 없는 가벼운 이미지들일 뿐인 것이다. 영화를 사유했던 철학자들이 많았을 것 같은 프랑스의 철학 전통에서도,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넘어 영화를 하나의 철학적 대상으로 진심으로 사유한 들뢰즈와 랑시에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밖의 철학자들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사유할 때, 항상 (도대체)‘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앙드레 바쟁이 위대한 것은 단순한 비평을 넘어 영화에 대한 촘촘한 사유를 했던 그의 글들 이전에, 그의 글들은 모아놓은 그의 책들의 제목처럼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에게 항상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란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애초부터 잘못된 질문일 수밖에 없다. 폴 발레리의 영리한 답변처럼, 모든 문학이, 모든 미술이 예술이 아니라, 예술인 문학작품, 예술인 미술작품이 있는 것처럼,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인 영화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탄생한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강력하게 예술에 대한 고전적 틀을 비판하며,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19세기라는 예술적 현대성이 나타나는 시기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의 아이러니는 자신들이 무엇을 발명했는지 잘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초기작들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회화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 최초의 실제로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운동성을 느끼게 해 준 이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발명품의 혁명성을 그들은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탄생했을 때, 영화를 적극적으로 예술적 실험로 받아들이려 했던 자들은 좌파들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었다. 기존의 예술의 틀을 흔들며, 벤야민의 말처럼, 대상들을 관통하며, 사물들이 말하게 하는 영화의 운동-이미지의 충격은 그들에게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운동-이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충격이 관객들에게 익숙해져서 지루해져 갈 때, 영화는 이제 이야기를 말하는 고전적 예술로 회귀한다.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관객은 다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영화란 움직이는 이미지를 수단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매체가 되어 버린다.

 

2.

이런 면에서 랑시에르는 영화 속에 내재해 있는 근본적인 모순성을 언급한다. 랑시에르는 영화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미학적 위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고전주의 시학의 경향성 (뮈토스 mythos 플롯의 합리성 rationalité de lintrigue) 과 낭만주의 시학의 경향성(옵시스 opsis 스펙터클의 감각적 효과 effet sensible du spectacle)의 만남과 충돌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는 이야기들의 낭만주의적인 변형이 문제시되어짐에서, 뒤늦게 나온 예술이며, 이 변형을 고전적인 모방으로 이끈 예술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미학적 혁명과 영화 간의 연속성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것이다."[1] 그래서 그는 영화의 이러한 모순을 영화 우화라는 말로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영화의 예술적 조작방식은 [기계적 시각 이미지로서의]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저지하는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해야 한다. 영화의 기술적 본성으로부터 예술적 사명에 이르는 곧바로 뻗은 길은 없는 것이다. 영화 우화는 저지된 우화(fable contrariée)인 것이다.[2] 실험영화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완벽하게 부재하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랑시에르는 영화가 시각적 이미지의 예술이지만 서사가 완전히 포기되어질 수 없는 영화의 독특성을 저지된 우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영화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고민 중의 하나는 원래 영화의 가장 큰 역량인 운동하는 이미지가 주는 그 시각성을 어떻게 서사와 대결시키며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풍경의 역할은 현대 영화에서부터 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고전 영화가 추구했던 고전적 예술의 중요한 지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는 드라마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드라마를 구성하는 6가지 요소(장경, 성격, 플롯, 조사, 노래, 사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인 플롯(muthos)이며, 가장 하찮은 것을 장경(opsis)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 장경(場景)은 우리를 매혹하기는 하나 예술성이 가장 적으며 작시술과는 가장 인연이 먼 것이다[3] 장경[4] (실외에서 촬영된) 영화에서의 자연풍경과 가장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 고전 영화에서 자연 풍경만이 등장할 때 그 쇼트는 대부분 영화의 배경이나 시대, 분위기를 보여주며 영화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거나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부수적 장치로서 작동된다. 반면, (특히, 안토니오니나 타르코프스키의 경우처럼) 현대 영화에서는 자연풍경의 쇼트를 길게 만들거나 이야기의 진행에 관계없이 강조함으로써, 영화의 시각성이 드러나는 장치로서 혹은 이 세계의 시간이 담지 되어있는 잠재적 이미지로서 사용되게 된다. 들뢰즈의 말처럼, 현대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시간-이미지라면, 자연풍경은 이 세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이미지로서 현대 영화의 많은 작가에게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된다. 현대 영화 예술가 중 가장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스트로브과 위예의 영화에서도 자연풍경은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1932)>을 야외의 이탈리아 고대 원형극장에서 찍은 스트로브와 위예의 <모세와 아론(1975)>은 그 극장의 주변에 있는 자연풍경과 고대 원형극장의 만남 속에서, 오페라가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자연풍경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심미적 경향성이 좀 더 강한 안토니오니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의 자연풍경과는 달리 자연풍경을 정치적 의미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3

 

스트로브와 위예는 현대적 오페라를 영화화했지만, 그들은 단지 연극의 근본적인 요소인 « 텍스트의 빠롤 »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며, 영화적 리얼리즘의 가치 또한 잊지 않았다. « 텍스트의 빠롤 »을 중요시하면서 세계의 시간의 공간적 흔적으로서 자연풍경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은 이 영화를 자연 속에서 찍었다. 스트로브와 위예는 영화의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 소리, 공간 간의 조화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들이 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하지 않는 것은 단지 텍스트의 빠롤에 대한 정확한 의미의 전달이기보다는 소리와 공간에 대한 관계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스트로브에 따르면, « 더빙된 영화는 거짓말의 영화이며 정신적 게으름과 폭력의 영화이다. 왜냐하면, 더빙된 영화는 관객에게 공간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관객을 귀머거리로, 감각이 마비되게 만들기 때문이다...직접 소리와 대사를 녹음하면서, 우리는 공간에 관해 속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존중해야 하며, 이러한 존중 속에서, 우리는 관객에게 공간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란 시간과 공간의 « 추출 »로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이런 면에서, 마치 텍스트를 책을 읽듯이 말하는 그의 영화 속에서의 배우의 빠롤은 단지 텍스트의 왜곡 혹은 해석으로서의 연기와 감정이 제거된 (배우의 대사 혹은) 책 읽기라는 텍스트의 전달의 변증법에 대한 영화적 이미지의 표현일 뿐 아니라, 어떤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이 영화를 찍을 때 당시의 시간성과 만나게 되는 중요한 방식으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연극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연극이 만드는 텍스트의 빠롤의 생생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세계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의 가능성이 그들의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당연히 그들에게 영화를 찍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모세와 아론>은 단순히 야외에서 찍은 영화화된 오페라로 말해질 수 없다. 이 영화를 찍은 장소는 이탈리아의 지방에 있는 알바 푸첸세(Alba Fucense)의 고대 원형극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스트로브와 위예가 스튜디오나 실제 오페라 극장에서 이 영화를 찍기를 원치 않았다면, 왜 그들은 이스라엘이나 중동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의도적으로 영화의 장소로 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탈리아는 유럽인으로서의 쇤베르크의 문화적 정체성과 중동이라는 오페라의 배경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6]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야말로 유럽이면서도 팔레스타인에 가장 멀지 않은 유럽의 국가이고, 모세의 신의 종교로서 유대교에 원천을 지닌 크리스트교가 결국 자리를 잡게 되는데 문화적 토대를 제공 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알바 푸첸세의 고대 원형극장에서 촬영되었다. 이 닫힌 공간으로 인해서 영화는 일종의 연극성을 띄게 되지만, 카메라는 하늘로 열려 있는 극장의 주변의 자연들을 계속 보여주며 자연의 풍경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는 카메라의 운동의 섬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고대 원형극장은 단순히 닫힌 공간이 아닌 것이다. 특히 쁠랑-세깡스로 이루어진, 모세가 신을 만나는 첫 번째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모세의 뒤통수와 약간의 등을 고정된 쇼트에서 보여준 후 이어지면서 수직으로 상승하여 주변의 자연풍경을 하늘을 중심으로 아주 천천히 파노라믹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롱 쇼트에서 두 개의 산봉우리의 쇼트를 보여주면서 수 분간 정지한다. 이 시퀀스에서 하늘의 쇼트를 통해 신의 시선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모세와 아론의 일화라는 유대교적 신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역사적 신화를 스트로브와 위예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무한한 세계의 시간을 담지하고 있는 자연풍경의 역사성으로 교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오페라에서 쇤베르크는 예언자의 운명, 신의 계시 같은 신학적 의미들을 개입시킨다. 또한 그는 1923년 칸딘스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드러나듯이, 아직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을 먹일 식량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반대했던 안티-마르크시스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로브와 위예는 이러한 유일신적 전통이 남아있는 안티-마르크시스트적인 작가의 오페라를 자연풍경을 통해 유물론적 (신학의)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특히 마치 인간과 땅의 관계를 관객이 생각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로 영화 속 인물들을 부감촬영으로 잡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점은 고대 원형극장의 윗부분의 관객석에 위치한 관객의 시선과 연관된 고대의 연극의 관객에 대한 시점을 떠올리게 하며, 일반적인 현대 연극에서 찾을 수 없는 지질학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의 장소의 물질성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고대 원형극장의 주변의 자연을 끊임없는 파노라믹으로 보여주며 그 원형극장의 땅의 의미를 묵도하게 하는 풍경은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 스트로브적인 풍경 »[7]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스트로브적인 풍경이란 « 카메라의 움직임 (특히 파노라믹으로 카메라가 움직일 경우)이 과거에 발생한 것에 대해 추상적인 곡선을 그려내고, 그 땅은 거기에 묻혀 있는 것으로 인해 가치를 갖는, 텅 비고 공백이 있는 지층적 풍경 »[8]인 것이다. 말하자면, 스트로브와 위예의 영화의 풍경의 이미지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이 문화적 틀 속에서 아름답게 보인다고 조작하는 자연의 특정한 부분을 넘어선, 세계의 시간이 묻혀 있는 « 풍경의 고고학 »의 재생산(혹은 복제, reproduire)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고대 원형극장은 AD 40년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스트로브와 위예는 로마 시대에 연극의 장소였고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이 학살을 당했던 이 장소를 의도적으로 택함으로써,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장소의 역사성과 그 주변의 자연풍경을 통해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무한한 시간성이 만나도록 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억과 자연의 시간이 만나는 장소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쇤베르크의 오페라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듣기 좋은, 보기 좋은 조화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고대 원형극장에서, 유대인의 중요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독일어로 된 오페라로 불려지는 상황은 낯선 부조화의 상황인 것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이와 같은 조화의 부재는 마치 연결되지 않고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이미지가 되어 읽혀져야 할 고고학적 혹은 지층적 이미지가 된다.[9]

이러한 부조화의 이미지들은 바로 쇤베르크의 음악과 연결된다. 기존의 조성 음악을 반대함으로써 음계 하나하나가 다 독립성을 가지기 때문에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무조음악의 한 작곡기법인 12음기법이 절정을 이루는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이 이 장소에 퍼지는 순간은 유럽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의 나치의 반유대주의 앞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쇤베르크의 문제가 유럽과 중동 사이에 있는 이탈리아의 한 고대 원형극장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트로브와 위예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자연풍경은 단순한 배경으로서, 미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장소가 되어 다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치성을 띄게 된다. 특히 이 영화가 촬영된 1975년은 UN 의회를 통해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결의하여, 이러한 결의에 대해 반유대주의라는 논쟁이 담론화되던 시기이다. 나치의 반유대주의[10]로 생긴 유대인 대량학살, 시오니즘으로 인해 생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중동 간에 생긴 전쟁들과 학살의 중요한 원인으로서의 유일신교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로마제국의 이상과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이 학살당한 피의 기억들이 숨겨져 있는 고대 원형극장에서, 그리고 그것을 목도했을 자연풍경 앞에서 스트로브와 위예는 다시금 이미지들과 소리를 통해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의 시간의 다양한 흔적으로서 자연 풍경과 만들어진 장소의 역사성이라는 문제의식의 영향 속에서, 스트로브와 위예의 이 영화는 텍스트로서의 연극성과 세계의 이미지의 재생산으로서의 영화의 리얼리즘 사이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4.

2006년 사망한,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이며 예술적 동지인 다니엘르 위예가 죽은 후 장-마리 스트로브는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고 영화로 돌아온다. 2011 2 8일 소르본느 대학교 본관 옆 좁은 골목길에 있는 르블레 메디치(Reflet Medicis)극장에서 그의 새로운 영화 <O Somma Luce>가 개봉되었을 때, 그는 직접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고, 알랭 바디우와 자크 랑시에르는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존경을 바치며 기꺼이 특강을 했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어느 여름날 아르바이트를 위해 집을 나서고 길을 걷고 있는 중, 나는 몽마르트 묘지의 위쪽에 자리한 어느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어느 노인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장-마리 스트로브였다. 이 뛰어난 영화예술가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그의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과 표정의 무게감은 감히 나의 입술을 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관객들에 무관심처럼 보였다.

영화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그저 패스트푸드처럼 금세 먹고 치워버리는 하찮은 것이 된 세상에서, 스트로브의 영화들은 아직도 영화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중요한 영화들인 것이다. 이 세계를 왜곡하는 이미지들과 대결하며, 자연 풍경 속에서 우리들의 기억과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스트로브의 영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 J. Rancière, La Fable cinématographique, Edition Seuil, 2001, p.18.

[2]  Ibid., p 19.

[3]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역, 55.

[4] 시학』의 번역자인 천병희는 장경의 원어인 opsis가 배우의 분장만을 의미하는지, 무대상의 장면과 광경을 포함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나 (50쪽의 역주), 랑시에르의 경우에는 La Fable cinématographique 에서 opsis를 좀 더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과 연결하여 말하고 있다.

[5] « Sur le son, entretien avec J.-M. Straub et D. Huillet », Cahiers du cinéma, No. 260-261, octobre-novembre 1975, p. 48-49.

 

[6] 다니엘르 위예는 이렇게 말한다.« 왜 처음부터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찍기를 원했냐구요? 쇤베르크는 비엔나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은 당연히 유럽음악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중동지방의 하나인 이집트에 가서 아주 놀라운 영화적 리얼리즘을 가능하게 하는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리역할을 했던 유럽의 한 국가를 원했었습니다. (« Notes sur le journal de travail de G. Woods sur Moïse et Aaron », Cahiers du cinéma, No. 260-261, octobre-novembre 1975, p.12).

 

[7] G. Deleuze, L’image-temps, Editions de minuit, 1985, p. 318

[8] Ibid., p. 318

[9] Ibid., p. 319

[10] 1923년 칸딘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쇤베르크는 반유대주의가 엄청난 폭력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분명히 독일음악가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반유대주의가 최고조에 올랐던 1932년에 작곡되었다. 

 

 

[인문·사회과학 100년사(史)] 1차. 1900~10년: 대중시대의 인문․사회과학

 

인문·사회과학 100년사()

이성과 합리성의 경계를 넘어  

 

성일권

파리 8대학에서 유럽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진보와 그의 적들』『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등이 있고, 논문으로 그람시적 대항헤게모니의 현재적 의미와 그 가능성

공론장으로서의 위키리크스의 지위와 과제등이 있다.

 

 

<연재 게재순서>

1.1900~10  2.1910~20년  3.1920~30년  4.1930~40년  5.1940~50년  6.1950~60

7.1960~70년  8.1970~80년  9.1980~90년  10.1990~00년  11.2000~현재

 

-연재를 시작하며-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00년은 우리 인류가 인간으로서 스스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특출한 능력을 지닌 최고의 존재라고 믿다가 그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사유와 반성의 담론들을 쏟아낸 세기(世紀)라고 할 수 있다. 1, 2차 산업혁명과 근대국가의 등장 이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신의 전지전능함을 대신했지만, 이내 그마저도 그 정당성을 위협받았다. 공교롭게도 20세기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죽음(1900)과 함께, 또 인간의 나약한 정신세계를 탐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의 발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1900년을 기점으로, ‘신의 죽음과 함께 인간의 재탄생이 본격화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리고 21세기의 문턱을 넘은 지금까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줄곧 인간을 연구 담론의 중심에 놓았다.

우리는 지난 한 세기의 인문사회과학사()10년 단위로 나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부터 멀티미디어 시대의 시놉티콘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적 흐름과 대표적 학자들의 이론 및 저서를 살펴봄으로써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I. 1900~10: 대중시대의 인문사회과학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의 태동: 욕망하거나 관계를 맺거나......,

 

 

<시대적 배경>

1900~10년의 인문·사회과학은 바로 전() 세기의 1, 2차 산업혁명 및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세기 후반, 전기와 내연기관의 발명을 계기로 본격화한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획기적인 진전과 일상적 삶의 전환을 가져왔다.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는 당시의 놀라운 산업기술을 잘 보여주었다. 이 무렵 선보인 영사기, 전화기와 자동차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알렸다. 1903, 최초의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이제,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됐다.

 

제국주의를 거쳐

서구인들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19세기 무렵, 나머지 세계의 발견을 끝내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서구 국가들은 세계를 각각 구분 지어 지배했는데, 경우에 따라선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대영제국은 5억 인구를 지배하게 됐는데 특히 인도를 차지했고, 프랑스 제국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를 삼켰다. 한때 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의 물꼬를 이끈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들의 집중화, 즉 트러스트, 카르텔, 독점 현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시대의 도래

산업혁명의 확장과 함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들이 전개되었다. 노동 분업과 상품시장의 등장, 관료사회와 개인주의의 출현은 사회관계를 변화시켰고, 심지어 농촌의 삶까지도 바꿔놓았다. 바야흐로 대중과 군중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페르디난드 퇴니이스(Ferdinand Tönnies)같은 사회학자들은 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공동체에서 사회로의 이행과정으로 이해했고,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같은 이들은 이를 도덕과 종교와 연계된 기술적 연대로부터 구체적인 사회그룹 속 개인들의 지위와 연결된 유기적 연대로 향하는 이행과정으로 파악했다. 또는 일부 학자들은 전통적 삶의 양식이 합리주의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라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이 무렵, 산업혁명에 따른 물질적 풍요와 함께 도회지 부르주아와 새로운 중산층이 그 어느 때보다 문화 취향의 삶을 누리게 됐다. 이름 하여, 이 시기는 라 벨 에포크라고 불리었다. 카바레와 선술집, 영화관에 사람들이 몰렸고, 해수욕장에도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라 벨 에포크는 건축과 실내장식 분야에도 새로운 양식의 취향을 가져왔다.

 

새로운 물리학의 출현

1905년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그의 첫 상대성 이론을 창안했으며, 같은 해 그는 빛이 작은 알갱이라고 이뤄졌다는 이른바 광자(光子)의 가정을 세웠다. 또한, 그는 1900년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창안한 양자(量子)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 물리학의 혁명을 이뤄냈다.

 

전통을 깬 큐비즘

미술에서 마티스(Matisse), 고갱(Gauguin), 고흐(Gogh), 뒤피(Dufy)등으로 대표되는 포비즘(Fauvism)이 화려한 색깔을 즐겨 사용했다면, 피카소(Picasso)1907아비뇽의 아가씨들로 첫선을 보인 큐비즘은 기존 미술의 전통적 기법을 깨뜨렸다. 큐비즘은 동작과 형태의 해체를 가져왔고, 이로써 예술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추상의 시대가 그것이다.

 

 

1-(1). 대중의 욕망과 불안: 정신분석학의 태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가 환자 치료용으로 사용한 긴 의자

대중의 시대와 개인 삶의 양식이 충돌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190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4살의 프로이트라는 의사가 쓴 꿈의 해석이라는 야심만만한 책이 출간된다. 이 저작은 꿈의 심오한 의미, 즉 인간의 정신현상에 대한 어려운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하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우리들의 숨겨진 심리영역, 즉 무의식과 맞닿아 있는 관문이다. 꿈은 정신착락증세 같기도 하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지만 어떤 숨겨진 의미를 전달한다. 꿈속에 담긴 내용은 의식 상태를 엿볼 수 있는 강력한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꿈은 욕망의 추구로 발현된다.”

이 욕망은 종종 성적인 욕구이나 근친상간적 성격을 띤다. 의학을 공부한 뒤, 프로이트는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으며, 1976년 신경학에 관심을 갖고 이후 15년간이나 신경학자로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1885~1886년에, 그는 신경 병리학 분야의 권위자 마탱 샤르코(Martin Charcot)가 활동한 파리의 사르페트 리에르 연구소에 유학을 다녀온다. 빈에 돌아온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원을 개업한다. 그가 새로운 정신이론을 고안하기 시작한 것은 1889년 심리학자 이폴리트 베른하임(Hippolyte Bernheim)이 강연한 프랑스 낭시 지방의 여행을 통해서다.

나는 그곳에서 인간 의식에 숨겨진 정신과정의 가능성과 관련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1895, 그는 요셉 브뤼어(Joseph Breuer)와 함께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브뤼어가 1880~1882년 치료했던 안나 오(Anna O)라는 젊은 여성의 히스테리 증세가 묘사된다. 프로이트는 이 여성의 히스테리 증세를 아버지를 향한 근친상간적 욕망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안나를 만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당시 브뤼어가 안나에 대해 실행한 대화 치료는 새로운 치료방법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브뤼어가 자신의 이런 연구 성과를 공유하지 않음에 따라 두 사람은 결국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프로이트는 자신이 더 이상 포기하지 못할 길에 뛰어든다. 몇 년의 연구를 통해, 그는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했다(정신분석학은 1896년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무의식, 리비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유연상의 기술, 유년기의 성, 방어 기제 등이 그것이다.

프로이트가 언급한 무의식의 개념은 전적으로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나 에듀아르드 폰 하트만(Eduard von Hartmann)같은 철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무의식의 개념을 자신들의 철학에 응용하기까지 했다. 피에르 자넷(Pierre Janet, 1859~1947)은 극복할 수 없는 외상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다중인격장애라는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무의식 개념의 진정한 창안자는 독일 심리학자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 1851~1914). 그는 무의식이 과거의 전체적인 표상 행위들로 이뤄졌으며, 항상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데도 나 자신 안에서 그것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꿈의 해석-프로이트

이 저술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프로이트가 빠진 우울증과 그 기간에 이뤄진 긴 자기분석 과정의 산물이다. 이 자기분석을 통해 그는 두 달 반까지 올라가는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신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는 죽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놓음에 있어 죄의식을 가진 아들이기를, 즉 자신이 곧 이론화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유자이길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 이론을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한다.

 

정신분석학의 확장

꿈의 해석의 출간은 프로이트에게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몇 년 동안 수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일상생활의 병리(1901),성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무의식에 관하여(1915),자아와 이드(1923) 등이 그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빈에서 호의적 환영을 받았다. 유년의 성()이라는 주제는 아더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문학과 칼 크라우스(Karl Kraus)디 파켈(Die Fakel)같은 잡지들 속에서 자주 언급되었으며, 성의 병리학에 관한 연구는 특히 마조히즘과 소아애 개념을 정립한 리하르트 크라프트-에빙(Richard Krafft-Ebing)Psychopathia Sexualtis(1886)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프로이트의 주장들은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격렬한 논쟁의 불씨를 지피곤 했다. 몇 년 뒤, 그는 유명한 정신의학자가 된다. 많은 환자가 그의 병원을 찾아온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병원에 긴 의자를 놓고서 환자들을 눕게 한 뒤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말하게 했다. 또한, 프로이트는 자신의 학파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1902년부터 그는 매주 수요일 저녁 자신의 병원에서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 및 지식인 그룹과 교분을 나누었다. 열등 콤플렉스개념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바로 이 그룹의 출신이었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학파의 학자들(앞줄 왼쪽부터 프로이트, 샌더 페런치, 한스 작스Hanns Sachs, 뒷줄 왼쪽부터 오토 랑크, 칼 아브라함, 막스 에이팅콘, 어니스트 존스)

이 그룹은 1908빈 정신분석학회로 발전한다. 19073, 스위스 출신의 칼 구스타브 융(Carl Custav Jung, 1875~1961)과 루드위그 빈스방어(Ludwig Binswanger)가 프로이트 학파에 합류한다. 그룹 회원들은 국제적 운동의 토대가 될 새로운 정신의학그룹을 형성한다. 1908, 정신의학 최초의 국제회의가 찰스부르크에서 개최된다. 그 이듬해, 정신분석학회지의 창간호가 발행된다. 프로이트는 이 무렵, 미국에 초대돼 자신의 이론을 발표한다. 1911년 아들러가 프로이트의 성충동 중시를 비판하면서 그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개인 심리학회를 창설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평가하면서도 성 충동이 인간 동기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아들러는 개인의 주요 동기는 열등 콤플렉스의 극복의지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융도 1913년 자신의 학파를 설립하기 위해 떨어져 나간다.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매료되어 프로이트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초기 학설인 성욕 중심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집단적 무의식 세계를 탐구해 분석심리학설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신화와 종교에 관심이 많은 그는 집단적 무의식이 용, , , 부친 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거대한 특징적 형태와 같은 원형들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877~ 1926), 어니스트 존스(Ernest Jones, 1879~1958), 오토 랑크(Otto Rank, 1877~1939), 샌더 페런치(Sandor Ferenzi, 1873~1933)와 같은 새로운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사상을 변호하였다. 이들에 의해 프로이트 사상은 초현실주의, 맑시즘, 현상학, 문화인류학 등과 혼재돼 다양한 새 이론들을 생산해냈다. 그리하여 정신의학은 1920년대부터 인문과학의 핵심이론으로 각광받으면서 발전하게 된다.

 

 

1-(2). 대중의 관계를 논하는 사회학의 등장

 

대중의 시대에 접어든 20세기 전후하여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대두하면서 유럽에서는 사회학, 미국에서는 실용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인류문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이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학의 태동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                      가브리엘 타드(Gabriel Tarde, 1843~1904)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새로운 사회현상에 주목해 1948년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으나 사회학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었다. 20세기 들어 가브리엘 타드(Gabriel Tarde, 1843~1904), 르네 웜스(René Worms, 1867~1926),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1858~1917) 3명의 지식인이 사회학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 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타드는 저서 여론과 군중(1901)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파를 만들지 않은 외로운 학자였다.

에밀 뒤르카임(Emile Durkheim, 1858~1917)

웜스 역시 19세기 말 사회학 분야에서 혜성 같은 존재였으나 오늘날 그의 이름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는 1893년 국제사회학회지를 창간한 데 이어 그 이듬해에는 국제사회학연구소를 설립해 연례학술행사를 개최하였다. 웜스는  특히 1896조직과 사회를 출간해 당시 사회학 글쓰기의 전형(典型)을 선보였다. 웜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뒤르카임은 사회학에 대해 자연과학의 실험과 같이 비교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사회과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1895년 저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에서 사회학의 학문방식을 정의했으며, 1897자살에서 이를 자살의 문제에 적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사회학은 연구의 목적과 대상, 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사회학을 다른 학문과 관련해 잠깐 살펴보자. 특히 제도적인 부문에서 사회학의 발전은 어떠한가? 조직 활동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뒤르카임은 자신의 연구계획에 많은 사람을 참여시킨다. 그는 1898년 젊은 학자들과 함께 사회학의 해(L’Année sociologique)라는 학술지를 창간한다. 여기에 그의 조카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를 비롯해 모리스 할브와시(Maurice Halbwachs), 셀레스탱 부글레(Célestin Bouglé), 프랑수와 사미앙(François Simiand), 폴 포코네(Paul Fauconnet) 등이 가담했다. 이로써 프랑스 지식인사회에서 사회학이 주요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말은 갖가지 사회 문제가 제기되던 시기였고, 사회체제의 붕괴 위기감이 팽배했다. 불랑제주의(Boulangisme)와 드레퓌스(Dreyfus)사건과 같은 정치 사회적 위기의식이 젊은 지식인들을 뒤르카임의 주위로 모이게 했다. 프랑스 기득권 체제에 자리했던 반유대주의, 보수주의, 교권주의에 맞서 사회주의, 이성주의, 공화주의 정신이 사회적 의제로서 유행처럼 부상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험사회학의 선창자 중 한 명인 프레데릭 르 플레이(Frédéric Le Play)는 가톨릭 보수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사회학계에서 외면당한다. 사회학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이 지적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뒤르카임은 또한 사회학이 사회적 진보에 유용하고 실천적인 학문이 되길 원했다.

"우선적으로 현실을 연구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현실 개선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사변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라면 단 한 시간도 할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문제를 실천적인 문제와 떼어내서 연구하는 것은 실천적인 문제를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더 잘 해결하기 위해서다." (사회분업론의 서문에서)

 

독일 사회학의 한발 늦은 출발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사회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와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1903년 독일에서 최초의 사회과학 잡지라 할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잡지를 창간했다. 하지만 사회학이라는 용어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그 무렵,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서 지식인 사회에서 잘 알려진 베버가 경제사와 토지 소유문제, 주식 등 경제분야에서 다양한 저술을 펴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사회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로의 누적과 가정불화로 인해 1897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다. 베버는 1900년부터 활동을 재개해 사회과학 방법론과 인식론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이었다. 신교도 출신의 기업가 가족에서 태어난 베버는 경제적인 역동성과 종교적인 원리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연관성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그는 1905년 출간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분석하고,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윤리로서 금욕적 직업윤리를 강조하였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

베르너 좀바르트(1863~1941)도 비슷한 문제에 열중했다. 1902, 그는 자신의 역작이 될 근대 자본주의의 초판을 발행했는데, 이는 칼 맑스의 자본론을 잇는 명저가 되길 원하는 그의 야심이 담겨 있었다.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의 등장을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요인으로 파악했다. 특히 그는 이 요인들을 새로운 사회 계급, 예를 들면 기업가 같은 계급에 의해 발현된 새로운 정신의 출현과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어 1904년 베버와 함께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잡지(Archive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를 펴낸 좀바르트(1863~1941)는 윤리적 사회정책학파에 대항하여 사회정책 과학성의 확립에 힘썼다. 그는 역사학파의 몰이론성에 불만을 품고, 이론과 역사의 통합에 노력하여 경제체제의 개념을 확립하는 등, 경제사회의 전체적 파악을 시도하였다. 그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 근대 자본주의의 최종판(1927)이다. 그러나 베버와는 달리, 좀바르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은 채 부르주와지의 사회적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예컨대, 프로테스탄티즘 못지않게, 유대인 역시 자본주의의 등장에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물론 근대적인 시장체제의 발전에 있어 유대인의 역할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뤘다(유대인과 경제 생활(Die Juden und das Wirtschaft sleben, 1911). 그 뒤, 1913사치와 자본주의를 통해 부르주아의 사회적 삶의 조건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좀바르트는 금욕과 절제’, 소비의 억제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는 베버의 주장에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치와 소비가 자본주의를 지속시킨다고 주장했다. 독일 사회학의 두 거두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현대사회의 사회 문화적 토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10, 베버는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1858~1918), 페르디난드 퇴니이스(Ferdinand Tonnies, 1855~1936)와 몇몇 다른 사회학자들과 함께 독일 사회학회를 설립한다. 종교 영향력의 퇴조 속에 인간 소외, 과학과 기술의 발전, 행정과 경영의 등장, 노동문제 대두 등은 20세기 전반기 독일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독일 사회학회의 좌장격인 퇴니이스는 1887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출간했으나, 1902년 재판 발행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인간의 사회를 본질의지에 기초한 친족, 자연사회, 도시공동체 등의 게마인샤프트와 선택의지에 기초한 대도시, 국가, 세계 등의 게젤샤프트의 2가지 기본유형으로 분석했다. 그 사회이론은 산업화나 근대국가와 국제사회의 성립 등을 게마인샤프트적인 사회에서 게젤샤프트적인 사회로의 전개로서 분석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회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질서를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그의 영향력은 사회과학 전반에 미쳤다.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1858~1918)

이에 반해 지멜은 초기의 종합사회학에 반대하고 사회화의 형식을 그 내용으로부터 분리시켜 독자적인 대상으로 하는 형식사회학을 주장하였다. 그는 사회를 개인을 초월하여 실재하는 실체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에 반대하고, 사회를 각 분야의 기능적인 상호작용으로 파악하였다. 그에게 있어 실재하는 것은 통일체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개개 인간의 상호작용일 뿐이며 따라서 사회학의 대상도 개인 간의 심적인 상호작용에 두었고, 심리학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그는 1900, 저서 돈의 철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검토했으며, 특히 화폐가 물물교환-금속화폐-종이화폐로 진화하면서 결국 돈의 추상화내지 신격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멜에 따르면 돈은 모든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수로 환산할 수 있는 단순한 양적인 크기와 관계로 환원시켜버리며, 개인을 점점 더 단순한 경제적·사회적 기능의 담지자로 전락시킨다. 더욱이 원래 수단이었던 돈이 나중에 절대적인 수단이 되고, 또 절대적인 가치로 고양되며 종래는 신격화된다. 신용카드가 일반화되고 사이버머니까지 통용되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멜이 말한 돈의 추상화는 한 세기를 앞서 간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실용주의의 탄생

그러나 미국에서는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천착하려는 유럽의 지적 분위기와는 달리, 다윈의 진화론적 시각을 반영한 실용주의(pragmatism)가 태동하였다.

아이디어는 진짜 또는 가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1907년 펴낸 소책자 실용주의(Pragmatism)에서 이같이 주장하였다. 다윈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하버드 대학교수 출신의 그는 도덕, 정치,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실용주의적 가치의 우위를 설파하였다. 이어 등장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처음에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제임스의 실용주의에 이끌려, 실용주의 또는 인스트루멘털리즘(도구주의)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의 논리학적 이론의 연구(1903)에 의하면, 모든 사고는 혼탁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상황으로 개조하려는 노력, 다시 말하면 탐구인 것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해, 그는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면 불충분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시킴으로써 창조력을 발휘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현실사회의 모델로서뿐 아니라, 사회개조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이상사회로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미국 사상사의 주류 사상이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애써 무시되었다. 버틀랜드 러셀(Bertland Russel)은 실용주의를 장사꾼의 철학이라고 폄하했다

 

()제국주의 인류학의 태동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1858~1942)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의 영향 탓에 서구와 비서구 문명을 진화론적 차이로 설명하는 구분 짓기가 유행이었다. 인류학에 있어 루이스 모건(Lewis Morgan, 1818~1881)은 이미 1877년 저서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에서 진화론을 적용해 사회발전 단계를 구분 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관점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한 독일 출신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는 역사주의적인 입장을 중시하면서 문화를 통합적 전체로서 고찰하였으며, 문화영역 주변영역 부족유형(部族類型) 등의 개념을 고안하여 뒷날의 기능주의적 연구를 위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는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 Frazer)가 주창한 진화주의적인 문화발전론을 경멸하였다. 인류학계의 주요인물이 된 보아스는 인류학계의 한 세대를 구성한다. 로버트 로위에(Robert Lowie), 알프레드 크뢰베(Alfred Kroeber), 에드워드 사피르(Edward Safir), 랠프 린튼(Ralf Linton) 등이 그들이다. 인류학은 보아스와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됐다. 문화의 연구가 인종의 연구에 대해 우위를 갖게 된 것이다.

 

[공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 공개특강 <유목 미학 - 신들의 여행>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 <유목 미학 - 신들의 여행> 이라는 주제로 공개 특강을 진행합니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시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시간 - 2013 6월 29일 토요일 오전 11시

장소 - 경희대학교 청운관 309호

*누구든 오실 수 있습니다

 

 

[강의 소개]

유목미학은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질 들뢰즈의 유목론을 바탕으로 사상과 예술을 분석하는 새로운 미학 장르이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늘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처럼, 모든 사상과 예술의 속성 또한 끊임없이 이동하며 만남과 접속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예술을 탄생시킨다. 본 강의는 실크로드라는 특정 지역을 통해 이와 같은 사상과 예술의 속성을 밝혀나간다. 끝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에 고정된 영토가 없는 것처럼 실크로드 상에서 모든 사상과 예술의 원형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이 탄생한 첫 근원지를 묻지도 않으며,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상정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주변도, 근원도 파생도 없이 오로지 만남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 실크로드에 날아 온 동 서양의 신들은 더 이상 원형 그대로의 신들이 아니다. <유목미학 신들의 여행>은 이처럼 차이와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실크로드 예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진정한 평등의 세계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획전시 <꿈꾸는 사물들> (~7/7)

 

 

전시 기간 2013-05-10~2013-07-07

전시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출품 작가 백남준외 20명 (작품 22점)

 

 

전시의도

 

“꿈꾸는 사물들”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물질에 의해 구성된 작품들의 전시입니다. 사물로서의 미술작품은 20세기 초부터 꾸준히 실험해온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입니다. 특히 이러한 미술적 사물을 ‘오브제(object)’라 칭하는데, 이 오브제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회화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효과를 발생합니다. 예컨대 사실적인 회화의 경우, 화면 속 물감들의 조합이 ‘어떤 여인’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효과로 드러납니다. 이럴 땐 우리는 그 그림을 ‘물감자체나 그것들의 얼룩’으로 보지 못합니다. 오브제 또는 물질들로서의 작품은 이처럼 그림 밖의 어떤 대상을 지시한다거나 하는 효과보다는 사물이나 물질 그 자체의 상태에 주목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들을 일컬어 ‘자기 지시적’이라거나 그런 경향이 강한 작품이라는 비평적 견해를 함축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사물들이 본래의 기능을 박탈당하고 작품 속에서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다거나, 원래의 기능이 유추되는데도 낯선 장소에 놓이게 돼 아이러니를 발생합니다. 이 아이러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발언합니다. 우오타 마투(Uota matoo)의 <탈피(초상)(Escaping(Portrait)>이나 김정명(Kim Jung-myung)의 <빨(Ppal)>은 마치 사물의 화석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상식(Lee Sang-sik)의 <무계(巫界)(The Shamanistic World)>나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의 <무제(Untitled)>, 마이클 맥밀런(Michael Mcmillen)의 , 윤영석(Yoon Young-suk)의 <마주보는 손(Facing Hands)>과 같은 작품들은 서로 관계없는 사물이나 기호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화음을 냅니다. 백남준(Nam June, Paik)의 <김치와 절인 양배추(Kimchee and Sauekrut)>, 이우환(Lee Ufan)의 <오브제(Object)>,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무제(Untitled)>, 마리코 모리(Mariko mori)의 <무제(Untitled)>와 같은 작품들은 마치 사물들의 박제를 보는 것과 흡사합니다. 전광영(Chun Kwang-young)의 , 김홍석(Kim Hong-suk)의 <개폐-20(Opening and Closing-20)>, 윤필남(Yoon Phil-nam)의 , 정경연(Chung Kyung-yeun)<무제(Untitled)>의 작품은 어떤 물질이나 물체의 조직을 관찰하게 합니다. 이처럼 작품으로서의 사물들은 새로운 발언체로 재탄생합니다. 이들은 마치 꿈을 꾸듯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입니다. 이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20여점으로 구성된 전시입니다. “꿈꾸는 사물들”에서 그들과 함께 꿈꿔보는 것을 어떨까요?

 

들뢰즈의 ‘배움’으로 무엇을 사유할 수 있을까

최승현(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1. 배우기 위해 배워라

 

들뢰즈는 자신의 언어가 하나의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원했다. 배움(apprenticeship)은 그가 고안해낸 여러 개념 중에서도 가장 쓸 만한 것 중 하나이다.

 

 

1) 당신의 패스워드

 

오늘날, ‘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은행에서도, 포털 사이트에서도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 들어갈 때조차도 이런저런 패스워드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전 우리의 삶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군대로, 군대에서 공장으로 그리고 때로 병원으로 잠시 들락날락 거리는 식이었다. 각각의 장소에는 각각의 논리가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 걸맞은 신분증명서 학생, 군인, 노동자 - 를 발급받았다. 마치 축구장에서 수영장으로 장소를 바꾸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미셸 푸코의 말을 따라 훈육사회라고 불렀다. 특정한 담론의 장소에서 특정한 권리를 누리는 대신, 반드시 거기에서 요구하는 복종의 체계 또한 몸에 익힐 것. 여기서는 복종의 언어인 동시에 저항의 언어이기도 한 암구호(暗口號, watchwords)가 지배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구분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새로운 체계, 곧 일방향적인 패스워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패스워드를 만든 주체의 기획 의도를 모른 채 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학교와 공장 그리고 군대라는 분절된 체계보다 훨씬 더 미시적인 수준에서 작동한다. 예컨대, 사병과 대위 그리고 장군이 갖는 패스워드의 권한 수준은 다르다.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의사가 갖는 패스워드의 개수가 같을 리 없다. 당연히 같은 장군과 의사 사이에도 다른 수의 패스워드가 주어진다. 이제 한 개인이 자신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열 개 이상의 패스워드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교복이나 군복이라는 겉모습으로 자신을 확인하던 사회가 기호(패스워드)를 동반한 가운데, 보다 정교하고 비가시적인 형태의 섬세한 지배로 진화한 것이다. 마치 서핑을 하듯 사회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를 관리해준다. 개인이 파산하면 구제해주고, 직장을 잃으면 다른 직장을 부지런히 알아본다는 조건을 붙여 실업급여를 준다. 들뢰즈의 말을 따라, 우리는 이런 사회를 관리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교육의 목적

 

신경제 현상은 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은 바 있으며, 요즘에는 창조경제라는 말로 바뀌어 유통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경제 현상은 이전의 경제현상과 무엇이 다른 걸까. 이 현상은 재화(財貨)를 이해하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 특징을 살펴보자. 영화나 음악의 경우 반드시각자가 체험해야만 그 쓸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재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백만 명이 체험해도 천만 명이 체험해도 처음 한 사람이 체험할 때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한다. 보통 물건이라는 것이 한 번 쓰고 나면 닳게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감가상각이라는 고전경제학의 원칙이 폐기된다. 둘째, 특정한 문화상품은 음원, 캐릭터 상품, 여행 상품 등 갖가지 상품 군을 쏟아낸다. 이는 이전 경제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이다.

이렇듯 완전히 새로운 경제 현상의 도래는 기업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가가 기업에게 끌려다닌다는 사실을 이제 더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 또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교육이 중심이 되며, 평생학습이 보편화되는 사회입니다. 지식과 창의력이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고,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평생 동안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공유하고, 전파하고, 가공하고,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 신지식인이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활동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입니다.

 

1999년 당시 교육부는 새로운 세기를 앞둔 미래 국가 전략으로 신지식인의 육성을 언급한 바 있다. 얼핏 듣기에 평생 배운다는 말은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취업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나 신지식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찬욱처럼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며, 김연아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사람은 김연아 본인뿐이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노동력과 지식을 팔아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위해 대학의 전통적인 교양교육(, , )이 기여한 바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체계론의 주창자 니콜라스 루만(1927~1998)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보편적 앎이 폐기된 사회에 살고 있다. , 종교적 지식은 신앙이라는 보다 상위의 가치에 봉사하는 정도로만 기능하면 된다. 예술적 지식 또한 그 감각에 대해 설명하는 정도로만 활용되면 된다. 이전 시대까지 우리는 암묵적으로 앎에는 위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플라톤은 정당화를 거친 지식이야말로 보다 참되다고 설파하였으며, 이런 원리에 따라 학문과 학문 아닌 것을 구별해 왔다. 이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문화를 전수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 없이 안정적인 정신적 기반이기도 했다. 아무튼, 루만 이래로 종교계, 예술계, 과학계는 자신의 분야에 적절한 지식체계를 가지고 스스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플라톤이 말하던 지식의 위계는 이제 그저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불행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다원화된 지식사회에 대한 그의 논의는 철저하게 왜곡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만이 쓸모 있는 것이라는 기업가들의 주장에 활용되었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자신의 모습을 바꿀 줄 아는 기업은 플라톤 이래로 전승되어 오던 배움의 의미 또한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바꿔 놓았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배워라!” 기업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학습조직으로 각광받게 되고, 학교가 이를 따라하는 역전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들뢰즈는 배움에 관한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알기 위해 배우지 마라, 배우기 위해 배워라!” 그의 이런 메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관리사회로서 볼 때라야, 비로소 실감 나게 다가온다.

 

 

2. 배우는 존재들, 아동과 청소년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의 목적 또한 취업에 가두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담론은 무엇일까? 들뢰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을 지목한다. 여기서는 정신분석의 눈으로 배우는 존재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볼 때의 문제를 문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1)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가볼까

 

오늘날 우리는 아동·청소년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은 결핍의 시기일 뿐인가, 아니면 오히려 특권을 간직한 시기인가. 이 시기가 어떻게 이해되건 그 바탕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아동이라는 관념은 18세기에, 청소년이라는 관념은 19세기에 생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관념이 언제 생겼느냐가 아니라 유아-아동-청소년-청년에 이르는 일련의 연속선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의학에서의 소아청소년과, 교육학에서의 초등교육과와 같은 구분들은 이때 이후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아동학이나 청소년학과 같이 어느 분과에 두어야할지 막연한 간()학문적 성격을 띤 분야 또한 출현하고 있다. 그만큼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보는 문제는 여러 개의 렌즈가 협력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임이 틀림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프로이트(1856~1931)의 논의는 오늘날의 이러한 구분을 떠받치는 거대한 이론적 저수지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보다 앞선 시대인 빅토리아기를 혐오했다. 이때는 아동의 누드화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그들에 대한 체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아동기 때 겪은 성적 수치심이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이어받은 현대 연구자들은 공부에 집착하는 사람 또한 아동기 때 겪은 성적 트라우마(외상)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우리의 흥부, 놀부이야기만큼이나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또한 이런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잠시 내용을 살펴보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맥스는 그날도 어김없이 방을 난장판으로 바꿔 놓았다. 엄마는 맥스를 방에 가두고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맥스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괴물 나라로 마음속 여행을 떠난다. 괴물 나라에서 그는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의 왕이 되지만 이내 심심해진 나머지 배를 타고 현실의 나라로 돌아온다. 이 줄거리는 전형적인 애정결핍에 따른 현실도피라는 도식으로 이해된다. , ‘아빠-엄마-라는 삼각관계, 곧 가족 로맨스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을 때 아이는 고통을 피하려’(쾌락원칙) 든다는 것이다. 이 동화는 다음의 말로 마무리된다.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다.” 아이는 잠시 마음속 여행을 통해 가족을 떠났지만, 다행히도 저녁밥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들뢰즈 그리고 그와 함께 작업했던 가타리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 공고한 가족 삼각형이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전형화된 가족의 논리가 확대된 거대한 복합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 국가 속의 어린아이들로서 늘 상상력을 거세당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2) 삶의 치료제인 문학

 

다시 프로이트로 돌아가 보자. 그에게 욕망은 억압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한 사람이 발가벗고 돌아다닌다면 곤란하다. 친절한 말을 쓸 줄 모르고 중얼중얼 대고 다니는 사람은 환자이다. 정신분석론에서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먹고 산다. 따라서 미친 말과도 같은 욕망은 당연히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상징의 세계 앞에서 멈추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는 치료의 대상이 된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특히 아동·청소년기는 어릴 때의 충격으로 인해 균형을 잃기가 매우 쉬운 시기, 곧 치료의 대상이 되는 시기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욕망 = 욕구 요구.’ 예컨대, “배고프니까 밥 줘라는 말에서 배가 고프다는 욕구와 밥을 달라는 요구 간의 차이가 욕망으로 정의된다. , 우리의 욕구와 그것에 대한 요구는 늘 뺄셈, 결핍의 관계라는 것이다. 꿈틀대는 욕망은 상징의 세계가 허용하는 만큼만 허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정상인으로, 보다 정확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 보기에 정상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편집증자, 이 말이 지나치다면 신경증자들에 불과하다. 늘 상징의 체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느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도시에서 촘촘하게 짜여진 동선과 시간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군중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는 이런 삶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문학에서 발견했다. 거기에서는 신경증자와는 대립되는 분열증자가 주인공이 된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바퀴벌레가 된다. 그렇다면 앞서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작품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맥스는 가족 삼각형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고통스러워서 그리고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갔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3. 배움의 사회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은 한 개인의 내밀함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원자화된 개인 혹은 가족의 단순한 합이 사회라는 생각에 씨를 뿌렸다. 오늘날 인간발달,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연구는 이 패러다임에 얽매여 있다.

 

 

1) 고전적 실험심리학

 

다람쥐가 수상스키를 타고, 돼지가 빨래를 집어 빨래통에 넣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훈련 덕분이다. 고기를 보여주면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1849~1936)의 고전적 실험에서 출발한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는 점차 발전하여 복잡해져 간다. 먹이를 누르면 나오는 장치와 뜨거운 그릴을 동시에 설치하면, 생쥐는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환경에 따라 동물들은 자신이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할 때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일종의 구조화된 의식 상태를 강제한다. “이렇게 해야만 칭찬을 받는구나하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개별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행동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과에 따라 행동한다는, 즉 좋은 결과를 얻을 때에만 행동한다는 식의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쾰러(1887~1967)와 같은 인지주의 학자들은 이 점을 의심했고 침팬지와 비둘기를 다시 실험실로 보냈다. 박스가 어지럽게 놓인 가운데, 천장에는 맛있는 바나나가 매달려 있다. 신기하게도 침팬지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이를 쌓아 바나나를 얻는 데에 성공한다. 다른 사례도 있다. 긴 호리병 속에 맛있는 과일이 들어있지만 꺼내 먹을 수 없다. 그러자 침팬지는 우리 주변의 물을 입에 담아와 호리병 속에 부었고, 이렇게 하니 과일이 떠오른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보면 동물 또한 단순히 결과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인지구조, 즉 계산능력을 갖춘 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언어를 가진 인간이 이렇게 행한 실험과 같은 논리로 이해될 수 있느냐에 있다.

 

 

2) 배움의 사회성에 대한 통찰

 

장 피아제(Jean Piaget, 1896~1980)

잠시 심리학자 피아제(1896~1980)에 관해 살펴보자. 그는 감각 운동기-전조작기-구체적 조작기-형식적 조작기라는 발달 도식을 제창한 이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4살에서 7살쯤에 해당하는 구체적 조작기에서 보존 개념을 획득한다. 그릇 모양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물의 양이 같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게 끝나고 나면 언어를 통해, 곧 상징체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형식적 조작기가 도래한다. 대략 7살 이후부터다. 피아제는 이전 단계가 나타나야만 다음 단계가 온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발달이 우선하고 학습은 다음에 위치하게 된다. , 무언가를 배우려면 그것에 걸맞은 인지구조가 획득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행동에 대한 관찰결과와 말에 대한 관찰결과를 서로 관계없는 것으로 이해해 버렸다. 그가 보기에 아동의 언어발달 또한 혼자 말하는 자폐적 수준에서 사회적 수준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중요한 가정이 담겨 있는데, 행동에 대한 실험이 가정하는 바를 언어발달에 대한 이해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한 사람의 아이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이 합해진 것이 사회라는 생각을 언어발달의 순서에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가정에는 어떤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언어란 일차적으로 타인과의 의사소통 구조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행위에 대한 성찰의 도구도 된다. 한 아이의 언어능력이 향상되면 될수록 특정한 행위능력을 뛰어넘는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내고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정말 동물이나 인간 모두 주변 환경이나 타인에 대한 인식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을 배우고 말을 배우는 걸까?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 곧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것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성립하는- 에서 출발하여 개체 혹은 개인의 내면화에 이른다고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이를 동물에서 관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소리를 지르는 등의 몇 가지 행동만을 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반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에 대해 묻게 될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비고츠키(1896~1934)라는 러시아의 심리학자는 이런 의문을 품었었다.

이 지적은 들뢰즈의 배움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만하다. 그가 이렇게 해 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해보자라는 식으로 배움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간의 상호 교섭을 말하는 것이다. 이 상호 교섭에서 중요한 것은 신체적 차원의 감응(affect)이다.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우는 학생이 접영에 관한 설명을 아무리 정확히 이해했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실행할 수는 없다. 그는 처음에 언어로 들은 설명을 내면으로 곱씹으며 그것이 무의식적 차원의 습관이 되게 하기 위해 연습을 반복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강사는 틀린 점을 지적하거나, 함께 실행해 봄으로써 가르치는 기술 또한 향상되어 간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은 수영장 및 수영지식이라는 환경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의 환경이 되어 변용을 경험한다. 들뢰즈가 이런 간단한 사례를 통해 배움에 대해 설명할 때에도, 이렇듯 거기에는 늘 집단적 주체화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앞서 경험적 사실에만 바탕을 둔 피아제의 설명과는 대조된다. 들뢰즈는 배움이란 늘 과격한 도야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배운다는 것은 늘 앎과 모름 사이에서 진동하는 활동이다. 이는 앎과 모름을 날카롭게 구별했던 플라톤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앎의 상대성이라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의 구연과 탈식민주의

이석호(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

 

 

 

 

문학사 기술의 어려움

 

소위 탈식민주의 세기 혹은 문화다원주의 세기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아프리카 문학사 혹은 넓은 의미의 아프리카 문화사를 기술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아프리카의 문학사 혹은 문화사를 기술하는 일이 지난한 이유는 소위 유럽식 근대의 발명품 중의 하나인 문학사혹은 문화사라는 다분히 특정한 지역의 특수한 계량적 의식을 반영하는 기제를 가지고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정서적 타자의 지적이면서 동시에 즉물적인 생산물의 가치를 올곧게 계량하는 일이 가능한가에 대한 객쩍은 의문 때문이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경우는 근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통팔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 기형화의 가장 악랄한 제물로 전락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 계량화의 의도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실제로 유럽이 공평무사하다는 과학의 이름으로 사해만방에 선포한 문학사혹은 문화사라는 계량적 기획은 현실적인 적용 과정에서 딱히 객관적이지 않았다. 그 점은 소위 정전이라는 문학사혹은 문화사의 계량화 과정에서 합격 점수를 받은 검증물을 그 양과 질 면에서 다시 심문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전 세계 인구의 육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구미인이 생산한 문학이 그 나머지 인구가 생산한 방대한 저작물보다 양과 질적인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며 늠름한 정전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점은 앞서 말한 계량화의 객관성을 쉽게 수긍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의 문학사는 다른 기준과 관점으로 철저히 다시 쓰여야 한다. 원주민의 기준과 관점이 그것이다. 한 예로 남부 아프리카는 통상 여러 개의 문학사를 가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만 예로 들더라도, 화란계 백인들이 주축이 되어 쓴 아프리칸스 문학사’, 영국계 백인들이 중심이 되어 쓴 남아공 영문학사’, 그 외에도 원주민 문학을 대표하는 줄루’, ‘코사’, ‘템바문학사 등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중 근 이, 삼백여 년 동안 화란계 백인 문학과 영국계 백인 문학만이 대내외적으로 남아공 문학의 대표성을 띠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식민주의 백인 권력이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나아가 가치체계를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왜곡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아공을 포함한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문학사적 이해를 보다 농밀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자들이 내세운 소위 공식문학사이면에 숨어 있는 원주민 문학사’, 원주민들의 구전문학사를 반드시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왜곡과 굴절로 점철된 이 지역의 고대사는 물론이고 근, 현대사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구연 시

 

오늘날 아프리카 지역의 '구연(Oral Performance)'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인 남부 아프리카는 대체로 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남아공을 비롯해 짐바브웨, 잠비아, 레소토, 스와질란드, 말라위, 나미비아, 모잠비크, 앙골라, 보츠와나 등 총 14개국을 일컫는다. 과거 영국,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포르투갈 등 당대 소위 가장 잘 나가던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분할, 통치를 당한 나라들이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순환해내는 풍부한 구연문화를 자랑한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여느 지역과 비교해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산(일명 부시맨)을 비롯해 코이-코이인들(일명 호텐토트) 그리고 기원후 약 3세기경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철기를 들고 남하한 반투인들과 17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는 다양한 국적의 백인들이 문화적으로 상호 교차하면서 드러내는 영향 관계의 다양성 때문이다.

본디 구연이란 조상신의 음덕을 기리거나 추장이나 왕 같은 권력자의 치적을 칭송하는 것은 물론 성년식이나 장례식 혹은 결혼식, 아이가 태어날 때, 사냥을 나갈 때, 일을 할 때 등등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연관된 일을 수행할 때 일종의 음유시인인 임봉기그리오등이 읊조리는 시 또는 노래와 춤 등을 가미한 연극 등 일체의 공연 양식을 의미한다. 이는 철저하게 문자기록이 아닌 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연희 혹은 공연 양식으로서 남부 아프리카 전역 나아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인류에게 공히 향유된 보편적인 문화 양식이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 활자의 발명 이후 근대 유럽은 자신들의 역사 체계를 정립해가는 과정에서 문자가 아닌 에 기초한 문화를 타자화, 주변부화, 엽기화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처럼 약 3, 4백여 년에 걸쳐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지역의 경우, ‘문자문화에 의한 문화의 억압 및 왜곡의 정도는 그 강도가 훨씬 심화된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지만, ‘문자보다 가치론적으로 우수하다는 판단은 편견에 가깝다. 이는 굳이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와 러시아의 민담분석가인 프로프 및 야콥슨 그리고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에 기초한 구연 문화의 가치를 존재론적으로 복권시키지 않는 한, 좁게는 아프리카 문화의 원형질은 물론이고 넓게는 유럽 문화 자체를 포함한 인류 문화의 한 원형을 의미 있게 적출해낼 수가 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만큼 구연 문화가 다양한 지역은 드물다. 특히, 고고학과 인류학의 역사를 날마다 새롭게 써야할 만큼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앙골라의 경우 오빔빈두, 음분두 그리고 아프리카인과 포르투갈인의 혼혈인 물라토 등이 창조한 구연 문화는 그 풍성함의 정도가 여느 민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과거 베추아나란드로 불리다가 1966년 영국에서 독립한 보츠와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쎄츠와나어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구술 시는 가히 압권이다. 또한, 한때 바수토란드로 불리다가 보츠와나와 같은 시기 영국에서 독립한 레소토도 쎄수투어를 쓰는 바수토인들이 만든 수많은 구연 문화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외에도 말라위의 통가인들, 모잠비크의 야오인들, 나미비아의 부시맨들, 스와질란드의 스와지들, 잠비아의 벰바인들, 짐바브웨의 쇼나인들 및 응데벨레인들 그리고 남아공의 줄루, 코사, 템바인들 등이 만든 구연 문화는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구연의 대중화

 

오늘날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목적의식적으로 복권시키고 있는 구연은 형태와 내용 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낭송시, 공연, 가요, 집회 등속과의 접목을 통해 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구연 형식의 대중화는 내용 면에서도 과거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구술의 형식으로 집요하게 기억해내는 것에서부터 백인의 출현이 갖는 의미,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가 끼친 폐해 등 정치적인 주제 그리고 일상사의 반경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이는 근대 이후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서구화에 대한 아프리카 식 응전이자 응구기의 표현대로 총체적 탈식민화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보다 농밀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 원주민들의 역사의식이 질펀하게 각인되어 있는 구연문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곡과 굴절로 점철된 이 지역의 고대사는 물론이고 근,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한 원주민들의 구연문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앙고라 시인이자 초대 대통령, 안토니오 네투(1922~1979) attribution Chaplin2222 at commons.wikimedia.org

특히 백인들이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글 문화의 우수성을 노골적으로 상찬하면서 원주민들의 말과 입, 스피박 식으로 말하자면, “, 간접적으로 대변 및 재현하던 20세기에 이르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왜곡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지배적인 문화양식인 시와 연극 등을 합법적으로 차용해 그 속에 불법적인 구연 내용을 채워 넣음으로써 전통적인 백인들의 글 문화를 전복한다. 이 시기 구연 양식의 전개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원주민들의 구연이 연극과 시, 대중가요 혹은 노동요, 심지어는 소설로까지 접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연에 대한 탄압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구연의 총체적 생활세계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것은 백인들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원주민들의 문화적 저항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시를 접목한 가장 대표적인 구연 형식으로는 짐바브웨의 맘보북이 있다. 이 책은 백인들의 시 형식을 빌려 쓴 것인데, 시작하는 첫 40여 쪽을 응데벨레인과 쇼나인들의 전통적인 구연인 노동요, 자장가, 사냥가, 연가 그리고 동요 등을 가지고 어떻게 민중들을 의식화시킬 것인가를 소개하고 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대표적인 구연 시인인 네투, 작신투, 쑤싸 그리고 꾸뚜 등도 서구의 시 형식을 활용해 저항의 내용을 전한다. ‘드럼지를 중심으로 저항적인 구연시를 썼던 오스왈드 음찰리와 시포 세팜라 같은 남아공의 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연극을 접목한 가장 대중적인 구연 형식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극형태를 모방해 민중교육을 표제화한 로버트 맥라렌의 짐바브웨 교육극단이 유명하다. 이 극단은 아리스토텔레스 류의 서양연극문법을 거부하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구연에 기초한 연극을 선보인다. ‘개발연극이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주제를 제창하면서 1970년에 창단한 잠비아의 차크와케극단도 주목을 요한다. 이 극단은 대사 위주의 서양연극을 배제하고 프웸바 춤이라는 선동적인 춤에 국외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쇼나어로 구연을 하는 극단이다. 스티브 비코의 흑인의식운동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남아공의 빈민촌 연극흑인 연극도 구연을 지배적으로 활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과 피터 부룩의 빈 공간그리고 아구스또 보알의 피억압자의 연극론을 노골적으로 아프리카화한 남아공의 이들 원주민 극단들은 대서양 헌장의 의미를 유린한 스멋과 말란 정권을 비판하는 자유헌장을 극 중에 선언하는가 하면, 동시에 당시 관계가 소원하던 아프리카 민족회의범아프리카 회의의 단결을 촉구하는 공연을 벌이기도 하는 등 극의 정치화 나아가 대중화를 꾀한다.

 

구연과 탈식민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         케이프 반도

앞서 보았듯이 구연을 단순히 문학적인 맥락에서만이 아니고 전방위적인 맥락에서 탈식민화의 도구적 내러티브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남아공이다. 남아공의 화란계 백인들은 1948년 총선에서의 승기를 기반으로 삼아 파천황의 인종차별주의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감행한다. 이후 남아공 땅에는 아프리카너(화란계 백인)’ 문화만이 유일무이한 공식문화로 유통되고, 코사, 줄루, 수투, 템바, 응데벨레, 스와지 등속의 원주민 문화는 비공식문화로 음성화되고 만다. 한 개의 공식문화/역사만이 남고, 열 개 혹은 그 이상의 문화/역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남아공의 현대사는 바로 이 한 개의 공식문화와 그 외의 비공식문화가 상호 치열하게 벌인 인정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의 샤프빌1976년의 소웨토항쟁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사건 모두 형식적으로는 통행법반투교육법에 대한 갈등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원주민 문화에 대한 강력한 인정 혹은 추인의 욕망이 숨어 있다. 이들 원주민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는 한, 남아공의 근, 현대사는 곡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란츠 파농과 에이메 세자르의 지적대로 식민주의자들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원주민 문화에 대한 왜곡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탈식민지 과정 attribution Jjw at ko.wikipedia.org

남아공 외에도 구연의 복권을 탈식민주의 운동과 가장 활발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나라로는 나미비아를 꼽을 수 있다. 과거 서남아프리카로 불리다가 1968년 나미비아로 개명한 이 나라는 선사 시대부터 이곳에 살던 부시맨 및 코이-코이인들을 비롯해, 후에 정착하게 된 반투 원주민인 나마와 다마, 케이프 식민지 출신의 화란계 백인들 그리고 1884년 이 땅을 보호령으로 선포한 비스마르크의 독일인들이 군웅 및 할거하던 지역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칼리하리 사막을 끼고 있어 과거 이곳을 순례하던 백인들에게는 미지와 야만의 땅으로 인식되던 곳이기도 하다. 구스타프 프렌센이 쓴 피터 무어의 서남아프리카 기행이 그 일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이처럼 나미비아는 풍부한 원주민들의 문화와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가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땅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지역의 문학을 경계문학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제이 엠 쿠찌에는 황혼의 땅이라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백인들의 여행기 문학이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탈구조주의 논법을 동원해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독립 후 나미비아의 원주민들은 다양한 형태의 구연을 통해 이 땅이 지닌 태곳적 신비와 백인과의 조우 그리고 비극으로 점철된 오욕의 근, 현대사를 그들의 언어로 다시 풀어 쓴다.

이처럼 남부 아프리카의 구연문화는 그 형태와 내용 면에서 매우 다종다기하다. 더욱이 공들여 발굴을 해야만 되살아나는 화석화된 전통이 아니라 일상사의 구석구석에 편재해 있어 언제든지 상용이 가능한 과거이다. 레이몬드 윌리암스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살아남은 과거인 셈이다. 이처럼 언제든지 상용이 가능한남부 아프리카의 과거와 그것을 가장 원형적인 형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지역의 구연문화가 이 지역의 생활사 및 문화사 나아가 역사 일반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배제되어 왔던 이유는 좁게는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식민지 본국의 유럽중심주의적인 사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보다 보편적인 정서, 즉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원천적인 모순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의 근대성과 끊임없이 길항하면서 자신의 역사를 내면화한 이 지역 원주민들의 구연에 관심을 쏟는 일은 현행 아프리카를 비롯한 주변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다시 쓰기운동을 집행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 이석호

(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집행위원.
영국 런던에 Southern Voices Press 를 차려 비서구 문학 중심의 세계문학전집을 간행하고 있다.
쓴 글로는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와 근대성』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외 이십 여 권의 책이 있다.

[수상자답안-글쓰기의날] 18대 대선의 정치사적 의미 / '1+1=2'가 되어야 하는 이유

 

[주제1: 18대 대선 결과가 한국의 역사에서 띠는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 우수상

* 학과 : 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조재완                          

 

18대 대선이 끝난 지도 3주 정도 지났다. 대선은 한 쪽이 승리를 만끽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5년간 절치부심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1등만 존재하고 2등과 3등은 없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기에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 결과물은 오직 한 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고 보기도 하고 세대간 대결이라고 보기도 지역 대결의 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대선이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이번 대선은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중요한 선거였음이 분명하다.

첫째, 경제적으로 과거 3저 시대의 호황시대는 저물어가고,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각국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이 커져가고, 무역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은 유럽, 미국, 일본, 한국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둘째,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다소 침체되어 있지만 무시 못 할 저력을 가진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의 정치적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조선시대 말 황준센의 '조선책략'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의 생존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생존전략을 짤 시기이다. 


셋째, 김정일은 뒤이은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중국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자가 망해도 3대가 간다는 말이 있다지만 이는 한 집안으로 문제로 귀결될 터이지만 한 나라의 3대 세습은 영향은 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국가 경영은 마음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거 기간 내에 양 측이 내놓은 공약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해결하려고 하려면 단순히 행정력 하나로 해결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18대 대선 결과가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새누리 당이 승리로 역사에 쓰여질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51.6% 국민이 선택한 이유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는 48% 반대하는 국민도 나름 이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보수층의 승리인가?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수층, 중도층, 진보층의 세 계층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적인 상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책도 한 쪽에 편중되지 않은 양 쪽을 만족시키는(거칠에 말해 양다리를 걸치는) 정책이 도출된다고 한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층의 결집과 중도층의 보수층에 대한 지지로 승리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굳이 이 기사에 어깃장을 놓고 싶진 않다. 그리고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프스테드의 '불확실성의 회피'를 가진 한국인의 심리를 들고 싶다. 세계는 계속 변하고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각종 정보, 기술, 문화 등 우리가 적응할 만 하면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신이 주변이 모두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경계에 있을 때 무언가 확실한 것을 원하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격변의 시기에는 기회도 많았고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 번의 실패는 실패 그 이상이 되었다. 더 이상 패자부활전은 없다는 초조감에 큰 변혁보다는 작지만 정치적으로 확실한 것을 원했을 거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붕쟁에서 보면 노론은 서인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면 임진란 이후 근 200년 동안 조선의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동인이 급진적인 반면에 서인은 보수적이었다. 서인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지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정치적 디엔에이가 보수 쪽에 가까울 거라는 판단은 논리적 비약이지만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그 정치적 기조는 보수에 보다 가깝다고 할 것이다.


둘째, 먹고 사는 문제가 정의(민주화 문제 포함해서)를 이겼는가?

사람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여유는 없어진지 오래다. 삼포세대를 아는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한다. 위 3가지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단연코 경제적 문제라는 점이다. 자신의 앞가림하기에 바쁜 세대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라는 말은 소위 씨알도 안 먹힌다. 위의 문제가 국가적 재앙이긴 하지만 개인적 입장에서는 매우 서글프지만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는 이제 모든 선거의 핫 이슈로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이다.


여기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묻어 있다. 여기서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자 한다. 단군 시대이래로 끼니 걱정 없이 살게 하고, 현재의 경제적 힘을 키운 배경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의 덕분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제적 과실의 분배 및 노동권 등 인권에 대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는다. 


오일 쇼크를 제외하고 매년 10%가량 성장을 거듭한 그때를 그리워한다. 그 당시로 가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그때처럼 해 줄 수 있으리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진보 계열 신문은 다음 정부가 실패한다면 고 박정희 대통령의 신화 및 환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리라는 점에서 진보에게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대통령 당선자는 대중의 심리적 측면에서 긍정적 선점을 차지한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셋째, 지역 간의 갈등은 언제까지인가?

국회의원 선거이든 대선이든 깃발만 꽂으면 이기는 곳이 있다. 말을 안 해도 모두가 아는 곳이다. 사람이 좋아도 능력이 있어도 어느 지역은 이성적 판단으로 일반적인 선거 전략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으면서도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이 집중되어 있고 인구도 그 곳에 과밀상태로 놓여 있다.

반면 지방은 저개발로 쇠락하고 있다. 그래서 국토 균형 발전론이 나왔으리라 본다. 이번 대선에서 특정 지역의 몰표가 나오긴 했어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 간 갈등을 매개로 그동안 앉아서 헤엄치듯 정치를 한 집단은 그 변화의 기조를 잘 읽어야 할 것이다. 

과거 현재보다 재원이나 자원이 부족했던 때에는 한 곳에 몰아주는 집중과 선택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현재의 가용자원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합리적 수준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내밀어야 갈등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넷째,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에는 기술은 부족해도 만들어 놓기만 해도 팔리는 시대가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라면 하나를 사더라도 다양한 가격대 여러 가지 제품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집단도 하나의 정책을 만들고 느긋하게 국민을 기다리는 여유 있는 시대는 지났음을 알아야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를 넘어서 그 안에 고객 만족과 더불어 고객 감동을 시켜야 한다. 그 고객은 바로 국민이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자는 다양한 이익집단 및 단체에 여러 가지 공약을 했다.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해서 그랬을지 나름대로 분석하고 준비해서 그랬을지는 앞으로 두고 볼 것이지만, 세대와 계층이 더욱 세분화된 사회에서 단순히 중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및 30대와 그 윗세대간의 갈등은 심히 우려할 만하다. 다음 선거에도 이 점은 정치적 변수가 되리라 생각한다.


현직 대통령보다 취임할 대통령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이때, 뉴스에서는 인수위에 대한 나름대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늘 민주당에서 발표하기를 선거 패배의 책임을 가리는 일보다는 그 원인에 대해 분석에 주력하겠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번 18대 대선 결과가 정치사에 미친 의미는 개인적 가치관은 진보적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보수적 가치관을 옹호한 집단의 우세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과거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를 갈망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언급했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 지역적 특성(점점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계층의 요구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들은 어떻게 정치적 세분화 과정에 넣을 지는 다음 정부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보겠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생활은 일반 국민과 호흡해야 그 가치가 있다. 조선 후기 영정조 대 이후 세도정치가 이어지면서 일부 가문에 의해 휘둘린 정치는 조선 시대의 역량을 갉아먹고 새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한 채 후손에게 큰 짐을 넘겨주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 발전이 더딘 분야가 정치라고 한다. 이번에 집권에 실패한 정당이나 성공한 정당이나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정치적 요인을 잘 분석하여 정치집단 내에 담론에 이르지 않고 국가 발전의 디딤돌로 활용하여 국민 사이에 함께 소통하고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우수상

* 학과 : 호텔경영학과

* 성명 : 심유리


2012년 12월 19일에 행해진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참으로 다양한 반응들을 불러 일으켰다. 여당과 야당의 승부는 늘상 있어왔던 일이나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보좌관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문재인 후보의 대선 출마, 정직한 기업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안철후 후보의 등장,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의 도전은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이를 반영하듯 제 18대 대통령 선거는 75.8%라는 경이적인 투표 참여율과 득표율 3.6% 차이의 아슬아슬한 결과로 박근혜 후보가 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박근혜 후보는 청와대 입성. 아니, 청와대 귀성의 티켓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그녀를 차기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투표 결과에서도 보여지듯 그녀는 과반수로 차기 대통령으로 인정받았으나 그 득표수에 버금가는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 본인의 정치 신념, 그 동안의 정치 행보, 공약 등이 승패를 좌우했음은 엄연한 사실이나 그것이 과연 그녀만의 능력으로 일궈낸 표심인가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그 이름. 바로 제 5~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존재가 마치 수식어처럼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다.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당선인의 몸을 빌어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라도 한 듯 한 분위기였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한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주도한 대통령 그리고 독재자. 그는 6.25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 된 대한민국에 공장을 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인력을 해외로 파견해 외화를 벌어들었으며 도시를 개발했다. 또한 이 계획들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수많은 예술혼들은 본인들의 생각을 글로, 노래로, 춤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 당했으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순분자로 낙인찍혔다. 근로자들은 근로가 아닌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고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으며 권한을 찾으려 시도해도 오히려 심한 보복이 돌아왔다. 선거는 은밀한 곳에서 행해졌고 투표권은 현명한 판단이 아닌 밀가루와 금품으로 좌우되었으며 권력과 재력을 지닌 자들은 날로 승승장구했다.

그의 암살 뒤에도 이러한 현상들은 끊이지 않았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은 극심해졌고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억압당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타이름 대신 몽둥이질이 돌아왔다. 구속당하는 것이 아주 흔했고 교도소는 범죄자가 아닌 정의로운 자들로 메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5.18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했고 이유 없이 학살당한 학생과 어린이들의 수도 상당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절규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참담한 어둠의 시간이었다.

2013년의 대한민국은 달라졌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이 현대사에 기록되었다. UN의 사무총장이, 피겨스케이팅의 세계 랭킹 1위가,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를 대한민국이 배출했다. K-POP이 세계를 휩쓸었고 한국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으며 전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의 말 춤을 출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대한민국에 묻고 싶다. 행복한가? 자유로운가? 풍요로운가? 삶을 누리고 있는가? 과연 몇 명이나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월급을 꾸준히 모아도 서울에 본인의 명의로 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대졸자가 아니면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기에 대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워졌지만 그 대학 시절은 공부가 아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흘러간다.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을 끊임없이 내어 놓지만 정작 주위에는 아이 하나만으로도 힘겨워하는 젊은 부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힘겹게 키워놓은 금지옥엽같은 딸은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데 끔찍한 성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직장 상사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권위를 내세워도 그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장유유서의 사회이자 근로자는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1일 근로 시간과 초과 수당이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쌍용차의 노조들은 여전히 철탑 위에서 밤을 지새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때때로 역행한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평화로워졌을 때 이라크전이 일어났으며 레바논에는 내전이 일어났다. 못 먹어 생기는 병이라 취급받았던 결핵이 다시 유행하고 있고 천연두가 사라진 세상에는 사스와 신종 인플루엔자가 찾아왔으며 돈을 벌겠다며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도시의 삶이 싫어 귀농의 뜻을 품고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만약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의 전 대통령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억압되고 속박된 정치를 펼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 또한 역행하게 될 것이고 국민들은 간신히 얻은 자유를 본인들의 손으로 버린 우매한 존재들로 후세에 평가받게 될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의 자르게 오르게 된 박근혜 당선인은 과연 어떠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

나는 소망한다. 그녀가 자신들의 손을 들어 준 국민들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국민들이 무엇을 우려했었는지를.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탄생으로 인해 성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같은 처벌에 좀 더 힘이 실릴 수 있기를. 근로자들의 본인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과 권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금배지가 권력의 증거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는 증거가 되어 국회의원 연금법과 같은 발상을 다시는 하지 않기를. 돈이 많은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아니라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기업은 서민의 등골을 빨아먹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당히 환원하여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정치를 보여주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훗날 나의 자녀들에게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역사는 무지갯빛으로 다시 씌여졌노라고 알려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 장려상

* 학과 : E-비즈니스

* 성명 : 주병진

 

" 18대 대선은 앞으로의 대한민국 역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한 정치적인 가치를 준 역사의 지표가 될 것이다"


  1. 질기디 질긴 대한민국 국민 

이번 대선은 투표율이 60% 근처를 웃돌 것이라는 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을 크게 뒤엎고 75.8%라는 높은 투표율로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관심을 크게 보여주는 선거가 되었다. 결과를 떠나 예상을 깨고 국민들이 높은 투표율로 정치권의 부름에 응답해준 것은 이번 대선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국가적 이벤트였다는 사실과 동시에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보여진다. 

 결론부터 말해보겠다.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인 모든 관계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번 대선이 한국의 역사에서 갖는 정치사적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 나라의 국민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과 권리를 다시금 깨닫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민주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앞으로 정치인들이 대리행사하는 국민들의 힘을 그 힘의 주인들이 더 이상 마음대로 휘두르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잘 보여준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초대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독재를 맛보며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그 독재의 질긴 맛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가까이 국민들의 권리를 빼앗았다. 민주공화국에서 경제를 살렸다! 독립에 일조했다! 등의 어떠한 공적을 쌓아도 그 지도자가 국민의 권리를 빼앗고 통치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한다면 그는 어떠한 말로 포장을 하여도 독재자이고 우리가 배척해야할 대한민국의 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헌법에 규정된 이 나라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으로써의 모습을 빼앗아간 도적놈이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말하며 대한은 독립되었다. 허나 우리의 힘만으로 이룩한 독립이 아니었기에 미군정을 떨쳐내지는 못하였다. 우리만의 정부로 국제사회에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부터이다. 초대 이승만 정권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은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광복의 기쁨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한 전 국민에게 내전이라는 새로운 역경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대한은 분단이라는 역경도 이겨내었다. 

일제강점기도 이겨내고 전쟁의 역경도 이겨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앞날에는 눈부신 발전과 행복만 가득할 것이라 믿기에 충분하였으리라, 하지만 대한민국의 초대 국부라 불리는 이승만은 권력욕에 3선개헌을 위해 사사오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독재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면서, 이 나라 민초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목말라있었는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4.19혁명이다. 4.19는 정치세력의 부당한 국가권력 독점, 즉 독재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민이 팔 걷고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근대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이름도 알기 힘든 윤보선 대통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우리가 알기 힘든 이유는 바로 박정희 때문이다. 

5.16군사정변으로 나라를 뒤엎고 79년 10월 26일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던 그 사람 말이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반절가까이 국가의 수장으로 앉아있었던 사람이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참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18대 대선 결과에서 이승만 정권을 지나 그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근대사에서 가지는 그의 역사적인 가치와 정치적인 가치가 크기 때문에 그렇다. 


 2. 18대 대선이 가진 정치적인 가치 

다시 한 번 요약해보겠다. 이번 18대 대선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느꼈던 박정희대통령과 국민들이 배운 독재자 박정희라는 인물이 싸운 정치적이자 역사적인 사건이고 그 결과는 그래도 박정희 정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 즉 국민들의 지지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준 결과였다고 보여진다.

독재체제하의 100명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노래를 부른다. 모두 같은 제목과 같은 음정을 가진 같은 음악을,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 체제하의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의 100명의 사람들은 다르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종류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혹 몇몇의 노래가 비슷할 수는 있으나, 절대적으로 같은 노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조금씩은 다르고 같은 멜로디를 부르다 중간에 부르기를 멈추기도 하고 바꿔 부르는 등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이번 대선에서 젊은 층들은 많은 이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고 장년층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많은 이가 지지하였다고 한다. 젊은 층이 부르는 노래와 장년층이 부르는 노래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젊은 층이라고 모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고, 장년층이라 해서 모두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국민들 모두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각 후보를 지지하였다. 어떤 이는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어떤이는 자신의 이익에 맞는 정책을 내세우기에 하는 등의 이유 말이다. 이렇듯 오천만 국민들의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들이 모여 대선의 결과가 나왔고,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방향이 결정된 것이다.

또 한 번 결론을 말해보자면, 이번 대선이 야권과 여권의 전면전이었고, 세대 간의 경쟁이었으며, 지역감정을 앞세운 지역경쟁 성향이 뚜렷했고, 또한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었으며, 진보세력과 보수 세력의 대 격돌이었다! 라는 주장에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유력후보였던 문재인, 박근혜 두 후보의 방향이 같았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서민경제 부흥을 계획했고, 냉담해진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노동자, 비정규직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을 앞세웠다. 공약집만 펼쳐놓고 보았을 때 두 후보를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두 후보의 공약은 닮아있었다. 이 말은 어느 후보를 선출하여도 대한민국이 걸어갈 방향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선거가 정치적으로 야권과 여권의 싸움도, 세대간 경쟁도, 지역감정의 문제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이전의 총선 대선과 달랐다는 결론을 감히 내보려한다.


이번 18대 대선이 가진 진정한 정치사적인 가치는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적, 역사적인 박정희에 대한 평가다. 그리고 그 평가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이 가진 가치를 국민들이 인정해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 결과를 통해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이 가진 가치는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8대 대선은 박정희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음을 정치적으로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정치적인 결론이 어떤 변수로 앞으로 흐를지는 계속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정치판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세력 하나가 확고히 부각되어진 것이라 보여 진다. 박정희라는 인물과 그 인물의 세력이라는 영향력으로..


3. 필요와 절대로 나뉘어 판단되어야할 이번 18대 대선의 가치 

글의 초반부분에서 말했듯이 헌법을 어기고 국가의 권력 독점하는 독재자는 어떤 포장을 하여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절대악(惡)이다. 그리고 국가의 정도는 악(惡)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는 선악을 구분 하여서는 안 된다. 정치라는 것은 국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서로 뜻이 맞지 않는 다른 세력. 소위 여야 간의 합의도 이끌어낼 수 있어야하고 각 정치 당파 간 서로 악이라 외치면서도 대의를 위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어야하는 것. 바로 자신들의 세력이 지키려하는 선(善)을 행하기 위해 악(惡)과 손을 잡는 것이 정치의 옳은 모습인 것이다. 또 군사력을 예로 들어보자면 우리 국군은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국군이 자신들의 나라에 쳐들어올지도 모르기에 두려워할만한 악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처럼 정치적인 사안은 무조건 절대적인 악으로 구분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며 국가 간의 위협과 해당 국가존립에 관련된 문제이다. 하지만 독재는 다르다. 법치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헌법에 규정되어있고 헌법보다 그 가치가 높은 국민들의 권리를 약탈하고 그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옭아매어서 100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노래만 부르게 만드는 것, 그것은 이 나라의 절대 악(惡)이다. 

이번 18대 대선은 정치적으로 독재세력에 대한 용서는 주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절대적인 그들의 원죄 역시 씻어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국민들이 독재자였지만 그가 이룩한 경제적인 공은 인정함과 동시에 그의 악행도 함께 판단했던 대선이 바로 이번 18대 대선이다. 쉽게 박정희라는 인물의 정치적인 공과 과를 함께 판단한 것이다. 

박정희를 느낀 세대는 그의 과보다도 공이 크다고 인정해주는 이가 많았던 이번 대선이다. 하지만 박정희를 배웠던 세대들은 그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선 이후 소위 멘붕이라는 상태에 윗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박정희를 배운 세대들은 많은 이가 그의 공보다도 과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정희를 느낀 세대 중에서도 공보다 과가 크기에 그를 싫어하는 이도 있고 젊은 층 역시 박정희라는 인물의 과보다는 공이 크다 인정하는 이도 존재한다. 

마무리해보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바라보는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힘껏 목소리를 세웠던 이번 대선은 어찌되었던 끝났다. 가는 방법이 다르다 해서 도착할 목적지가 같거늘 승객들끼리 싸울 필요가 있을까? 오른쪽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도 왼쪽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도 결국 도착할 곳은 한 곳이기에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서 가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열차를 탄 승객들인 우리 모두의 의견이 반영되어서 결정 된 결과이니까.


이미 우리가 탄 이번 18호 열차는 출발하였다. 우리가 이 열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열차가 우리가 정해준 선로를 따라서 잘 가는지 가지 않는지 확인하여야한다. 이미 출발한 열차에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간에 선로를 이탈하여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면 큰일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정해주었는데 말이다.

 

 


 

* 장려상

* 학과 : 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김진국

 

* 역사는 때때로 거꾸로 가기도 한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이후 히틀러의 나찌즘이 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광포의 나찌즘은 역사가에게 있어 역사는 항상 진보한다는 테제를 의심하게끔 하였으며 이후 반민주에 대한 강력한 제재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하였다. 다양한 제도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교육이 그 결과일 텐데, 사실 이러한 노력은 그 탄생지에서나 적당한 역할을 했을 뿐 여타의 다른 나라에서는 별무 소용이 없었다. 서양 이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제3세계의 각 나라들은 이식된 민주주의가 그 뿌리를 내리기에는 척박한 토양이었으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이 변형되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 탄생부터가 불순한 것이었으며 더군다나 자본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제3세계에서의 서구식 민주주의는 어쩌면 개밥에 도토리와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식민지의 수탈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던 한국에서 더군다나 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상황에서 전근대적인 정치제제의 출현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거나 거쳐야 할 숙명적인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반복된 혁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토대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것을 반추해 보면 아마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보전진과 이보후퇴, 또는 일보후퇴와 이보전진의 지난한 과정을 더 겪어야 할 것임은 안타깝게도 사실로 보인다.  제3세계의 전형적인 군사독재에 대한 4.19, 5.18, 6.10등의 항거는 상황과 국면에서 승리와 패배의 연속을 이어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점차 그 전선을 확대해왔다는 것이다. 초기 소수의 항거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구성원들을 생산해 왔으며 이들의 사회에서의 다양화와 확대는 반민주세력의 무시 못할 저력이 되어왔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으나 대치의 전선이 명확해진 것은 오히려 대항의 강도가 명확히 강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 영웅은 무엇인가?

 한국의 18대 대선은 영웅에 대한 갈구의 표현이다. 한국의 상황이 영웅을 필요로 한다고 줄기차게 선전해온 결과이다. 경제-사회적으로 그리고 외교상황이 한국의 생존에 어려움을 주고 있고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다는 암암리에 퍼진 국민의 갈증은 결국 역사의 회귀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영웅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이 영웅이 필요한 상황인가? 히틀러도 탄생당시에는 영웅이었음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상황 조작과 상황 인식이 얼마나 모래위의 성인지 알 수 있다. 강력한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구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박정희의 까만 썬글라스는 비록 작고 못났어도 강단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소외된 자들의 대리만족을 추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미지이다. 물론 유신의 후예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의 고사에는 가장 좋은 정치는 국민이 왕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때라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정치에 속박되지 않는 국민의 자족적인 생활을 이상적인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정치에 무관심할 때 가장 수혜 받는 계층이 어떤 계층일지 생각해 보면 정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반대로 국민의 의사를 수집하고 존중하며 그 뜻대로 정책을 만들어 나가기보다, 영웅을 만들고 영웅의 강력한 의지를 갈구할 때 그 수혜계층이 또 누구일 것인가를 생각하면 영웅주의야말로 국민에게서 그나마도 있던 권리를 손가락 사이로 빼어가는 것에 불과한 것임은 명확한 것이다. 


*  때로는 독이 약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2013체제는 독재의 망령을 불러내었음은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사실이다. 이는 정권을 잡은 구성원에 대한 연좌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연좌제는 상관없는 사람을 싸잡아 벌줄때 쓰는 말이므로, 지금처럼 당사자가 다시 나온 바에야 적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도 반민주주의 망령은 다시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일본의 우익정권, 유럽의 민족주의, 종교간 갈등 등 투쟁을 업으로 삼는 반민주주의의 망령은 세계적인 경제침체를 빌미로 자신의 역할론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0여 년 간의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철학적, 사회학적, 정치적인 개인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능력주의의 경쟁 철학은 이미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경쟁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를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조직은 마치 나무들의 뿌리와 같이 사회의 저변에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 역시 많은 시민사회 조직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어왔고 또 되어갈 것이며, 이는 한국 정치지형에 커다란 변수이자 주요 요소인 것이다. 이는 자칭 보수나 진보에게도 새로운 정치 지형이며 이러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치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정치조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 상황에서 보수의 집권은 보수 뿐 만 아니라 보수를 지지하는 계층에게도 만만치 않은 시련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유지하기 어렵고, 탈피하고자 하면 기득권을 놓아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바로 보수의 목전에 놓여있는 것이다. 물론 상황은 보수의 변화가 아닌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 역시 한판 싸움에 가세할 것이고, 이는 프랑스 혁명에서 흘린 피의 무게만큼 한국에서도 모자란 피를 더 흘리게 됨을 의미한다. 한국은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압축해서 이룩한 것처럼 민주주의에서도 압축적인 면을 보인다. 그러나 압축한다고 해서 생략하고 뛰어넘으면 안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인권이고 민주주의다. 모든 행위에는 반작용이 있다. 인간의 약한 면을 어루만지는 척하며 보살펴줄 것처럼 하는 것이 독재의 얼굴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가야한다. 힘들지라도 독재의 힘을 빌리는 것은 배고프다고 독을 삼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독을 삼켰는지 어땠는지는 좀 더 시간이 흘러봐야 할 것이지만 당분간은 최소한 배앓이는 할 것이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먹어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지적이다. 비록 거꾸로 가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다시 전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한국의 정치사는 진보했다라는 후대의 평가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주제2: '1+1=2'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최우수상

* 학과 : 행정학과

* 성명 : 조성호


'사람인(人)'이라는 한자를 흔히 두 사람이 서로 기댄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글자가 바로 '사람인(人)'이라고 합니다. '人'을 우리가 '사람인'이라 일컫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언어의 기호성과 자의성에 의해 '人'이라는 사회적 기호를 만들고,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만든 언어의 체계 속에서 '人'을 '사람인'이라 읽도록 배웁니다.


'1+1=2'라는 공식 역시 인간이 자연법칙을 체계화하여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만든 기호의 법칙입니다. 남녀노소, 연령을 막론하고 '1+1'은 무엇인가에 대해 '2'라고 답합니다. 이는 기호를 통해 표현되는 하나의 법칙이 갖는 사회성과 역사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1+1=2'라고 답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학습해온 까닭에 오히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쓰는 '기호, 체계, 법칙'들 면면을 살펴보면,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는 인간 나름의 방법으로써 언어와 숫자로 재해석하여 자의적이고 임의적이지만 누구나 마땅히 그러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보편타당성을 근거 삼아 우리 인식 깊숙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 추상화하여 분류하고, 현실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을 분절시켜 하나의 체계로 결합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인간의 무한한 창조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1+1=2'라는 것을 면면히 따지고 보면 '1'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 '+'와 '='이 가지는 의미, '2'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 자연수는 무엇이며, 우리가 일컫는 숫자라는 기호는 무엇일까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1+1=2'라고, 명명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본질까지 깊게 통찰해야 합니다.


수를 이해하기 위해 흔이 쓰는 페아노 공리계 역시도 지칭하는 바와 처럼 하나의 '공리'입니다. 공리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고 누구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보편 타당성을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물을 분절시켜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는 것을 '1'이라고 지칭하며, 그 '1'에 '1'이 더해지면 '2'개가 된다는 공리의 체계 속에서 '1+1=2'라는 공식을 만들고 우리 나름의 논리로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끊임없이 의심하기에 고로 존재하는 인간인 저로서는 '1+1=2'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1'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정말로 '1'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숫자를 배우고 더하기와 빼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사물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 '사과' 하나에 '사과' 하나가 더 있어, 그럼 이 건 '한 개'가 아니지?, 그럼 이건 몇 개 일까?, '하나' 다음 '둘'이니 정답은 '둘' 즉, 숫자 2가 되겠지?


너무도 당연한 가르침이지만 과연 한 개의 사과는 우리가 지칭하는 '1'로써 존재하는 사물일까요? '1'이라는 의미와 그 '1'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사과'라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왜냐면 인간은 현실세계의 흐름과 관계의 맥락성을 분절시켜 자연을 나름의 표현방식인 제한된 언어로 새롭게 재구성하고 해석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극은 인간의 한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근원적 한계성을 보편타당성과 누구나 그러하게 받아들이는 공리로 끊임없이 간극을 메우려 합니다. 그 간극이 어마어마 함에도 말입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성의 결핍, 인간이 갖고 있는 근원적 한계성이 '1+1=2'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안겨줍니다. 만약 '1+1=2'임을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속된 언어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왔던 체계, 법칙, 공리의 역사 즉, 인간의 역사 모두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다만,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본질적 해답을 얻기 위한 노력을 통해 간극을 점차 좁혀나가고 자연을 탐구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질이기에 의구심을 품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1+1=2'인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이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의 입증인 셈입니다.

 

 


 

* 장려상

* 학과 : 한국어문화학과

* 성명 : 양미경

 

'1+1+=2'가 되는 과정을 수학적 논리에 의해 증명할 때에는 다음의 기본적인 정의들이 우선 약속되어야 한다. 1이라는 숫자는 자연수이며, +는 둘을 합한다, =은 좌우변이 같다라고 정의하고 이에따라 우리는 쉽게 1+1=2가 된다고 받아들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정의가 없이 1을 자연수가 아닌 다른 개념으로 보았을 때 1+1은 1이 될 수도 있고 2 혹은 3이 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2=1이 됨을 증명할 수도 있다. 또한 +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가 정의되지 않는다면 위의 '1+1'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1+1=2에서 '1'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가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가 위의 사실을 설명할 때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이러한 기본적인 정의가 없다면 위의 사실이 틀리다는 것을 보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된다.


예를들면, '1+1=1'라고 볼 수도 있으며 '1+1=3'이 될 수도 있다. 만약 '1'이 '밀가루 덩어리'라면 이들을 더했을 때에도 밀가루가 한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위의 사실이 틀리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1+1=3'을 '시너지'효과에 입각해서 증명할 수도 있는데 두사람이 모여 각각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을 때 각각의 논리, 생각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시너지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면 위의 사실도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정과 반이 있을 때 새로운 합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며 또한 경제에서 두 생산요소가 결합되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또한 이러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 생각 물론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물체'는 한가지의 물체와 한가지의 물체가 합하여 완전한 하나가 되는 경우는 드물며 또 그 이상의 것이 되기도 힘들다. 자연수는 이러한 성질을 나타내는데 사과 하나와 사과 하나, 사람 한 명과 사람 한 명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2가 아닌 다른 것이 되기는 실제로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수 '1'을 두 개 더했을 때 2가 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한 가지 원칙으로만 귀결될수 없다는것은 인정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1+1=2'가 되는 것만은 아니며 이러한 개념은 단지 주어진 정의와 규칙하에서만 성립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원칙조차 정립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주어진 정의하에서 규칙을 필요로 한다. 이때 규칙이나 대부분의 것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속성을 전제로한다. 규칙을 '모든 것'을 포함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1+1=2라는 규칙이 없었다면 2+2=4 100+100=200 ... 그 이상의 숫자가 나올 수 없고 수학적 계산도 할 수 없다. 즉, 이 '간단한 규칙'은 모든 수학을 가능하게하며 이로써 인류 문명, 노틀담의 성당등의 위대한 건축물이며 우주 로켓 발사등 모든 것이 발전할 수 있었다. '1+1=2'라는 보편적 규칙이 우리에게 없었다면 인류의 발전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나는 '1+1=2'는 인간의 규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고자한다.


규칙은 인간 사이의 약속이므로 구구절절 증명될 필요가 없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1=2'라는 규칙 준수가 정당화되려면 A라는 기호가 무엇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이 A는 동일한 물건을 규칙적으로 지시하는데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A에 대한 동일한 정의를 이용하여 지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만일 시간이 바뀔 때마다 A의 정의가 다른 것에 적용된다면 우리는 A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으며 A에 대한 진실성도 추구하지 못한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규칙 준수의 정당화'는 매우 중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규칙'을 준수한다고 믿는것은 실제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규칙(법)에 대해 "처음부터 올바르게 시작해서 법질서를 받아들이면 모든 면에서 훌륭한 법질서가 생길 것이다"라고 했다.


사회계약에 의한 규칙조성이나 규칙준수, 규범윤리는 가끔은 강제성을 띄어서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1+1=2'라고 수학적규약을 정해놓은 것처럼 우리가 정해놓은 사회규범을 정확히 2라는 답으로 준수 하는 것이 사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질서가 있어야 카오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인간이 만든 규칙과 이에 대한 준수는 사회 질서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국가도 애초에 인간들의 규칙임을 생각할 때,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인류 문명 발전의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저작자 표시

군지 이론이란 무엇인가?

박철은(고베대학교대학원 이학연구과 지구혹성과학 비선형과학 전공 박사과정)


 

 

군지 페기오 유키오(郡司ぺギオー幸夫)는 현 고베(神戸)대학교 대학원 비선형과학전공 교수로서, 이론생명과학 분야에서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과학자, 사상가이다. 그와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구는 매우 다 방면에 걸쳐져 있어 생명기원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게나 새떼, 어류의 집단이동 패턴 연구, 시각이나 촉각의 착각 및 이상현상 탐구, 데자뷔 현상의 해명, 각종 뇌기능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의 해명 등의 인지과학적 탐구, 로봇 인공지능 개발 등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필자 역시 동 연구실의 일원으로써, 군지 이론에 기반해 인지과학적 문제들을 분석하는 새 모델을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군지 모델, 혹은 군지 이론이라 불리는 그의 이론은 일본 학계 내에서도 매우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이과 계열의 연구들이 의례 그러하듯, 비전공자가 접근하기에는 논문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특히나 비-불 대수(non-boolian algebra)나 군론(theory of groups), 속론(lattice theory)등의 수학적 기법에 기반해 전개되는 분석틀은 고전 논리에 기반한 집합론적 접근에 익숙한(혹은 아예 수학적 접근을 고려하지 않는) 문과 계열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그 진의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학적 방법론에 익숙한 이과 계열의 전공자들에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번엔 반대로 그가 주로 참조하고 있는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계열의 사상들, 특히 들뢰즈의 철학이 갖는 특유의 논법 및 수사, 은유, 이론 전개에 있어서의 전략 등이 대개의 이과의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기술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주된 이론적 원천인 베르그송의 '생성의 철학'과 같은 접근은 아직도 전통적인 물리학적 표상에 바탕을 두고 작업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형 VS 비선형 (Attribution: Kku at de.wikipedia)

각 연구 주제들이 세분화되어 있고, 여러 연구지에 산재되어 있어 참조하기 곤란한 군지(와 그의 제자들)의 논문들 외에 군지 사상의 진면목을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각종 기고문을 제외하면, 역시 그의 저작들이라 할 수 있다. 2004년도에 출간된 『원생계산과 존재론적 관측-생명과 시간, 그리고 계산(原生計算と存在論的観測-生命と時間、そして観測)』(東京大出版会)에서 이미 군지 이론의 기본적인 발상은 소개되어 있다. 이 저작에서는 들뢰즈 이외에도 크립키, 비트겐슈타인 등의 철학을 접목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후에 기술할 『생명이론』(哲学書房, 2006)에 비해 들뢰즈의 비중은 적으며 이론 전개에서도 직접적인 연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꽤 방대한 분량에 보다 수학적 접근에 익숙한 독자들을 의식한 탓인지, 자기 조직화 이론을 매우 전문적인 수학적 기법들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어서 그의 이론을 비수학적인 언어로 파악하려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저작일 것이다. 이후 출간된 『시간의 정체(時間の正体)』(講談社, 2008,)에서는 베르그송-들뢰즈적 시간 개념과 맥타가트의 시간론을 대조, 자신의 이론을 도입해 맥타가트가 제시한 시간의 역설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아울러 시간의 문제가 존재의 양의성이라는 문제와 얽힌 가장 근본적인 측면임을 주장하면서, 책의 후반부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거나 혹은 느리게 흐르는 체험을 자신의 집합-원소 혼동 이론에 기반해서 설명하고, 인과 역전과 관련된 인지과학의 실험 및 그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생명일호(生命壱号)』(青土社, 2010)에서는 로봇의 인공지능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주어진 알고리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현상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이를 에러로 계산,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지 않고 새로운 해답을 낼 수 있는가를 탐구했다. 이것은 생명체가 갖는 특성이고 따라서 이 문제는 생명의 기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상의 연구들은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복잡하게 보이나 거기에는 일관적인 존재론-인식론적 이론이 바탕이 되고 있다. '타입(type)-토큰(token)의 쌍대성'이 그것으로, 상기한 '존재의 양의성'도 이 두 개념의 쌍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이론적 틀에 대한 설명은 『원생계산과 존재론적 관측』을 제외하면 『생명이론(生命理論)』(2006)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비교적 친절하게 설명되고 있다(『생명이론』은 본래 2002년과 2003년 각각 출간되었던 『생성하는 생명(生成する生命)』과 『나의 의식이란 무엇인가(私の意識とは何か)』(哲学書房)를 1부와 2부로 하여 재출간된 통합본이다). 1부에서는 들뢰즈의 존재론 및 인식론을 활용해 자신의 존재론=방법론(이는 군지 본인의 용어법이다)을 생성을 파악하는 장치로서 전개하고 있고, 2부에서는 이를 활용해 의식의 본질, 감각질의 문제, 데자뷔의 해명, 반측무시나 서번트 증후군과 같은 인식장애의 해명, 생물학적 계산기의 가능성 등을 탐구하고 있다. 이상의 주제들은 직간접적으로 이후의 저작들의 주제들과 통하고 있고, 미리 그 해결책에 대한 암시를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반부에서 철학적,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를 구체적인 문제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2부에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군지 사상의 개요를 살펴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라 이하 『생명이론』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군지 이론의 면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생명이론』의 1부는 전체성 개념을 재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종래의 시스템론은 스스로와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생물 개념의 추상적 성격에 대해, 그 운동의 담지자를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파악하게 된다. 이 구성요소들이 단지 운동하는 것으로 그 경계가 그때마다의 문맥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분 대 전체라는 이원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으로 구성요소에 실체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이상, 그 운동으로 구성되는 전체는 오히려 초월론적인 전체 개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전체는 부분들이 실체인 이상, '실체가 아니다'라는 부정적 형식으로 파악되고, 실체와 실체가 아니다라는 대립적 형식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체성 개념 하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성은 발견될 수 없다. 


집합론에서 사용되는 전체성 개념은 질서가 엄격히 유지되는 초월적 전체이다. 세계라는 전체에 있어 이 개념의 적용범위인 외연은, 적용범위인 이상 개념의 외부에서 지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계의 외부는 상정할 수 없으며 집합론에서는 이것을 러셀의 역설이라 부른다. 이 문제는 집합의 층위를 구분하여 집합과 원소의 혼동을 금지함으로써 계층간 상호작용을 논의에서 배제함으로서 해결한다(분출공리의 적용). 그러나 이런 세계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논의할 수 없다. 두 번째 전체 개념은 '모순된 전체개념'으로써, 한편으로는 부분으로 구성된 전체를, 다른 한편으로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상정하여 양자를 접합함으로서 전체 개념 자체가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 전체 개념은 수학에서는 칸토르의 대각선 논법에서 발견된다. 전체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어긋남을 불러일으키고 양자가 일치하는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군지가 제안하는 세 번째 전체성은, 이 질서를 유지하는 초월적 전체성도, 논리적 모순을 내재한 세계를 부정하는 전체성도 아닌, 운동체인 내부와 운동체의 환경인 외부 사이의 구별을 무효로 하는 '약한 전체성'이다. 자기 언급의 역설은 통사론(외연)과 의미론(내포)의 대응관계를 가정하고 그 전체를 전망함으로써 귀결된다. 이 전체가 모순적 전체 개념으로만 귀착되기 때문에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를 알고 있다는 가정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자기언급계가 모순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초월적인 관찰자, 즉 세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체를 상정하고 외연도 그에 따라 세계 전체라고 실체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는 결코 전망될 수 없다. 즉 내포적 전체의 외부에도 그 내포를 상정한 관측자가 사는 세계는 펼쳐져 있다. 따라서 한정적으로 파악된 전체는, 대각선 논법에서와 같이 내포와 외연간의 어긋남을 초래하지만, 다음 순간 이 전체는 성장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어긋남은 계속되고 따라서 전체도 계속 변해간다(기술技術적으로는 탐색된 외연 전부와 관계하는 속성을 내포로 두고 속성 집합 내에서 이 내포의 부정을 취한다. 그리고 이 부정 집합의 원소와 하나라도 관계가 있는 대상의 집합과 원래 외연 집합의 교집합을 취하고 이 교집합을 불완전한 전체로 정의한다). 


이 '불완전한 전체'는 이어서 과학에 미정의, 미결, 미지를 도입하여 이론, 계산, 실험의 개념을 확장하는데도 사용된다. 군지는 들뢰즈의 사유를 참고하면서도, 그가 과학과 철학 사이에 날카롭게 그은 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령, 과학은 어떠한 가능세계를 상정하고 여기에서 시간의 변화에 따른 함수를 발견하는 조작과 공간을 발견하는 조작을 행하지만 양자간의 수학적인 상호내포적 관계(수반 함수函手)는 정적이며 계기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들뢰즈에게 있어 철학은 내재면과 개념의 상호내포적 운동을 통해 무한속도를 현전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생성의 양상을 포착하는데 있어 개념을 사용하는 철학에 비해 함수로써 파악하는 과학은 불완전한 것이 된다. 그러나 군지는 과학과 철학의 구분을 거부하고 양자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개념으로써 생성을 혼돈으로부터 건져올리려는 철학은, 현실적인 문제를 푸는데는 방법론으로서 사용할 수 없는 구체적이지도 견고하지도 않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과학이 생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을 군지는 '내부관측자' 개념에서 찾는다. 이것은 초월적으로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 부분적인 시각을 갖고 가능세계 내부를 살피는 관측자이다. 미정의, 미결, 미지의 도입이란 이 관측자의 활동으로 인한 것이다. 이로써 상기한 내포적 부분-전체와 외연적 부분-전체를 끊임없이 동적으로 계기시키는 운동을 관측자가 행하는 것이다. 


철학이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형태를 결여하고 있다면, 군지 이론에서 내부관측자에 의해 변화된 철학=과학이 갖고 있는 방법론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타입과 토큰 개념을 통한, 이른바 존재론=방법론이다. 타입과 토큰은 내포와 외연과 닮은 상관적인 규정으로, 전자는 일종의 형(型), 속성이나 강도에 의한 다발, 종(class)에 해당하는 개념이고, 토큰은 구체적인 개체, 어떤 대상, 사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양자는 원리적으로, 상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에 있어 결과적으로 어떤 찰나에 발견되는 것이다. 『생명이론』의 2부에서는 이 개념을 활용하여 인지과학의 여러 문제들을 해명하게 된다. 몇 가지 사례를 뽑아서 살펴보자. 


예컨대 감각질(qualia)의 문제가 있다. 내 눈 앞의 붉은 사과는 어떻게 붉다고 지각되는 것일까? 내 내부의 붉은 색의 어떤 견본이 있어서 이것과 내 지각 이미지가 일치 된다고 한다면, 다시 이 견본이 붉다고 어째서 우리들은 알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예를 들어 말해보자. 우리 눈과 카메라의 차이는 무엇일까? 카메라의 필름에 상이 맺혀있다면 필름은 '보고' 있는가? 이 필름에 맺힌 상을 보는 다른 필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논법은 무한퇴행하게 된다. 이와 달리 눈앞의 붉은 사과와 지각하는 자의 내부에 상정된 붉음의 견본을 매개하는 것으로서 감각질을 파악해보자. 감각질은 결과적으로 주관적으로 되지만 원리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세계의 일부로서 뇌내의 지각 과정은 열려있다. 어떤 의미에서 감각질은 공공적인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감각질은 내적 견본의 이미지에 병존하는 구체적인 개체인 셈이고, 항상 내적 견본의 이미지와 어떤 의미에서 상관적으로 존재한다. 사과의 붉음의 인지라는 현상을 내적인 붉음의 이미지, 즉 타입에 의해 근거짓지 않고 이 타입과 그에 부수하는 감각질, 즉 토큰의 생성과정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토큰과 타입의 공립은 양자간의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항상 지각에 있어 상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하는 지각 모델은 불충분한 것이 된다. 그리고 양자의 공립이라는 현상은, 관찰자에게 있어 그 구별을 본래적으로 불분명한 것으로 만든다. 타입은 토큰적 양상을 담지하고 토큰 역시 타입적 양상을 담지하고 있다. 정확히는 양자의 지각 강도에 따라 각자가 갖는 성격이 상대자에게 전이된다. 그 한 특징을 들면, 본래 타입은 어떠한 덩어리로서 '배제 가능성'을 담지한다. 예컨대 개의 타입은 이 타입의 외부에 '개가 아닌 것'을 가능적으로 상정하게 된다. 이에 비해 토큰은 '유사 가능성'을 담지하는데, 그러므로 토큰은 그 자체로 항상 다른 유사한 개별자를 공립시키는 가능성으로 토큰이 지정되는 어떤 공간이 있는 듯 상기된다. 그러나 타입적 인지가 강한 경우 토큰은 타입이 본래 담지하는 배제의 가능성을 그 스스로가 담지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타입과 토큰, 어느 쪽의 지각 강도가 강한가에 따라 종합적인 지각의 양태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이는 후에 토큰적 타입, 타입적 타입, 토큰적 토큰, 타입적 토큰이라는 네 가지 양상으로 다시 나뉘고 본격적인 논의는 『생명일호』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토큰과 타입의 혼동, 다시 말해 원소와 집합의 혼동은 『시간의 정체』에서 어떤 인식 주체의 기억에 기반한 시간 모델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타입-토큰 쌍의 첫 번째 특징, 즉 이 쌍이 원리적으로 실재한다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공립하는 현상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은 프레임 문제와 자기언급의 모순을 교묘하게 해결한다. 이 경우, 문제의 해결보다는 해소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프레임 문제란 어떤 행위를 기계적으로 정의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있어서는 자명한 숨겨진 전제(프레임)가 기계적으로는 무한한 계층적 전제로서 출현해버리는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로봇에게 "커피를 마시게 해줘"라고 말을 한다면, 로봇은 커피는 잔에 부어 대접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뜨거운 포트에서 입으로 직접 커피를 쏟아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전제들에는 제한이 없다. 만약 우리가 타입만을 생각한다면 자기언급에 빠져버리게 되고, 토큰만을 생각한다면 프레임 문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타입과 토큰의 동적 보완관계에 의해 타입에 있어서 자기 언급은 경계 조건의 비일정성에 의해 무효가 되고 토큰에 있어 프레임 문제는 경계조건을 설정하는 담지자의 비일정성에 의해 무효가 된다. 이것은 고통의 사밀성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가능하다. 왜 베수비우스 화산은 분화를 체험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나의 고통을 체험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관측자인 우리는 베수비우스 화산을 자명한 경계를 갖는 명료한 개체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균질적이고 일의적이며 어떤 내부구조를 생성치도 않는다. 이에 비해 나는 항상 세계 외부와 구별을 가지면서도 어떤 구별을 항구적으로 특권화하고 그 외부를 단절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별, 다양한 경계를 매순간 생성하고 있다. 타입적 고통과 토큰적 고통의 공립이 '나의 고통'이라는 사밀성을 갖게 한다. 


타입-토큰 쌍의 두 번째 특징은 즉 양자의 공립이 불러일으키는 혼동이 여러 양상의 인지를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생명이론』에서는 이 특성을 적용하여, 서번트 증후군 환자의 천재적인 지각능력을 일반인과 비교하는 사고 실험을 행했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란 자폐증과 같은 지적발달장애를 지닌 사람들 중 일부가 암기나 계산, 미술, 음악 등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서번트 증후군 환자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다수의 성냥의 수를 순간적으로 파악한다. 반면 일반인들은 1개, 2개 하는 식으로 하나씩 세어나가야 하고 이는 꽤 긴 시간을 요할 것이다.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은 순간적인 시각적 영상 자체를 수라는 타입과 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타입적 인지가 탁월한 인지시스템에 토큰적인 지각을 맞닥뜨리게 하여 타입적 인지를 약화시키면, 일반인에게도 서번트 증후군 환자에게서 확인되는 이러한 능력이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사고 실험의 기본적인 착상이다. 일반인은 현실세계 내에서 어떤 궁극적인 타입들을 경험적으로 강하게 발달시키고 이것을 특권적으로 적용하므로 타입과 토큰의 전도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자폐증 환자는 이런 강한 타입의 발달이 덜하든지, 혹은 손상된 것이다. 그 결과 타입과 토큰 간의 전도가 용이하게 일어난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이 착상을 이용한 다른 실험이 예시되었다. 분기순서의 공간적 배치를 기억하면 쉽게 풀리는 미로를 제시하고 그 위를 미로의 일부만 보이는 구멍난 천으로 덮어 천을 움직여가며 길을 찾게 하는 실험을 행한다. 일부 피험자에게는 사물이 좌우가 반대로 보이는 안경을 씌워서 찾게 한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천을 덮지 않은 미로를 제시하고 해답경로를 반복하도록 시킨다. 이렇게 하면 비록 미로의 전체 해답경로는 한눈에 보이지 않아도, 안경을 쓰지 않은 피험자는 대략적으로 전체의 경로를 패턴화해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어 쉽게 풀 수 있다. 반면 안경을 쓴 피험자는 시각 정보와 손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매순간 운동과 시각의 조화에 집중을 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전체 미로 경로의 형태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게 된다. 전자는 타입적 추상공간이, 후자는 매순간의 토큰적 지각이 강하게 기억되는 것이다. 만약 서번트의 예에서 일반인들도 세 개씩 묶어서 센다든가 5개씩 묶어서 센다든가 하는 패턴에 익숙해지면 훨씬 빨리 셀 수 있게될 것이다. 즉 일반인과 서번트의 지각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타입-토큰의 쌍대성은 다양한 주제에 다양한 형태(유와 종, 부분과 전체, 집합과 원소의 관계)로 적용되고 있고 매우 복잡한 양태를 띠지만 결국 존재와 생성을 함께 사유하고, 또 어떤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실험=경험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론(=존재론)으로써 고안된 것이다. 만약 우리의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타입뿐이라면 거기에는 변화, 변혁, 창조는 발생하지 않고, 또한 '나의 삶'도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토큰뿐인 세상에서는 매순간이 두 번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개체성을 띄고 발생하며, 어떤 연속성이나 관계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매순간이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나는 기억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없고, 따라서 해체되어 버리게 된다. 순수한 타입도 토큰도 아닌, 타입이자 토큰인 시간, 생명을 설명하기 위함이 군지 모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군지 이론의 독자성은 이 이론이 과학과 철학이라는 분과 학문을 가로질러 성립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잘 두드러진다.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논란의 근원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군지의 저작에서 각 영역의 방법론과 전제들, 관습들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지적 탐구를 발견하고 환호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난색을 표할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일례로 군지는 1부에서 철학을 현실적인 것, 과학을 가능적인 것을 탐구하는 것으로 두고는 내부관측자의 활동에 의해 이들은 잠재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는 분명 들뢰즈의 본래 사유에서 크게 일탈하고 있는데, '내부관측자'에 대한 강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이론이 문제 해결에 구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그가 제안하는 모델이 매우 다양한 문제에서 핵심적인 해결책으로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군지 이론은 이항 대립적인 개념 구도를 갖고 있는 주제라면 어디에든 적용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갖고 있다(이 이항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 군지 이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상적으로는 과학철학, 존재론, 인식론적 이론화와 경험과학적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지만, 차후 윤리학이나 정치철학과 같은 인문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들에 적용하는 모델도 성립 가능할 것이라 기대된다. 그러나 이론의 보편성을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군지 이론의 실천적인 측면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가설을 수학적으로 정치하게 정립하고 이를 경험적으로 실험을 통해 증명되는 과정이 얼마나 세심하게 전개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군지 이론의 이해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일 것이다. 

"글쓰기의 날" 개최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지난 달에 "글쓰기의 날"을 개최했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역사적 의미"와 "1 + 1은 왜 2가 되어야 하는가?" 두 문제를 제시했으며, 70명이 넘은 응시자가 여러 흥미로운 답안들을 제출했다. 그 중 장원 1 명, 가작 2명, 입상 3명 총 6명이 당선되었으며, 당선자들의 글은 본 <웹진 파이데이아>에 게재되어 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올해도 글쓰기의 날을 실시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유와 글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파이데이아 홍릉> 겨울에 오픈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는 교양학부의 이념을 한국 사회에서 보다 널리 공유하고, 교육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교양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파이데이아 홍릉>(가칭)을 계획하고 있다. 

겨울에 오픈할 파이데이아 홍릉에서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강좌가 열릴 예정이며, 아울러 현대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병행될 예정이다.

서울의 중심부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문화적 공간이나 사건이 비교적 취약한 동부에 새로운 학문적-문화적 장소를 창출함으로써, 주변의 여러 사람들, 기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장소는 산림청과 롯데백화점 사이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웹진 파이데이아> 오픈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Webzine PAIDEIA>를 개설했다. <웹진 파이데이아>는 원고지 50매 내외 분량의 서평, 시평(時評), 문화평, 에세이, 기행문 등등 다양한 글들을 한달에 2~3편씩 게재할 예정이다.

마음속 깊이 박힌 가시를 뽑아내기

<인셉션> (201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이정우



빼어난 사이버펑크 영화들의 공통된 특징들 중 하나는 진부한 소재를 독창적인 주제를 통해 다룬다는 점이다. <블레이드 러너><공각기동대><매트릭스> 등을 그 흥미진진한 주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영상기술적 측면들을 제외하고 본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범죄영화? 액션영화? 어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철학적인 주제와 새로운 영상기법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소재들에서의 이 평범함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인셉션> 또한 이런 특징을 유사하게 보여준다. 사실 그 소재의 진부함과 스토리 전개의 상투성을 놓고 본다면 기존 사이버펑크 명작들을 충분히 능가할 정도이다.(<인셉션>을 사이버펑크 영화로 봐야 할지, 보다 넓게 SF로 봐야 할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어디에선가 자주 본 그런 장면들, 대사들이다. 꿈속-세계에 대한 묘사도 초현실주의적이기보다는 다소 논리적/법칙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 역시 위의 영화들처럼 이런 상투성을 한참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독창적인 주제와 신선한 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매트릭스> 이후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가 그랬듯이, 이 영화 역시 매우 존재론적이다. 여기에서 “존재론적”이란 이 영화가 세계의 어떤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들’ 사이에서의 사건들과 세계‘들’ 사이에서의 관계들을 다루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 역시, 보통 영화들처럼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아니라 이 현실세계와 다른 어떤 가능세계들(possible worlds)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이다. <공각기동대>가 고도로 네트화된 세계에서 현실세계와 네트의 세계를 가로지르면서 진행된다면, <매트릭스>는 실제 세계와 기계들이 만들어낸 가상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인셉션>은 현실세계와 꿈속세계(나아가 꿈속세계‘들’)를 오가면서 펼쳐진다. 놀란 감독의 전작들인 <메멘토><인썸니아><프레스티지> 등이 그랬듯이 <인셉션>도 인간 마음의 깊숙한 곳으로, 매끈하게 통합된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복수화되어 있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음/마음들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지 흥미진진한 발상과 뛰어난 영상미로 엮인 ‘재미있는’ 영화 이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핵심 요소는 주인공 코브와 그의 아내 멜(멜로리)의 관계이다.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꿰어 주고 있는 이 주제를 통해서 이 영화는 비로소 드라마로서의 깊이를 갖출 수 있었다고 하겠다. 전체를 엮어주고 있는 이 주제가 없었다면, 영화의 맛이 주는 것은 반감 그 이상일 것이다. 멜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모두 의미심장하다. 멜이 등장함으로써 장면의 흐름이 극적인 반전을 겪게 되며, 영화의 주제가 한 단계씩 심화된다.(이 점에서, 영화는 공식적인 주인공인 코브의 시선을 통해서만 그녀를 비추고 있지만, 멜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 멜의 존재는, 포우/라캉의 ‘잃어버린 편지’가 그렇듯이, 장면들을 구성하는 사건-계열들 전체를 갑자기 반전시켜버리는 우발점(le point aléatoire)이며, 멜이 일으키는 이 우발적 사건들이 영화 전체를 극적이고 깊이 있게 만들고 있다.


꿈, 시간, 관념

영화의 도입부는 코브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내려가 사이토를 구해내려 했던 상황을 잠깐 비춘 후, 코브가 사이토를 처음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이 시작 부분은 “꿈속의 꿈”이라는 이 영화의 구도 ―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처음 등장했던 이른바 “액자 형식” ― 를 미리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본격적인 이야기는 현실에서 액자 속으로 들어가면서가 아니라 액자로부터 현실로 나오면서 시작된다. <공각기동대>는 현실로부터가 아니라 네트 속으로부터(또는 정보의 집적체로서의 마음/의식으로부터) 시작해 현실로 나오면서 시작된다. <매트릭스> 역시 가상세계에서 시작해서 후에 비로소 현실세계를 만나는 구도를 보여준다. 이런 흐름을 따라 <인셉션> 역시 현실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부터 현실세계로 빠져나오는 장면을 도입부로 취하고 있다.

모든 사이버펑크 영화는 그 이야기를 가능케 해 주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공상적일 뿐인 장치들이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기억 이식, <공각기동대>에서의 전뇌화(電腦化), <매트릭스>에서의 자기잉여이미지 등이 그런 예이다. 이 장치 ― ‘결정적 장치(definite installation)’라 부를 수 있겠다 ― 는 각 사이버펑크 영화의 가능조건인 동시에 바로 그것 때문에 각 영화가 ‘공상과학’영화로 분류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결정적 장치로 말미암아 사이버펑크 영화는 극히 흥미진진하고 또 ‘존재론적’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결국 황당하고 좀 유치할 수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결정적 장치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어떻게 기발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게 장치하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이버펑크 영화의 수준과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고 할 수 있다.

<인셉션>에서의 결정적 장치는 꿈의 공유이다. 꿈이란 한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무엇,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 속의 외면, 자아 속의 타자가 아닌가. 그런 꿈속에 문자 그대로의 바깥의 타자가 침입한다면? 꿈의 공유(여기에서는 제3의 공통장소가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의 꿈으로 설정된다)라는 이 장치는 <공각기동대>에서의 전뇌화라는 장치와 특히 가까운 성격의 장치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코브, 아서, 사이토, 멜 등의 주인공들이 꿈을 공유하면서 뒤섞임 꿈들이 일으키는 창발(예컨대 코브의 아내 멜은 생면부지의 인물인 사이토의 정부로 등장한다)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꿈속의 꿈, 꿈들의 주름을 그 핵심 설정으로 배치하고 있다.(비르-아케임 다리에서 아리아드네가 보여준 주름 이미지는 이 점을 상징한다) 이 설정은 이 영화의 가장 독창적인 설정으로서, 처음에는 두 겹의 꿈이, 그 후에는 세 겹의 꿈이, 마지막에는 림보에 이르기까지의 네 겹의 꿈이 이어지는 흥미의 고조가 특히 뛰어나다. 베르그송의 기억이론, 특히 ‘과거의 시트들’을 연상시키는 이 구도가 영화의 플롯을 단단하게 해 주고 있다.

각 층의 꿈들은 불연속적이면서도 또 연속적이다. 다른 층위의 꿈은 전혀 다른 구도(‘플랑’) 위에서 성립하지만, 상위의 층은 하위의 층에 영향을 미친다. 림보에 떨어졌을 때조차도 상위 층들에서의 기억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림보의 사이토는 코브의 토템(꿈속과 생시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부표)을 보고서 “반쯤 잊힌 꿈속에서 만난 남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꿈들이 완전히 불연속이라면 각 꿈의 세계는 완벽히 분리된 가능세계들이다. 매트릭스의 바깥을 몰랐을 때의 매트릭스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인 것처럼. 그러나 꿈들은 각각 다른 세계이면서도 이어져 있다. 무척 흥미로운 구도이다.

이 꿈들의 주름에 상응해 시간의 주름이 설정된다. 꿈의 층위를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시간이 5배 느려진다는(역으로 말해, 사고는 5배 빨라진다는) 이 설정은 “무의식에는 시간이 없다”는 프로이트의 시간 개념이나, 과거 속에서 지속의 연속성이 깨진다는 베르그송적 시간 개념, 또 의식의 심층에서 시간이 느려진다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으로 유명한) 초현실주의의 시간 개념 등과 조응하면서, 이 영화 고유의 설정으로서 장착되어 있다. 꿈들의 주름과 시간의 주름이 이 영화의 결정적 설정을 이룬다.

꿈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국 경험론자들이 분명히 했듯이, 바로 ‘관념들(ideas)’이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관념들에 대한 영화이다. 하나의 관념이 마음속에서 싹트고 어느 샌가 구체화되면, 그것은 한 인간의 생각과 행동과 언어를 굳게 지배하게 된다.(“관념은 바이러스 같아. 집요하고 전염성이 강하지. 아주 작은 관념의 씨앗도 거대하게 성장해서, 너 자신을 규정하고 또 파괴하기도 해. 아주 작은 관념, 예컨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실재가 아닌 게 아닐까?’ 같은 그런 관념. 그런 작은 관념이 모든 것을 뒤바꾸어버릴 수 있지”) 그래서 주인공 코브는 하나의 관념은 “일단 뇌에 고착되면 제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꿈꾸는 상태에서는 의식의 응집력이 풀리고 한 인간의 관념에 대한 방어력도 약화되기 마련이다. 이런 가설에 입각해 타인의 꿈에 침투하기, 공유되는 꿈의 전체 구도를 짜기, 그의 어떤 관념을 훔쳐내기, 역으로 자신의 관념을 방어하기, 그리고 특정한 관념을, ‘관념의 씨앗’을 심기(‘inception’)라는 이 영화의 기본 스토리라인이 짜인다. 


무-의미와 역-설의 세계

“인간은 뇌의 진정한 잠재능력을 일부만 쓴다고들 하지. 깨어있을 땐 그래. 잠이 들었을 땐 마음은 거의 뭐든 다 할 수 있어.” 코브의 이 말은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소원의 충족을 그 핵심 기능으로 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꿈의 작용을 은유, 환유를 비롯한 언어학적 모델을 가지고서 설명하기도 했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이란 일종의 극장이고, 이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라캉을 따르면 일종의 구조주의적 연극)은 꿈을 통해서 특히 잘 드러난다. 베르그송의 꿈 개념은 훨씬 비-합리적이다. 생시에 현재가 가지는 대상에의 ‘주목’은 과거를 원추의 꼭지점으로 쏠리게 만든다. 꿈을 꾸면서 이런 주목과 편향의 끈이 느슨해지면, 과거 속의 관념들(베르그송의 경우는 ‘이미지들’)은 새장에서 나온 새들처럼 자유롭게 부유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다양한 가능세계들이 창발되기에 이른다. <인셉션>의 세계는 프로이트보다는 베르그송에 가깝다.

잠재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는 무의미의 세계이다. 생시에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만나고, 거리가 거꾸로 솟아 수직을 이루며, 차도에 갑자기 기차가 뛰어들기도 하고, 한 인물이 다른 인물로 변신하기도 하며, 공간과 시간은 뒤틀어진다. 이것은 의미 없는 세계가 아니라 무한한 의미가 섞인 세계이다. 의미는 무-의미=무한-의미의 한 결이며, 현실세계는 무한한 가능세계들의 한 면이다. 생시의 세계가 하나의 ‘해’라면, 꿈의 세계는 그것을 하나의 해로서 포함하는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꿈의 세계는 고차원 방정식들의 세계와도 유사하다. ‘꿈’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만난다. 꿈은 현실의 근저에서 작동하는 기억/과거에서의 가능세계들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또한 주체가 설계하고 “꿈꾸는” 미래에서의 숱한 가능세계들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꿈의 세계는 파라-독사의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파라-독사는 제논에게서처럼 평행을 달리는 두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현실세계와 그 너머의 무한한 가능세계들을 가리킨다. 영화에서는 에스헤르(에셔)의 그림을 본 딴 건물 내부를 보여주면서 수학적인 역설들(‘폐쇄 반복 현상’, ‘펜로즈의 계단’)이나 주체와 객체의 전도 현상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역설을 말한다. 물론 훨씬 풍부한 예들이 가능할 것이다. 꿈이야말로 허구성으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파라-독사를 말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일 것이다.

<인셉션>에서 꿈의 세계와 기억의 세계는 구분되어야 한다. 코브가 아리아드네에게 “기억으로부터 장소를 재창조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억을 토대로 해서 꿈을 설계할 경우, 꿈속의 인물들은 이 세계가 가능세계인지 현실세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셉션>의 꿈 개념이 함축하는 중요한 측면들 중 하나는 그것이 기억을 토대로 한 현실적인 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설계’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 영화의 각 꿈은 ‘기억’이나 ‘무의식’보다는 오히려 ‘가능세계’에 가깝다. 그러나 이 가능세계는 순수 논리적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그리고 누군가들의 잠재의식에서 성립하는 세계이다.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 깊숙이 어떤 관념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생각들이 아니라 가장 원초적이고 감응적인(affective)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임스가 인셉션의 목표가 된 인물의 ‘생각’보다는 더 절대적으로 기본적인 것에서, 즉 그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재와 가상의 전복: ‘사랑’과 ‘인식’

이 영화를 단지 흥미진진한 공상과학영화 이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결정적인 면은 바로 코브와 멜의 관계이다. 영화의 사이버펑크적인 구도와 이 두 사람의 극적인 관계가 극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면서 영화의 깊이와 완성도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늙어 가는 것’과 ‘회한에 가득 차 외롭게 늙어가는 것’의 대비가 드라마의 전체 구도를 잡아주고 있다. 코브는 기억과 설계가 뒤섞인 꿈의 세계를 만들어 끝없이 꿈같은 시간들을 반추하고, 또 회한 어린 순간들을 되돌려 그것을 바꾸기를 거듭한다.(그러나 기억이 섞여 있기에 그의 소망은 충족되지 않고, 또 이런 그의 실험이 꿈의 공유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현실성의 차원에서 코브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성과 잠재성의 관계에 있어 사실상 그는 아내를 죽였다. 그래서 그는 끝없는 가책 속에 살면서 다시 잠재성의 세계로 들어가 아내를 만난다. 살인하지 않은 코브가 사실상 (전혀 원치 않은 채) 살인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남편과 아내는 ‘꿈속의 꿈’이라는 관념에 매혹되었다. 매혹은 모든 강도 높은 사건의 시발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꿈속과 생시를 오가면서, 또 꿈 아래의 꿈을 실험하면서 짧은 시간과 긴 시간 사이를 오간다. 남편은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가길 원하고, 세계의 전환과 시간의 변환 속에서 이들은 점차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코브는 처음에 더 깊은 꿈들에서의 시간 변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이 몰이해가 가져올 결과가 무엇일지도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된다) “무엇이 실재인가?” 고대의 자연철학자들이 이 물음을 제기한 이래 이것은 철학의, 특히 존재론의 핵심 물음으로서 내려왔다. 그리고 현대의 사이버펑크 영화는 집요하게 이 물음을 형상화해 왔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인가?”(<블레이드 러너>) “내 영혼(고스트)은 과연 나의 영혼인가? 또, 생명/영혼이란 무엇인가?”(<공각기동대>) “로봇은 언제 인간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가?”(<바이센테니얼 맨>)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과연 실재인가?”(<매트릭스>) <인셉션> 역시 이 근본 화두에 부딪친다. 코브와 맬은 장자처럼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생시에서 꿈으로 왔는가, 아니면 꿈에서 생시로 왔는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데 도취되어 있던, 신이 된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던 부부. 어느 날 코브가 회의를 품으면서 부부의 운명은 갈린다. 어느 세계가 실재이고 어느 세계가 가상인가? 이 물음에 대해 부부가 서로 다른 해를 가지면서, 이들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멜은 현실세계와 가능세계를 혼동하게 되고 토템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린다. 그리고서 림보의 깊은 꿈속에 빠져버린다. 서구 문명에서 림보가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듯이, 영화에서의 림보는 살 수도 없고(현실이 아니기에) 죽을 수도 없는(무한히 늘어지는 시간 때문에) 곳이다. 그것은 설계되지 않은 꿈, 설계가 실패로 돌아가는 무한의 잠재의식으로서, 여기에서 꿈꾸는 이는 생시를 망각한 채 길고 긴 시간을 살아간다. 림보는 베르그송의 순수과거와는 달리 기억의 선험적 조건이 아니라, 꿈의 마지막 변방이다. 생시로 돌아왔을 때 멜은 그곳이 꿈의 세계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실재세계로서 각인되어 있는 림보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녀에게 꿈의 세계를 가르쳐 준 것은 코브이지만 그것을 생시로 믿어버린 것은 멜이었다. 영화는 멜의 비극의 선을 따라가기보다 코브의 해피 앤딩의 선을 따라감으로써 멜을 영화의 림보로 밀어냈지만(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멜’은 프랑스어로는 ‘le mal’ 즉 ‘악’이다), 사실 이 영화의 배면의 핵은 분명 멜의 비극에 있다.(영화의 엔딩 장면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바로 이 사실 ― 라캉적 뉘앙스에서의 ‘진실’ ― 의 표현일 것이다. 사드가 칸트의 진실이듯이, 멜은 코브의 진실이다)

남편과 아내가 다른 길은 간다면?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는 불가능하다. 인식에서의 길은 다르다, 그러나 삶에서의 길은 같아야 한다. 여기에 사랑하기에 함께 림보(그녀에게는 실재)로 가길 원하는 아내와 역시 사랑하기에 함께 현실에 머물고자 하는 남편 사이에서 비극이 생겨났다. 사랑하기에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인식이 다르기에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부부. <현기증>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빼어나게 묘사되었던, ‘사랑’과 ‘인식’ 사이의 이 아픈 딜레마! 이 딜레마는 결국 멜의 죽음으로 끝난다. 부부를 잇고 있는 핵심적인 끈은 물론 아이들이다. 아내는 지금 여기(현실)가 꿈속이며 진짜 아이들에게 가려면 지금 여기에서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지금 여기가 현실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남편을 깨우치기 위해 스스로가 먼저 죽음(깨어남)을 택한다. 남편은 지금 여기가 현실임을 알고 있었기에(남편이 옳다는 객관적인 기준은 바로 부표에 있다) 아내를 붙들고자 했지만, 바로 지금 여기는 꿈속이 아니었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만일 코브가 틀렸다면(지금 여기가 꿈속이었다면), 그는 건물을 날아가 아내를 안거나 아니면 함께 뛰어내렸을 것이다. 코브에게 이 악몽 같은 ‘현실’은 ‘꿈’이 아니었기에 힘겨운 것이었다. 힘겨운 현실을 만날 때 우리는 뇌까린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그러나 코브의 인식과 그의 소망은 결코 만날 수 없었고, <현기증>의 주인공처럼 그 역시 인식과 소망 사이에서 분열되어버린다. 반대로 아내에게 지금 여기는 림보였고, 그는 어떻게든 남편과 함께 현실(사실상 림보)로 가야 했다.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서, 남편 앞에서 추락사하는 것뿐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착잡한 파토스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피셔가 죽어가자 코브와 아리아드네는 림보로 내려가고, 거기에서 코브는 멜과 재회하게 된다. 그러나 림보에서도 코브와 멜의 ‘인식’ 차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내가 이미 죽었고 오직 림보에서만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코브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사랑보다는 오히려 죄책감이다. 멜로 하여금 그 위험한 관념을 심어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죄책감. 코브는 림보에서 벗어나기 위해 멜의 마음 깊숙이에 “이곳은 실재가 아니다, 죽음으로써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관념을 심었다. 물론 반드시 둘이서 함께. 둘이서 함께라면 죽음으로써 이 허구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이 관념.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이 관념은 암처럼 자라서 멜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멜은 현실세계에서도 바로 이 관념에 의해 지배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된다.

하지만 멜은 말한다. 만일 ‘함께’ 살 수 있다면 림보라면 어떻겠는가? 설사 여기가 림보라 하자. ‘함께 늙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면, 왜 그곳이 꼭 현실/실재여야 하는가? 림보에서 함께 늙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물었었다: 우리는 지금 생시에서 꿈으로 왔는가, 아니면 꿈에서 생시로 왔는가? 하지만 무엇이 ‘진실’이든 무슨 상관인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면? 여기에서 다시 ‘사랑’과 ‘인식’의 딜레마가 솟아오른다. 그러나 실재와 림보의 구분을 인식하고 있는 코브는 마침내 아내(아내의 그림자)를 포기하고, 마음속 깊이 박힌 가시를 뽑아버린다. 고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만난 코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가시가 뽑힌 자리가 아물 수 있을까? 쓰러질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돌아갈 것 같기도 한 팽이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아이들을 만난 코브의 행복과 뽑혀진 가시로서의 멜의 비극을, 끝나지 않은 딜레마를 계속 반추하게 만든다.

유목미학

 

숙경


 

 

유목미학[각주:1]은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의 ‘유목론[각주:2]’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미학 장르이다. 들뢰즈 철학에 있어서 유목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 유목론에는 ‘잠재성’, ‘다양체’, ‘리좀’과 같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들뢰즈 철학의 위상은 서구 전통 사상의 중심 테마라 할 수 있는 ‘이데아의 모방’ 혹은 ‘형상(形相)의 재현’ 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들뢰즈 철학이 추구하는 바는 ‘재현’이 아닌 ‘창조’에 있는 것이다. 유목미학은 이와 같은 들뢰즈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창조적 해석과 변용을 꾀하고자 만들어졌다. 바로 존재의 창조적 속성에 의한 다양한 변주가 유목미학의 중심 테마가 되는 것이다.



1. 유목론의 철학적 특성

 

유목론을 이끌어 가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방목(放牧)’[각주:3]이다. 방목에는 앞서 언급한 잠재성, 리좀, 다양체의 원리들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방목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목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살아가는 정착민과 달리 목축을 주업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유목민은 가축을 방목하며 물과 풀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습성을 지니고 있다. 정착민의 영토가 울타리나 소유지로 규정되어 있고, 그 규정된 장소에 사람들과 가축들이 분배된다면, 소유지도 울타리도 없는 유목민의 영토는 미리 규정되거나 제한되지 않은 열린 공간 안에서 오히려 사람과 가축에 의해 분배되고 결정된다. 이와 같은 유목 방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경계가 분명한 정착민의 소유지와 그 안에 배분되는 가축들의 움직임은 이미 짜여진 공간의 재현이라고 하는 구조적 의미가 깔려있는 반면, 경계 없는 유목민의 영토에서 방목되는 가축들은 무 규정의 공간에서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열어가고 창조해 간다고 하는 생성론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유목론은 곧 생성론의 상징에 다름 아닌 것이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이와 같은 방목의 특성에 대해 ‘악마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방목이 ‘소유지’라고 하는 규정된 공간의 질서를 어지럽힘으로써, 재현이라고 하는 정착적 구조를 전복시키는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목론이 시사하는 바는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론을 뒤엎는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에는 개체들이 미리 규정된 존재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개체들이 스스로 존재를 생성하고 구축해간다고 하는 생성존재론의 의미가 깔려있다.

그러나 유목민의 영토가 유동적이라고 해서 무한대로 열린 공간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목이라고 하는 생활 형태는 물론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습성을 가지나, 그렇다고 해서 되는대로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정착민의 공간처럼 고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유목민들도 나름대로 정해진 영토 안에서 자연의 변화 등에 의해 관습화된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유목민이 정주민과 정확히 다른 점은 영토를 점유하고 상주하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 머물렀던 지점으로부터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유목론을 단순한 생성론의 범주에서 이탈시키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유목민의 영토가 일정 공간과 궤적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유목론이 구조주의적 입장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편 그 공간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환경의 변화와 유목민의 이동에 따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라는 점에서는 다시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유목론에는 이른바 구조와 생성, 어느 것도 버리지 않고 함께 사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데, 이 점이 바로 들뢰즈가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목론에서는 장(field)과 운동이 함께 사유된다.

실상 장과 운동은 독립된 요소가 아니므로 따로 떼어 설명한다는 자체에 무리가 따르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다양체’와 ‘리좀’ 그리고 ‘잠재성’을 각각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도 무리가 없지 않을 것이나, 유목론의 철학적 분석을 위해 편의상 분리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1) 다양체(multiplicity)

들뢰즈는 유목민의 운동이 '공간 이동'이 아닌 '제자리 운동'이라는 주장을 통해 '제자리에서 유목하기'라고 하는 독특한 발상을 전개한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같은 견해는 유목민의 생활터전이 건조한 스텝지역에 국한된다는 조건과 부합되어 설득력을 얻는다. 그들은 늘 이동하지만 실상 한 번도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설사 그들의 궤적 공간이 확대된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영토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건조화 등 기후의 변화로 인해 영토가 확장된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유목민은 늘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만 정작 거주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정착민일지언정 유목민은 아니다. 정착민에게 있어서 이동이란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것, 다시 말해 완전한 ‘이주(移住)’를 뜻하지만, 유목민에게 있어서 이동은 터전 안에서 쉬지 않고 순환하는 '제자리 운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목민의 영토는 비록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의 이동에 의해 수시로 그 위상이 변한다. 이로부터 하나의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포착되는데, 전통 존재론인 재현 방식은 공간적 차이, 양적 차이를 수반하지만, 유목론에서는 시간적 차이, 질적 차이가 존재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거지 자체가 바뀌는 정착민의 이동은 재현의 전통에서 개체의 차이가 곧 원본의 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이동에 따라 영토 자체의 위상이 수시로 바뀌는 유목론에서는 하나의 원본 안에 무수한 질적 차이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유목론에 있어서 존재란 재현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담과 도로에 의해 일정하게 구획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행적이 규정된 '공간의 재현'이라고 한다면, 담도 도로도 없는 무 규정의 공간에서 이동과 정지의 여정을 병치해 가는 유목민의 행적은 스스로 도로와 거주지를 만들어 가는 '공간의 창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목론에 있어서의 존재 방식은 선(先) 존재하는 '동일성의 재현'이 아닌 무수한 차이들(개체들)간의 접속과 배치로 만들어 가는 '동일성의 창조(혹은 구축)'라 하겠다. 그러나 이때의 동일성은 유일한 것도 고정불변 하는 것도 아니다. 유목민의 공간은 이동과 함께 옮겨지고 옮겨짐과 동시에 지워지는 미 규정된 경로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거주라는 개념도 정주민의 거주지처럼 부동의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궤적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들이 비록 관습적인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해도 모든 지점은 중계점으로만 존재하며 정주민의 공간처럼 영구히 점유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유목민의 삶에 있어서 영토의 의미는 결코 고정적인 것도, 영구불변의 것도 아니다. 규정되고 다시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유목민의 영토처럼 그렇게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고 복수적인 동일성을 들뢰즈는 ‘다양체’라고 부른다. 요컨대 ‘동일성이 다양체로 대체’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지점은 동일성이 선(先) 존재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다양체는 차이들, 개체들 간의 생성운동의 결과로 구축된 불완전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차이생성(differentiation)’이 동일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와 같은 다양체의 생성 원리를 특정식물의 생식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좀’[각주:4]이다.

 

(2) 리좀(Rhizome)

리좀은 중심뿌리의 지배하에 폐쇄적이고 단일한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수목형(樹木形) 나무뿌리와 달리, 중심뿌리가 제거된 채 줄기에서 직접 분기한 개개의 땅속줄기들이 횡적으로 직접 접속하는 열린 체계를 이룬다. 따라서 수목형(樹木形) 나무뿌리가 무수한 잔뿌리들의 차이를 모두 흡수하여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시키는 반면, 비유기적으로 단절되고 이질적인 것들 간에 직접 접속하는 리좀은 접속되는 항들이 늘거나 줆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가변적 체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리좀의 원리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함에 따라 영토 자체의 위상이 수시로 바뀌는 유목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접속’에 있다. 접속만이 유일한 존재의 근거가 된다.

수목형 구조

  왼쪽 하단이 '리좀' (Attribution : Wackymacs at en.wikipedia.org)

  

 

어떻게 접속하고 해체되느냐에 따라 존재는 무수한 질적 차이를 수반한 다양체로 구축되기도 하고, 다시 해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리좀의 세계, 다양체의 세계에 있어서 ‘일점 근원의 신화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각주:5]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모든 존재는 시작과 끝이 아닌 ‘중간(中途)’에서 이루어지며 중간은 다름 아닌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접속은 그 자체로 운동이며 접속을 통해서만 생성과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운동이 멈춘 지점으로 그런 의미에서 존재와는 무관하다. 유목 또한 중간에서 이루어진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유목의 시작과 끝은 없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유목민의 행적에 정확한 출발지도, 뚜렷한 목적지도 없다. 따라서 유목민의 주거는 고정된 영토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여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정 중에 어느 지점과 접속하고 배치를 이루면 그게 바로 거주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정의 의미가 강조 될 때 출발점과 도착점은 의미를 상실하고 유목은 오직 여정이 이루어지는 중간지대 - 중도(中途)가 실제적 의미로 부각 된다. 그렇다면 정해진 담도 도로도 없는 유목민의 공간에서 거주지와 궤적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를 철학적 의미로 담론화하면, 형상의 재현을 벗어난 존재의 발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하기 위해서는 유목론의 구조적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잠재성으로 논의 장을 옮겨가야 한다.

 

(3) 잠재성(virtuality)

유목민들의 이동과 거주의 경로는 '기계(개체)[각주:6]-접속-배치(다양체)'의 리좀 라인을 이루며 유목의 대지 안에 잠재해 있다. 따라서 유목론은 ‘잠재성의 철학’, 보다 넓은 의미에서 ‘내재성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성의 철학이란 존재의 근원이 존재의 밖에 있지 않고, 존재 자체에 있음을 의미한다. 초월성이 초월적 존재의 근원을 현실에 투사하는 것이라면 내재성은 역으로 잠재된 존재가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유목경로들이 대지에 잠재해 있다 해서 어떤 보물이 땅속에 매장되어 있다가 발굴되듯이 차례로 노출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와 달리 유목공간의 형성은 잠재되어 있는 발생 가능한 리좀 계열들이 마치 ‘카드의 패를 던지듯이’ 또는 ‘바둑판 위의 어느 지점에 바둑알이 놓여지듯이’ 그렇게 접속과 동시에 발생한다. 카드 속에는 무수한 카드의 패가, 바둑판에는 무수한 바둑의 위상이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현실성으로 부상하는 것이다.[각주:7]

잠재성의 성격은 들뢰즈 철학 개념의 하나인 ‘탈기관체(脫器官體:body without organs)’의 성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탈기관체는 기관이 없는 몸이 아닌 기관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몸의 기관들이 아직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탈기관체는 무수한 조직화의 계열이 잠재되어 있는 ‘알’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재성의 존재가 ‘미 규정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잠재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들과의 접속을 필요로 한다. 접속을 통해 잠재성은 비로소 현실화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유목론을 크게 잠재성, 리좀, 다양체의 원리로 분석해보았으며, 유목미학은 그 원리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해석하고, 장르를 초월한 변용과 창작의 과정으로 확산된다. 그 중 한 예로 유목론의 주요 개념들을 중앙아시아 예술 분석을 위한 아우트라인에 간단히 적용해 보기로 한다.


 

2. 유목론의 창조적 해석과 변용 - 중앙아시아 미학

 

(1) 잠재성

중앙아시아라고 하는 공간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역의 중심지이자 온갖 문물이 교류하는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세계 각지의 종교와 문화, 예술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아아시아로 흘러들어와 다양한 접속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에는 불교와 이슬람교 뿐만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브라만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 그 외에도 그리스 로마에서 흘러들어온 갖가지 신화와 종교 등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혼재했다. 이 같은 특성상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전체를 통일하는 중심 원리도, 하나의 규범을 세우는 오랜 전통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또한 모든 사상과 문화를 결속하는 거대한 유기적 체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중앙아시아는 바로 유라시아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미립자의 상태로 북적대는 곳,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생명을 배태한 알처럼, 무수한 리좀 계열들과 다양체들을 가능태로 품고 있는 거대한 잠재성의 장인 것이다.

 

(2) 리좀

리좀은 그 자체로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만을 갖는다.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은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지대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는 접속과 배치가 이루어지는 ‘중간지대’이다. 그곳에 모여든 온갖 종류의 사상과 문화는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기계들로서, 다른 문화와 만나서 접속하는 양상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는 가변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는 무수한 리좀의 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형’조차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첫 근원지를 묻지도 않으며,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상정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주변도, 근원도 파생도 없이 오로지 만남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곳,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원본’이 아니라 ‘접속’에 있다. 그렇게 시작과 끝이 없는 중간지대, 중앙아시아는 끊임없는 접속을 통해 무수한 ‘질적 차이-다양체’를 낳는 곳이다.


(3) 다양체

중앙아시아의 아프로디테 상. 중앙아시아로 오면서 어깨에 날개가 돋혔다.

중앙아시아에 흘러든 그리스의 신들은 더 이상 그리스 고유의 신들이 아니다. 그들은 먼 이국땅에 들어와 일단 안착하게 되면 그 지역의 다른 문화와 접속하여 다양한 질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는 고대 페르시아 땅인 파르티아에 날아오면, 날개를 접고 지모신(地母神)의 성격으로 변하여 대지를 수호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역시 파르티아와 간다라 지방을 통과하면서 그녀의 관능미는 질적 변화를 꾀해 생산을 관장하는 ‘풍요의 여신’으로 탈바꿈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최고신인 제우스는 몸소 중앙아시아의 간다라 지방까지 건너와서 붓다의 협시(挾侍)인 바즈라파니(금강역사)가 된다. 헤르메스와 디오뉘소스도 제우스를 따르는데 이를테면 그리스 신들이 단체로 불교에 귀의한 셈이 되는 것이다. 힘과 용맹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의 경우는 보다 다양한 접속을 꾀하게 되는데, 그리스 땅을 떠나 가장 먼저 다다른 파르티아에서 그는 조로아스터교의 전승신(戰勝神) 베레트라그나와 접속하여 승리의 신으로 거듭난다. 그곳에서 많은 신도를 확보한 헤라클레스는 그 후 보다 동쪽으로 진입하여 박트리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방에 이르면 불교와 접속하여 붓다의 협시가 되는데, 용맹하고 진취적인 헤라클레스는 이에 멈추지 않고 북방 실크로드를 따라 돈황 등지에 이르러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번에는 역류한 중국 불교와 접속하여 인왕(仁王)상이 된다.

 

 

바즈라파니가 된 그리스 신들, 왼쪽부터 헤르메스, 디오뉘소스, 제우스, 사티로스(판) 바즈라파니(金剛力士)는 붓다의 수호상으로 손에 바즈라(금강저)를 들고 있다.


 

붓다의 협시가 된 헤라클레스. 어깨에는 사자 가죽을 걸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는데 그 후로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거나 어깨에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3. 유목미학이 나아갈 길


초월성의 철학에서 모든 존재는 ‘재현’의 원리를 따르는 반면 내재성의 철학, 잠재성의 철학에서 모든 존재는 창조의 원리를 따른다. 그렇다면 새삼 창조란 무엇인가? 굳이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해묵은 격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잠재성의 현실화, 그리고 리좀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창조란 어느 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공허의 대지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수한 다양체들이 북적되는 잠재성의 장 - 선험의 장에서 접속을 통해 배치를 이루는 것이 바로 창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의 실마리는 '접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있는 언어와 언어가 접속해서 새로운 사상을 수립하고, 기존에 있는 선과 선이 접속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다. 이 글의 시작에서 유목미학은 재현이 아닌 창조에 관한 이야기라고 서언(序言)했다. 이제 부언(附言)하건대 유목미학은 세상의 모든 ‘접속’에 관한 이야기다.

정주민에 있어서 삶의 궤적이 담과 도로에 의해 제한되어 있듯이 미학 역시 형식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오랜 재현의 전통 속에 있었다. 담과 도로가 없는 유목공간은 형식과 규범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더 이상 개념은 개념에만 머물지 않으며, 감각은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념과 감각은 상호 간에 자유로이 넘나들며 접속하고, 접속을 통해 수많은 다양체들을 만들어간다. 유목미학이 나아갈 길은 세상 모든 개념들이 감각의 통로를 타고 지각으로 탄생하는 것, 그렇게 “개념을 에둘러 살아있는 노래, 외침이 되게 하는 것”이다.


  1. ‘유목미학’이라고 하는 용어는 필자에 의해 고안된 신조어(新造語)이며, 유목미학의 주제와 내용은 들뢰즈의 유목론을 바탕으로 하여 논의의 지평을 확대하고 창조적으로 변용하였다. [본문으로]
  2. 유목론(Nomadology)은 들뢰즈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유목론에 관한 내용은 들뢰즈 가타리의 공저『천의 고원』(1980)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들뢰즈의 초기 저서인『차이와 반복』(1968),『의미의 논리』(1969)를 비롯하여 이후로 발표된 저서와 논문에서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3. 호메로스 시대에는 방목장의 울타리나 소유지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 사회에서는 정해진 땅을 가축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축들을 숲이나 산등성이 같이 한정되지 않은 공간 여기저기에 풀어놓아 스스로 공간을 점유해 가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목의 장소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었는데,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뜻의 ‘노마드’도 이로부터 성립한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nomad)의 어원은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모스는 관습이나 법 이외에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본문으로]
  4. 리좀은 땅 밑 줄기(또는 땅 속 줄기)를 이르는 말로 들뢰즈 가타리의『천의 고원』에서 수목형(樹木形)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함께 등장한다. 수목형과 리좀형은 각각 전통존재론과 차이생성론을 상징한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되는 전통 형이상학의 초월적 사유는 모든 뿌리들이 하나의 중심뿌리로 귀착되는, 다시 말해 하나의 뿌리를 중심으로 모든 곁뿌리들이 뻗어가는 수목형 사유체계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 이데아, 신, 주체와 같은 존재의 제1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모든 존재를 설명하는 초월성의 사유체계는 다름 아닌 수목형 사유체계가 되는 것이다. 한 편 중심이 제거된 체계 속에서 발생과 변형을 존재의 특징으로 하는 차이생성론은 중심뿌리 없이 줄기자체가 분기하여 각각 뿌리역할을 하는 리좀형 사유체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5. 이 문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기까지 전통 형이상학의 모든 사유를 함축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본문으로]
  6. 들뢰즈는 개체(an individual)를 기계(machine)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개체 자체보다는 ‘접속’에 비중을 두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존재의 비중이 어떤 보편적 존재나 혹은 개체 하나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 간의 접속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계를 복잡한 기계(complex machine)가 아닌 나사와 같은 단순 부품으로서의 기계(simple machine)로 설명한데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하나의 부품은 다른 부품과 연결 접속됨으로써만 존재의 성질이 부여된다. [본문으로]
  7. 잠재성의 분화(현실화)에 관해서는 이정우의 『사건의 철학』(그린비, 2011) 1부 5강을 참조할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