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上)

 

임상훈(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 상임연구원)



  

 

1. 인문학과 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뇌에 관련된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신경 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의학 또는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말하게 되지 인문학을 언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인문학이 뇌에 관해서 이야기할 부분은 무엇인가? 또 뇌가 인문학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에 관한 담론은 신체와 정신으로 분리되어 신체에 관한 연구는 자연과학에서, 또 정신에 관한 연구는 철학에서 다루게 되는 이분법 체계가 지속된다. 그러다 이런 학문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긴 것이 19세기 실증주의가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이때가 되면 인간의 정신도 과학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 이후, 철학이 자연에 관한 담론을 과학에 인계하면서 자연-과학, 정신-철학의 대칭으로 굳어진 체계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제는 철학이 정신도 과학에 양도해야 하는가의 물밑 논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논쟁은 과학과 철학이 단지 자연과 정신이라는 고유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 방법론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방법론적으로 서로 다른,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각자 다양한 대상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인식론적 논쟁을 야기하게 된다.[각주:1] 이 논쟁은 두 가지 방향의 논쟁인데, 첫째는 철학이 과학과 단지 다루는 대상의 문제로밖에 변별성을 유지할 수 없나 하는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고, 둘째는 진정 과학적 방법론으로 정신을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였다. 철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서구 전통의 합리주의가 주축을 이루면서 내려오던 철학에서 이른바 형이상학의 위기론이 시작된 것이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것을 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문제가 철학의 존폐위기로까지 갈 수 있는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출현과 새로운 비(非)플라톤 철학의 등장은 철학사의 차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문체계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과학의 방법론적 자격문제는 시간차를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제시되었다. 그 첫 번째 버전이 실증주의다. 과학의 당위성을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실현되어 있는 것들로, 지금 여기서 지각될 수 있는 것들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결국, 시간과 공간적 구체성이 강조되면서 (요즈음의 형태와는 좀 다르지만)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학이 출발을 하게 된다.[각주:2] 하지만 딜타이가 주장했듯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연구대상으로서 다르다면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적용이 가능해야 자연/인간이라는 대상적 구별과 과학/철학이라는 방법론적 구별에 대한 명확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의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가능해졌고, 그러한 필요성이 뇌를 인간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매개가 되게 하였다.

 

 

2. 뇌에 관한 연구의 역사

 

과거의 문헌들을 보면 뇌에 대한 연구를 언급한 기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자료들을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뇌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뇌에 관한 언급은 기원전 17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문자기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그러한 기록들이 당시의 뇌연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전 3000년경의 사실을 다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볼 수가 있다.


 

 

놀라운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이뤄진 이러한 뇌연구에서 상당한 수준의 국지적 분석이 이미 행해졌고 비록 초보적 단계이나마 뇌의 부위별로 신체기관을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그 당시 사람들은 알아냈으며 실제 특정 부위가 손상됐을 때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뇌의 부상으로 안구의 일탈이 발생할 수 있다던가 뇌가 손상되면 환가가 발을 끌면서 걷는다’, ‘관자놀이가 깨진 사람을 관찰하면 그를 불러도 대답을 안한다, 말을 할 줄 모른다등의 내용들이 들어 있다. 특히 뇌의 부상이라는 언급, 그리고 그 부상이 특정 일탈로 이어진다는 언급으로 이미 그 당시 병리학적 방법론을 통한 과학이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뇌의 기능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운동기관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각주:3]

 

그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히브리 문명에서도 뇌연구에 관한 문헌들이 등장하는데, 철학사에서 의미있는 뇌관련 언급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언급한다.[각주:4] 그 세 부분이란 지적영역, 분노에 관한 영역, 욕정에 관한 영역이 그것인데, 그 중 지적영역이 바로 뇌에서 관장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봐서 플라톤은 뇌를 인간의 사고를 총관장하는 중심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각주:5]

 

이후 등장하는 문헌은 기원전 3세기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의 이름과 결부가 된다. 이 두 사람은 특히 수많은 해부실험을 통해 뇌의 정확한 모양과 위치를 파악했던 최초의 사람들이다.[각주:6] 그뿐만 아니라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의 논란 속에서 최초로 신경의 존재를 밝혀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곳은 동맥을 통한 심장이 아니라 신경을 통한 뇌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들이다.

 

1세기경에 들어서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로도 유명한 갈레노스의 이름이 등장한다.[각주:7] 갈레노스는 뇌의학뿐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의학, 해부학, 생리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는데 특히 갈레노스는 인체의 기계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동물적, 인간적 영혼을 가지게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개념이 바로 프네우마pneuma’인데, 그에 따르면 폐로 들어온 공기가 프네우마라는 실체와 섞이면서 심장으로 들어와 생명기운이 동맥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프네우마가 뇌로 퍼지게 되면 비로소 동물기운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레노스는 뇌중심주의와 심장중심주의를 적절히 조화를 시켜, 생명적 유기체는 심장에서 비롯되나 그것이 동물적 유기체로 변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뇌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뇌와 심장의 관계는 거의 오늘날 수준의 것으로 정리된다.

 



 

많은 학문들이 그렇듯이 중세시대에 들어오면 뇌과학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은 보기 어렵다. 다만 뇌의 부위에 따라서 정신활동의 분야들도 결정된다는 이론은 거의 정설로 굳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뇌의 앞쪽(전뇌실)은 상상을 담당하는 부분이고 중간 부분(중뇌실)은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 그리고 뇌의 뒤쪽 부분(후뇌실)은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뇌의 기능론이 중세시대를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뇌에 관한 역사를 전체적으로 볼 때, 발전적 지식은 엄밀하게 말해 갈레노스 이후 십 수 세기 동안 멈췄고, 그 지식체계는 중세시기를 지나 17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인문학이 말하는 뇌, 뇌가 말하는 인문학 (下)] 편이 곧 게재될 예정입니다.

 

 

  1. 우리말로 ‘인식론’으로 번역하는 영어의 ‘epistemology’는 영미철학과 대륙, 특히 프랑스철학에서, 서로 사용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인식론, 즉 인간의 인지와 지식의 구조, 방법 등을 다루는 칸트식의 gnoseology와 관련이 있는 분야로 사용되지만 프랑스 철학에서는 과학 또는 학문들의 구성, 역사,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 등에 관련된 담론체계를 말한다. 때로는 우리말로 ‘과학철학’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과학분과학문들에만 국한된다는 오해의 여지도 있다. 일단 이 글에서는 ‘인식론’으로 쓰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보통 프랑스인들에게는 인간과학 (science de l’homme)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반면, 독일 전통에서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 두 전통은 단지 표현법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추구하는 방향도 사실은 조금씩 다르다. [본문으로]
  3. “마지막으로 31번의 경우, 경부척추가 탈구되면 환자는 두 팔과 두 다리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성기가 발기되고 의식없이 배뇨나 사정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Jean-Pierre Changeux, L’homme neuronal, 1983, Fayard [본문으로]
  4. 플라톤, <티마이오스>, 박종현 역, 2008, 서광사 [본문으로]
  5. 인간의 정신이 신체와 관련이 있다는 사고는 다시 크게 둘로 나눠진다. 첫째는 뇌중심주의, 둘째는 심장중심주의인데, 플라톤이 대표적 뇌중심주의 사상가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인 심장중심주의 사상가이다. 요즈음 과학적 지식으로 보면 당연히 플라톤의 뇌중심주의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역설적으로 플라톤의 뇌중심주의는 직관에 의한 판단에서 나왔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장중심주의는 실증적 경험에 의해 검증된 이론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신경의 존재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체기관들 사이의 연결통로는 혈관이었고 혈관들이 모두 심장으로 모이고 있다는 임상적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심장이 모든 신체기능의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과학적 프로세서가 오류로 이끈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본문으로]
  6. 당시는 과거 고대사에서 인간의 신체가 해부의 대상으로 허용이 되는 얼마 안되는 시기중 하나였는데, 뇌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대한 해부와 기록이 행해졌다. 특히 그 당시는 시신을 해부하는 것은 금기시 되던 때였고, 따라서 이들이 행했던 해부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황제가 허락을 한 대상들에 대해 수많은 생체해부를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과학의 이름으로 인륜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 사례도 된다. [본문으로]
  7. 그 당시 역시 시신에 대한 해부가 금지되어 있던 터라 갈레노스 역시 앞선 헤로필로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신을 해부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생체에 대한 실험을 허락했던 잔인한 헤로필로스 시대와 달리 갈레노스의 시대에는 생체해부가 허용되지 않았다. 자연히 갈레노스의 실험 대상은 소, 개, 돼지, 원숭이 등의 동물을 통해 행해졌고, 그런 조건은 헤로필로스의 경우에 비해 갈레노스는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관심보다 동물과의 유사성, 동물적 유기체로의 인간으로 관심이 정착되어졌다. [본문으로]

경희사이버대학교 공개 특강 <틀짓기 - 최근 프랑스 사상에 있어 정치와 감수성> (11/28)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에서 <틀짓기-최근 프랑스 사상에 있어 정치와 감수성> 이라는 주제로 공개 특강을 진행합니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시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시간 - 20131128일 목요일 19

 

장소 - 경희대학교 청운관 207

 

*누구든 오실 수 있습니다.

 

 

[강의 소개]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보다 일반적으로 미학적 감수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의 사유에 공헌할 수 있을까? 특히 "글로벌화"라 불리고 있는 지금 이 시디에 정치적 사유와 예술철학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이 강연은 위와 같은 물음을 주제로 이루어지며, 특히 프랑스에서 나온 사유들을 "틀짓기(enframing)"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에 답하려 한다. "틀짓기"라는 용어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용어로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받게 된 개념이다. 리오타르는 이 개념을 통해서 글로벌 시대의 예술을 해명코자 했다. 이 맥락에서의 "틀짓기"란 어떤 주어진 경제 내에서 감성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한" 정치적 격돌의 장에서 미학이 행할 수 있는 역할을 음미할 수 있다.

 

<파이데이아 홍릉> 겨울에 오픈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는 교양학부의 이념을 한국 사회에서 보다 널리 공유하고, 교육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교양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파이데이아 홍릉>(가칭)을 계획하고 있다. 

겨울에 오픈할 파이데이아 홍릉에서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강좌가 열릴 예정이며, 아울러 현대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병행될 예정이다.

서울의 중심부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문화적 공간이나 사건이 비교적 취약한 동부에 새로운 학문적-문화적 장소를 창출함으로써, 주변의 여러 사람들, 기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장소는 산림청과 롯데백화점 사이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